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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마당극으로 조명한 해녀의 삶과 미래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어스름이 내리는 도심 속의 정원에서 한바탕 놀이판이 열렸다. 꽹과리와 장구 등의 장단에 바람소리 같은 파도소리가 간간이 철썩이고, 갈매기 날갯짓따라 흰구름이 떠가는 구룡포 바닷가를 배경으로 조곤조곤 해녀이야기와 몸동작이 사뿐사뿐 이어졌다. 때로는 느긋하고 다급하다가도 때로는 긴장되고 애절하기까지한 연희(演戱)가 시종 재담과 해학으로 흥미롭고 드라마틱하게 펼쳐진 것이다. 이 같은 공연은 전통연희컴퍼니예심 단원들이 포항철길숲 오크정원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지역의 향토역사 구룡포 해녀이야기 ‘명랑바다-숨비소리’ 마당극이다.해녀라는 고단하면서도 숙명적인 물질을 통해 여인의 삶, 어머니의 삶, 고령화돼 가는 위기의 해녀를 오롯이 지켜가는 사람들의 질박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마당극 특유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다양한 춤사위, 폭소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대사와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간절한 듯 신명나게 부르거나 연주하고,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과 사물(四物)의 장단, 관객의 추임새까지 더해진 흥겨운 한마당이었다고나 할까? 거기에 즉석에서 샌드아트로 그려지는 평온한 바닷가의 풍경과 물질의 미래 이야기 등이 영상으로 비쳐지니 한결 이채롭기까지 했다.일찌감치 공연장 주위에 둘러 앉은 관객들은 이색적인 마당극에 젖어 들어 저절로 감흥이 일고, 철길숲을 오가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춰 서서 삼삼오오 넌지시 마당극에 빠져드는 분위기였다. 연극 같으면서 창극(唱劇) 같고, 뮤지컬 같으면서도 독창적인 마당극으로 펼쳐지는 해녀의 레퍼토리가 궁금해선지 지나가던 바람도 주변에 맴돌고 별빛마저 서둘러 내려앉는 듯했다.시민들의 쉼터이자 만남과 소통의 공간인 포항철길숲에서 펼쳐진 ‘구룡포 해녀이야기’ 마당극이 작게나마 해녀들의 실태와 척박한 해녀 환경에 대한 관심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북은 제주도 다음으로 해녀가 많아 1천300여 명이 동해안 중심으로 나잠(裸潛) 어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경북 최다의 해녀도시인 포항은 타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해녀문화의 정체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해녀는 연안어업의 주요한 생산자이자 해양생태계의 수호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종사자의 64%가 40년 이상 나잠어업에 종사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화, 소득감소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세다.갈수록 심각해지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위기에 어촌의 소멸위험은 어촌 주민들의 삶을 크게 위축시키기에 해녀들의 복지환경 개선과 실질적인 대안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 시작 전 35년 동안 바닷속을 텃밭 삼아 온 구룡포리 어촌계장의 화두처럼 해녀의 존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젊은 해녀, 해남을 위한 ‘해녀 비즈니스타운’ 건립추진 등으로 보다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 결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구룡포 해녀의 역사와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해녀들의 애환을 대중적인 문화콘텐츠로 담아낸 걸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재조명된 해녀들의 실상과 처우가 보다 전향적으로 개선되어 포항의 해녀문화가 차츰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3-06-13

한흑구 문학의 자취를 찾아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주말, 가벼운 차림으로 버스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두둥실 하늘을 떠가는 구름처럼, 버스에 몸을 맡기고 느긋하게 차창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 속을 누비니 가뿐하기만 하다. 실로 얼마만의 여유와 쉼표 같은 떠남이던가. 큰길에서 벗어나 군데군데 샛노란 금계국이 반겨 맞는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지나 다다른 곳은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 위치한 이육사문학관이다.포항의 시인묵객들과 화가, 예인, 가인 등이 안동으로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내 고장 칠월은’으로 시작되는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의 배경지가 포항(도구리)이고, 일제강점기 이후 포항에 살면서 주옥같은 수필 명작을 남긴 한흑구 선생의 ‘이육사의 청포도’ 수필 등과의 연관성이 있기에, ‘한흑구 문학, 그 자취를 찾아서’란 명목으로 포항시민과 함께 떠나는 문학기행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곧 2022년 3월에 출범한 한흑구문학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중요하고도 의미있는 기념사업을 단계적,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육사(陸史) 이원록의 삶과 문학작품, 편지 등을 정리, 비치, 조명하고 있는 이육사문학관은 그의 작품과 짧은 생애만큼이나 단출하고 정갈하다. 육사선생의 고향마을 원촌리 북미골 어귀에 자리잡아 시인의 작품을 닮아선지 화려하지 않고 검박하다. 2004년 개관한 이육사문학관은 차분한 회백색톤의 전시관과 생활관, 생가를 옮겨와 복원한 육우당(六友堂), 사색마당, 수경시설 등으로 조성돼 있으며, 2017년 올해의 최우수 문학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독립유공자를 기리는 곳이기에 국가보훈시설로 지정돼 있고 안동시내와의 원거리 등으로 접근성에 다소 불편함이 있지만, 인근에 시비공원과 수필에 등장하는 지명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자취 등으로 고향이라는 테마와 스토리가 많은 문학관이기도 하다.전시관 실내외 곳곳을 둘러본 후 문학관장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문학관 운영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대부분의 문학관 건립과 초기운영은 지자체의 몫이다가 민간위탁운영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예산부족 등 운영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래서 운영업체 자구책으로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스토리 체험형 문학테마 발굴이나 청포도 와이너리, 청포도빵 등의 브랜드화로 별도의 수익사업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칭 ‘한흑구문학관’ 건립, 운영 시 눈여겨볼만한 대목이 아닐까 싶다.구름꽃 피는 하오의 원촌마을을 뒤로 하고 일행은 한흑구문학비가 있는 내연산 계곡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문학비를 둘러보며 한흑구문학비의 건립 내력을 더듬어 보고, 선생의 보경사 앞 회화나무를 소재로 쓴 수필 ‘노목을 우러러보며’를 낭독하기도 했다. ‘1987년에 이곳엘 처음 찾았던 필자로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외진 곳에서 외롭게 서있는 시비가 아쉽게 여겨졌음은 나만의 기우였을까? 안동과 보경사를 두루 거친 문학기행의 취지와 성과가 올곧게 반영되어 흑구선생의 문학적인 업적이 재조명되기를 사뭇 기대해본다.

2023-06-06

5월을 보내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보리누름의 즈음에 초목은 더욱 푸릇푸릇하다.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푸르름인데 군데군데 맥랑(麥浪)이 이는 들판엔 누렇거나 갈빛을 띄며 보리가 익어가니 이른바 맥추(麥秋)이다. 푸르른 초목의 캔버스에 누런 보리물결의 채색은 선명하면서도 대조적이다. 강물이 푸르니 새가 더욱 희게 보이고(江碧鳥逾白) 산이 푸르니 꽃빛이 불타듯 더욱 붉게 보이는 것(山靑花欲然)처럼, 이따금씩 배경의 빛깔이나 상태에 따라 어떤 사물과 대상이 두드러지거나 각광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강둑에 줄지어 서서 노란 웃음꽃을 피우는 금계국도 대조적인 인상을 준다. 연녹색과 초록의 줄기에 돋아난 잎들 사이사이로 샛노란 꽃을 아기자기하게 품고 피우며 가볍게 살랑거리는 자태는 앙증스럽기만 하다. 꽃이 피기 전까지는 길섶의 들꽃이나 야생초쯤으로 여겨져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하나씩 노란 꽃잎을 흔들며 길손을 반기고 온몸으로 환호하니 자연히 눈길이 머물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때때로 배경이 되거나 어쩌다가(?) 주연으로 부각되는 기회가 있기도 할 것이다.“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 걸….//반벙어리처럼/귀머거리처럼/보내지는 않았는가/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사랑할 것을….//모든 순간이 다아/꽃봉오리인 것을,/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중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모양과 빛깔과 향기로 하루하루 자신만의 꽃봉오리를 피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꽃밭을 이루고 숲을 키워가듯이,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 ‘개성의 꽃’을 피우며 사회를 조화롭고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것이리라. 꽃을 피운다는 것은 에너지를 응축시켜 절정으로 치닫는 것이다. 노력하고 인내하고 도전하고 진취하면서 자신의 의지와 재능을 한껏 불살라 꿈을 향한 도움닫기를 줄기차게 펼치는 것이다.불꽃놀이는 꿈의 결정체를 벅차고 강렬하게 터뜨려서 순간적이지만 스러져서 외려 아름다운 불꽃예술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꿈이나 꽃이 피어나는 과정의 형상화를 불꽃으로 승화시켜 ‘찰라 예술’로 연출함으로써 생생한 감동과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주 형산강 둔치에서 4년만에 열린 ‘2023년 포항국제불빛축제’에 25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호응이 컸다. 명실상부한 전국 3대 불꽃축제의 면모를 보이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코로나19 태풍으로 힘든 나날을 보낸 포항시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불빛을 선사했다.감사와 사랑으로 5월을 마무리하며, 마침 6월부터는 ‘노 마스크’에 이어 ‘격리’도 해제되어 사실상 40개월만에 엔데믹(감염병의 풍토화) 전환에 진입하니 완전한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나누고 베풀며 아끼고 챙겨주는 배려의 꽃이 찬란한 기쁨의 폭죽으로 옴팡지게 터지길 기대해본다.

2023-05-30

촉각으로 감상하는 포스아트 옛 그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코로나의 터널을 벗어나선지 최근들어 축제나 공연, 전시 등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화창해진 날씨에 싱그러운 신록의 물결 따라 사람들의 발걸음도 가볍고 표정도 밝아 보인다. 인근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는 발길도 많아져서 그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참고 미뤄왔었던 전시회나 문화강좌, 학습모임 등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부담 없이 누리고 즐기는 모습들이 넉넉하기만 하다.요즘은 굳이 미술관을 찾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이나 편의, 위락시설 등지에 설치된 조형물이나 조각상 등의 예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예컨대 길거리 간판이나 가로등, 공원 벤치, 운동시설, 시설 구조물 등에 예술성을 가미해 이색적인 새로움을 주거나 낯선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이른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미술이나 예술작품은 이렇듯 일상에서의 향유와 실생활에 접목될 수 있을 때 보다 능동적이며 그 의의와 가치가 커지지 않을까 싶다.대부분의 예술작품이나 미술품 등은 원작의 보존성을 위해 취급이나 감상에 엄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작품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손으로 만지거나 접촉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기에 ‘눈으로만’ 감상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런데 갤러리 내의 전시품을 실외의 공공미술품 마냥 직접 만져보며 촉감이나 질감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 작품에 대한 감상의 폭과 깊이가 한결 커질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장벽 없는 전시개념인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프로그램은 손끝으로 미술작품을 보고 상상하며 해석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시각장애인도 얼마든지 촉감으로 작품을 인지, 감상하며 즐길 수 있는 사려깊은 ‘촉각전시’인 셈이다.최근 지방에서는 보기 드물게 ‘배리어 프리 전시회’가 포스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어서 일반인은 물론 특히, 시각예술에서 소외된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포스코의 고해상도 프린팅 원천기술인 ‘포스아트 기술’을 활용해 친환경 철강재 위에 ‘풍속도’‘세한도’ 등 조선시대의 명화를 적층인쇄기법으로 재현한 작품 83점을 6월 중순까지 선보이고 있다. 그와 연계해 지난 주에는 ‘포스아트’의 기술로 평면이지만 입체적으로 구현된 옛 그림의 원본 이미지를 유홍준 전문화재청장의 ‘옛 그림을 보는 눈’ 주제의 초청특강이 성황리에 열렸고, 생소한 전시회 관람을 희망하는 도내 22개 지역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전문 도슨트의 그림 설명과 함께 손길을 통한 관람의 편의와 안전하고 유익한 작품감상이 되도록 세심히 배려, 지원하고 있다. 기업시민 포스코의 두드러진 기업메세나 활동이 아닐 수 없다.아직은 전시분야에서 배리어 프리의 장벽이 높다 하지만, 작은 생각과 배려들이 일상 속에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면, 예술작품을 누구나 모두가 똑같이 감상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은 사회적인 역할과 혜안이 아닐까?

2023-05-23

서울 톺아보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5월의 신록이 싱그럽기만 하다. 몇 차례의 꽃이 피고 지더니 산과 들로는 온통 초록으로 가득하다. 푸르디푸른 초목의 향연에 희끗희끗 꽃들이 꿈결처럼 피어나 푸른달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입하목(立夏木)이라고도 불리우는 이팝나무 잎새 위로 흰눈이 내려앉듯 이밥같은 꽃이 피고, 군데군데 아카시아 흰꽃이 바람에 날리며 상큼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그렇게 차창 밖으로 어리는 초여름의 풍경을 접하며 길을 나선 곳은 서울이었다.일전에 어떤 문인과 나눈 대화 마냥 새삼 ‘촌스럽게(?) 무슨 서울 구경’하러 애써 상경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발길 닿는 대로 주마간산격으로 단순하게 훑어보고자 함은 결코 아니었으리라. 우리의 뿌리 깊은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애환과 부침의 현장을 답사하며 격변의 시대상을 가늠해 보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국민 품으로 돌아온지 1년을 맞은 청와대를 탐방하는 것도 내심 기대되기도 했었다.조선왕조 500여 년의 역사가 점철된 경복궁(景福宮)은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개국 4년째인 태조 4년(1395년)에 세운 으뜸 궁궐이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경복궁을 1867년(고종 4년)에 중건하면서 조선왕실의 전통과 현실을 조화시켜 부분적인 변화를 가미했고,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총독부를 철거 후 흥례문과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시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회복 중에 있다. 또한 광화문 남쪽으로 나랏일을 맡아서 처리하던 중앙관청인 육조거리의 윤곽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과정에서 드러남에 따라 발굴된 관청 터 일부를 그대로 노출시켜 전시하고, 해치마당 조성과 미디어월을 설치하는 등 광화문 일대의 역사성과 광장 연계 활성화 측면에서의 의미있는 개선사업을 대대적으로 마치기도 했었다.그리고 74년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온전히 국민의 공간이 된 청와대는, 광화문에서부터 북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에서 때로는 느긋하게 산책하거나 휴식하고 때로는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역사적인 청와대 개방을 기념하고 새시대를 여는 희망과 기쁨을 함께할 다양한 공연과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테마별로 곁들여져 한결 흥미와 관심을 더해 준다. 역사 속에서 문화를 살리고 볼거리와 느낄 거리로 감흥을 줄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문화역사관광의 인프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한옥과 골목길, 문화와 예술이 만나고 삶이 어우러지는 세종마을과 북촌한옥마을은 경복궁을 사이에 두고 조선시대 중인과 일반 서민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근현대에는 문화예술의 혼이 이어진 곳이기도 하다. 도심 속에서 고즈넉한 한옥체험을 할 수 있고 전통시장, 소규모 갤러리, 공방 등이 자리잡은 곳에서의 하룻밤은 그야말로 꿈결 같은 시간이리라.‘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사랑스럽’듯이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색적인 명소가 많다.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모처럼만의 서울 톺아보기는 부담없이 유쾌한 행복여정이었다.

2023-05-16

선물 같은 하루, 축제 같은 나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지난 주 연휴 내내 휘몰아친 비바람으로 크고 작은 피해가 속출했다. 강풍으로 가로수가 뿌리째 뽑히면서 지나가던 승용차를 덮쳤고, 축대가 무너져 집이 붕괴되거나 도로가 유실되는 등 남부지역에 집중된 예기치 못한 풍수해로 시름이 깊어졌다. 입하의 문턱에 쏟아진 단비가 해갈에는 도움이 됐다지만, 순식간에 돌풍과 함께 들이닥친 폭우가 적잖은 상흔을 남긴 ‘눈물비’가 돼버린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듯 ‘밤새 안녕’이 무색하리만치 변덕스런 날씨나 불의의 사고 등으로 하루를 무탈하고 온전하게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하루하루 살얼음판 걷듯이 조바심 태우며 보냈던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세계보건기구(WHO)가 3년 4개월만에 해제했다. 그에 맞춰 국내의 일상회복도 단계적으로 진행되어 국민들의 삶과 일상이 코로나 이전처럼 조금씩 꺼리낌없이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의 집요한 발목잡기에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정말 얼마나 위태하고 소중한지 절실히 느낀 나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제약되고 억눌린 상황에서의 생활은 무엇 하나 아쉽고 간절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랴만, 일단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수칙이 완화되고 있으니 사람들은 너나 없이 안도하며 반기는 모습들이다.그래서일까? 봄을 즐기려는 상춘객들이 부쩍 늘어나고 나들이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많아지고 있다. 또한 대부분 4년만에 열리는 축제나 체육대회 따위의 야외행사가 봇물 터지듯 열렸거나 열리고 있어서 실로 전국 곳곳에는 모처럼만에 활기를 띠고 생동감이 감돌고 있다. 경북만 하더라도 문경찻사발축제가 흥행 ‘대박’으로 마무리됐고, ‘신바람난 선비의 화려한 외출’을 테마로 한 영주한국선비문화축제나 안동민속축제를 봄축제로 확대 개편한 차전장군 노국공주축제 등이 성황리에 열렸는가 하면, 이 달 말경엔 전국 3대 불꽃축제인 포항국제불빛축제가 환상적인 불빛 판타지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지역별 특색이나 역사적인 배경에 걸맞는 테마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하듯이 신명나는 축제나 행사로 이어지니, 즐기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그러고 보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여유와 완상(玩賞)이던가. 당연할 것 같은 일상의 움직임이나 현상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대처가 어렵고 걸림돌이 생긴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하루를 평온하게 보낸다는 것이 무심코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필자는 불의의 춘사(椿事)로 열흘 정도 병원 신세를 지고 나니 새삼 선물 같은 하루가 그리 고맙고 소중할 수가 없었다. 무덤덤하고 예사스러운 일상 같지만, 일단 무엇인가에 얽매이거나 불편이 뒤따르게 된다면 평범한 일상이 그리 간절해질 수가 없을 것이다.황사 같은 코로나의 시름도 남풍 결에 사라져가는 봄날, 선물 같은 하루하루가 자신의 평안함 속에서 삶의 맛과 멋을 더하는 축제 같은 나날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상을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즐겨보자!

2023-05-09

한시(漢詩)의 매력, 시낭송의 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연록의 기지개를 켜던 잎새들이 푸른달 5월이 되면서 연신 초록으로 물들고 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산자락이나 청보리 물결 일렁이는 들판엔 온통 푸르름으로 짙어가며 초록의 서사시를 쓰고 있는 듯하다. 종다리도 높이 떠 온종일 지저귀며 봄날을 노래하고, 흐르는 시냇물의 속삭임이나 수양버들 긴머리의 하늘거림도 어쩌면 저마다 봄날을 구가하는 초록 시편이 아닐까싶다. 그에 어울리듯 낭랑한 음색으로 시를 읊고 대금의 연주 속에 시창(詩唱)을 하며 봄날의 흥취를 한껏 누린 시낭송 마당이 간간이 흩뿌리는 빗소리와 함께 낭만과 운치를 더했다.잎새달 4월의 끝자락에 포항시낭송회가 마련한 여덟 번째 ‘시(詩)가 흐르는 뜨락(시뜨락)’은 이색적으로 열렸다. 한시(漢詩)와 자유시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음풍농월과 생활한시를 창작하며 삶과 세상을 관조하는 한시인(漢詩人)을 초대해 한시 이야기를 나누고, 한시와 한역시, 자유시 등을 낭송하며 시창으로도 부른 다양한 시 나눔 마당을 펼친 것이다.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하고 어려운 한시를 쉽고 친근하게 각색하여 흥미와 감동을 더한 시낭송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낸 것이다. 한시가 이토록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함께 누릴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래(古來)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지어지고 한글 창제 이후로도 조정이나 민간에서 두루 창작, 통용되었던 한시는 한국시가에서 뗄 수 없는 뿌리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다. 한시는 근체시(近體詩)는 물론 고체시(古體詩)라 하더라도 정형시(定型詩)에 가깝지만, 형식의 묵수(默守)가 아니라 엄격한 정형률이 요구되는 율격과 함축성으로 인하여 자유시에서 구현된 ‘자유’를 정형적인 틀 안에 충분히 들일 수 있을 정도로 탄력이 있다고 본다. 한시의 묘미는 바로 이런 데 있다고 본다.그러한 한시를 자유시처럼 능숙하게 구사하고, 또 한국 현대시를 율격에 맞게 한시로 옮긴다는 것은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시의 글로벌화를 위해서는 좋은 시가 영시(英詩)로 옮겨지듯이 한역시(漢譯詩)로도 출판된다면, 한자를 아는 세계인이라면 누구나 우리나라의 주옥같은 시를 접하고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도 보인다. 그만큼 학문의 영역은 두루 통하고 우리 시와 한시의 외연을 넓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초록빛 담쟁이에 빗방울이 어리고 알록달록 우산 속에서 목소리가 피어나는 뜨락에서의 시낭송은 그야말로 한폭의 수채화같은 풍경이었다. 거기에 봄날과 어울리는 동요 메들리 아코디언 연주와 그윽한 곡조를 타고 흐르는 대금 가락은 시와 음악의 경계가 없는 절묘한 하모니로 여울지는 듯했다.강호는 넓고 좋은 시는 많다(江湖廣大好詩多)고 언급한 초대시인의 말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시는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이 아닐까 싶다. 아무쪼륵 시뜨락 같은 시 나눔 문화행사가 활성화되어 현실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시와 낭송이 따스한 위로와 치유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2023-05-02

포항 수도산을 거닐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모처럼의 여유로운 휴일 아침,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길숲을 따라 걸었다. 폐선된 철도부지에 도시숲을 조성하던 중 분출된 천연가스에 불이 붙어 ‘불의 정원’이 된 불꽃은 6년째 계속 타오르고 있고, 양학동으로 이어지는 비탈진 주말농장 터에는 시민들의 문화·전시·휴양을 만끽할 수 있는 ‘포항철길숲 시민광장’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줄곧 자전거로만 달리던 철길숲을 한가로이 걸으니 이것저것 보이는 것도 많고, 주변의 상가나 식당 등 달라진 곳도 더러 보인다. 그렇게 한시간여 걸어서 이른 곳은 포항시 북구 덕수·우창·중앙·용흥동 일부지역에 위치한 덕수공원이다.수도산 자락에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6·25전몰군경 충혼탑과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모갈거사(茅葛居士) 순절 사적비 등 호국·보훈시설과 충절·공덕비가 있는 덕수공원은, 관음사 등 3개의 사찰과 포항시 당산(祠堂)을 비롯, 호국감사둘레길·운동시설 등이 조성돼 철길숲과 연결되는 시민들의 행락, 휴식처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78m의 낮은 구릉같이 보이는 수도산을 처음에는 백산(白山)·서산(西山)·모갈산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시대인 1923~1926년에 걸쳐 산마루에 완공된 저수조(貯水槽) 등의 상수도 시설로 인해 현재는 수도산(水道山)이라 불리우고 있다.40년 이상 포항지역에 살면서 차를 타고 서산터널을 통행하거나 수도산 주변을 수없이 지나치면서도 덕수공원과 수도산을 제대로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긴,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급행열차 같은 일상의 틈바구니에 놓치고 챙기지 못한 일들이 어디 산책이나 산행뿐이랴. 가끔씩 여유롭게 주변을 찾아 문화재나 유적지를 답사하며 자연을 벗삼다 보면, 보이고 느껴지는 것들이 한결 새롭게 깊은 울림으로 스며들텐데 말이다. 그래서 떠남과 스밈은 고금동서와 만나 사유하고 교감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수도산의 중턱쯤에는 회백색의 콘크리트 육각형 구조물로 일제시대의 건물양식을 띤 돔 형태의 뾰족한 지붕으로 마감된 당시의 배수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10여㎞ 정도 떨어진 도음산 학천계곡에서 물을 끌어와 고지대의 상수도 시설에 물을 채운 후 당시 중앙동, 덕수동 일대 300여 가구에 급수를 해줬다 하며, 물의 덕은 커서 그 지경이 없다는 뜻의 ‘수덕무강(水德无疆)’ 글씨가 건물에 새겨져 있지만 글씨를 쓴 사람의 이름자는 훼손된 상태다.초록의 향연이 굽이치고 있는 수도산 일대는 도심 속의 쉼터 같이 아늑하게 다가왔다. 그다지 높지도, 힘겹지도 않은 둘레길을 따라 걸으니 군데군데 아파트 숲과 주택가가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멀리 영일만의 푸른 바다와 포스코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문화적인 유적이 있고 전망 좋은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니, 공원에서 느껴지는 호젓함보다는 테마가 주는 정겨움으로 위안과 안도감을 주는 편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몇일 간 심했던 미세먼지가 사라지니 개운하기만 하다. 어쩌면 ‘수도산’ 같은 명칭의 일제 잔재가 미세먼지 마냥 찜찜하게 여겨짐은 필자만의 과민일까, 기우일까?

2023-04-25

‘감사의 날’ 선포식장에서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비가 잦아든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될 무렵이면 하늘에서도 ‘때를 알아 좋은 비를 내리고(好雨知時節), 가는 비로 살며시 만물을 윤택하게 하니(潤物細無聲)’ 시의적절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 무렵의 비는 한 해의 풍년을 가늠하기도 하기에 단비(甘雨) 또는 희우(喜雨)라고도 한다. 이처럼 때맞춰 오는 좋은 비는 반가운 손님 마냥 기쁘고 반가우며 감사하기만 할 것이다.좋은 시절을 알고 때맞춰 내리는 비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의 마음을 들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표현하는 시가 이러할진데, 사람사는 세상에는 고맙고 감사한 일들이 얼마나 숱하고 즐비할까?“이 세상 무엇 하나/고맙지 않은 일이 있으랴//태어나고 자라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며 사랑하며/숨쉬고 먹고 자고 입고 마시고 즐기고 느끼며/웃고 울고 기쁘고 슬프고 밝고 맑고 곱고 즐겁고 반갑고 멋지고/보고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알고 배우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상상하며/일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고 인내하고 성취하고 감동하고 만끽하고/은혜를 알고 표현을 하고 보답을 하고 마음에 되새기며/관심의 문을 열고 긍정이 물결치고 이해의 배를 타고 배려가 넘실대며/사랑이 샘솟는 온 누리 순간순간 감사의 빛살….//감사는 마음 따뜻한 선물/눈물겨운 행복이어라”-拙시조 ‘감사’ 전문(2012)어쩌면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감사하고, 일생을 감사하게 마무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감사의 울림은 끊임없이 메아리 치고, 고마움의 나눔은 햇살처럼 비춰 들기 때문이다. 매순간 숨쉬며 건강하게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만나서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며 베풀고 나눌 수 있음이 고맙지 않을까? 큰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작은 감사에서 비롯되며, 감사하는 습관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감사는 은혜를 아는 자의 마음의 열매이며, 감사한만큼 삶이 여유롭고 따뜻해질 것이다.감사로 국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여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한 ‘감사의 날’ 선포식이 최근 포항에서 개최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0년 전 범시민운동으로 다양하게 추진된 ‘감사운동’이 대한민국 1호 ‘인성도시’로 인정받은 감사의 메카 포항에서, 전국 최초로 민간 주도의 감사운동이 재시작된 것이다. (사)대한민국감사국민위원회는 5천만 국민의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우기 위해 매월 5일 오(5)!감사 엽서쓰기 등 전국민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여,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국정목표로 출범한 현 정부와 함께 감사와 배려, 긍정과 나눔의 사회문화 정착으로 전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여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에 따라 포항시산림조합, 포항교육지원청 등 130여 곳의 기관 단체들과 감사나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포항시감사운동본부를 창립하는 등 감사운동이 전국적으로 재점화해 감사와 존중이 넘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랬다.마음 따뜻한 감사, 향기나는 꽃길 같고 빛나는 보석 같은 감사문화의 확산으로 모두가 행복해지길 빌어본다.

2023-04-18

도서관의 새로운 변신, 미래창고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하늘이 점차 맑아지고 만물이 생기를 더해가는 청명(淸明) 즈음은 독서와 공부하기에 좋은 때다. 꽃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연초록 잎새 소리 들으며 글을 쓰게 된다면? 당나라 문호 한유는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 불어오는(新凉入郊墟)/가을 무렵에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燈火稍可親)/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簡編可舒卷)’고 읊었지만, 서늘함이 어찌 가을뿐이랴. 날씨와 계절의 변화는 그만큼 사람의 감성을 움직일 수도 있기에, 비교적 평온하고도 청량한 때에 맞춰 책과 글을 가까이하고 독서를 권장하기도 한다.그래서일까? 정부는 올해부터 관계법령에 따라 ‘도서관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 오늘 4월 12일이 바로 제1회 ‘도서관의 날’이다. 1964년부터 시작된 도서관 주간은 독서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지역주민들의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4월 12~18일을 지정, 운영해서 올해로 59회째를 맞고 있다. 도서관이 국민의 정보기본권 신장과 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지식문화 선진국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기반시설 중의 하나임을 인식하자는 것이 도서관법의 기본이념이다. 또한 도서관의 가치가 사회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그 역할을 다하며,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과 이용을 위해 도서관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보장한다는 내용 등이다.지식과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한 도서관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료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공공장소이며, 제대로 된 정보와 자료의 제공으로 이용률을 극대화하도록 봉사하는 시설이다. 또한 개인단위로 운영하여 자료를 공유하는 ‘작은 도서관’ 사업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큰 도서관은, 공유경제의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서관의 기능을 별도의 건물이나 특정영역이 아니라, 업무적인 공간에서 자유로이 이용하며 지식을 공유하고 토론·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 생겨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작년말에 개관된 경상북도 도청 안민관 1층 로비에 도민의 책 쉼터이자 지식공유 공간인 ‘미래창고’ 도서관이 그곳이다.‘미래창고’는 ‘도정 현안에 대한 해답과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식이 축적된 저장소’라는 의미의 명칭 공모를 통해 선정된 도서관으로, 본관 로비에 있던 구 당직실을 헐고 그곳에 독서 쉼터를 만든 전국최초의 사례이다. 일반도서 2만여 권과 다양한 이용자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세대별 추천도서, 노벨문학상 수상도서 등의 북큐레이션과 무료 도서나눔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도내의 향토문인 전용 북코너를 도서관 입구에 개설, 책자를 비치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 중의 하나인 도서관은 ‘무료로 다니는 대학’이자 언제나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다. 오늘부터 1주일 동안의 ‘도서관 주간’에 서울 도담도담 한옥도서관이나 인천 누리공원작은도서관, 청주 생태자연도서관 등 특색있고 이색적인 가까운 동네 도서관에서 책과 만나는 소중한 기쁨을 누려보면 어떨까?

2023-04-11

다시, 나무심기를…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대지의 기운이 왕성해지는 4월이다. 이상고온현상으로 개화시기가 빨라져서 일찍 꽃이 진 자리마다 잎새들이 일제히 돋아나며 생명의 등불을 켜고 있다. 나무에 물이 오르면서 꽃이 피거나 잎사귀가 앞다투어 드리워지니, 산과 들은 나날이 연둣빛과 초록빛의 융단을 펼쳐 가는 듯하다. 낭창한 나뭇가지마다 앙증스럽게 움이 트고 잎차례가 연이어 벌어져서 그야말로 4월은 연초록의 잔치가 열리는 잎새달이기도 하다.바람이 불 때마다 여린 잎새들은 저마다 손을 흔들어 살랑거리면서 많은 얘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햇살이 스며들고 바람이 스쳐가며 별빛이 내려앉는 잎새들은 저마다 나무의 일원으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차분하면서도 잔잔하게 나부끼거나 보채기도 할 것이다. 새들의 놀이터가 되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가는 구름도 쉬어 가게 하는가 하면, 빗물을 받아들이고 신선한 공기를 머금으면서 점차 하늘빛을 닮아 가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나무의 둥치가 커지고 가지를 튼실하게 하는데 한 잎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무는 온갖 사연을 품고 다독이며 거목으로 우뚝할 수 있는 것이리라.잎새의 온갖 사연이 켜켜이 나이테마다 스며든, 나무로 만든 책이기에 책장마다 나무의 결이 느껴지고 나무냄새가 나는 걸까? 그래서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일까? 사계절의 변화무쌍함과 누세월의 응축된 풍진이 쟁여져 나무의 무게감과 책의 웅숭깊음이 배어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무와 책은 예나 지금이나 경외스럽고 위중(威重)한지도 모를 일이다.“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그 나무 때문이다” -맹문재 시 ‘책이 무거운 이유’ 중아련한 초·중등시절, 식목일에 등교하거나 또는 마을단위의 부락에서 나무심기를 의무적으로 실시했는가 하면, 봄에 심은 나무에 비료를 주거나 가지치기, 잡목솎아내기 등으로 나무가꾸기 분위기를 조성한 ‘육림(育林)의 날’도 있었다. 국민 식수와 산림녹화를 위한 인식을 높이고 산림사업의 중요성을 부각시켜 국민운동처럼 일어나 나무를 가까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예전에 딸이 태어나면 시집보낼 밑천으로 장롱을 만들기 위해 집 주위에 오동나무를 심었을 정도로 나무는 유익함이 많았다. 필자는 꼭히 그런 심산은 아니었지만, 30여년 전 딸 아이 태어난 기념으로 고향집 언덕에 ‘동갑내기 자두나무’를 심어 자식을 나무처럼 키운다며 한동안 주위에 회자되기도 했었다.그러나 식목일인 오늘, 격세지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소회일까? 나무심기는 고사하고 식목일 무렵에 전국적으로 발생되는 크고 작은 산불로 인해 애써 심고 가꿔놓은 산림이 훼손되고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으랴. 나무가 사라짐은 책장이 찢기는 것과 진배없다. 숲과 나무에서 들리고 보이는 이야기와 평온함이 책으로 고스란히 담겨서 모두에게 울림과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2023-04-04

영웅을 기리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벌써 몇 차례의 꽃이 피고지면서 3월이 저물어 가고 있다. 새봄과 함께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출발을 하게 되는 3월은 언제나 설레고 희망차다.지천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의 자태에 마음이 쏠리기도 하지만, 유난히 많은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되는 3월이기도 하다. 삼일절을 비롯 3·8민주의거, 3·15민주의거기념일, 서해수호의 날 등과 함께 필자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인 3월 26일을 짐짓 기억하며 경건한 마음을 되뇌어본다.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 순국 113주기를 맞은 올해 3월에 본 영화 ‘영웅’은 벅찬 감동과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영웅’은 1909년 10월 26일, 민족의 원흉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처단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 준비에서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를 담은 오리지널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촬영 이후 거의 3년만인 작년 말에 개봉한 영화로 뮤지컬로도 동시 개막하여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나라를 위해 싸웠다면 과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영웅일까? 냉혹하고 암울한 시대에 단지동맹(斷指同盟)까지 하며 혈서를 쓰고, 조국의 독립과 동양 평화의 유지에 힘쓰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결의, 숨막힐 듯 긴장되고 급박한 상황을 드라마틱한 연기와 완급의 뮤지컬로 풀어내며 박진감과 호소력을 더한 보기 드문 걸작이 아닐 수 없었다. 일정 부분의 연출과 각색을 곁들였지만,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의 숨겨진 이야기가 원작 뮤지컬 영화 출연진의 열연과 음악, 노랫말의 힘으로 되살아나, 영화의 웅장한 스케일과 뮤지컬의 깊은 울림으로 절절한 감동과 자긍심을 선사했던 것 같다.오로지 구국의 일념,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으로 군인의 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을 다한 안중근 의사의 잊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풀고 바로잡아야 할 과제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순국 직후 일제가 자행한 안 의사 주검의 비밀스러운 은닉으로 현재까지도 유해를 찾지 못해 안 의사는 그토록 원하던 독립된 조국의 품에 잠들지 못하고 있으며, 여순 옥중에서 집필하다가 만 미완성의 동양평화론 원본이나 이등박문의 저격장면을 담은 원본필름 등을 찾으려 백방으로 노력해도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다. 사형집행이 예정된 날에도 담담하게 휘호를 하며 안중근 의사를 경외한 일본 간수에게까지 유묵을 전하는 등 현재 70여 점 남아 있는 묵적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치와 의미부여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리라고 본다.정의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안중근 의사가 1909년 하얼빈에서 총성을 울린 지 딱 다섯달만에 평화와 독립을 부르짖으며 가장 치열하게 빛나는 서른 한 살의 생을 마감했다. 생명을 바쳐 독립운동을 실천한 애국자요 한국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민족의 영웅이자 살신성인의 애국선열을 길이 기리며 기억해야 하리라.

2023-03-28

결핍의 시간을 지나며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춘분에 즈음해서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온갖 꽃들이 앞서거니뒤서거니 울긋불긋 피어나고 새들은 나무를 새장 삼아 정답게 지저귀는가 하면, 부드러운 바람 결에 실버들은 연둣빛 머리채를 하늘하늘 풀어헤치고 있다. 메마른 땅에 어김없이 생동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야말로 만화방창(萬化方暢)한 나날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의 정취와 향기를 이제는 마스크 없이도 느낄 수 있다니, 실로 얼마만에 누려보는 봄날의 환희이던가.불과 4년 전의 겨울에 들이닥친 코로나19는 얼마나 위협적으로 지구촌을 옥죄여 왔던가. 조마조마한 가운데 초기의 확진자는 무슨 죄인(?)이라도 된 양 멸시와 냉대 속에 적개심마저 불러 일으키게 했고, 언제 걷힐지 모를 암울의 장막같은 불안과 침체의 늪에 허우적거리며 공포와 조바심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그러나 언 땅에도 봄이 찾아들듯이, 끝이 보이지 않던 괴질의 아귀도 이제는 한 때의 고질(痼疾)로 여길 수밖에 없을 듯하다.올해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율의 확연한 감소세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벗어난 듯해 사뭇 서로가 따뜻한 위로와 공감으로 다독이고 챙기며, 병은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재삼 되새기게 된다.어쨌든 코로나 이후 세번째의 봄날이 왔고, 좀 늦긴 했지만 감염병의 소멸추세에 사람들은 조금씩 안도와 평온의 일상을 되찾아가는 듯하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꿈결 같고 한 순간 같다지만, 희대의 코로나19는 혹독한 시련과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온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팬데믹과 네트워크상의 소통, 공유 증가로 우리는 점점 직접 마주하는 기회가 줄어드는 비대면 문화와 일방적인 대화, 표현에 익숙해지는 듯하다. 그것은 어쩌면 건조한 듯 단순해 보이고, 당연한 듯 무관심에 주눅들어가는 개인화와 비정(非情)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모종의 딜레마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싶다.‘春日短/幷且去/吾君邪/頻相處(봄날은 짧다/그리고 간다/우리 그대여/자주 만나자)’- 강성위 한시 단가(短歌) 致君(그대에게) 전문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지구는 한 개의 점이나 티끌에 지나지 않고, 한철이나 한 시대는 유구한 세월 속의 창해일속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만큼 길거나 크게 보면 현재와 맞닥뜨리는 일련의 현상은 한때의 미약한 움직임이고 아주 소소한 변화나 진배없을 것이다. 그에 비춰 보면 지겹기만 했었던 악몽 같은 코로나의 엄습도 ‘한때의 신음’ 정도가 되지 않을 듯싶다.3년만에 봄다운 봄을 푸근하게 맞이할 수 있음은 그만큼 억눌리고 발목 잡힌 누림의 결핍이 컸었기 때문일 것이다. 묵묵히 참으며 오랜 기다림이 있었기에 새롭게 맞이하는 봄날이 한결 따사로운지도 모른다. 짧기만한 봄날이지만 마음껏 즐기고 누리면서 분출되는 욕구를 구가하는 것도 괜찮을 일이다. 뜸해졌던 만남의 물꼬를 흔쾌히 트며 피어나는 봄꽃 마냥 환한 웃음꽃을 피워보자.

2023-03-21

의미 있는 삶의 방향, 종오소호(從吾所好)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가지마다 망울이 맺히고 조금씩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화창해진 날씨에 차츰 개화의 몸짓을 보이며 봄날이 성큼 다가온 듯하지만, 느닷없이 휘몰아친 비바람과 추위에 서둘러 핀 꽃들이 화들짝 놀라지는 않았을까 싶다. 궁핍의 대지를 보듬으며 돋아나는 새싹과 피어나는 꽃들을 시샘하는 추위가 일진광풍처럼 부산을 떨어도, 이미 봄빛의 움직임은 비단 안개를 두른 듯 아장아장 생동의 걸음마가 한창이다. 그렇게 다시 또 봄날이 시작되고 산과 들은 부풀어가고 있다.해마다 봄이면 그 자리에 새순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메마른 땅 속에서 자양분을 찾으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창조의 일손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해마다 꽃들은 서로 비슷하게 핀다(年年歲歲花相似)지만, 기실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게 꽃과 잎새를 드리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꽃자리나 잎차례를 벌이는 것은 화초나 수목에게 있어선 생장의 본질이고 절정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매년 같은 꽃이 피는 것에 비해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다(歲歲年年人不同)는 대구(對句)로 인생의 무상함을 읊었지만, 필자의 관점에서는 인연 따라 시류 따라 사람은 변화하며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본다.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듯이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특장을 꽃피우게 하고 삶의 기반을 더욱 튼실히 일궈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이렇듯이 화초가 꽃을 피우는 현상이나 사람이 변화, 혁신하는 것은 자신의 본질과 궁극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보다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믿음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거개가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바대로 움직이고 일을 해야 편하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결코 그만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일을 하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바를 쫓아간다(從吾所好)’고 공자는 2천500여 년 전에 설파했던 것일까?그러고 보니 15년 전 필자의 첫 개인전 도록의 첫 장에 수록된 작품이 예서로 쓴 종오소호였다. 아마도 당시의 야무진(?) 마음에서 내가 좋아하고 하고싶은 바를 꾸준히 느끼고 즐기면서 몰입과 천착하리라는 다짐에서 쓰고 배치했던 것 같은데, 과연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 바를 쫓고 누리며 의미를 다져왔는지는 미지수이다. 다기(多岐)한 삶을 살면서 어찌 좋아하는 것만 쫓고 추구할 수 있으랴만, 생각과 마음이 이르고 몸이 흔쾌히 따르는 일과 활동을 하는 것은 분명 긴요하고 가치로운 시도이다.

2023-03-14

봄 마중 춤사위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날의 서막이 펼쳐지고 있다. 황량하던 무채색의 대지엔 매화와 산수유 꽃망울이 봄의 길목을 단장하고, 양지 바른 둔덕엔 가녀린 새싹들이 음표마냥 돋아나며 때 이른봄을 알리고 있다. 슬그머니 꼬리 감추며 멀어져가는 겨울의 뒷자락으로 피어나는 아지랑이의 아른거림 속에 인동(忍冬)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내온 만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며 생동의 봄 채비를 하는 듯하다.약동하는 봄날은 색깔과 움직임으로부터 온다. 봄의 초입에 피어나는 복수초나 산수유는 노란 몸짓을 일찌감치 내세우는가 하면, 앙상하던 가지에 희거나 붉은 매화꽃이 등(燈)처럼 달리기도 한다. 또한 가볍게 불어오는 남풍 결에 겨울잠을 자던 벌레가 꿈틀거리고,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듯 개구리가 깨어나 땅 위로 나온다는 경칩을 즈음해 온갖 생물들은 스프링(Spring)같이 조금씩 톡톡 튀는 생장의 기운을 받기도 한다.‘줄기차게/뿜어대는 해의 입김/굿거리장단에//파아란 춤사위판/땅김의 너름새로//수액을/두레박질하는/간지러운 마파람’ -拙시조 ‘춘신(春信)’ 중(1995)자연만이 봄을 맞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생동과 리듬에 맞추기라도 하듯이 지난 2일 포항시청 대잠홀에서는 봄 마중 같이 설레고 활달한 춤자리가 의미있게 열렸다. 경북도 지정 전문예술단체 전통연희컴퍼니 예심과 포항향토무형유산원이 전통춤의 명인 스승과 제자, 문하생이 3대를 잇는 춤사위로 활기찬 봄을 알리는 ‘2023 춤, 세대를 잇다’의 정기 발표회가 신명나고 멋스럽게 펼쳐진 것이다. 수준 높은 전통춤으로 지역 간의 문화교류와 전통문화의 계승을 알리고, 당대 최고의 세 명무가 직접 무대에서 ‘태평무’ ‘손소고춤’ ‘버꾸춤’ 등의 춤판을 벌이는, 그야말로 시대를 넘나들며 세대를 아우르는 장단과 추임으로 깊은 울림과 몸짓의 숨결을 고스란히 전하는 귀하고 보기 드문 공연이 아닐 수 없었다.가녀린 듯 거침없이 가락을 타는 나비의 분방한 나풀거림 같고, 뻗었다가 휘감듯 접으며 휘영청 두드림 결에 유유히 날갯짓하는 학의 비상 같은 춤사위는, 과연 율려(律呂)의 응축과 침잠, 분출과 절제의 미학 같은 그윽하고 유장한 몸짓 언어로 다가왔다. 어쩌면 격정의 소용돌이 같고 바람 속의 회오리 같이 날렵하고 교태있는 몸동작 하나하나에 몰입하고 경탄하는 내내 심금이 울려지고 액운은 얼씬조차 못했으리라.생명의 춤판이 벌어지는 봄날은 모두 부지런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운과 움직임이 있어야 새싹이 돋고 물이 오르듯이, 아름다운 움직임은 춤의 본질이자 궁극적인 예술이다. 가무(歌舞)의 민족은 흥이 일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덩실덩실 팔 다리가 움직이기 마련이다. 이른봄 마중하듯이 신바람 나게 펼쳐진 전통춤의 무대는, 변화무쌍한 율동성이 생명인 ‘춤’이 역동성을 강조해서 쓴 붓글씨 서체의 생동감과 어우러져 한결 묘미를 더했다. 대지 위에서 솟구치는 생명의 잔치를 추임새 삼아 저마다의 삶을 춤추듯이 살아보면 어떨까?

2023-03-07

날씨같이 변덕스러운 마음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봄이 오는 길목은 순탄치가 않다. 뒷걸음 치는 겨울이 시샘하며 찬 입김을 내뿜거나 비바람으로 여세를 몰아보려 하지만, 봄물 불어나는 우수 지난 절기는 이미 메마른 겨울의 진영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어쩌면 체념하고 떠나는 겨울의 아쉬움 같은 봄눈이 지난 주에 새벽같이 살짝 내려 눈이 귀한 포항지역에서는 잠시나마 설레임이(?) 쌓이기도 했었다. 계절의 특성에 따라 날씨는 이렇게 을씨년스럽다가도 금세 반갑고 포근함으로 다가오며 시시각각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불규칙적인 날씨나 자연환경에 따라 사람도 간혹 영향을 받게 된다. 예컨대 비오거나 안개 낀 날에 사람들의 우울감과 갑갑함은 더 많이 느껴지게 되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파도를 닮아 성질이 거칠어지게 된다는 말들이 빈말이 아니게 들린다. 그만큼 날씨와 환경은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일상 속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날씨가 변하면 사람들의 움직임이 달라지게 되고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져 계절이 바뀌게 되듯이, 사람도 겹겹의 일상 속에서 세월의 풍파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가기도 한다.세상만물의 변화와 혁신은 성장과 존속의 중요한 변곡점이듯이, 사람에게도 체질적인 성장과 심성적인 변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듯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경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십년을 지나더라도 한결같이 믿음과 의리를 지키는 듬직하고 넉넉한 큰바위 같은 사람이 있다. 창조적인 개선과 혁신을 위한 변화는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인성적인 가치와 도의적인 신념은 쉽사리 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변화하되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고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혜롭지 않을까 싶다.그러나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水深可知 人心難知)는 말처럼, 사람의 속마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시쳇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비일비재하다. 멀쩡하게 어울리며 흠 없이 잘 지내다가도 하루 아침에 돌변해서 딴 길을 간다거나, 아주 사소한 논점과 견해차로 인해 급기야 결별에 이르게 됨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보아 왔다. 또한 철석같이 믿으며 형제애로 교감하던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배신의 날(刃)을 갈고, 자신의 업신여김은 차치하고 오로지 관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배타적인 앙심을 드러내는 등 상식이나 양심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동상이몽(同床異夢)이니 구밀복검(口蜜腹劍) 같은 성어가 생겨났을까?사람은 어차피 끼리끼리 만나고 어울리며 모여들게 된다. 서로 마음이 맞지 않거나 뜻이 통하지 않게 되면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듯이 한 배를 타고 갈 수가 없을 것이다. 하루에 사계절이 다 들어있다는 변덕스러운 영국날씨만큼이나 예측 불가하고 표리부동한 사람은 결코 어디에서나 동화하고 동행하지 못할 것이다.

2023-02-21

1표 차이의 의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추위가 누그러진 탓일까? 간간이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비가 멎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달갑잖은 미세먼지가 나타난다. 코로나의 지겨움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하지만, 물가상승과 경기불황, 정국 경색이 미세먼지마냥 희끄무레 감돌면서 칙칙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나날이다. 거기에 안개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지난 주말 안동으로 가는 길은 안개 속의 유영같았다. 흐릿한 날씨에 엷거나 짙은 안개가 사방을 감싸고, 차창 밖으로 다가오는 원근의 풍경은 늦겨울의 수묵화마냥 담담하게 펼쳐졌다. 안동지역에 있는 두 개 큰 댐의 영향인지 한낮이 다 돼 가는데도 좀처럼 안개가 가시질 않았다. 하필이면 안개 잦은 지역에서 안개낀 날의 회동 탓인지, 안동에서 열리는 한국문인협회 경북지회 제28대 임원선거를 앞두고 자욱하게 낀 안개는 모종의 암시(?)를 하는 것 같았다. 경북도내 20개 시군지부에서 모여든 400여 명의 문인들이 치열한 이파전의 경선에 뛰어들어 정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그야말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황에 놓인 것 같다고나 할까?경상북도문인협회는 한국문인협회 창립 이듬해인 1962년 2월 지회가 결성, 공식적으로 출범하여 유치환, 김춘수 등 한국문단의 걸출한 문인들이 초창기 지회장을 맡으면서 기반을 다져 올해로 61년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0여 개 시·군지부와 시·시조·수필·소설·평론·희곡 등의 분과위원회를 두어 지역문학의 활성화와 창작활동의 증진으로 경북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한국문단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정기총회에서 선출하는 지회장은 지역ㆍ관록을 고려해 추대하거나 후보자 간의 경선을 통해 공정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임해 왔으며, 이번 제28대 임원선거는 초기부터 팽팽한 접전에 과열양상으로 치달아 역대 최다 회원이 참석할만큼 양 진영의 높은 관심과 뜨거운 의지를 드러냈다.과연 피 말리는 한판 승부였다. 한 표 차이로 희비가 엇갈리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고 입술이 바싹 타들어가는 드라마틱한(?) 선거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검표과정만 5번 반복할 정도의 초접전에 일부 신입회원들의 선거권 미부여에 거친 항의, 투표권에 대한 모호한 정관 조항 등으로 고성이 오가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었다. 지역별 정서나 성향, 장르, 연령, 관점 등이 서로 다른 373명의 회원들을 애써 양분하기도 지난할텐데, 어떻게 극적인 한 표 차이로 갈라놓을 수 있는지 민주주의의 꽃이라 하는 선거의 무서운(?) 힘이 아닐 수 없다.한 표 차이의 신승(辛勝)에서 경북문인협회의 새로운 미래가 보인다. 화갑(華甲)에 접어든 경북문협이 이번 선거에서 보인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의, 변화에 대한 열망은 가히 역대급이다. 경북문학관 건립 추진, 문예발전기금 확충 등 공약과 지상과제가 많겠지만, 한 표 차이의 의미를 되새겨 배려와 포용으로 상대 측을 아우르며 화합과 성숙으로 지속가능한 경북문협의 더 큰 성장과 발전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2023-02-14

포항탈북민 정월대보름잔치와 함께한 봉사의 손길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입춘과 정월대보름이 지나니 날씨가 조금씩 풀리고 차츰 봄날이 다가오는 듯하다. 코로나 유행의 확연한 감소세 속에 맞은 정월대보름이라 몇 년 간 잠잠했었던 세시풍습이 다시 열리고,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한 해의 안녕과 화평을 기원하는 각종 의식이나 행사가 이어져 모처럼 활기를 띠는 모습들이다.신명나는 윷놀이와 널뛰기, 줄다리기 등의 함성이 어디선가 들리고, 액운을 막고 소원을 기원하는 달집태우기와 신성한 동제(洞祭)를 지내는 것 등은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고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 고유의 전통풍습이다.정월대보름 세시풍습에 맞춰 소통과 화합의 또 다른 잔치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포항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출범하는 포항탈북민연합회가 정월대보름잔치와 함께 어우러져 흥겹고 정겹게 열린 것이다. 이날 잔치에서는 탈북민들이 고향에서 즐기던 윷놀이와 제기차기 등을 통해 향수를 달래며 이야기꽃을 피웠고, 풍선 터트리기와 노래자랑으로 폭소와 재미를 유발하며 시종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포항에 거주하는 300여 명의 북한 이탈 주민들은 지난 2017년 포항지진 이후 한 탈북민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낙하물에 사망 후, 이 같은 무연고의 안타까운 처지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역에 탈북민을 위한 단체를 결성해야할 필요성이 수차례 제기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이날 첫 민간단체로 공식 출범하게 된 것이다. 탈북민들의 단합과 유대강화를 위해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한국사회의 적응과 안전한 생활, 순조로운 정착을 도우며, 지역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일자리·교육정보 등 탈북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포항탈북민연합회의 출범 취지이다.이와 같은 포항탈북민들의 의미있는 새 출발과 정월대보름잔치를 성황리에 펼치기 위해 지역의 신망있는 정치인의 적극적인 배려와 후원, 포항향토청년회, 남포항로타리클럽, 포스코 사진봉사단, 포스코 붓글씨봉사단, (사)대한미용사회 포항북구지부, 포항공예전문강사협회 등의 동참으로 대보름잔치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결 다양하고 풍성하게 빛났다.특히 사진봉사단에서는 행사장 한 켠에 촬영세트장을 조성하여 탈북민들의 가족사진을 촬영하고 다양한 포즈의 스냅사진을 찍어 즉석인화 후 현장에서 미니액자에 넣어 선물했다.또한 붓글씨봉사단에서는 입춘서와 새해 소망·가훈 등의 신청 글귀를 붓글씨로 써서 나눠주는가 하면, 서예체험코너에서는 직접 붓글씨를 써볼 수 있도록 하는 등 탈북민들이 잠시나마 행복해 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정성을 다했다.어쩌면 죽음의 사선을 넘어온 탈북민들의 고초와 삶의 애환은 상상 외로 크고 깊을런지도 모른다. 막상 장막을 벗어나긴 했어도 새로운 터에 뿌리내려 건사하기란 만만찮은 일이다. 그럴수록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서로 다독이고 챙기며 위로해서 용기를 북돋워줘야 할 것이다.그러한 측면에서 국내 탈북민을 위한 순수민간 봉사단체로서의 포항탈북민연합회 첫 출범은 시사하는 바가 크며, 향후의 활동방향과 귀추가 주목된다.

2023-02-07

雪白의 겨울산행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눈 덮인 겨울산을 올랐다. 해마다 연초가 되면 높은 산엘 오르면서 한 해의 계획이나 목표를 되새기고, 신령한 산의 정기(精氣)를 받아 뜻한 바들이 순조롭게 이뤄지기를 염원하며 연례적으로 산행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에 발목잡히는 바람에 근 3년째 등산다운 등산을 못하다가, 마침 지난 주말에 수년 전부터 수시로 참여해 왔었던 회사 산악회의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행 계획에 동참하여 실로 오랜만에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눈이 귀한 지역에서 눈구경(?)을 실컷하며 능선을 타는 눈길산행이라 한결 구미가 당겼다고나 할까?등산이 시작되는 만항재는 ‘명품 하늘숲길’답게 울창한 수목 밑으로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등산화끈을 바짝 조이고 눈길산행의 필수품인 아이젠을 신발바닥에 채우고는 곧바로 산행에 돌입했다.당일 고한읍의 기온이 영하 14도인데 해발 1천3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25도 이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혹한에 삭풍을 견디며 산행하기 위해서는 말그대로 ‘눈만 내놓고’ 방한모자와 머프, 스카프, 마스크 등을 두텁게 쓰고 두르거나 칭칭 감고, 방한장갑이나 양말도 2중으로 끼거나 스키용품 등으로 중무장(?)해도 간혹 손끝이나 발끝이 시려 옴은 어쩔 수 없었다.약간의 한기가 느껴져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드득’하고 눈 밟는 소리가 맑고 정겹게만 들렸다. 그 소리에 재미삼아 발걸음을 맞추거나 완급을 조절하고, 또한 일행이 함께 지나가면서 일제히 내는 뽀드득거림은 이구동성의 어울림처럼 여겨졌다. 거기에 나목의 나뭇가지를 흔들며 스치거나, 산정으로 향하는 송전선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가슴 속을 전율케하며 울리는 비장의 산명(山鳴)처럼 들렸다.설한과 동토의 계절에도 새소리, 물소리, 풀벌레소리를 내밀하게 품으며, 어쩌면 깊은 속울음마냥 허공을 향해 웅웅거리거나 윙윙거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걷고 들으며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당도했다.함백산은 과연 다(咸)하도록 희디흰(白)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사방으로 트여진 올망졸망 봉우리와 산자락은 희끗희끗 눈과 점점이 나무들의 형체가 채색된 듯 일망무제 장쾌한 수묵화로 펼쳐졌다.가깝거나 멀리 이어지는 능선으로는 풍력발전기 수십 여기가 보이고, 정상을 에워싼 등성이 몇 군데의 임도는 스키장의 슬로프 마냥 흰 눈길로 구불구불 이어졌다.산행 시작과 아울러 두문동재로 하산하기까지 발목 이상 쌓인 눈과 줄곧 함께 했으니, 온통 시리도록 부시고 다채로운 순백의 환희에 젖어든 시간이었다.5시간여 산행 내내 눈길을 걸으며 휘청대다 넘어지기도 했지만, 짐짓 눈밭에 뒹굴고 눈뭉치를 공중에 뿌리거나 맞아 보면서 아련한 동심에 젖기도 하는 등 시종 설국여행을 즐긴 것 같았다. 살을 에는 추위에 칼바람을 맞으며 겨울산행을 애써 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을 위한 담금질이 아닐까 싶다.눈 속에서도 복수초가 피어나듯이, 인동(忍冬)의 내성이 강할수록 맑고 진한 향기를 뿜으리라.

2023-01-31

설날 풍속의 변화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해마다 맞이하는 설날은 가슴 설레기만 하다. 어디든 찾아갈 곳이 있고 맞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슴 넉넉한 일이다. 가고는 싶어도 반겨 맞는 사람이 없다거나, 산천이 가로막혀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면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울까? 더욱이 민족의 설명절을 맞이해서는 그지없이 서럽고 가슴 아릴 것이다. 어쩌면 설날은 비로소 새해가 열리는 날에 온 가족이 고향에 모여 조상을 기리며 부모와 형제자매, 친척의 유대감과 정을 나누는 시간이지만, 세월의 흐름과 여건의 변화에 따라 요즘은 서로 한번 만나고 모이는 일도 쉽질 않아 보인다. 그만큼 세월의 갈퀴질에 시달리거나 코로나19 같은 희대의 역병에 발목 잡혀 쉽사리 어딜 가거나 움직이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그러나 지난 설 연휴 때의 귀성이나 나들이 차량의 이동은 작년에 비해 36% 늘어날 정도로 많은 움직임을 보였다. 4년째 코로나가 만연해도, 최근의 확연한 확진자 감소세와 정부의 방역대응 완화책 등으로 억눌린 가슴을 떨치기라도 하듯이 대다수의 국민들이 귀향길에 오르거나 여행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귀성, 성묘차량으로 전국 주요도로에 정체구간이 늘어나고, 겨울 축제장이나 재래시장에도 모처럼 북적이며 인파가 몰리는 등 코로나 이후 3년만의 ‘대면명절’에 활기를 띠는 모습들이다. 설 연휴 해외여행도 동남아와 일본 등으로 떠나는 패키지상품이 대부분 예약 마감되는 등 2020년 설 연휴 때의 52%를 회복할 정도로 활성화되고 여행심리가 되살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모바일과 코로나시대를 거치면서 명절의 풍속도가 다소 변화하고 있다. 귀성 교통정체를 피한 이른바 ‘역귀성’ 행렬은 이미 한참 전의 일이고, 명절연휴에 가족단위의 해외여행이나 휴양시설 이용객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화상회의 앱 켜고 차례·세배·덕담을 나눈다거나 온라인 추모·모바일 성묘·모바일 세뱃돈으로 대신하는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활용추세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편리와 효율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삶의 양태가 전통의 가치와 고유한 풍습마저 조금씩 변모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시대의 변천 속에 풍습과 문화의 점진적인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은 어린이처럼/티없이 순한 눈빛으로/이웃의 복을 빌어 주는 새해 아침//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대하듯/언제 보아도 새롭고 정다운/고향 산을 바라보며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새해엔 우리 모두 산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하리/언제나 서로를 마주 보며 변함없이 사랑하고/인내하는 또 하나의 산이 되어야 하리’-이해인 시 ‘새해엔 산같은 마음으로’ 중설날에 즈음해 손수 만들어 으레 주고받던 연하장도 대부분 모바일 콘텐츠로 간편하게 나눈다지만, 필자는 수십년째 고집스레 화선지에 수묵을 곁들인 붓글씨로 새해 덕담을 써서 친척과 지인들에게 전하곤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산 같은 마음으로 소중히 지키고 오랫동안 이어가는 노력은, 산 같은 믿음과 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20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