한해의 결실을 매듭짓는 12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한국수필문학관 ‘2025 겨울문학제’는 한 해 문학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풍성한 자리로 열렸다. 문학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필자에게 이 행사는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난 12월 11일, 한국수필문학관 산하 수필창작아카데미, 대구에세이포럼, 수필알바트로스, 수필세계작가회 등 네 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동인지와 개인 수필집들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고, 그동안 갈고닦은 성취를 서로 축하하는 자리에는 100여 명의 문우가 모여 성황을 이뤘다.
1부는 공도현 작가의 사회로 문을 열었다. 홍억선 관장은 개회사에 이어서 새로 출간된 책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세심한 해설을 전했다. 제자들의 글을 자식 살피듯 세세히 짚어 주시는 관장의 말에 아직 읽지 못한 문장들이 머릿속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어 지난 한 해 각종 수상자가 소개되며 축하의 박수가 이어졌다.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을 받은 엄옥례 작가를 비롯해 아카데미 회원들의 대외 문학지 등단과 공모전 입상자들의 성과가 언급되었다. 필자 또한 청송 객주문학제에서의 작은 결실이 이름으로 불리는 수줍은 기쁨을 누렸다. 동료들의 성취에 아낌없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겨울바람을 녹일 만큼 뜨겁고 다정했다.
2부는 변미순 작가의 진행으로 수필세계 신인상과 문학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수필세계 신인상은 상반기 박인규·윤시오 작가와 하반기 박정애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문학상은 쉼 없이 작품 활동에 정진하며 수필집을 펴낸 조현태 작가가 받았다. 참석자들은 부러움과 함께 진심 어린 박수로 축하를 전했다. 이어진 축하 무대에서 조영애 문우가 선보인 수필 낭송은 이날의 백미였다. 목소리가 잠겼다고 수줍어하던 자칭 ‘백발의 소녀’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깊은 울림을 전하며 장내를 고요한 감동으로 물들였다.
3부 친교 시간에는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황무선 문우가 부르는 ‘소양강 처녀’가 흐르자 필자와 조영애 문우는 참지 못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 응원의 춤사위를 보탰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선배 작가들이 망설임 없이 노래와 춤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정적인 문인이라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진 무대였다. 객석에서도 들썩들썩 몸을 흔들었고, 오색 풍선과 환호로 가득했다. 글을 쓰는 열정만큼이나 삶을 즐기는 에너지 또한 남달랐다. 선후배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이었다.
흥겨운 무대가 끝나자 사진 촬영과 식사가 이어졌다. 작가들의 질서 정연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는 또 한 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글 잘 쓰는 이들은 마음 씀씀이도 따뜻한 것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뒷정리에 나섰다. 잔반 처리와 테이블 정리 등 소란했던 홀은 순식간에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러앉아 차를 나누며 관장님과 소회를 나누었다. 대명도서관에서 수필 수업을 하던 시절부터 2004년 ‘수필세계’ 창간, 2015년 전국 최초로 단일 문학 장르관인 ‘한국수필문학관’ 건립까지 관장의 집념은 숭고할 만큼 꾸준했다. 그 꾸준한 마음을 스펀지처럼 온전히 빨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가운 겨울 공기는 선명한 각오로 가슴 안에 파고들었다. 무심히 흘려보낸 한 해를 되돌아보며, 필자는 더는 망설이거나 갈등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새겼다. 쓰는 사람으로서 글쓰기의 길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손정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