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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송(老松) 아래 아무것도 없었다 (Ⅰ)

달고 묵직한 향이 흘러내렸다. 국화 향은 장례식장 입구와 빈소를 바닥부터 채웠고 만식이 누워있는 관보다 높은 곳까지 쌓였다. 만식이 가지고 갈 마지막 기억은 국화 향이었다. 조의금 함에서 새어나온 지폐의 냄새가 약간 섞이는 정도면 충분했다.조문객들이 문을 열 때마다 바람이 들어와 국화 향을 흔들었다. 필립의 코끝에 국화 향이 닿으면 필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세 걸음 앞으로 나가 영정 앞의 향로에 향을 더 피웠다. 국화 향이 흔들린 틈으로 다른 무언가가 들어갈 것 같았다. 필립은 만식이 국화 향과 지폐, 향로의 향을 제외한 다른 냄새를 기억하는 것이 싫었다. 이를테면 안나와 그 자식의 냄새. 비록 필립이 약속한 삶들이기는 했지만.필립은 두 번째 자식이었다. 안나의 뱃속에 세 번째 자식이 있었지만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안나와 그 자식을 어찌 대할지는 오로지 필립과 필립이 얻게 될 것들에 달려 있었다. 물론 필립은 약속을 잊지 않았다. 만식과의 약속, 노마와의 약속 모두. 지키지 못할 약속을 왜 하나? 회의석상에서, 직원과의 공식적인 대화 자리에서 필립이 즐겨 쓰던 말이었다.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고 결국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필립은 그런 날이면 당사자를 불러 술을 사주고 어깨를 토닥였다.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아? 이렇게 말하며.들어가 좀 쉬세요. 몇몇 사람들이 안나에게 말했다. 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리 내 울지는 않았지만 쉼 없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울다가 지치면 반대편 벽을 보거나 한숨을 내뱉으며 어휴, 하고 신음 소리를 냈다. 필립은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만식의 영정을 올려다보거나 방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가깝지 않은 사람들, 조문객들 중 일부는 안나가 필립의 아내인지 필립의 여자 형제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필립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자신들의 테이블로 돌아가 묻고 상상했다. 필립 또한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다. 안나를 아는 사람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안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저 여자는 왜 빈소에 두는 거냐? 상복까지 입히고.필립이 화장실에 들어서자 뒤따라온 외삼촌이 물었다. 오래전 죽은 누이의 남편 빈소임에도 찾아와 조문을 하고 허드렛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고마운 일임에는 분명했지만 필립은 고맙다 말하지 않았다. 필립의 경험에서 외가의 삼촌은 친가의 삼촌에 비해 기능이 떨어지는 어떤 것이었다. 어릴 적에는 용돈과 재미에 있어 그랬고 나이가 들어서는 필립과 만식에게 기대는 정도에 있어서 그랬다.벌써 세 번째 같은 것을 물었다. 여전히 누이의 자리라 생각했던 곳에 다른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지만 안나의 자리는 필립이 판단할 일이었고 결정한 일이었다. 필립에게는 외삼촌이 와 있는 것이나 안나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나 같았다. 둘 다 장례식장 외벽 우수관을 감고 오르는 질긴 넝쿨이었다.-아버지 가시는 자리를 시끄럽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냥 둘 생각입니다. 이젠 그만 물으십시오.바지 지퍼를 올리고 세면대로 향하는 필립의 뒤에서 외삼촌이 말했다.-네가 엄마에게 어찌 이럴 수 있냐?필립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손을 씻은 후 종이 타올로 손을 닦고 거울을 보았다-그러니까요. 엄마의 아들인 제가 결정한 일이니 그냥 계시라고요. 저도 웃으며 결정한 것은 아니니.자정을 넘어서자 조문객의 수가 줄어들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 분명했다. 만식은 죽었지만 만식이 하던 일은 남았고 만식이 가졌던 것들 또한 남았다. 누군가 이어가야 할 일, 누군가가 가질 것들. 필립이 그 누군가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필립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안나를 보았다. 얼굴이 부어 있었다. 뱃속에 아이가 있는 젊은 여자가 버티기에 힘든 하루였다. 황당하겠지, 슬프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저 여자 오늘 조금 많이 울었지. 정말 아버지를 사랑한 건가? 아니면 뱃속의 아이 때문에 그러는 건가? 필립은 안나의 감정과 생각이 궁금했지만 그저 궁금할 뿐이었다. 안나의 감정과 생각을 안다고 해서 바뀔 것은 없었다.-오늘은 더 이상 오실 분이 없을 것 같네요. 들어가서 좀 쉬세요. 내일은 오늘보다 힘든 하루가 될 겁니다.안나는 잠깐 머뭇거리다 일어섰다.-그러면 조금만 쉬었다 오겠습니다. 회장님께서도 눈 좀 붙이시는 것이. 조금이라도.회장님이라. 지금 나더러 회장이라 부른 건가? 허,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네. 필립은 빈소 옆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안나를 보며 생각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2022-02-14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Ⅴ)

-안나는 나와 함께 하는 동안만 우리 집안과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내가 약속하마. 하지만 안나와 안나 뱃속의 아이는 다르다. 이제 네가 약속해다오. 안나 뱃속에 있는 아이를 너의 동생으로 인정해다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 아이를 경쟁자라 여기지 말거라. 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느냐. 내가 저 세상으로 갈 무렵이면 너도 이미 제법 나이가 들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그저 그 아이가 건강하게 바르게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커 준다면 그때 가서 그 아이가 할 일이 있겠지.-알겠습니다.필립이 대답했다. 만식은 무릎과 허벅지를 손으로 움켜쥐며 필립을 보았다. 억울하다, 서운하다, 그럴 수 없다. 왜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거지? 알겠습니다, 라니. 필립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그 여자를 사랑하십니까?필립이 만식에게 물었다.-사랑이 무엇이냐?만식이 대답했다.-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부끄럽지 않으십니까?필립이 다시 만식에게 물었다.-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내가 신경을 써야 하느냐? 젊고 건강한 여자를 가질 수 있다면 너는 거부할 수 있느냐? 내가 칠십 먹은 여자와 함께 있으면 아름다운 것이냐? 돈 있고 건강이 있는데, 욕망이 있는데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 도덕, 다른 사람들의 시선, 순리 따위 말하지 마라. 그것들에 신경 쓸 것이었으면 애초에 인공 장기 따위 이식받지 않았다. 나는 벌써 죽었지. 나는 안나의 피부, 가슴, 엉덩이를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게 사랑이라면 안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그게 징그러운 노욕이라면 노욕이겠지. 노욕이면 또 어때. 나는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진 것뿐이다. 안나도 내게서 받고 싶은 것을 받을 것이고. 우리는 서로 주고받은 거다. 너는 다를 줄 아느냐?만식은 이렇게 대답했다.짐을 다 챙긴 만식이 병동의 수간호사를 불렀다. 짐을 집으로 보내 달라 부탁했다.수간호사는 당황했지만 이내 네, 하고 대답했다. 굳이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원래는 안 해드리는 건데.수간호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흘렸지만 만식은 대답 없이 병실을 나섰다. 확실히 이전보다 숨쉬기 편했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것이 맞기는 한데, 어디에 세웠더라? 차를 어디에 세워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하 2층이 맞는데. 만식은 천천히 지하 주차장 벽을 따라 걸었다. 왼쪽 기둥 뒤쪽 낯익은 차가 보였다. 저렇게 먼 곳에 세워두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 문을 열려는 순간 누군가 만식의 손을 잡았다. 만식이 고개를 들었다.-자네가 여기 어쩐 일인가?-회장님 혼자 퇴원하신다고 걱정을 많이 하더라고요. 제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 차를 타시지요. 바로 옆에 세워두었습니다.만식은 차 뒷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내 차는 어쩌지?안전띠를 매며 만식이 물었다.-옮겨다 놓겠습니다.-열쇠는?-저희에게 비상키가 있습니다. 지금 옮기도록 하겠습니다.-저희라니?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제가 오면서 한 명 더 데리고 왔습니다. 회장님을 모시는 것, 회장님 차를 옮겨 놓는 것 두 가지를 혼자 할 수 없어서.만식을 태운 차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십 분 정도 지난 뒤 만식의 차도 뒤따랐다. 만식은 운전석 뒷자리에 앉아 등을 기댔다. 걱정을 했단 말이지. 기특했다.-회장님 드실 음료를 챙겨왔습니다. 직접 달인 것이라고, 직접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고, 꼭 다 드시라 하더군요. 콘솔박스에 있습니다. 만식은 콘솔박스에서 텀블러를 꺼내 텀블러의 뚜껑을 열었다. 하얀 김이 올라왔다. 약간은 쓴, 하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만식은 차창을 내리고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이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아서 걸러질 것입니다. 만식은 이 교수의 말을 떠올렸다.잠시 후 만식은 잠이 들었다. 만식을 태운 차는 경부고속도로로 향했고 만식의 차는 서울양양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두 시간쯤 지나 만식이 탄 차가 금강 휴게소에 들어섰다. 푸드 코트 앞쪽에 정차를 하자 푸른색 티셔츠를 입은 사내가 올라탔다. 사내와 만식을 태운 차는 다시 출발했다.푸른색 티셔츠는 운전석에 앉은 사내와 몇 마디 나누고는 만식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만식이 낮은 신음 소리를 냈다. 운전을 하던 사내가 앞좌석에 놓여 있던 가방을 건넸고 푸른색 티셔츠는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만식의 어깨에 꽂았다.

2022-02-07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IV)

그날 밤 경찰은 중문의 해안 절벽 아래에서 만식의 아내를 발견했다. 이미 숨이 멎은 뒤였다. 유서 따위는 없었다. 경찰은 실족사라 결론 내렸다.-어찌된 일이냐?급하게 내려온 만식이 필립에게 물었다.-와인을 찾으실 정도로 기분 좋으셨습니다. 산책을 하자 하셔서 같이 걸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쌀쌀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입으실 겉옷을 가지러 갔다 오니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았습니다. 절벽 아래에 계셨습니다.만식은 필립의 뺨을 두 차례 때렸다. 필립의 몸이 휘청했다. 만식이 한 번 더 필립의 뺨을 때리려던 순간 수행해 온 비서가 만식의 손을 잡았다.-저도 이게 무슨 일인지. 왜, 왜 다들 제게 이러는 건지.필립은 붉게 달아오른 뺨에 손을 대며 말했다. 목소리는 낮았고 떨렸다.-내가 너에게 말했다. 자식을 잃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아내마저 잃고 싶지 않다고.이 교수가 병실을 나가고 만식은 옷을 갈아입었다. 하필이면 퇴원하시는 날, 죄송해요. 산전 진찰 예약이 되어 있는 날이라서. 안나가 말했었다. 하루만 더 병원에서 쉬시는 것은 어때요? 그러면 제가 와서 모실 수 있을 텐데. 산전 진찰을 미룰까요? 처음 해본 수술도 아니고 충분히 쉬었다가 퇴원하는 것이니 혼자 나갈 수 있어. 만식이 대답했다. 병원에 너무 오래 있었어. 답답하기도 하고. 우리 아기와 안나의 건강을 체크하는 일인데 미룰 수는 없지. 집에서 보도록 하지. 비서실에 이야기해 두었어. 여기로 오지 말고 안나에게 가라고. 그렇게 알고 있어. 아드님이라도 오시라 할까요? 안나가 물었다. 만식은 손을 내 저었다. 아니야, 내가 출장 보냈어. 아드님이라. 그렇지, 하나 남은 아들이기는 하지. 아직까지는. 만식은 필립을 생각했다.필립에게 핸드폰을 집어 던졌던 다음날 만식은 필립을 불렀다. 필립에게 약속을 받아야 할 것도 있었고 약속을 해주어야 할 것도 있었다. 안나를 새엄마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당연히 혼인 신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혼 관계 등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다짐해주었다. 만식은 안나와 계약서를 작성할 것이라 했다.그녀와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권리에 대한, 세월이 흐른 뒤에라도 그녀와 그녀의 아이가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한 계약서를 만들어 공증을 받아두겠다 말했다.만식, 자신을 위해서였다. 필립이든 안나의 뱃속 아이든 자신이 허락한 것 이상을 가져갈 수도 요구할 수도 없어야 했다. 내가 죽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누가 무엇을 가지든 상관없어. 하지만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다르지. 내 것들이니까. 내가 이룬 것들이니까. 내가 가져야 할 것들이 아직 남아있으니까. 만식은 무거워진 욕심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떼어내고 싶지 않았다. 욕심 주머니들을 놓아버리는 순간 한없이 가벼워져 둥둥 떠오를 것 같았다. 한 점 바람에 날려 저 세상 어딘가에 처박힐 것이 분명했다. 안나 뱃속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죽은 후 누가 무엇을 가져가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지, 아무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필립에까지 생각이 이르면 만식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녀석에게 넘길 수는 없지. 언젠가는 누군가를 선택해야겠지. 하지만 그 누군가가 필립이어서는 안 돼. 그러니까 오래 사는 수밖에. 더더욱 건강하게, 더더욱 오래. 안나 뱃속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나는 저 아이가 무서워요. 만식이 아내와 함께한 마지막 여행의 첫날 그녀가 말했다. 유언 같은 그녀의 말이 만식의 머리를 맴돌았다. 인정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들이 만식의 머리에서 마음으로 다시 머리로, 필립을 바라보는 만식의 눈으로 옮겨 다녔다. 만식은 첫째 아이가 죽던 날, 아내가 죽던 날의 필립을 상상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형제를 잃고 엄마를 잃은, 심지어 그 모든 자리에 있었던 필립이 불쌍하기도 했다. 간혹 그 모든 자리를 이유로 아비의 정 대신 분노를 채운 자신이 과하다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만식은 자신의 삶이 길어질수록 필립이 두려웠다. 주위를 서성이며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필립이. 그리고 화가 났다.회사의 일이든 집안일이든 만식이 정한 선을 필립이 넘어설 때마다 만식은 필립에게 물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반드시 스스로 서는 것입니다. 필립이 대답하면 언젠가, 언젠가는 그날이 오지 않겠느냐? 하지만 아직은 아니니 서두르지 마라, 나는 아직 굳건하다. 기다리기 힘든 일이더냐? 만식이 되묻고는 했다.-네가 약속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안나와의 계약서에 대해 이야기를 한 뒤 만식이 이어서 말했다.-말씀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저의 약속이겠습니까? 아버님의 당부이겠지요. 저는 따르기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2022-01-24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Ⅲ)

만식의 아내는 만식보다 여덟 살 어렸다.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만식을 만나 결혼했다. 만식이 사업을 하느라 집 밖을 맴도는 동안 그녀가 의지했던 사람은 필립의 형이었다. 필립의 형이 죽던 날 만식의 아내는 첫째 아이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내 아이가 아니야. 어미가 어찌 자식을 못 알아보겠어. 이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야. 필립아, 너의 형은 어디에 있는 거니?퉁퉁 불은 첫째 아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식이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우리 아이 맞아.그녀는 만식의 손을 뿌리치며 악을 썼다.-아악! 이 새끼야! 네가 아이 얼굴을 어찌 알아? 집구석에 들어와 있던 날이 얼마나 된다고. 나만큼 아이를 알아? 이 살덩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내 눈 앞에서 치워!시신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시신은 꼼짝하지 않았다. 시신에서 배어 나온 비릿한 냄새만 흔들렸다.-가지고 가, 저리 치우란 말이야. 내 아이 데려오라고.사람들이 달려들어 시신에서 그녀를 떼어냈다. 필립이 그녀를 안았다.-필립아, 너의 형은 어디에 간 거냐?-어머니, 형 저기 있잖아요. 형 맞아요.필립은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필립을 밀어내고 시신에 다가갔다. 검푸른 시신을 끌어안았다.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그녀는 필립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가끔씩 고개를 들어 첫째 아이의 영정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어머니, 제가 있잖아요. 필립은 말하지 못했다. 그녀가 찾는 아이를 대신할 수 없다 생각했다.그녀는 첫째 아이를 보내고 난 후 식욕도 의욕도 없이 지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 다는 게 말이 되느냐, 식탁에 앉아 숟가락을 들다가도 한숨을 내쉬었다.만식의 아내는 첫째 아이가 죽은 그곳에 가고 싶어 했다.-우리 아이가 외롭지 않게 나도 그곳에서 죽을 수 있게 해줘요.-당신마저 잃고 싶지 않으니 제발 그런 생각도, 그런 말도.만식은 두 손으로 그녀의 차가운 손을 감쌌다. 좀처럼 따듯해지지 않았지만 놓지 않았다.필립이 말했다.-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오겠습니다. 고향 이곳저곳 다니시다 보면 어머니 마음도 조금 안정되지 않겠습니까?그럴 듯 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그녀를 막고 있던 만식이었다.-그래, 그게 좋겠다. 나도 같이 가야겠다. 너의 엄마와 같이 있어야겠다.만식과 그의 아내, 필립이 제주도에 갔다.초저녁이었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제주시를 벗어나 산업도로로 접어들었다. 만식의 아내는 말없이 차창 밖을 보았다. 만식이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뭐를 그렇게 보고 있으신가?만식의 아내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오름이 보이네요. 검은 오름. 검은 오름이 검은 파도처럼 몰려오고 있어요. 검은 나무, 검은 풀들.차창에 입김이 서렸다.-하루에 한 가지씩만 구경합시다,나머지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호텔에 머무르자 했다. 만식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맛집은 당신이 안내해야 해.만식이 농을 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제가 찾아 놓았습니다.필립이 거들었지만 만식은 만식대로 만식의 아내는 아내대로 필립의 얼굴을 보기만 했다.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가까운 거리의 낮은 오름과 몇몇 유명한 해안가를 둘러보며 일주일을 보냈다. 만식의 아내는 가끔 웃기도 했고 갈치조림을 먹고 싶다 말하기도 했다. 제주로 내려오던 날 저녁보다 나아진 듯 보였다.-내일부터 며칠 동안 뭍에 다녀오겠소. 가서 결재할 일도 있고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네, 그러세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볼 일 충분히 보세요.만식은 공항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며 필립을 불렀다.-엄마를 잘 살펴라. 아내마저 잃고 싶지 않구나. 자식을 잃은 것만으로도 이미 넘친다. 감당하기 힘들다. 만식이 육지로 간 날, 만식의 아내와 필립은 둘이서 저녁을 먹었다.-네 원망을 많이 했어. 네 형을 두고 어찌 혼자 살아나올 수 있었는지, 왜 형을 구하지 못했는지. 너 또한 내 자식인데도 너를 원망했구나. 너 하나라도 살았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데 말이다. 알아. 그런데 아직도 그래. 너도, 내 마음도 잘 모르겠구나. 너를 보는 것이 여전히 편하지 않구나. 그날, 너의 형이 죽던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너는 무엇을 했던 거니? 네가 형을 대신 할 수 있다 생각한 거니?

2022-01-17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Ⅱ)

만식의 첫 인공 장기는 심장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부정맥으로 고생을 했다. 인공 심박동기를 왼쪽 쇄골 아래에 심었고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그러던 중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좁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고전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을 사용하거나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이었다. 나노 로봇을 이용해 혈관을 청소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만식에게 누군가 인공 심장 이야기를 했다. 너무 비싸서 시도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협심증이나 부정맥 환자에게도 훨씬 나은 효과를 보일 것이라 하더군요.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인공 심장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인공 장기 회사의 한국 지점에 연락을 했다. 독일 본사의 기술 팀장이 직접 한국으로 왔다.-연료 배관을 새것으로 교체하고 타이밍 벨트를 바꾼다고 해서 자동차 엔진이 좋아지겠습니까? 이미 수십 년 사용한 것인데 말입니다. 차를 새로 살 수 없다면 엔진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제일 좋은 거지요. 엔진이 신품이면 차도 신품이 되는 겁니다. 디자인은 좀 구식이겠지만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만식은 인공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만식의 나이 일흔 넷이었다. 필립이 서른아홉이 된 해이기도 했다. 만식은 수술동의서에 직접 사인을 한 후 필립을 보았다. 가까이 오라 손짓을 했고 침대 가드레일에 손을 얹고 서 있던 필립은 만식의 곁으로 왔다.-의사들은 나에게 말한 것을 너에게도 말할 것이다. 동의니 서명이니 하는 것들을 받겠지. 수술 중 그리고 수술 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기계의 오작동 가능성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최악의 경우 내가 죽거나 죽은 사람과 같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다. 건강하게 수술실을 나올 것이다.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따위의 말은 하지 않겠다.-당연한 말씀입니다.필립은 만식의 손을 잡았다.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입원실에서 눈을 뜬 만식이 필립을 보며 말했다.-너는 지금 웃는 것이냐, 우는 것이냐? 너의 표정으로는 알 수가 없구나.-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십니까? 깨어나셔서 웃는 것입니다. 아버지마저 잃을까 두려웠습니다.필립은 이불을 끌어 올려 만식의 배를 덮었다. 만식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수술 전 내리던 비가 멈춘 것 같았다.-기대를 했었냐?필립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만식의 목소리가 작아 듣지 못한 듯 했다. 필립은 침대 옆에 가져다 두었던 의자를 제자리에 옮겨 놓은 뒤 방을 나갔다.이후 인공 심장 프로그램 업그레이드가 세 번, 배터리 교환이 네 번 있었다.-더 이상 교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충전이 가능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비상 배터리까지 장착되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코디네이터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면 됩니다.마지막 배터리 교환 후 인공 장기 회사가 만식에게 한 말이었다.만식은 몇 번의 수술을 더 받았다. 간과 우측 콩팥을 인공 장기로 대체했다. 심각한 질환이 있어 이식 수술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만식은 오래된 장비를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라 여겼다. 인공 장기 회사의 기술 팀장에게서 들었던 자동차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다.-몸이 자동차라고 치면 말이지. 게다가 새 자동차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면 말이야.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태어날 때 가지고 난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게 우리 몸이잖아. 그런데 지금 내가 타는 자동차가 칠팔십 년 되었어. 이게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 정상일 수가 없지. 운전을 잘 하지 못해서 난 사고는 어쩔 수도 없고 내가 감당할 몫이라 치더라도 부품이 낡아서 사고가 나는 것은 좀 억울하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 부품이라도 갈아야지. 디자인? 그건 어쩔 수 없지. 바라지도 않고.누군가 물었다. 김강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 자동차는 언제까지 달리고 싶답니까?사람들이 웃으며 만식을 보았다. 만식은 두 손을 들어 핸들을 잡는 흉내를 냈다.-길이 있는 한, 달려야 하는 길이 있는 한 멈추지 않을 걸세. 달리는 것, 그게 자동차의 본질이자 운명이니까.인공 심장 이식 수술 이후 몇 번의 입원과 수술 그리고 퇴원 시에 필립은 병원을 찾지 못했다. 만식이 오지 말라 했다. 걱정하는 모습, 안도하는 모습, 아쉬워하는 모습. 그게 무엇이든 만식은 보고 싶지 않았다.-필립아, 네가 나쁜 생각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네 녀석을 싫어한다는 것도 아니야. 그저 병원에 있는 동안 너를 보는 것이 편하지 않을 뿐이다. 네 형이 그리되던 날, 네 엄마가 죽던 날 모두 네가 그 옆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필립은 가만히 들었다.

2022-01-10

내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가질 것이다 (Ⅰ)

지난 시절. 신문 연재소설이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제는 신문에 연재되는 소설이 드물어진 시대. 본지는 2022년 새해 의미 있는 실험을 시작하고자 한다. 소설가 김강 씨의 작품 ‘Grasp reflex’를 주 1회, 매주 화요일 연재하기로 결정한 것. 김강 작가는 등단이 늦었지만, 독특한 세계인식과 탄탄한 문장으로 문단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설의 제목 ‘Grasp reflex’는 파악반사(把握反射)라는 뜻이다. “쓰는 사람인 내가 읽는 사람인 그대에게 가려 한다”는 말을 전한 김강 작가는 포항에서 활동하는 내과의사이기도 하다. 독자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을 기대한다./편집자 주만식은 숨을 들이마셨다. 크레졸 향을 품은 따스한 온기가 가슴 깊이 들어왔다. 콧속이 조금 아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가슴 깊이 들어오는 무엇, 기다렸고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숨쉬기가 훨씬 편하실 겁니다. 인공호흡기가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숨을 들이쉬려 하시면 기계가 즉각 알아챕니다. 회장님의 늑골과 호흡근의 움직임에 맞추어 인공 폐가 확장되고 그 때 발생한 음압에 의해 공기가 들어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똑같습니다. 꽈리를 통해 산소가 들어오고 이산화탄소는 나가고. 평상시에는 그렇게 작동하다가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기계가 스스로 호흡을 시작합니다. 인공호흡인 셈이지요. 물론 억지로 숨을 참는 경우는 다를 수 있지만, 기계가 감지하는 역치를 넘기는 힘들 것입니다.퇴원 전 마지막 회진을 온 이 교수가 장황한 설명을 했다. 지나치게 설명을 많이 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일 수 있겠지만 만식은 이 교수의 방식에 만족했다. 당연히 설명을 해주어야지. 간호사나 코디네이터가 하는 설명과 의사가 하는 설명이 같을 수 있나. 만식은 인공 장기를 이식받은 경험이 많았다. 장기들은 달랐지만 전반적인 설명과 수술 이후의 주의사항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만식은 이 교수의 설명을 새겨들었다.-이 교수, 매사에 확실한 것은 내가 인정하지. 수술 받은 횟수로 치면 나도 전문가라면 전문가인데 말이야.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원칙대로 설명해주는 것, 나는 그게 좋아. 아무렴. 그래야지. 고마워요. 덕분에 한 삼, 사십 년 더 살게 되겠어.만식은 베개 밑에서 봉투를 꺼냈다. 이 교수에게 건넸고 이 교수는 손사래를 쳤다.-아닙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만식은 봉투를 접어 이 교수의 가운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누구나 마땅한 일을 하는 거야. 이 교수는 이 교수가 할 일을 하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그러면 되는 거지. 간호사 선생님들, 코디 선생님들하고 맛난 것 사드시라고 주는 거야. 큰 돈 아니야. 촌스러워 보이겠지만 감사의 표시는 옛날 방식이 더 나아. 정겹잖아.이 교수는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봉투를 굳이 꺼내지는 않았다.-허허, 참. 그, 참. 감사합니다.이 교수가 감사의 말에 몇 마디를 덧붙였다.-새 폐를 이식받으셨다고 다시 담배를 피우시거나 하시면 안 됩니다. 아셨지요. 떼어낸 폐를 살펴보았는데 모양이 이상한 세포들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암은 아니지만 암 전 단계 정도는 됩니다. 너무 건강에 자신하지 마십시오. 항상 조심하고 관리하셔야 합니다.만식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네, 알겠어. 밧데리는 영구적인 거지? 설마 해마다 충전하러 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지난번에 듣기는 했는데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야.이 교수 옆에 있던 코디네이터가 대답했다.-네, 회장님. 배터리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생체 전류를 이용해 자가 충전하는 기능이 들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영구적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저희 센터로 먼저 신호가 옵니다. 그리고 나서도 일 년 이상 작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백 년 정도 더 사시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하.코디네이터의 말이 끝나자 이 교수가 농담을 했고 병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웃었다. 만식은 손을 내젓다가 이내 같이 웃었다.-퇴원하시는 날인데 회사에서 모시러 옵니까? 벌써 와 있나요?이 교수가 물었다.-회사 인력을 사적인 일에 부리면 쓰나.-회장님이 곧 회사 아닙니까? 김강 작가 2017년 제21회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여행시절’(공저) ‘당신의 가장 중심’(공저) 등을 썼다. -그런가?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말이야, 오늘은 회사 직원을 부를 수가 없어. 예고 없는 출근을 할 거거든. 평소에 어찌하는 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지. 녀석들, 많이 놀라겠지. 아들놈은 출장 갔어. 퇴원하는 날에 맞추어 출장을 가네. 몹쓸 놈. 혼자 갈 수 있어. 출근하다 무슨 일 생기면 이 교수가 책임져야지.이 교수와 일행은 병실에서 나왔다. 다음 입원 환자를 보러 가던 중 이 교수가 뒤따르던 코디네이터를 불렀다. -갑자기 기계가 멈추고 그러는 일은 없겠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제품이라 신경 쓰이는데.코디네이터는 인공 폐를 개발한 회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었다.-그럼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환자가 다른 이유로 사망하는 일이 생겨도 인공 폐는 혼자 숨 쉬고 있을 겁니다.-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무튼, 지독한 노인네야. 그렇지 않아? 저 밑에서 일하지 않는 게 다행이지.이 교수는 만식의 몸에서 작동하고 있을 인공 심장과 인공 간, 인공 폐 그리고 인공 신장을 떠올렸다. 쉽게 죽지는 않겠군. 이 교수는 생각했다.

202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