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문학이 온다

21년 전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문예창작과에 왔다. 원태연, 용혜원의 글과 판타지 소설 몇 권이 문학인줄 알았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으로부터 시를 배웠다. 너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이런 세상이 있구나! 살면서 아무것도 되어본 적 없는 너는 시 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너는 시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동기들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해도 학교 옥상으로 도망가 노을과 별의 시간까지 홀로 시를 썼다. 그러면 교수님도 너를 기다렸다. 어둑한 복도에 홀로 불 밝힌 연구실에 가 시를 보여드리면 애써 쓴 문장들에 빨간 줄이 사정없이 그어졌다. 할퀸 상처처럼 아팠지만 너는 그 상처가 좋았다. 그렇게 찢어진 마음에서 돋은 새살이 시가 됐다. 매년 겨울이면 ‘신춘병’을 앓았다. 우체국도 믿을 수 없어 원고를 품에 안고 추운 광화문 거리를 돌아다니며 신문사에 직접 투고했다. 원고를 내고 나면 가슴에 품어 키우던 새가 날아간 것 같았다. 새의 온기가 사라진 자리엔 뼛속까지 아린 추위가 파고들었다. 심사평과 본심진출 명단에 이름이 없다는 건 너라는 존재 자체가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눈물이 흘렀다. 너는 그걸 10년 넘게 했다. 너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갔다. 사랑하면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공부를 더 하면 혹시 시를 잘 쓸까봐,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홀로 외롭게 쓰면 결국 손에서 시를 놓칠까봐. 그렇게 계속 쓰다 보니 재주가 없는데도 지방신문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문예지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시를 잘 쓰고 싶어 평론을 썼더니 운 좋게 평론으로도 등단했다. 이십대에는 시가 돈이 되지 않아도 행복했다. 아무도 걷지 않은 오솔길의 왕이 된 것만 같았으니까. 서른 살이 되자 너는 돈이 되지 않는 시를 계속 붙잡을 수 없어 달아났다. 달아날수록 시는 너를 더 잡아당겼다.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돈보다 시가 좋았다. 그래서 결국 돌아왔다. 집안 어른이 네게 말했다. 요리학원에 가서 음식을 배워 장사라도 하라고. 친구가 말했다. 문학이 돈이 되냐고, 너도 이제 네 앞가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후배가 말했다. 형도 하상욱처럼 쓰면 되는 거 아니냐고. 선배가 말했다. 시는 아무도 안 읽으니까 맛집 소개하는 글이나 쓰라고. 시인이라고 하니 모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환호하며 요청했다. 시 한 수 읊어달라고, 삼행시 좀 지어달라고. 그때마다 너는 문학을 한다는 게 괜히 죄스럽게 느껴졌다. 문학을 무용한 일이나 음풍농월쯤으로 여기는 세상의 무지와 폄하, 냉대와 오해에 마음을 다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너는 문학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졌다. 뭘 이룰 수 있는지도 모르면서 뭐라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금 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시집과 평론집 등 열 권의 책을 낸 너는 문학연구자이자 시인, 평론가로서 쌓은 나름의 경력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문학을 향유하는 삶이 훨씬, 확실히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비록 비전임 계약직 교원이지만 상관없다. 문학이라는 캄캄한 동굴 안에서 네가 더듬거리며 지나 온 시간들이 이제야 조금씩 환해진다. 저 멀리서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이 걸어 나갈 길을 밝히면서, 네가 걸어 온 길에도 빛을 비춰주는 까닭이다. 세대는 달라도 문학이라는 영원 안에서 모두 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수업 시간을 너는 사랑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날, 오전에 너는 한 고등학교에서 윤동주의 시와 삶에 대해 강연했다. 수상 소식을 들은 저녁에 너는 네가 상을 받은 것도 아니고 한강 작가와 일면식도 없으면서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어쩔 줄 몰랐다.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지 너도 모른다. 고작 삼류 시인이자 무명 평론가지만 지금껏 문학을 놓지 않고 해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붙들고 온몸으로 나아가리라는 것, 너보다 더 문학을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문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뭉클했겠지. 감격에 겨운 너는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에서 구사한 독특한 2인칭 화법을 빌려 이 글을 쓴다. 너는 이제 더 이상 ‘문학’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 오해 받지 않고 무시당하지도 않는 문학이 온다. 이미 왔다.

2024-10-21

고단함을 잊는 법

현생의 고단함을 느낄 때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어릴 적 걱정 없이 즐거웠던 때로 잠시나마 돌아가 본다. 모래밭에 손을 묻고 두꺼비집 노래를 부를 때나 꽃이나 풀을 돌맹이로 짓이기며 소꿉놀이에 쓸 저녁 반찬을 만들 때, 나는 힘껏 내려가 있던 입꼬리를 다시금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옅게 웃어 보일 수 있다. 삭막한 사무실 책상에 앉아 현생이 괴로울 땐 이렇게 작은 구멍 하나를 만들어 잠시나마 어린 시절 추억 속으로 빠져본다. 그리고 퇴근 후나 주말이 되면 어린 시절 만끽했던 자유로운 일상을 꼭 즐기리라 다짐하며 다시금 타자기에 손을 올린다. 주말이 되면 어릴 적 즐겨 먹었던 불량식품들을 찾아 일부러 초등학교 앞 작은 문방구에 들린다거나, 계절마다 엄마가 조각조각 잘라주던 제철 과일들을 먹기 위해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어린 시절 사소한 습관부터 작은 기억까지 다 복기해보며 따라하다보면 삶의 지루함과 어려움에서 조금이나마 멀리 벗어나 볼 수 있다. 이렇게 나처럼 어린 시절의 향수로 물건을 구매하는 키덜트 족은 대략 십년 전부터 주요 소비자층으로 자리 잡았다. 키덜트족이란 키드(kid:아이)와 어덜트(adult:어른)의 합성어로 어른이 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의 분위기와 감성을 추구하는 성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퇴근길에 뽑기 기계 앞에서 동전을 한 가득 손에 쥐고 인형 뽑기에 열중하다 집에 가는 길에 작은 인형 하나 손에 들려 있다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과 만족감이 든다. 돈을 얼마를 썼거나 인형에 큰 의미가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이상하다고 여기거나 철이 없다고 느끼진 않는다. 그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늘 나의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벗어나 마음이 만족하다면 되는 것이다. 나와 같은 키덜트 족은 옷이나 특정 상품을 구매할 때에 물건의 사용 가치를 재고하는 것이 아닌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나 기억속 함께 커왔던 캐릭터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을 채운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인 가심비를 추구하는 경향으로 상품의 가격이나 쓸모, 가치 보단 주관적 마음의 만족감을 더 중요시하게 여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fun(재미)과 consumer(소비자)를 결합한 펀슈머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물건을 구매할 때에 재미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MZ세대 중심에서 시작된 펀슈머는 가격 대비 재미를 쫒는 이른바 ‘가잼비’를 추구하며 소비 과정에서 재미와 즐거움의 경험을 중시한다. SPC 삼립의 대표 스터디셀러 제품인 정통 크림빵은 60주년 기념으로 기존 사이즈 대비 약 7배 정도 큰 사이즈로 ‘크림대빵’을 출시한 바 있다. 성인 두명의 얼굴을 가릴 정도로 점보 사이즈로 출시되었던 대왕 크림빵은 보자마자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커다란 사이즈에 이색적이었고 처음 출시됐을 때엔 품귀 현상까지 생겨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출시가 대비 약 2배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었을 정도였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이어 대왕 시리즈라 불리는 8인분의 양이 담긴 세숫대야 냉면, 팔도 도시락 8인분이 합쳐진 대왕 팔도 점보 도시락, 공간춘 대왕 짬짜면 등이 출시되어 가잼비와 가심비를 더한 상품들을 마트나 편의점에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상품들 모두 출시 전부터 화제성이 있었으며 출시되자마자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이 붙어 거래되었을 정도라니 익숙한 상품에 웃음 요소를 더한 상품이 현재까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덕분에 나는 더욱 즐겁게 마트나 편의점, 문방구 등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재미를 찾고 추억에 젖어 현실의 고단함을 조금 잊어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소비 습관을 보며 철없어 보인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이 단순한 행위로도 작은 기쁨을 맛볼 수 있고 생의 즐거운 면을 조금이나마 추구할 수 있다면 다시금 어린 시절 반짝였던 두 눈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이곳 저곳 쏘다녀볼 수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단함을 잊는 법은 이렇게 단순하고 쉽다. 덕분에 새로운 한 주를 다시금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시원해진 가을 바람을 맞으며 운동화 끈을 꽉 매고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가본다. 이렇게 걷다 보면 고단함보다는 일상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2024-10-21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노래들

의미 있는 앨범 하나를 내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 곡의 노래가 담겨있는 디지털 EP 앨범 ‘기후 레시피’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세 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오는 10월 15일 정오에 모든 음원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기후위기라는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년, 한 예술 사업을 만나면서부터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예술로’라는 이름의 예술인 파견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데, 이는 사업에 지원한 각종 기관과 예술인들을 매칭하여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나는 작년부터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러 예술인들과 더불어 서울에 있는 마을 카페인 ‘즐거운 반딧불이’와 매칭이 되었다. 즐거운 반딧불이가 예술인들과 함께 해 나가려고 했던 일은 기후위기에 예술활동으로 한 번 맞서보고자 하는 것이었다. 나를 비롯한 참여 예술인들은 자주 모여 이 문제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고 세미나를 갖기도 하며 우리가 직면한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우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해 어떠한 방식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내어 놓은 결과물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내가 중심을 잡고 이끌었던 것은 일명 ‘기후송’이라 부르기로 한 캠페인 송을 제작하고 이를 디지털 싱글로 발매하는 프로젝트였다. 작년 10월에 발매된 ‘땅으로부터’가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이다. 당장 그 파급력이 발현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는 뜻 깊은 노래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팀원들과 기관, 재단 관계자들까지 모두 공감해주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하는 숙제를 남긴 채 첫 해의 사업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2년차, 즐거운 반딧불이와의 논의 끝에 기후송 제작에 조금 더 무게를 싣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여섯 명의 예술인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모습으로 예술인 집단을 재구성했다. 리더인 싱어송라이터 강헌구 님을 필두로 나(싱어송라이터 강백수)와 싱어송라이터 이매진 님이 각각 한 곡 씩을 만들어 세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싱어송라이터 각자가 하나씩 기후 캠페인을 진행하여 이를 통해 곡의 내용을 확보하기로 하였다. 이 캠페인 전체를 지원하고 활동 전반의 컨트롤 타워 역할은 베테랑 연극인 권기대 님이 맡게 되었고, 영상예술인인 정훈 님과 최휘찬 님이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첫 번째 곡인 ‘나의 작은 기후 선언’은 내가 만들고 부른 곡이다. 즐거운 반딧불이를 찾아주신 손님에게 기후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 한 가지씩을 적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수십 분의 손님들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실천거리들을 적어주셨고 이를 바탕으로 노랫말을 완성했다. 나는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 대해 고민해보길 바란다. 작고 사소한 걸음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내딛는다면 그것은 그 어떤 도약보다 위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곡은 강헌구 님의 ‘기후 레시피’. 강헌구 님이 즐거운 반딧불이에서 운영하는 ‘탄생화(탄소 중립 생활화)’ 모임과 함께 친환경 세제 만들기 활동에 참여하며 만들게 된 노래다. 지구를 해치지 않고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친환경 세제 레시피를 아주 깜찍하고 발랄한 멜로디에 담아 누구라도 한 번 쯤 만들어보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 있는 노래다. 세 번째 곡은 타이틀곡으로, 이매진 님의 ‘나는 나무잖아’. 이매진 님은 이번 활동 기간 중에 가로수의 생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의 ‘트리허그’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수많은 시민들이 가로수를 힘껏 끌어안으며 감사와 애정의 마음을 일깨우게 된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매진 님은 노래 속에서 직접 한 그루의 가로수가 되어 도시의 한켠을 지켜내는 외롭고도 고단한 마음을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우리는 이 노래들이 반드시 히트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의 귀에 닿고 마음에 닿아 그들의 삶의 궤적을 미세하게나마 이 행성의 생태계를 지켜내는 방향으로 틀어볼 수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장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비건채식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다만 노래 몇 곡 들어보며 나와 이 아름다운 행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잠시 가져볼 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2024-10-14

은밀하게 선 넘기

사람들 안의 선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언스플래쉬 아, 정말 어렵네. 요즘 책상 앞에 앉아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이나 손끝에서 나오는 문장이 모조리 틀린 것만 같다. 이것은 글쓰기가 제대로 풀리고 있지 않다는 투정만은 아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데 내가 가진 언어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숙련되지 못한 까닭이다. 답답하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편한 방식으로 문장을 쓰게 된다. 좋지 않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고민에 빠진 것이 나뿐만은 아닌 것 같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삼십 대가 되고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는 안도감은 허상이었던 걸까. 애인과 만난 지 육 년이 넘어가는데 결혼으로 나아가기엔 용기가 없다는 친구부터 십 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만 먹고 사는 일이 걱정된다는 친구까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단 한 발을 내딛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 그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친다. 내 이야기도 얹고 싶으나 그럴 수 없다. 그들에 비해 내 고민의 규모는 민망스러울 정도로 작기 때문이다. 비슷한 하루의 연속이다. 일을 하고 글을 쓴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차 있는 일정에 하나씩 줄을 그으며 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책임의 무게가 착실히 늘어나고 있다. 분명 나는 한 뼘 더 자랐다. 사회가 말하는 사회적 인간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이십 대에는 거침없이 국경을 넘어 다녔다. 커다란 배낭 하나 메고서. 단지 한 발 더 갔을 뿐인데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고 풍경이 새로워졌다. 무엇 때문일까. 보이지 않는 선이 세계를 구분하고 있다. 선. 그것은 항상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떤 선 안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내가 최선을 다해 그어놓은 것이다. 망망한 백지만큼 막연한 건 또 없으니까. 최대한 반듯하게, 예쁘게. 그리하여 이 안의 내가 안온함을 느낄 수 있도록. 이것을 만들기 위해 나는 아주 많은 공을 들였다. 선을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요즘의 나는 그런 것이 궁금하다. 내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것을 자꾸만 밟고, 지우고, 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맘껏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시치미 떼고 싶다. 금기된 영역으로 나아가는, 사회의 선을 거침없이 밟는 사람을 보면 해방감을 느낀다. 나 역시 그러려고 해봐도 도무지 되질 않는다. 강한 힘이 나를 자꾸만 주저앉힌다. 이상한 일이다.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던 견고함이 내 목을 옥죄고 있다는 기분으로 바뀌다니. 과감하게 선을 넘는 것이 어렵다면, 은밀하게 스리슬쩍 넘어볼까 싶었다. 처음에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시작했다.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음식 먹기. 혹은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기. 나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속에 꾹꾹 누르며 하지 않았을 말을 해보기도 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도 관둔다. 상대의 말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멈춰 본다. 이것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아주 미세한 변화. 물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이것은 글을 쓸 때도 적용할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평소엔 쓰지 않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해 본다. 문장 사이사이에 조금씩 장난을 쳐 본다.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것을 완전히 삭제해 보기도 한다. 더하고 덜어내고 어쩐지 이상해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둔다. 언어라는 건 참 이상해서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만 같다. 안으로 가두려고 할수록 손에서 벗어난다. 그러니 놓아본다. 마음껏 선을 넘도록. 세상에, 이런 것이 재미있다니.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땅따먹기하던 것이 떠오른다. 너 선 밟았어, 나가! 그 외침이 정말이지 싫었다. 맥이 풀려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노라면 저 멀리서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보였다. 나도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여전히 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일까. 선 밖은 외롭다. 그러나 자유롭다.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알고 있다. 내 안의 선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언제고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선을 조금씩 옮겨 긋다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것일까. 이런 기대를 가지고 오늘도 책상 앞에 앉는다.

2024-10-14

아파트라는 괴이한 알레고리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이질감이 드는 기사를 봤다. 서울 반포 래미안퍼스티지 아파트 단지 내에 세워진 두 개의 시비(詩碑)에 대한 것이다. 구성달 시인이 쓴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티지’라는 시는 이러하다. “서울은 나라 얼굴 반포는 그 눈동자/ 우면산 정기받고 한강의 서기 어려/ 장엄한 우리의 궁궐 퍼스티지 솟았다/ 해 같은 인재들과 별 같은 선남선녀/ 뜨거운 열정으로 냉정한 이성으로/ 겨레의 심장 되시는 고귀하신 가족들/ 반듯한 삶을 위해 따뜻한 내 정성을/ 씨 뿌려 가꾸면서 고운 꿈 키운 낙원/ 웅지를 품은 이들의 꽃숲속의 이상향” 이런 글을 시라고 해도 될까, 이런 걸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다음 시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 나은 이유는 단 하나, 짧아서다. 박영석이라는 분이 쓴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천년의 보금자리’다. “반포천 물길이/ 처음으로 강을 찾아 흐르고/ 서기로운 꿈들이 이 땅에서 자라날 때/ 한강변 남쪽 안자락에/ 희망을 묻어둔 준비된 땅/ 이제 사 염원의 물길이 호수를 이루고/ 포연의 역사를 가슴으로 건너온/ 천 년의 느티나무가 영겁의 뿌리를 내렸다/ 반도의 등뼈를 차지하고/ 웅대한 역사가 대륙으로 뻗어나가든/ 척량 산맥 금강의 집에서/ 풍상의 세월을 살던/ 빼어난 자태의 진수가/ 폭포를 품은 아름다운 꿈 동산이 되어 (…) 영원한 우리들 꿈의 보금자리/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염원의 물길, 포연의 역사, 풍상의 세월 타령이 마치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죤 앵커의 웅변 같다. 표현들이 낡고 고루하다 못해 썩었다. 하지만 진짜 썩은 건 언어가 아니라 정신과 태도다. 저 시비들 앞에서 입주민들은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과 래미안퍼스티지인(人)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낄까? 그래도 설마, 그 정도로 천박할까. 그런데 주민 동의 없이 저런 걸 세우진 않았을 테니, 역시 자본주의의 물신(物神)은 인간에게서 사유하는 능력을 제일 먼저 앗아가는가 보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걸 어떻게든 과시해서 타인에게 질투와 인정을 받고 싶은 속물근성이 저들 공동체의 집단적 정체성인 모양이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현대사회의 상품들은 모두 텅 비어 있는 알레고리이며, 자본주의시대에 개인들의 꿈은 상품으로 공동화된다고 말했다. 알레고리는 문학작품 내의 어떤 기호가 작품 밖 현실에서 그것이 나타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 의미를 구축하는 ‘다르게 말하기’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 설렁탕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한 그릇의 든든한 음식이 아니라 아내를 향한 김첨지의 사랑과 회한,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남루하고 비참한 삶을 나타내는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설렁탕인데 설렁탕이 아니다. 벤야민은 현대사회의 상품들이 상품 그 자체의 효용이 아닌 자본시장구조의 인간 소외와 착취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알레고리적으로 팜유는 ‘지구의 눈물’이고, SPC의 빵은 노동자의 절단된 손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아파트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아파트는 거주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계급 명찰이자 구매력을 드러내는 액세서리다. 설계도나 자재에 대한 설명 없이 근사한 ‘이미지’만 보여주는 아파트 광고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다. 이 이미지의 환상에 매료된 이들은 왜 거기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모두가 바라는 선망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아파트를 꿈꾼다. 래미안퍼스티지라는 상품으로 공동화된 이들의 꿈은 사실 속물근성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삶의 가치와 목적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적 실존이 아닌,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 자신을 맞추어가는 노예적 속성에 불과하다. 서울대 부모들이 차량에 붙이고 다닌다는 ‘서울대 대디’, ‘서울대 맘’ 스티커도 마찬가지다. 명문대에 입학한 것, 고급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고 가장 귀한 가치인가? 이토록 천박한 돈 자랑, 학벌 자랑이 팽창할 때, 각자 자리에서 저마다의 취향과 개성, 주체적 가치관으로 삶을 가꿔나가는 이들은 그 팽창하는 운동의 바깥으로 밀려나 패배자, 잉여인간, 게으름뱅이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고, 그 추방과 소외가 두려워 사회의 모든 이들이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티지’만을 꿈꾸는 세상에는 경찰관과 소방관도, 음악가와 시인도,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영웅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부디, 적당히 하자. 부끄럽지 않은가?

2024-10-07

고난과 달리기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언스플래쉬 무더운 날씨 탓에 런닝 머신 위로만 올랐던 날들을 뒤로하고 바깥 달리기를 시작하면 어딘가 몸이 적응하지 못해 낯선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금세 서늘해진 공기, 달릴 때마다 바뀌는 풍경, 물소리, 풀내음과 함께 뛰다보면 잠자고 있던 몸의 감각이 다시금 깨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뛸 수 있게 된다. 무언가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든다면 재빨리 런닝복으로 갈아입은 후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이 좋다. 과거의 일, 미래의 걱정보다는 현재 내가 지금 달리며 마주하는 힘듦을 몸으로 겪어내고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정직한 일은 달리기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숨쉬기다. 코로 숨을 두 번 들이마시고, 입으로 두 번 내뱉으며 반복된 숨을 쉬다보면 더 멀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몸은 살짝 앞으로, 고개는 살짝 든 형태로 시선은 너무 멀리 가 있지 않고 내 앞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시선을 두고 뛰면 좋다. 달리기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운동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챙기며 뛰지 않는다면 가장 어려운 운동이기도 하다. 욕심 있게 마구 달리다 보면 결국 내 숨에 못 이겨서 바닥에 구르고 마는데, 그럴 때 가장 화가 솟구치기도 한다. 달리기에서 또 중요한 것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쉬지 않고 삼십분 정도 달리다보면 러닝하이가 찾아와 너무나도 상쾌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러닝하이가 찾아오면 정말 이대로 쭉 영원히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것도 방해 받지 않고, 몸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러닝하이는 눈앞에 어떠한 장애물이 발생해도 뚝심 있게 계속해서 달리고만 싶게끔 만든다. 하지만 야외달리기를 하다보면 은근히 마주하는 장애물들이 있는데, 신호등의 신호가 걸린다던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난다던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파를 뚫고 더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갈 수 없는 등의 문제를 마주하면 빠르게 구르던 발을 멈춰야 한다. 대신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숨을 조금 더 차분히 몰아쉬며 거침없이 뛰던 심박수를 한 템포 낮추는 것 또한 좋다. 또 하나 달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신발끈을 내 발에 맞추어 적절히 묶는 것이다. 너무 꽉 묶다보면 달릴 때 발이 부어 뛰기 어렵게끔 만들고 너무 여유롭게 묶다 보면 발이 신발 안에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빨리 달리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은 욕심 없이 적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그것이 달리기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최근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부던히 애를 썼다. 하지만 욕심만큼 실수가 잦았고, 빠르게 해내는 사람들 속에서 자꾸만 의기소침 해졌다. 어떠한 불필요한 자극에도 그저 묵묵히 내 길을 잘 개척하며 나아가면 되는 것인데도 자꾸만 타인이 눈치를 보고, 불필요한 말들을 마음속에 담아 오랫동안 묵혀뒀다. 후회와 걱정은 계속해서 지난 과거에 묶여 있게 만들었고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걸까, 라는 포기가 들 때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동시에 여름 내내 생애 한 번은 꼭 읽으면 좋다고 했던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직도 한 참 읽어야 할 것이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지만, 그 날 읽은 성경 구절이 좋다면 내 삶에 동일하게 적용해보는 방식을 살고 있다. 고단함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다이어리에 적는 구절은 고린도전서의 10장 13절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엔 또한 피할 것을 내사 너희를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와 같은 구절을 힘주어 눌러 적어본다. 감당 못할 시련은 없는 것이고, 만약 감당 못할 시련이 찾아온다고 생각이들 때쯤 피할 길이 있어 능히 감당하게끔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 구절에서 왠지 모르게 잔뜩 긴장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크게 숨을 내어 쉴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지금 내가 마주하는 어려움이 아무리 크고 출구가 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인내를 통해 달리고, 달리며 고난의 길을 뚫고, 그러면서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면 현재 내가 마주하는 이 어려움도 우습게도 가벼워질 것이다.

2024-10-07

유행 흐름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 원하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나는 좋게 말해 다소 개성 있는 시를 쓰는 시인이고, 다르게 말하면 조금 이상한 시를 쓰는 시인이다. 어떤 면에서는 구닥다리 같은 측면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름 진정성 있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몇 차례 반복되니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지도교수이자 은사님이신 유성호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아무래도 지금 우리나라 시단이 원하는 방향이 제가 쓰고 있는 방향과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지.” “다음 원고는 좀 다른 방향으로 써 보려고 합니다.” 나름 생각을 많이 하고 드렸던 말씀인데 선생님께서는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그러지 마쇼. 쓰던 대로 쓰면 돼.” 전화를 끊고서 그 말씀을 한참동안 머릿속에 가두어 두었다. 오랜 생각 끝에 나는 어렴풋하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어떤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가던 조씨’란 사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의 본명은 조현철. 나와 함께 ‘백수와 조씨’라는 2인조 밴드로 활동한 적 있었던 악기 연주자이다. 그는 여러모로 희한한 사람인데 언제나 가장 눈길을 끈 것 중에 하나는 그의 패션이었다. 그는 내가 기억하기로 이미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검정 계열의 아웃도어 의류를 주구장창 입고 다녔다. 간혹 체크 남방 같은 것을 함께 입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의 패션을 구성하는 주된 요소는 등산복이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패션을 비웃었는데, 최근 들어 뜻밖의 현상이 일어났다. 기능성 아웃도어 의류와 일상복을 믹스매치하는 고프코어(Gorpcore)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고프코어룩의 선두주자라 하면 모델 겸 방송인 주우재 씨를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나는 확언할 수 있다. 주우재 씨가 있기 전에 조현철이 있었노라고. 그가 무심코 입던 스타일이 어쩌다 보니 유행과 맞아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다음으로 ‘현대 축구의 반역자’ 후안 로만 리켈메 선수가 떠올랐다. 그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은 전통적인 공격형 플레이메이커가 각광받는 시대가 아니었다. 다양한 선수가 공격을 조립하고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전술을 수행하는 시대에서 리켈메는 여전히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로 남았다. 모든 공격상황에서 공은 그를 거쳐야 했고, 공격의 템포는 빠르지 않았다. 대신 창조적이고 정확한 패스를 뿌릴 줄 알았고 때로는 직접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 축구의 흐름에 역행했지만 그는 스스로 하나의 전술이 되어 수많은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스페인 리그와 아르헨티나 리그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 한 매체는 그를 2000년대 최고의 미드필더 4위로 꼽았다. 선생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은 유행을 좇기보다는 뚝심 있게 내 영역을 개척하라는 말씀인 것 같다. 약간은 우스갯소리처럼 한 말이지만 지나가던 조씨라는 친구가 더 이상 옷차림으로 놀림받지 않게 된 것처럼, 그리고 리켈메가 결국 자신만의 축구로 역사를 이룬 것처럼 가던 길을 우직하게 가는 것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가르침이셨을 것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소위 주류라고 하는 스타일을 흉내 내는 것 정도는 나도 할 줄 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스타일을 내면화하여 쓰는 사람보다 잘 쓸 자신은 없다. 아등바등 그들 꽁무니를 좇다가 드디어 그들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무렵 또 새로운 것들이 유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유행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그 유행의 선두에 서서 걷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스타일리시하고 멋지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그들 뒤에는 끝없이 유행의 뒤를 좇지만 결국 유행을 따라잡지 못하는, 세상에서 제일 촌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차라리 유행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멋져 보이는 때가 많다. 돌고 도는 유행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건 그들은 끝내 살아남는다. 유행을 창조하고 선도하던 이들이 지쳐서 끝내 뒤처지고 마는 순간에도 자기 길을 걷던 사람들은 거기 남아서 그들의 세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시인이 되었을 때는 이십 대 초반이었다. 내가 제일 어렸고 그래서 내가 최첨단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이제 곧 사십이고 나보다 어리고 잘 쓰고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등장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라질 순 없다. 나는 계속 여기서 나만의 견고한 성을 쌓을 거다. 아무도 저런 성은 쌓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두고 보자.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2024-09-23

가족의 일

이번 추석은 평소의 추석과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폭염의 가을이라니.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날씨도 그러했지만, 개인적으론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은 것이 명절 분위기를 흐리는 데 한몫했다. 이번 추석은 여러 상황을 종합하여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는 방식을 택했고 형제들이 모여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만큼 온 가족이 모이는 북적북적한 모습은 연출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대체 언제 은강이의 신작 소설이 출간되는 거야?’ 혹은 ‘시집을 갈 생각이 있긴 하니?’ 같이 잔소리하는 친지들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 간소화된 식사 자리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부모님의 걱정의 눈빛을 묵묵하게 견디는 것으로, 비교적 조용하게 명절을 끝마쳤다. 온 가족이 모이는 일이 부담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가족들 앞에서 내 역할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은 꽤 오래되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방향이 미세하게 수정될 뿐이다. 나는 항상 나대로 살고 있는데, 어쩐지 내 역할을 방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평소에는 자부심을 가지고 잘 해내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 한순간에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가족이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인 것만 같다. 우리 사회는 관계 지향적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의 존속을 위하여 개인의 돌발적인 행동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이러한 맥락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잘살아 보겠다는 뚜렷한 목표는 삶의 강한 동력이었다.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다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고 어떤 면에서 그것은 훌륭한 문제 해결 방식이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개인의 삶을 지워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것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시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인의 감정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우리 사회의 기조는 한 사람이 입을 다물면 많은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것에서부터 나온다. 이는 우리가 가진 고유한 모양이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자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기 자신에게, 나아가 가까운 사람에게까지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지나온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상대의 약한 부분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 삶에서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로는 응당 가족 공동체를 들 수 있다. 김소연 시인의 저서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며 “오래된 제도로서의 가족은 서로를 계속해서 희생해야만 존속”되어 왔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가족 공동체는 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 우리 개인은 국가로부터 받은 모종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대의라고 명명되는 것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곪아버리기 마련. 겉을 감싸는 화려한 포장지에 집중하느라 썩어버린 내부를 놓쳐서는 안 된다. 깊숙한 상처를 마주하고 계속해서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지에 관해 골몰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인 명절의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음에 슬퍼하는 이와 ‘가족 간에 정을 나누는 일’에 상처받는 영혼이 공존하고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밀폐된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이다. 이것을 극단적 고립주의나 철저한 개인주의로 나아가려는 신호로 읽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건강한 형태의 집단을 만들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 가까운 사람에 관해 알고 싶은 것은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어떠한 잣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는 저마다의 인생을 그려가고 거기에 완벽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가족이란 함께 묶일 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 떨어져 존재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 곳을 바라보기보다 등을 맞대더라도 체온을 나누는 것. 그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2024-09-23

늦여름의 카레

입맛이 없거나 요리하기 귀찮은 날엔 카레를 떠올린다. /언스플래쉬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 이맘때에 부엌 앞에 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다. 몸이 지글지글 익는 더위에 불 앞에 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 게다가 음식이 겹치지 않게 매 끼니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안 좋은 습관도 있는 지라 여름날의 요리는 스스로를 너무나도 귀찮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매 끼니 같은 음식을 먹어도 질려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각종 채소 재료를 둥그렇게 썰고 강황 가루를 듬뿍 넣은 카레다. 특히 대용량으로 만들어두고 먹기에 좋은데다 끓일수록 눅진하고 진득해지는 국물 덕분에 오래 둘수록 오히려 맛있어지는 고마운 요리다. 커리는 3000년 전 인더스 문명에서 시작됐다는 발견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음식이다. 인도는 커리의 핵심재료인 코리앤더, 클로브, 생강, 마늘 등 여러 향신료를 사용하여 각 지역이나 취향에 따라 배합하여 만들어 내는 것을 ‘마살라’라고 칭했다. 이 마살라에 고기나 생선, 요거트 등의 재료를 추가로 넣어 조리한 여러 스튜를 큰 범주로 커리라 불렀다. 18세기가 되자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인도 현지의 커리를 영국에 들여오게 되는데, 기존 인도에서 커리와 주로 먹던 난이나 빵이 아닌 쌀과 먹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또한 이 때 물만 부으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커리 가루가 생겨나며 간단한 요리법 덕분에 군대 식량으로 보급되기 시작된다. 덕분에 점차 세계 곳곳에 커리라는 음식이 퍼지게 된다. 커리하면 또 생각나는 대표적인 나라, 일본이 있다. 카레 스튜, 카레빵, 카레 라면 등 커리를 다양하게 이용한 요리가 참 많은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배경이 있다. 20세기 초 근대에 이르자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군사적 동맹을 맺게 된다. 당시 영국 해군은 여전히 커리를 즐겨 먹고 있었고, 당시 동맹을 맺었던 일본 해군 또한 영향을 받아 커리가 점차 인기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빵과 같이 커리를 즐겨 먹었던 영국 해군의 식단과는 달리 밥과 곁들여 먹는 카레라이스가 탄생하게 된다. 해군 뿐만 아닌 일반인도 카레라이스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레토르트화 되면서 점차 일본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한국은 일제시대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카레를 접하게 되고, 각종 야채와 마늘 등 국내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향신료에 강황 중심의 가루를 넣어 만드는 카레가 유행하게 된다. 이 또한 일반 서민도 쉽고 간편하게 즐겨먹을 수 있는 레토르트화 되며 현재에 이르러선 쌀밥에 올려먹는 형태로 변하게 된다. 종류 또한 다양하다. 토마토와 마늘, 돼지고기를 넣어 푹 끓이는 토마토 카레. 버섯, 토마토, 양파,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 실패 없는 맛의 소고기 카레, 버터와 우유, 치즈를 넣어 만드는 버터치킨 카레 등 넣는 재료에 따라 무궁무진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채소만 충분히 손질한다면 누구나 만들기 쉬운 카레는 고형이나 분말 등 제품이 잘 나오기 때문에 식당에서 사 먹는 것만큼 높은 퀄리티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게다가 카레는 아주 어렸을 적, 어쩔 수 없이 장기간 집을 비우는 엄마의 필살기 요리법 중 하나였다. 어린 내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냄비 안에 냉장고에 있는 온갖 재료를 투박하게 썰어 놓고 가루를 물에 푼 후 짧은 시간 내에 만들어 내는 카레. 냉장고에 잔뜩 얼려둔 쌀밥을 전자레인지에 해동한 후 냄비 속 카레를 그저 붓기만 하면 그럴 듯하게 한 상이 만들어졌었다. 오랜 자취 생활 중 이젠 엄마가 만들어내는 투박한 카레의 맛은 없지만, 이제는 요리할 기력이 없다거나 왜인지 카레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면 엄마가 했던 것처럼 큰 냄비 가득 카레를 끓여내는 내 모습이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먹고 싶은 재료를 듬뿍 넣어 내 입맛 맞춤용 카레를 잔뜩 끓여낸다는 것. 고기를 많이 먹고 싶은 날엔 고기 걱정이 없도록 듬뿍 썰어 넣고, 어느 날엔 제철 토마토를 넣기도 하고 어느 날엔 계란 후라이를 잔뜩 올려 그날의 입맛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오늘처럼 무언가 입맛이 없거나 요리를 하기 귀찮은 날엔 수많은 요리 중 카레를 제일 먼저 떠올린다. 냄비 바닥에 카레가 타지 않도록 수저로 깊숙한 냄비 속을 휘휘 젓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어느덧 더위가 조금 가신 주방, 늦게나마 늦여름을 감각해본다.

2024-09-09

슈퍼 아저씨와 사소한 기적

유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해진 슈퍼 아저씨. 우리 동네엔 작은 슈퍼가 있다. 비닐봉지 값 따로 안 받고, 물건도 몇백 원 깎아주기도 하는 진짜 옛날 슈퍼다. 슈퍼 주인 아저씨는 아주 웃긴 사람이다. 얼굴에 늘 익살과 장난기가 가득하다. 나와 농담 따먹기를 종종 하는데 시작은 아저씨가 먼저 했다. 언젠가 과자 ‘맛동산’을 계산대에 올렸더니 “즐거운 파티를 하시려나보죠?” 해서 ‘웃긴데?’ 흠칫 놀랐다. 그래서 다음엔 내가 신라면을 계산해달라 하며 “사나이 울리는 일이 있어요” 했더니 아저씨도 ‘이놈 봐라?’ 하는 듯했다. 그랬더니 또 어느 날 아저씨는 부탄가스를 내민 내게 “조강지처가 좋죠?” 했고, 나는 며칠 뒤 짜파게티를 내밀며 “오늘은 제가 요리삽니다” 했다. 아저씨는 다음에 내가 카프리 맥주 다섯 병을 계산대에 올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으로 다섯 병을 다 마셔요?” 했다. 낚시로 광어나 농어를 잡아와 회 떠서 몇 번 갖다드린 일이 있다. 그러면 “고마워요” 끝에 “다음엔 도미를...” 하는 진짜 웃긴 아저씨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저씨 얼굴이 우거지죽상이다. 이유인즉슨 슈퍼 바로 앞에 편의점이 들어서서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안될 일이 뭐 있겠냐마는 고작 10미터 앞에 편의점이 들어서는 건 내가 봐도 상도의에 어긋난다. 아저씨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저런 행동을 하는 영업점이라면 그 안에 물건들이며 장사하는 태도며 하여간 내용이 형편없을 것”이라고 독설하기도 했다. 아저씨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면서도 발걸음은 어느새 편의점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슈퍼엔 없는 물건을 사거나 네 캔에 만천 원 맥주를 사거나 할 때, 비좁고 어수선한 슈퍼 대신 넓고 쾌적한 편의점에 갔다. 그게 내 생활에 편했다. 그러다 하루는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잔뜩 사서 나오다 담배 피러 나온 아저씨와 마주쳤다. 그동안 아저씨가 혹시 볼까봐 편의점 드나들 땐 조심했는데 드디어 딱 걸린 것이다. 가볍게 인사가 오갔지만 아저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라도 기분 나빴을 것이다. 그날 일이 마음 쓰여선지 그 뒤로 슈퍼를 찾는 횟수가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 며칠 전, 음료수를 사러 편의점 가는 길에 보니 버티다 버티다 더는 안 되겠던지 슈퍼는 폐업하고 말았다. 간판도 떼고 온갖 자재들이 건물 밖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이사 오기 한참 전부터 동네에서 장사한 노포가 거대자본과 시장논리에 밀려 사라졌다. 아저씨와 주고받던 농담들, 늘 익살스럽던 그 표정, 한숨을 푹푹 쉬며 불황을 걱정하던 음성을 떠올리니 슬퍼졌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착잡한 마음으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편의점 카운터에 아저씨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아니 왜 여기 계세요?” 했더니 “여기로 옮겼어요” 하신다. 더 놀라서 “이러셔도 돼요?” 하니까 “이런 일도 있어요. 살다보면” 본인도 웃긴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능청을 떠는 아저씨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한참 웃었다. 18년 동안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었던 김응용 감독이 라이벌팀 삼성 라이온즈로 옮겼을 때보다, 피닉스로 불리는 모 정치인이 야당에서 여당으로 당적을 옮겼을 때보다 더 충격적인 이적이다. 아저씨와 계속 농담따먹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마음에 오래 묵었던 아쉬움과 미안함이 깨끗이 사라졌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날 하루 종일 인천 앞바다에서 주꾸미 낚시를 했다. 저녁 늦게 집에 오면서 편의점에 맥주 사러 들렀다. 알바생이 있겠거니 했는데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오붓하게 매장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스박스에서 주꾸미 30마리를 꺼내 지퍼백에 담아 갖다드렸다. “이따 데쳐서 소주 한잔 하세요” 하자 아저씨 얼굴이 해처럼 환해졌다. 소소한 스몰토크를 주고받다가 편의점을 나섰다. 이런저런 제철 생선 잡으면 또 가져다드리겠다고 했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던가. 삶이란 항상 반복되는 형식 같아도 그 안엔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이 우연과 미지가 삶이라는 여정을 때로는 불안하게, 또 때로는 설레게 만든다. 세상은 늘 내가 모르는 곳에서 아름답고 경이롭다. 그 경이로움과 우연히 마주할 때,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삶이라도 기적처럼 여겨진다. 그걸 나는 사소한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폐업한 슈퍼를 바라보며 느낀 비애보다 아저씨가 앉아있는 편의점을 보며 벅차오른 희망이 더 크다. 이제 편의점을 지나갈 때면 저절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우리 동네 씨유편의점엔 아저씨가 웃기다네~”

2024-09-09

순간과 기억

평생 잊지 못할 결정적인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구체적으로 어떠한 순간인지에 따라 답은 완전히 달라지겠으나 어찌 됐든 이와 같은 경험은 개인의 삶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시에 찾아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찰나가 영원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였을까. 나의 마지막 순간에 떠오를 단 하나의 장면은 무엇일지 상상해 본 적 있다. 어쩐지 엉뚱할 것 같은데, 이를테면 바나나 껍질을 밟고 미끄러졌던 어느 오후의 부끄러움이나 정수리 위로 떨어진 새똥에 기겁하며 개수대를 향하던 뜀박질,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채로 자전거 타는 법을 포기하고 주저앉아 울먹이던 서러운 마음 같은 것. 이처럼 대단하지 않을 기억을 마주할 것으로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소한 순간이야말로 나를 구성하는 큰 힘이기 때문에, 그게 아니라면 내게 아직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순간을 지나간다. 이를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다음 문장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고 마지막까지 읽을 것인지 아니면 여기에서 멈추고 다른 페이지로 넘길 것인지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순간으로의 진입이 가능해진다. 글을 읽고 식사를 하고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 것 또한 지나갈 순간이 된다. 이 모든 것은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우리 삶을 스쳐가지만, 동시에 아주 내밀한 곳에 남아 끈덕지게 맴돌기도 한다. 모종의 방식으로 선별된 어떠한 순간은 기억이 된다. 선별의 방식은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의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감각의 영역이라 이성이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다. 사진을 찍거나 글로 남기는 것 또한 뭔가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다. 휘발되는 순간을 박제하려는 행위는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인간의 욕망이기도 하다. 어떠한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질수록 아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마음이 어두워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입안에 숨겨둔 사탕처럼 조금씩 녹여 먹을 수 있으니까. 우리의 인생은 되감기 버튼을 허용하지 않는다. 때문에 남은 흔적을 그러모아 후시녹음으로 살을 덧붙이면서 기억을 구성해 간다. 기억은 경험의 완벽한 재현일 수 없다. 개인의 견해가 조금씩 추가될 수밖에 없다.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남는 순간의 조각이 상흔일 때 우리는 본격적인 문제에 봉착한다. 삶에는 늘 기쁨과 슬픔이 함께 찾아오는 법이다. 거기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우리의 내부를 휘저으면서 상처를 남기게 된다. 시간은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픈 기억은 언제든 우리를 주저앉힐 준비가 되어 있다. 터널처럼 어둡고 긴 통로를 헤매다 보면 기억을 현실이라 착각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망각은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다. 고통을 겪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간절히 바라는 영역이기도 하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원하는 기억이 캄캄하게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이러한 기억이 있다. 떠올리기만 해도 촘촘한 바늘이 머릿속을 찌르는 기분. 덮어두기 위해 노력해도 뜻하지 않은 순간 불쑥 튀어 오르는 일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결국 나는 이것과 평생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것을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내 뜻대로 기억을 삭제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껴안으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기억을 육체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하나씩 버리다 보면 종국에는 나 자신을 잃는 일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하나의 순간이 그저 그곳에 있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결말이 정해진 삶을 살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한 문단이 쓰이면 기필코 다음 문단이 등장해야 하는 법이니. 다음 순간을 위해 기억의 문을 닫고 나오려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쩌면 이 모든 문장은 매 순간을 오롯이 누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그 순간을 즐겨! 과거의 내게 하고 싶은 말. 미래의 나 역시 지금의 내게 이 말을 건네고 싶겠지. 나를 구성하는 기억이 항상 아름다울 수만은 없겠지만, 어제와는 다른 내일의 순간을 기대하며 나아가는 가벼운 발걸음을 갖고 싶다.

2024-09-02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내 일상에는 몇 가지 짜릿한 순간이 있다. 그것을 자극의 크기순으로 나열한다면 최상단에는 노래나 글을 완성한 순간이 위치할 것이다. 나는 무언가 창작해내는 것이 항상 즐겁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부터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오랜 시간을 보낸 끝에 완성된 결과물. 언제나 그것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내가 만든 창작물은 다른 대중의 취향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취향에는 완벽히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로부터는 언제나 후한 평을 받곤 한다. 창작이야말로 결코 그만둘 수 없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일이 바로 나의 직업이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여러모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의 인생에는 각자만의 여러 고달픈 면이 있지만 나의 고달픔은 적어도 나의 직업으로부터 오지는 않기에 충분히 자랑할 만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점을 가진 모든 일에는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원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에도 어두운 면은 존재한다. 다소 배부른 소리일 수 있지만 누군가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어!’라는 결단을 내리기 전에 참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어두운 면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 한다. 문학과 음악은 내게 완벽한 취미였다. 이들은 아주 세련되고 고상한 성격의 취미인 동시에 짜릿했고, 과시하기도 용이하며, 누군가의 환심을 사는데도 도움이 되는 만능의 취미였다. 그런데 이것이 나의 직업이 되면서 나는 나의 소중한 취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글을 잘 쓰고 음악에 조예가 있는 것은 그것이 취미일 경우 아주 빛나는 도구가 된다. ‘패터슨’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버스운전 일을 하며 틈 날 때마다 시를 쓴다. 버스운전기사가 시를 품고 사는 것은 낭만적이며 거기에 어느 정도 역량까지 갖추었다는 것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그런데 시인이 시를 품고 사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책임이고, 시에 대한 역량을 갖추는 것 역시 응당 그러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자주 뜨는 의사 인플루언서가 한 분 있다. 수술복이나 가운을 입고 화려하고도 감각적인 일렉기타 솔로 플레이 영상을 올리시는 분이다. 의사가 발군의 기타실력을 가졌다는 것은 그의 삶이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타리스트가 발군의 기타실력을 뽐낸다면 그것은 그냥 당연한 일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직업 외에 사랑하는 일이 더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래서 나도 문학이나 음악과 무관한 새로운 취미를 찾아보려 노력한 일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가장 좋아하는 일들은 직업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차선과 그다음으로 밀린 일들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데, 이미 순위에서 많이 밀려버린 일들은 역시 몰입감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사랑했던 일이 지긋지긋해지기도 하는 문제도 있다. 이 일들이 취미일 때는 창작이 잘 안 풀리면 그저 던져놓고 다른 일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직업이 되어버린 이후로는 책임감이라는 것이 생겼고, 타인의 의뢰를 받는 일도 생겼다. 정해진 때에 작품을 납품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영감이 안 떠오른다거나 창작의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핑계는 존재할 수 없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은 조금 슬픈 일이 되기도 한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라고 해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둘 만 한 부분이다. 시인도, 싱어송라이터도 소위 말하는 비즈니스 같은 것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따내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도 생긴다. 기획서니 제안서니 지원서 같은 서류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도 생기고, 그 외에 스케줄을 위해 장거리 운전을 한다거나, 지루한 반복 연습을 한다거나, 세금 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회계 업무를 처리하는 일까지. 때로는 이 일을 꿈꾸기만 하던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부수적이고 성가신 일들을 처리하느라 본업 그 자체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그것으로 먹고 산다는 것은 행운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내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이 있다면 잘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좋아하는 일을 취미나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식으로 병행해보는 것도 틀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4-09-02

삶이 보내는 신호

최근 한 심리상담센터에서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성격유형검사를 받고 왔다. TCI는 Robert Cloninger 박사가 개발한 성격 평가 도구로 개인의 기질과 성격을 7가지 요소로 나누어 분석하는 심리검사다.생물학적 요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 그리고 환경적 요인과 개인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성격’을 각각 나누어 평가하여 개인의 강점, 약점, 그리고 본인이 지니고 있는 성격을 객관적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검사를 마친 후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는데, 바로 기질의 위험회피(HA)부분에서의 예기불안이 만점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인생에 만점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하필 심리 검사에서의 불안 부분이 만점을 받다니. 게다가 높은 두려움과 낯선 사람에 대한 수줍음까지. 나의 못난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아 와중에 얼굴이 자꾸만 붉어졌다.그 뒤로부턴 나는 불안도가 높은 사람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 취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멀리 떨어져 걷거나, 지나치게 좁고 거울이 없는 엘리베이터는 타지 않는다거나, 카페 테이블 모서리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컵을 보기 어려워하는 등,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신경 쓰는 행동들이 모두 불안도가 높아서 그런 것임을 깨달았다.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적인 기질이라니 뭐 별 수 있나. 불안이 높다는 건 그만큼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는 거겠지, 싶어 조금씩 나에게 너그러워지고 있다.나를 조금 더 알며 지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언제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좁고 어둑한 엘리베이터를 어쩔 수 없이 타게 되는 날에, 유난히 지독한 사람을 지하철에서 만날 때, 뭘 해도 일이 자꾸만 꼬일 때에 맞이하는 하루의 끝은 다시금 쓸쓸히 난처해진다.그럴 때 꺼내 드는 것이 감사일기다. 감사일기는 말 그대로 감사한 것들을 일기장에 부려놓는 것으로, 하루에 감사한 몇 가지들을 떠올린 뒤 단어로만 짧게 나열한다. 그날의 감사함은 친절한 사람에게 느꼈던 고마움일수도 있고, 우연히 마주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일수도 있고, 또는 오늘 나를 편안하게 해준 물건일 수도 있다.조금 유난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루를 돌아보면 감사한 것들이 은근히 있다. 예를 들자면 이른 새벽의 맑은 숨,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커피 한 모금, 버스에서 마주한 친절한 사람, 좋은 사람과의 건강한 대화 등. 종이 위로 기록되는 순간 그러한 것들이 선명해지며 불쾌한 불안보다 작은 기쁨들로 가득찬 하루로 기억할 수 있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김영민 교수의 책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선 “나는 어려운 시절이 오면, 어느 한적한 곳에 가서 문을 닫아걸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불안하던 삶이 오히려 견고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도 삶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 감각이다. 생활에서는 멀어지지만 어쩌면 생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정된 시간. 삶으로부터 상처받을 때 그 시간을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갈 수 있다고”라 말한다. 이처럼 저자는 ‘어려운 시절에 죽음을 생각하고’, ‘나는 이미 죽었으므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간다’는 다짐을 한다.저자가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다잡는 것처럼 나의 삶의 갈피는 감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기쁨을 주었던 날씨나 물건, 고마움을 느끼게 했던 이름 모를 사람들 등 낯설고 불안했던 대상들을 하나씩 감사하게 기억할 때에 삶은 다정한 것임을 느낀다.또한 감사함을 기억하는 동안 따라오는 기쁨은 물을 길어 올릴 때의 마중물을 붓는 것과도 같다. 깊은 곳에서의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선 많은 힘이 들지만 위에서 조금의 물을 부어준다면 금세 아래의 물이 빨려 올라온다. 소소한 감사함을 느끼는 동안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삶의 즐거움은 불안 속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러니 어려운 시절이 와도 삶에게서 온 편지에 회신을 남길 수 있다. 오늘도 작은 감사함을 느끼며 삶의 희열을 길어 올릴 것이라고. 다행히 삶은 답장을 바라지 않고 꾸준히 신호를 보내므로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써야한다.

2024-08-26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은 오후 1시에 플레이 볼! 고시엔 상공은 투명할 정도로 푸릅니다.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 마지막 장면이다. 쾌청한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으로 종이비행기가 날아가고 라디오에서는 고시엔 결승전을 예고한다. 고교야구 선수인 히로와 히데오 그리고 이들의 연인인 히카리의 미묘한 삼각관계 속에 찬란한 청춘의 열정을 그려낸 스포츠만화의 수작이다. “오늘도 더울 것 같군요”라는 캐스터 멘트는 등장인물들을 영원한 여름, 영원한 청춘에 머물게 한다.일본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른바 고시엔은 일본의 최대 스포츠 축제이자 모든 야구소년들이 꿈꾸는 무대다. 일본에서는 이 고시엔이 ‘여름’과 ‘청춘’의 뜨거운 상징이다. 약 3800개의 고등학교 야구팀 중 단 49개 팀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그렇기에 단 한번이라도 고시엔구장의 흙을 밟는 건 엄청난 영광이다. 경기에서 패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지 못한 소년들이 울면서 유리병에 흙을 담는 건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이 되었다.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고시엔에서 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우승했다. 전교생 130명의 작은 한국계 학교, 운동장이 작아 정상적인 타격과 수비 훈련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터진 야구공을 테이프로 감아 쓰면서도 선수들은 꿈을 위한 노력의 경주를 멈추지 않았다. 1999년 야구부가 만들어지고 몇 년 동안은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 창단 35년만인 올해 새 역사를 썼다. 연장 접전 끝에 2대 1로 승리한 간토다이이치고와의 결승전은 그야말로 야구의 정수였다.그런데 박수만 받아도 모자란 이 위대한 승리는 곧장 한일 양국에서 정치적으로 소비되었다. 우승한 학교의 교가를 부르는 전통에 따라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장면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고 한국 언론은 바로 그 한국어 교가, 그중에서도 ‘동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예민한 독도 문제를 포함해 반일감정을 드리우면서 교토국제고의 우승이 마치 일본을 정복하고 그들의 심장에 태극기를 꽂은 ‘한국의 승리’인양 보도했다. 일본에서도 일부 극우세력이 수치니 굴욕이니 혐한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교토국제고를 제명해야 한다는 여론 몰이를 했다. 어린 선수들이 보여준 땀과 눈물의 드라마를 낡은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정치병자 어른들이 더럽힌 것이다.하지만 혐한은 일부일 뿐 일본 국민 대부분은 교토국제고의 우승을 축하하며 차별과 혐오를 멈추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교토는 축제 분위기다. 지역 언론은 호외까지 발행해 우승 소식을 알리고, 상인들은 우승 기념 할인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일본 최대 포털사이트인 야후는 ‘교토국제고’를 검색하면 “우승 축하해”라는 메시지가 팝업으로 띄워지도록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이 있다. 비판 받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들어왔다”는 교토국제고 야구부 주장 후지모토 하이키 군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야구부원 61명 중 한국계 학생은 단 세 명뿐이다. 일본인 학생들은 오직 야구를 위해 이 학교에 왔다. 한국어 교가를 바꾸는 것을 반대한 것도, 경기장에서 “동해 바다”를 힘차게 외친 것도 일본인 학생들이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에 고시엔과 같은 대회가 있고 일본계 국제학교가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 소년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가령 “후지산의 태양 찬란하다”로 시작하는 일본어 교가를 부르는 일이 가능할까? 광복절에 열린 프로야구 경기에 일본인 선수의 출전을 반대한 일부 팬들의 비난으로 두산 베어스 시라카와 게이쇼는 선발투수로 등판하지 못했다. 식민 지배를 한 국가와 당한 국가의 역사적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고, 반일에는 과거사를 바로 잡자는 나름의 응당한 논리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스포츠를 어른들의 전쟁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우리는 농구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하면서 등장인물인 강백호와 서태웅의 청춘 서사에 감동하지만 그들의 원래 이름이 사쿠라기 하나미치, 루카와 카에데라는 사실은 잊는다. 교토국제고의 남학생들은 야구를 위해, 여학생들은 한류에 대한 호감으로 입학했다. 한국 인디음악의 명곡인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은 만화 ‘H2’를 모티브로 해 만들어졌다. 정치가 과거에 붙들린 사이 대중문화와 스포츠는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더 나은 미래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2024-08-26

평범함에 대한 존경

지난달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이제 약 50일 정도를 함께 한 셈이다. 그 중 아내의 회복을 위한 입원 기간과 산후조리원에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내 손으로 육아라는 것을 하게 된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육아는 고단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프리랜서 형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아내와 둘이 함께 아기를 돌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생아 육아는 쉽지 않다. 세 시간 반에 한 번 아기는 분유를 먹는다. 분유를 타고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잠투정을 받아주다 다시 잠을 재우는 과정은 아무리 빨리 해도 한 시간 이상이 걸린다. 두 시간 쉬고 다시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인데, 체감적으로는 물 한 번 마시고 나면 또 아기가 깨어나 밥을 달라고 보채는 기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백일의 기적’을 우리는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정말 그 무렵이면 아기가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백일까지 우리를 버티게 해 주는 것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그래도 우리의 아기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과정을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육아 선배들이 이미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고단함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겨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오기가 되어 다시 마음을 다잡게 만들기도 한다. 육아는 평범한 행위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 어려움을 극복해내었고 누구에게나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다고 해서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강한 책임감으로 한 생명을 끌어안고 고단한 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걸 해내었거나 해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육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일들이 아주 많고 매일같이 그것을 해내며 살아가는 위대한 사람들도 아주 많다. 나는 살면서 ‘나인 투 식스’라고 이야기하는 고정된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살아본 일이 많지 않다. 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부터 그런 삶을 가까이서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 매일 아침 이른 시각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늦지 않게 회사에 출근한다는 것은, 그것을 언제나 해 나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것이라 느껴질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매우 대단한 일이다. 처음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는 나도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 웃는 얼굴로 아내의 출근을 배웅한 뒤 힘차게 하루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부터는 침대에서 간신히 손만 뻗어 아내에게 인사를 건넸고, 또 언제부터는 아내의 출근을 보지 못한 채 홀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들이 많아졌다.회사에 출근해서도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하루는 계속된다. 회사에 책상이 있다는 것, 아니면 근로 현장에 자신만의 포지션이 있다는 것은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출근 하지 않는 프리랜서 예술인인 나 역시 책임감을 느끼며 내 직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책임감이 있는 것과 책임이 주어지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이다. 나는 필요한 시간만큼 책임감의 스위치를 켰다가 다시 끌 수 있지만, 조직에 속한 사람들은 최소한 그 조직의 업무시간 만큼은 지속적으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일상성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매우 무거운 일이며 대단한 일이다. 자신이 놓여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이 원활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분명 위대한 일이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퇴근해서는 어떤가. 우리는 또 다른 호칭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을 맞이하곤 한다. 부모, 자식, 때로는 친구라는 호칭조차도 책임감을 요할 때가 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역할 또한 잘 해내며 살아가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경우처럼 육아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고 부모님을 챙기기도 하며 외로운 친구들에게 어깨를 내어주기도 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그 과정마저 해내고 나면 진정한 자유시간이 잠시 주어지기도 하는데, 그런 순간에마저 다음 날을 또다시 위대하게 보내기 위해 절제력을 발휘하곤 한다.평범한 이들의 평범한 하루는 사실 이토록 위대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에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하고 더 나아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남들이 그렇게 해 주지 않더라도 스스로부터 자신을 존중하고 칭찬하며 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위대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2024-08-19

그렇게 있어 줘, 빛나는 별처럼

‘킹 오브 프리즘’이 개봉할 것이라는 소식(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면 이미 개봉한 뒤겠다)을 들었다. 평소라면 무심히 지나쳤겠지만 어쩐지 관련 내용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애니메이션은 내게 ‘응원상영’이라는 흥미로운 문화를 알려준, 일종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장에 모인 사람들이 응원봉을 흔들며 함께 호흡하는 모습. 스크린에 명시되는 배급사를 향해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엔딩곡이 끝나면 “앵콜!”을 외치는 장면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런 식의 관람도 가능하구나. 저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고.극장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정숙을 요구해 왔다. 나 또한 예민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으로 극장의 침묵을 중요시 생각한다. 이러한 뾰족함은 영화가 시작하면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데, 옆자리 사람이 팝콘을 먹기 위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거슬리고 타인의 불규칙한 호흡 때문에 작품에 몰입하는 것이 힘겨울 정도다. 가끔은 벌떡 일어나서 소리치고 싶다. 이봐요. 당신의 숨소리가 매우 크다는 걸 알고 있어요?응원상영은 다르다.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소리를 지르고 응원봉을 흔들면서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당연하다. 작품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권하기까지 한다. ‘킹 오브 프리즘’에는 여자 캐릭터의 대사를 관객에게 넘겨주는 부분이 있으니. 남자 캐릭터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 목소리 높여(그리고 진심을 가득 담아) “좋아!”하고 대답하면 되는 것이다.나는 오랫동안 이 애니메이션이 인기가 많은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찾아온 꿀 같은 공휴일, 나는 마음먹고 이 작품을 정주행하기로 했다. 전작인 ‘꿈의 라이브 프리즘 스톤’을 감상하는 것부터 시작, ‘킹 오브 프리즘’의 극장판과 애니메이션을 차례로 독파했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들의 서사가 어찌나 감동적이던지. 어떤 부분에서는 눈물을 찔끔 흘리기까지 했다.한동안 나는 ‘프리즘 스타’들에게 빠져 지냈다. 방 청소를 하다가 “작사, 작곡은? 신도하!”라고 외친다든지, 강아지가 나를 향해 폴짝 뛰어들면 “미안, 난 모두의 것이니까” 하고 너스레를 떨고, 운전 중에 채우리의 ‘Blowin’ in the Mind’를 튼 뒤에 신명나게 따라 부르기도 했다. “양자택일 극단적이야 넌 너무 긴장하지 마라, 냥냥 냥냥냥 냥냥!” 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정말이지 수치스럽겠지만, 나도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내가 이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또한 내 동생이었다. 그녀의 2D 사랑은 아주 오래되었는데, 국적 불문, 장르 불문, 모조리 섭렵해 내는 2D계의 척척박사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나를 앉혀 놓고 ‘킹 오브 프리즘’의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내가 감흥 없이 건성으로 듣자 맥 빠진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언니는 이 장르를 진심으로 즐기는 게 아니잖아. 다만 신기한 것뿐 아니야?”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그럴지도. 오랜 기간 나에게 있어 2차원의 존재는 ‘진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며 현실보다 더 현실다움을 느끼고 그 안의 인물이 떠나갈 때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하나의 캐릭터가 빚어지는 데는 무엇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조물주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오히려 너무나 완벽하게 거기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와 “좋아하는 2D 캐릭터가 생겼어”는 충분히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무어라 형용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그것은 ‘나’를 넘어서 ‘너’로 향하는 일. ‘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의 하루가 맑아지는 일. 마음이 멀리 뻗어나갈수록 세계는 확장되고 혼자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영역까지 가닿을 수 있다.어쩌면 나는 그러한 마음을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 하루를 보내고 자신 있게 “좋아해!” 하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그 힘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그것은 불행을 피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해 걸어가는 태도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 ‘덕질’은 삶을 윤택하게 하지. 좋아하는 마음은 함께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고. 물론 그 세상이 늘 기쁘기만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애호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계속 그렇게 있어 주면 좋겠다. 빛나는 별처럼.

2024-08-19

‘낚시꾼적’ 사고

낚시꾼만큼 핑계가 많은 사람도 없다. 지난 주말 부안 격포에 다녀왔다. 낚시용 레저보트를 장만한 후 처음으로 멀리까지 가 낚시를 했다. 농어를 노리고 배를 띄웠는데, 결과부터 말하자면 꽝이다. 같이 간 일행이 장대와 어름돔을 잡았지만 대상어종인 농어가 아니므로 꽝이나 마찬가지다. 어름돔의 경우 제주도와 남해에 주로 서식하는데, 서해 격포에서 잡히는 걸 보니 수온이 오르긴 오른 모양이다.그렇다. 수온이 문제다. 기온이 32도인데 수온도 32도였다. 바람도 없고 파도도 없는 날씨에 뙤약볕을 그대로 빨아들인 해표면은 사우나 온탕이나 다름없다. 수온이 높으니 농어들도 깊은 자리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또 핑계를 대본다.낚시만큼 시도 대비 실패가 잦은 행위도 없다. 강에만 가면, 바다에만 가면, 배만 타면 물고기를 잡을 것 같지만 막상 쉽지 않다. 내가 가입한 레저보트 동호회 카페에 어느 회원이 글을 올렸다. 보트 구입 후 자신이 저지른 초보적인 실수들을 나열하면서 마지막 열 번째, 보트를 산 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 다 적진 않았지만 매번 다채로운 실패의 변이 있을 것이다.낚시꾼만큼 핑계가 많은 사람도 없다. 수온이 높아서 안 잡힌다. 반대로 수온이 낮아서 안 잡힌다. 냉수대가 유입돼서, 일본에 지진이 나서, 적조가 발생해서, 돌고래가 날뛰어서 낚시가 안 된다. 바람이 불어서, 바람이 안 불어서, 비가 와서, 비가 안 와서, 기압이 높아서, 기압이 낮아서, 너무 환해서, 너무 어두워서, 수량이 많아서, 수량이 적어서, 물색이 맑아서, 물색이 탁해서 꽝이다. 그럼 도대체 언제 잡는가?낚싯배를 타거나 고기가 잘 잡힌다는 지역에 가 낚시를 하면 선장이나 현지의 고수들이 하는 말이 있다. 1번 “있으면 잡혀요”, 2번 “물 때 되면 물어요”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 고기가 있겠거니, 곧 물겠거니 집중해도 입질은 전혀 없다. 그때 압권의 3번 “어제까지 잘 나왔는데”가 나온다. 낚시꾼 속은 뒤집어진다.물고기는 기억력이 아예 없다던가. 낚시꾼도 물고기 못지않다. 한 마리도 못 잡고 씩씩대며 집에 와서는 낚시장비를 정리해두자마자 다시 물가로 가고 싶은 게 낚시꾼이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한다던데, 실패로부터 학습하는 게 없는 어리석은 자만 낚시꾼이 될 수 있다. 아니다. 실패 따위 아랑곳하지 않아야 낚시꾼이다. 낚시꾼이야말로 긍정적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온라인에서 ‘럭키비키’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이돌 가수 장원영이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로 자신에게 닥친 불운마저 행운으로 여기며 예컨대 “앞사람이 빵을 다 사가는 바람에 새로 갓 나오는 빵을 살 수 있게 됐어. 완전 럭키비키잖아”를 외치는 데서 유래했다. 비키는 장원영의 영어 이름이고 ‘럭키비키’는 이른바 ‘원영적 사고’로 불리기도 한다. 지난주 농어낚시의 아픔을 잊은 나는 어제 서천 마량진항으로 백조기 낚시를 다녀왔다. 낚시 도중 예보에 없던 폭우와 풍랑, 낙뢰에 급히 항구로 들어와 정박한 다른 배에 배를 묶어두고 화장실에서 비를 피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팬티까지 다 젖었지만 선크림을 안 챙겨 왔는데 얼굴 안 타서 럭키비키잖아!’ 긍정적 사고에 힘입어 만선으로 입항했다. 이병철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낚시와 야구 등 활동적인 스포츠도 좋아하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낚시꾼적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 낚시꾼은 스스로를 탓하지 않는다. 살면서 자책하는 낚시꾼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낚시꾼에겐 다 핑계가 있고 변명이 있다. 주변을 탓하고 상황을 탓하고 초자연적인 운을 탓한다. 그러면서 실패쯤은 웃어 넘긴다. 못 잡으면 사 먹으면 된다며 ‘카드채비’(신용카드와 낚시채비의 합성어)를 필살기를 꺼내든다. 어시장에 가 고기를 사서는 직접 낚시로 잡은 거라며 집에다 뻥을 친다.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불행과 불운과 좌절과 패배와 실패에는 다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원인에서 자신은 쏙 빼는 낚시꾼의 뻔뻔함이야말로 ‘팍팍한 인생살이 다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마음가짐 아닐까. 어제 실패한 낚시꾼은 오늘 다시 바다로 간다. 오늘 실패하고 내일 또 간다. 실패 따위 적당한 핑계로 둘러대고 새 마음으로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수온이 높아 한 마리도 못 잡은 덕분에 다음번 잡을 농어들을 두 배로 남겨뒀어. 완전 럭키비키잖아!’

2024-08-12

처음이라는 이름의 탈피

처음, 이라는 말처럼 마음을 조여오는 말이 또 있을까. 처음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덜 익은 풋사과처럼 입 안 가득 잔뜩 떫은맛이 맴돈다. 설렘과 서투름, 민망함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질서 없이 섞여 ‘첫’이란 단어에 모두 응축되어 괴상한 맛을 띠고 있는 것 같달까.나는 모든 처음을 싫어한다. 처음은 능숙하지 않고 어딘가 어리숙하고 부족하고 부끄러움이 많고 미성숙한 상태로 느껴진다. 게다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막연한 공포심이 들게 한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대비해 신체에서 위험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게 되고, 이는 은근한 긴장 상태에 빠져 입이 바짝 마르고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게다가 ‘처음’이라는 말에 기대어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이 일이 처음이라 그래’, ‘처음이라 어쩔 수 없었어’ 등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을 두 번째로 미루고 처음이란 단어에 기대어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는 사람의 유형이 제일 난감하고 대하기 멋쩍다. ‘이렇게 황당한 사과를 받는 나의 감정도 처음이야!’ 라고 되받고 싶지만,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화를 삭히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이란 단어와 정을 붙이기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하지만 누구나 처음은 있기 마련이고, 그러므로 변명을 줄줄이 늘어놓을 정도로 누구나 서툴 수 있단 사실은 인정한다. 처음이란 어딘가 삐뚤삐뚤한 서툰 마음이 당연히 들기 마련이니까. 그러므로 이성적으로 처음이란 단어를 다시금 생각해보자면 ‘첫’은 단 한 번밖에 없어 애틋한 것이기도 하다. 첫 등교, 첫 키스, 첫 출근, 첫 해외여행 등등 처음은 낯선 대상으로부터 오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오묘하게 섞여, 딱 한 번밖에 느껴볼 수 없으므로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최근 회사를 그만 두면서 다시 처음이란 관문 앞에 서 있다. 하루에 두 시간씩 내 경력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한 시간 정도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금 다듬고 많은 회사들 중 조건에 맞는 곳을 찾아 고심히 지원한다. 그렇게 지원한 여러 회사들 중 서류 단계부터 불합격 통보가 날아올 때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시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단 열패감이 어지러이 맴돌아, 시작조차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니 언제나 처음이 두렵답시고 언제나 구석에 숨어 피하고만 있을 순 없다. 한자 으뜸원(元)은 처음, 시초(始初)라는 뜻도 지니고 있지만, 우두머리, 두목 또는 임금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처음이 없다면 사건이 발생하지 않듯 무엇이 진행되거나 생기기 위해선 처음은 필수불가결로 일어나야만 한다. 처음은 곧 발판의 도약이 되어 최고 또는 일등이란 결과물로 나아가게도 하니까.최근 한 다큐멘터리에서 뱀이 탈피하는 영상을 봤다. 탈피하는 과정은 꽤 힘겨워 보였고, 느렸고,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태 가지고 있던 몸의 껍질을 버려내는 이유는 뭘까 싶어 검색해 보았더니 탈피는 생물에게도 매우 힘겨운 과정이지만 탈피를 하지 않으면 몸의 크기를 불릴 수 없기에 필수로 거쳐 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윤여진 2018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젊은 작가. 탈피는 성장과 관련이 있어 성장주기에 따라 탈피 시기도 달라진다고 하는데, 파충류의 경우 대부분 1년에 1번 계절의 환경이 변하고 생물의 내분비계가 탈피할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호르몬을 분비했을 때 몸이 탈피 준비를 하게 된다고 한다.외골격을 두른 곤충이나 갑각류는 탈피 후 더 큰 갑각을 만들어 내고, 파충류는 내골격의 성장에 맞추기 위해 피부를 크게 늘려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 파충류, 양서류 등은 탈피로 인해 피부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나 세균들을 떨쳐내기도 한다고 한다. 탈피를 하는 동물은 모두 고통을 동반하면서까지 전의 모습을 버리고 다음으로 나아간다.전에 있던 상황이나 무언가에서 많이 달라졌거나, 과거의 인식을 벗어난 경우, ‘탈피’ 또는 ‘탈바꿈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은 내가 처음이란 단어를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도 첫 시작점 앞에서의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낯선 것에서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해야 할 일을 찾아낸다면 처음이란 혼란에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가져야 할 것은 탈피라는 용기다.

2024-08-12

나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 ‘예술가는 돈을 밝히면 안 된다’고… /ideogram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한 업체로부터 공연 섭외 요청 연락을 하나 받았는데 돈 얘기가 빠져있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혹시 책정된 출연료가 있나요?”하고 물었다. 그 이후로 답변은 오지 않고 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는 일이라 당황스럽지도 않고 화도 나지 않는다. 그저 조금 성가실 뿐이다.나는 창작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글과 음악을 팔아 돈을 벌고 그것으로 나와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간다. 갈빗집 사장님이 갈비를 팔고 휴대폰 대리점 사장님이 휴대폰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창작물을 파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파는 것들을 공짜로 내어 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갈비나 휴대폰을 공짜로 달라고 점포 문을 여는 사람은 아주 드물 것이다. 내 창작물이 갈비나 휴대폰 보다 위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값이 공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누군가는 ‘예술인은 돈을 밝히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누가 돈 주는 게 제일 좋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 자아실현, 화목한 가정, 건강 등등. 다양한 유무형의 자원 중에 내게 가장 넉넉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돈이다. 예술인들은 흔히 이런 상황에 놓인다. 차고 넘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중 무엇을 먼저 추구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예술인은 당연히 돈을 밝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물론 그런 논리와 무관하게 선심을 쓰는 차원에서 공짜로 노래도 부르고 글도 쓸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자칫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로 쓰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것이 유료화 되면 성을 내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음악이다. 한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법다운로드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다운받거나 무료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음악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너무 당연해져서 음악을 유료로 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대중들이 반발했던 기억이 선명하다.그럼에도 내가 비영리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먼저 사회를 향해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때, 같은 생각으로 기획된 무대가 있다면 금전적인 부분과 관계없이 달려가기도 한다. 사회적인 올바름을 추구하는데 나의 창작물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가진 무형의 재산을 빌려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간혹 이런 경우들이 있다. 내가 공연을 함으로써 발생되는 수익을 기부 할테니 와 달라는 것인데 그 수익 기부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하겠다는 것. 이건 반칙이라고 생각한다.내가 신세를 진 사람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부탁으로 나의 능력을 무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식으로라도 신세를 갚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이다. 가까운 지인들 같은 경우 나의 호의를 기억해두고 밥이나 술이라도 살 테니 여건이 되고 상황이 맞으면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간혹 모르는 사람이 밥을 살 테니 도와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모르는 사람과 밥을 왜 먹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 강백수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를 탐구 중이다. 그외 너무너무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이라거나, 나에게 커다란 영광인 일 같은 경우에는 무료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가급적 무료로 나를 사용하도록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다. 간혹 재능을 기부하게 되는 경우이더라도 가급적 거마비 수준의 돈은 받으려고 한다. 재능 기부는 말 그대로 재능을 기부하는 일. 재능 기부를 바라면서 거기에 드는 비용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재능에 금전까지 얹어서 기부하라는 말이 된다. 나는 재능 외에 차비나 식대 같은 비용까지 기부하겠다고 한 적은 없다.예전에 라디오에서 한 연예인 진행자가 어느 청취자와 전화 통화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비영리 단체에 있다는 청취자가 진행자에게 기회 되면 재능기부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하자 진행자는 말했다. “재능이 너무 커서 기부할 수가 없어요.” 나는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다. 나 역시 내가 가진 재능으로 십수 년째 먹고 사는 사람이다. 결코 그 재능이 작다고는 할 수 없다.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신생 업체라 책정된 출연료는 없습니다. 하지만 향후…’ 나는 이런 상황에 향후를 기약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존중한다면 여건 안에서 적은 금액이라도 제안했어야 했다. 보수가 적은 것과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기에. 나는 공짜가 아니다.

2024-08-05

김치찌개와 파스타

인간에겐 누구나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있다. /언스플래쉬 ‘오늘 뭐 먹지?’많으면 세 끼, 못해도 두 끼는 꼭 챙겨 먹어야 하는 내게 이것은 꽤 중요한 문제다. 이른 아침부터 고열량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간으로 내가 가진 지론은 바쁜 날엔 더욱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 이렇게 욕심을 부리다간 속이 더부룩해 종일 끙끙거릴 게 분명하지만, 힘이 빠지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보다야 낫다. 피치 못할 이유로 한 끼라도 거르게 되는 날엔 회의감에 빠진다. 나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먹는다는 행위는 우리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혹은 ‘먹고 살기 참 힘들다.’는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는 단순히 영양가 있는 덩어리를 위장에다 모으는 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얼마든지 문학적인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다.생각해 보면 매 끼니를 그렇게 잘 챙겨 먹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세끼를 근사하게 차려 우아하게 먹는 호사스러운 시간은 우리의 일상에 늘 있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음식으로 허겁지겁 주린 배만 채우는 것처럼 슬픈 일은 또 없다. 식사 자리에는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자리한다. 그런 면에서 위장과 영혼은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각자에게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나의 소울 푸드는 김치찌개와 파스타다. 살면서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을 꼽자면 이 두 가지다. 전국 방방곡곡의 김치찌개 맛집을 찾는다든가, 새로운 파스타 조리법을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는 것 또한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내가 가장 즐겨하는 요리 또한 이것인데,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자신 있게 내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필살기이기도 하다.김치찌개는 김치가 맛있는 것이 핵심. 앞다리살 대신 등갈비를 넣으면 조금 더 고급스럽게 변하고 참치나 스팸을 넣으면 더 캐주얼한 맛이 난다. 새우젓과 두부만 넣어 칼칼하게 끓이는 것도 일품이다. 육수도 중요하다. 멸치로 내느냐 사골로 내느냐에 따라서 맛이 천차만별이다. 무엇보다 김치찌개는 오래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깊어진다. 한 솥 가득 끓여놨다가 다음 날 아침에 비척비척 일어나 후루룩 떠먹는 김치찌개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파스타는 말해 뭐하겠는가. 오일, 토마토, 크림을 베이스로 두는 이 요리는 무엇을 넣고 어떤 식으로 조리하는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된다. 봄에는 제철 나물로, 여름은 방울토마토와 치즈로 산뜻하게 만들면 한 계절이 내 안으로 고스란히 들어오는 기분이다. 날이 쌀쌀해지면 여러 가지 해물로 육수를 만든 다음 토마토소스에 고추장을 섞어 맛을 내는데, 한 입 떠먹으면 혈관에 뜨거운 기운이 돌면서 몸이 따뜻해진다. 이것은 해장에도 제격인데, 숙취로 괴로워하는 나를 몇 번이나 구원해 준 아주 고마운 녀석이다. 문은강 ‘춤추는 고복희와 원더랜드’로 주목받은 소설가.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등단했다. 음식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과 닿아 있다. 밥을 먹으려고 입을 크게 벌리는 순간이 어쩐지 민망해지는 것처럼. 이에 관해 구태여 말하는 게 머쓱할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를 쉽게 감동하게 한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한식당을 찾았을 때의 기쁨을 떠올려보자. 고된 여행에 지쳤을 때 먹는 김치찌개 한 입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묘하게 달짝지근하고 심심한 것이 아쉬워도, 이 정도면 괜찮아, 얼추 비슷한 맛이야, 하며 관대해진다. 은은한 감동이 뭉근하게 퍼지면서 마음 어딘가가 풀어지는 기분이다.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도 본토의 파스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맛있긴 했지만 내 입맛에 딱 맞진 않았다. 마늘과 페페론치노가 넘치도록 들어갔으면 좋겠고, 고춧가루 팍팍 넣어 느끼한 맛을 잡고 싶고, 아니 여기에 굴소스 한 스푼을 넣으면 감칠맛이 더 돌 것인데… 그런 불온한 생각을 하는 손님이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업원은 음식이 맛있느냐고 물어왔고 나는 엄지를 척 내밀며 거짓 웃음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부엌에서 내가 만든 음식이 내 입에는 가장 맛있다는 결론이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땡초도 실컷 넣고 짠맛도 단맛도 마음껏 조절해 가면서 내 맘대로 만드는 김치찌개와 파스타.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 잔 곁들이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누군가가 먹고 너무 싱겁다고, 맵고 달다고 미간을 찌푸려도 뭐 어떠한가. 내가 만들고 내가 먹는 것인데. 다른 곳에선 몰라도 식탁의 주도권만큼은 내가 쥐고 있다. 그게 중요한 거다.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