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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이듦에 대하여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었다. 새해 차례상이나 밥상에 올리는 여러가지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떡국이다. 새해가 밝은지 두 달째지만, 세시음식인 떡국을 먹음으로써 진정 한 살 더 나이가 든다고 한다. 첨세병(添歲餠)이라고도 하는 떡국은 단순히 나이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가래떡처럼 재산이 길게 늘어나고 엽전모양으로 동그랗게 써는 떡은 돈이 많아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한 떡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으면서 새해 덕담도 나누고 일년 신수가 훤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해마다 대하는 떡국이지만 올해는 그저 단출하기만 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코로나19 감염증의 방역지침에 따라 이동과 모임을 자제하거나 최소화해서 설 명절 가족 간의 따스한 만남이 두드러지게 성글어진 것이다. 한 살 더 먹는 것도 서러운데(?) 가족이나 친지를 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니, 씁쓸히 먹는 병탕(餠湯) 속에는 만두뿐만 아니라 여타의 생각이 섞이게 됨은 필자만의 과민일까?떡국을 먹지 않더라도 나이는 먹게 되고 시간은 나그네처럼 끊임없이(光陰百代之過客) 지나간다. 그러한 세월에 버물려 과세(過歲)를 하고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길어도 일년이 짧다고 여겨짐은 세월에 대한 조바심일까? 호기심 많던 시절에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었는데, 젊음과 늙음의 중간지대쯤에서는 삶의 수레가 천천히 굴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인생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아서 풀어낼수록 더 빨리 돌아간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무게감이 덧대어진다는 뜻이다. 나이듦은 가정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역할과 기여를 하며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고 이치와 순리를 밝혀주는 연륜이 깊어 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나이를 값으로 매기기는 모호하지만, 나이를 존중하고 적어도 나이값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산술적인 나이의 숫자만 보태는 것이 아니라 원숙함을 더해가고 농밀하게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누구나 곱고 건강하게 나이듦을 바랄 것이다. 나이를 먹다 보면 결국 무채색 같은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지만, 노화는 모든 생명체가 겪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나이듦이 달갑지 않고, 늙어감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늙었다는 실감이 들 때는 암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노년기의 풍부함과 가능성으로 얼마든지 유년기나 성년기의 다양성을 누릴 수 있다.꼰대 기질 같은 아집을 버리고 젊은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며 눈높이와 공감의 소통으로 움직이고 어울릴 때 생체나이를 얼마든지 낮출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나이라도 젊고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늙고 병약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을 가꾸고 다루기에 따라 외양은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다. 꿈꾸는 삶과 노력하는 집념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만의 독특하고 지속적인 건강비법과 생활습관으로 젊게 나이 드는 것이 축복이 되는 연년익수(延年益壽)를 추구해보자.

2021-02-15

맛과 정성의 밥상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을까, 먹기 위해서 살까? 이에 대한 논쟁은 수도 없이 해왔고 계속되고 있지만, 각자 나름의 취향이나 주관에 따라 받아들이고 추구해 나가면 편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을 비롯한 온갖 유기체는 생리구조 상 음식물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신진대사 작용이 있어야만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은 적어도 먹어야 살 수 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먹음으로써 움직일 수 있고 기력이 있어야 제반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처럼 먹는 것은 인간생활의 중요한 요소이며, 의식주와 함께 인류역사학적으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는다지만 그것을 통칭하면 먹거리이고 달리 보면 음식문화나 정서적인 산물인 것이다. 그만큼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고 먹고 마시는 과정에는 많은 생각과 사연과 풍습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음식에는 지역적인 특색과 삶의 양식이 더해져서 독특한 맛과 향으로 눈요기를 자극하는지도 모른다.음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근간이자 정과 얼이 버무려진 고마운 양식(糧食)이다. 잘 먹어야 잘 산다는 말처럼, 우리는 음식을 먹고 자라며 음식을 통해 인심과 밥상머리 교육을 받아왔다. 단순히 배만 채우는 밥이 아니라 밥상을 통해 알게 모르게 인성과 예절을 배우고 터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차려 주신 두레밥상을 대하며 우리는 슬기를 발라내고 뚝심을 길러내며 가족을 위해 험난한 세상의 밥상을 온전하게 차려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평소 음식에 대해 많은 관심과 미식가를 자처하는(?) 필자로서는 일전에 방영한 ‘한국인의 밥상’ 특집 프로그램을 흥미롭게 시청했다. 지난 10년간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며 80천여 가지의 향토음식을 소개한 대장정은, 기억마다 계절마다 사람을 만나고 음식에 얽힌 많은 얘기와 추억이 서린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그렇게 보듬고 장만한 음식에는 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었고 정성을 더하고 아픔을 달래며 위로와 감사를 나누는 진정한 사랑의 손맛이었다. 건강과 장수에 직결되는 음식을 잘 먹어야 무병과 노화지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과일, 채소, 생선, 견과류, 통밀, 올리브유가 풍부하고 건강과 장수에 이로운 식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지중해식단’을 한국형 장수식단으로 특성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연구와 건강식, 균형 잡힌 식단, 식이요법 등으로 젊고 건강하게 사는 것은 인류의 희망사항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산다는 것은 어쩌면 밥을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밥 한끼에 얽힌 그리운 추억과 잊지못할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의 음식에는 큰 지혜가 배어 있고 추억의 맛과 향이 진하게 우러난다. 애틋해서 고마운 밥상, 힘들 때는 힘찬 응원가였으며 어려울 땐 가슴 찡한 위로로 다가오는 소중한 추억 나눔의 음식은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한 기억이 아닐까?

2021-02-08

입춘별곡

강성태시조시인·서예가내일이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이다. 여전히 매서운 추위와 성가신 코로나19 감염증의 재확산으로 요원할 것 같은 봄날이 이날부터 서막을 알리게 된다. 동안거에 들었던 풀과 나무들이 움을 준비하고 세상이 동토의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때, 남녘에선 벌써 때이른 홍매화 개화 소식도 있지만 진정한 마음의 봄은 어느 날에나 오려는지 몹시도 기다려진다. 입춘이 되면 농경의례와 기복적(祈福的)인 의미로 입춘방(立春榜)을 대문이나 문설주 등에 붙인다. 춘축(春祝)·입춘서·입춘첩이라고도 하는 입춘방은 한 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며 봄을 송축하는 글귀다. 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등의 한문을 세로형태의 화선지에 붓으로 쓰지만, 요즘은 순 우리말로 ‘들봄 한볕, 기쁨 가득’ 등의 문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캘리그래피 서체에 색채를 가미하거나 삽화를 곁들여 다양하게 쓰고 그리기도 한다.필자는 매년 입춘에 즈음해 입춘첩을 붓으로 써서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현관문 입구에 붙이곤 한다. 설날이 다가오면 연하장도 정성껏 써서 함께 전해주곤 했는데, 외곬스러울지 몰라도 그렇게 해온 지 벌써 이십 수년이나 됐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해마다 당연한듯이(?) 연하장이나 입춘첩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지인은 연례적으로 받은 연하장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가지런히 간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오기도 한다. 크게 대수로운 일도 아닌데 주위의 기다림과 소중한 챙김을 생각하고 자락(自樂)으로 삼으며, 지금까지 거르지 않고 쓰고 보내고 나눠왔는지도 모른다.그러한 습성으로 올해도 어김없이 연하장을 쓰고 입춘첩을 나눴다. 어서 빨리 악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가고(疫病消滅),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이 편안하며(國泰民安), 만복이 구름처럼 흥해지기를(萬福雲興) 바라는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열성을 다해 썼다. 입춘첩은 특히 입춘이 드는 절입시간에 붙여야 적실(適實)하다기에 최소한 입춘 1~2일 전에 전달해줘야 하는 시의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연하장이나 입춘방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나눠주고 보내주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친분과 받는 이의 표정을 떠올리면 주저없이 연락을 하거나 우편물로 보내게 된다. 비대면으로 소원해진 때지만 미미한 소통이나마 반가움과 미더움으로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입춘이라지만 바로 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계절의 변화는 기운의 변화이다. 겨울의 찬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땅 속에서는 새 생명이 움트고 있으니 봄의 기운이 서서히 온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차례의 꽃샘추위와 잎샘추위가 지나가야 비로소 봄이 오는 것이다. 멀지 않아 오게 될 봄날을 기다리는 것도 새로운 희망의 기운과 다시 시작하는 설레임이 있기 때문이다. 혹독한 추위와 시련의 고통을 이겨낸 뒤에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환해지지 않을까 싶다.봄은 많이 보라고 봄이라 했던가. 이곳저곳 주변을 자세히 바라보면 정말 어느새 조금씩 달라지고 눈에 띄게 보이는 것들이 많다. 풀과 싹이 흙을 간지럽히고 홍매화 등걸에 망울이 맺히듯 차츰 봄날이 부스스 실눈을 뜨며 입춘별곡을 노래하는 듯하다.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