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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복지 사회

서의수전 포스텍 교수지난 몇주간 필자는 캐나다 몬트리올과 토론토, 싱가포르와 홍콩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많은 것을 흥미있게 보았고, 깨닫기도 하고, 앞으로 연구해야 할 숙제들도 모아서 돌아왔다.각 지역을 며칠간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방문했지만 필자의 눈에 보인 이 세 사회의 공통점들과 차이점들을 독자들과 나누면서 그 의미들을 간단히 살펴보려 한다. 이 세 사회의 공통점으로 두드러진 것은 모두 소득이 높다는 것이다. 즉 물질적으로 ‘선진사회’다. 깨끗한 길과 건물들이 현대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디자인과 양질의 재료로 세워져 있고 튼튼하게 보였다.싱가포르와 홍콩 항만에 끝없이 보이는 즐비한 수송 시설들은 매우 다이내믹한 경제활동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자연 자원이 전무한 좁은 땅에서 각각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싱가포르와 홍콩은 경제발전을 꾀하는 나라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 같다. 반면에 광대한 토지에 겨우 3천만명의 인구를 가진 캐나다가 이룬 경제발전도 경이롭게 보였다.어떻게 이 사회들이 물질적으로 ‘선진사회’를 이루었는지 흥미로운 연구 숙제이다.필자 눈에 띈 또 하나 흥미있는 공통점은 다민족(多民族)들이 많다는 것이다. 몬트리올과 토론토에서 동양인들과 아랍계통의 종업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인구도 많지 않은 싱가포르는 중국계와 말레이시아인들, 그리고 인도와 아랍인들이 다민족으로 섞여 다문화, 다종교, 다언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작은 섬나라인 싱가포르에는 차이나타운, 인도타운, 그리고 아랍타운이 형성되어 있었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아랍타운에 속해 있었다. 일요일에 홍콩을 둘러보는 중 수천명으로 추측되는 아랍 여인들이 한 공원지역과 인근 길가에 모여 있었다. 물어보니, 홍콩에 있는 아랍 여인들이 일요일은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들 그곳에 모인다고 한다. 이 작은 인구로 형성된 사회에 다민족들이 섞여 다문화, 다종교, 다언어 사회를 이루고 사는지 신기했다. 역시 흥미로운 연구 숙제이다.그러나 그들 사이에 다른 점들도 많아 보였다. 그 차이는 인성이라기보다 제도와 사회문화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세 사회 중 홍콩이 다른 두 사회보다 특히 달리 보였다. 즉 싱가포르는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지만 필자의 눈에는 서구적인 모습에 가깝게 느껴졌다. 반면 홍콩은 독특한 지리적 특성과 동양적 관습과 문화를 반영하는 것같이 보였다.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홍콩의 밤문화였다. 밤늦게까지 식당들은 물론 동네 상점들도 붐볐다.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교통이 밀리는 것 같았다. 필자가 머문 홍콩 호텔 조식도 다른 나라와 달리 아침 7시까지 한 시간 더 기다려야 했다.홍콩은 사치스러운 문화를 가진 것으로 보였다. 상가를 지나칠 때마다 고급품, 사치품, 명품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고급품 상점들마다 발 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손님들이 들끓고 있었다.필자가 방문한 다른 나라에서도 고급품, 사치품, 명품 상점들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어디에도 홍콩같지는 않았다.사치문화가 소득 격차와 사회신분제도와 관련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되었다.또 하나 다른 것은 캐나다와 싱가포르의 부가세율이 10%를 넘어 20%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이는 사회복지와 세율과의 상관관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이 지역의 공공시설들이 홍콩에 비하면 잘 유지되고 또 값싸거나 흔히 무료로 제공된다. 필자는 캐나다와 싱가포르에서 무료 또는 저가로 제공되는 공공시설들을 만끽했다. 필자는 캐나다와 싱가포르에서 복지사회의 고마움을 느꼈다. 훌륭하게 사회를 유지하는 정부의 거버넌스에 흥미가 돋았다.

2018-12-19

결실을 위해 준비함(下)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일반적으로 30대에 결혼한 지 15년에서 25년 지나면 자녀들이 고등학생으로 성장하고 대학생 또는 사회의 새내기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때 부모들은 인생의 가을에 깊이 들어와 흔히 50대 중년시절에 접어들고, 크게 세 가지 이슈에 직면하게 된다.부부간의 관계, 법적 성인이 되었고 아마도 이미 자신의 가정을 이룬 자녀들과의 관계, 그리고 10여 년 후에 시작되는 내 자신의 노년 또는 은퇴시기를 위한 준비이다.첫 두가지 이슈는 인생의 가을만 아니라 일생에 걸쳐 논의해야 할 성격이므로 후에 따로 논해 보고자 한다. 오늘은 노년 또는 은퇴시기를 위한 준비에 대해 논해 보고자 한다.전통적인 대가족 생활 풍습 하에서 노부모들의 준비는 자녀들이었다. 특히 큰아들이 노부모를 보시는 것이 전통적인 풍습이었고 그래서 장자에게는 두 배를 상속하는 문화가 형성됐다. 이러한 노후대책은 과학과 기술이 원시적이었고, 사람의 근육과 동물의 힘이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과거 농경기 시대에 유용한 사회질서였다. 그리고 통신과 수송(輸送)수단이 제한된 사회에서는 부족별, 가족별, 그리고 개인별로 자급자족이 중요한 시대에 맞는 사회질서였다.그러나 지금은 기술의 급진적인 변화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넓고 다양해짐에 따라 사고 방식과 사회질서가 지진을 만나듯 뒤엎어지고 있다.따라서 노년 또는 은퇴시기를 위한 준비와 관련하여 미시적인 개인 측면과 거시적인 사회적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먼저 거시적으로 사회보장 제도를 간단히 언급한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생활을 뒷받침해 주는 사회보장제도는 노년 또는 은퇴시기에 반석(磐石)같은 역할을 해준다.사회보장 제도는 금전적인 보조를 통해 경제 생활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일구어 주고 개인의 심성(心性)을 안정시켜주는 정신적 문화적인 사회효과를 이룬다.이 글에서는 범국민적인 사회보장 제도가 절실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줄이고, 중년시기에 별도로 노후를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서의 개인 재정계획에 대해 논한다.첫째, 중년 시기에는 개인 빚이 없어야 한다. 빚이 있으면 재정계획을 자유롭고 융통성있게 할 수 없고, 최악의 경우 파산을 해야 한다. 파산은 빚을 갚지 못하게 될 경우에 일어나며 그 여파가 자신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남에게 그리고 사회에 파급되어 개인의 행위가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한다.둘째는 정기적으로 저축하는 것이다. 수입이 고정적인 경우는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매월 스스로 강제 저축해야 한다. 환경상 빚이 있는 경우 원금 상환도 저축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중년시기에 자동차 구입까지는 전액 내 현찰로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신용카드는 현찰을 지니고 다닐 필요를 줄여 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지 빚을 빌리기 위한 방편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매월 잔고가 남아 그에 대한 비싼 이자를 내지 말아야 한다.셋째는 수입 한도 내에서 지출하는 생활 습관을 지키는 것이다. 개인 자산(資産)을 즐기기보다 재산(財産)을 즐겨야 한다. 정기적으로 저축하고 수입 한도 내에서 지출하는 생활 습관을 고수하면, 예상치 않은 큰 비용이 나가야 할 때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넷째는 예상치 않게 큰 비용이 나가야 하는 경우 크게 보호가 되는 보험이다. 건강보험, 자동차 사고 보험, 화재보험, 생명보험 등. 이 보험의 가치는 큰 돈이 나가야 할 때 물론 보호가 되지만, 사고없이 매일 매일 지나갈 때마다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매일 불안해 하지 않고 발 쭉 뻗고 잠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험은 쓰지 않고 지나갈 때에도 가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노년 또는 은퇴시기를 위한 준비에서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의 진실을 적용해야 한다.

2018-11-27

결실을 위해 준비함(中)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한국에서 가르치기 위해 지난 2010년 한국에 올 때 필자에게 풀리지 않는 질문들 중 하나는 ‘한국에서 왜 흔히 50대 중반에 정년 퇴직하는가?’였다.필자의 학교 친구들이 50대 중반에 이르렀을 때, 퇴직하고 백수로 지낸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평상적으로 6일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하루에 12시간 또는 그 이상 일하기도 한다.그런데 어떻게 50대 중반에 퇴직을 하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우연히 찾았다.어느 기관의 총책임자가 새 사람으로 바뀌게 됐다. 그러자 그 아랫 사람들도 다 갈릴 것이라는 말을 어떤 사람에게 들었다.나는 ‘대부분 능력있고 일을 잘해 오고 있는데 왜 모두 갈릴 것이라고 예상하는가?’라고 물었다.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새로운 기관장의 나이가 현 기관장보다 세 살 아래입니다.” 나는 얼른 이해를 못하고 눈만 깜빡거렸다.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지금 참모진들 나이가 새 기관장보다 많습니다”고 부연했다.그제야 나는 그의 말뜻을 이해했고, 동시에 ‘한국에서 왜 흔히 55세에 정년 퇴직하는가?’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답을 발견했다.나이와 서열이 중요한 사회에서 50대까지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면 흔히 나이가 아래인 사람을 보스로 따라야 한다.한국은 나보다 젊은 사람 아래에서 일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서열 사회다. 나보다 한 학년 선배에게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해야 하는 서열 사회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로 데리고 일하는 것이 무척 불편한 사회다. 한국은 실력과 업적보다 나이와 신분 등 서열이 중요한 사회이다.나에겐 그런 한국사회가 미국사회와 대조되었다. 당시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었는데 그는 1961년생이고, 그의 러닝메이트 부통령인 조 바이든은 1942년생으로 대통령보다 19살 연상이었다. 거의 아버지 뻘이다. 한국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약 10년 전 내가 아는 지인은 당시 30대 중반의 한국계 교포 2세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굵직한 회사의 세계 마케팅 책임자가 되었다. 그 밑에 약 50명의 직속 직원들을 통솔하는데 모든 직원들이 예외 없이 40, 50대였다. 이 그룹의 책임자가 제일 어린 사람이었다. 그는 동양계 출신이고, 여성이다. 50명의 직원들은 나이만 아니라 경력도 대부분 책임자보다 길었다. 서열 중심이 아니라 능력위주이기 때문이다.미국 일반 회사의 은퇴 연령은 65세이며, 젊은 상사들이 나이 많은 직원들을 관할하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에서 흔치 않는 일이다.내가 있었던 미국 대학교의 한국인 교수는 80세에 학교에서 은퇴했다. 미국 대학교는 은퇴 연령이 따로 없다. 70대의 교수들도 흔하고, 그들이 서열과 경력을 내세워 무위도식하지 않는다. 미국대학에서 세미나를 참석하면 백발에 허리가 구부러진 노교수부터 대학생까지 참석해 토론하는 광경은 천상(天上)에 있는 것과 같은 맛을 느끼게 한다.약 30년의 경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관행 때문에 고귀한 경력이 사장(死藏)되는 것처럼 아까운 일이 없을 것이다. 자원 중에 제일 중요한 자원이 인적 자원이다. 물질적 자원은 사용할수록 고갈되고 낡아지지만, 인적 자원은 쓸수록 더 좋아지고, 분야에 따라 60,70대까지도 끄떡없이 빛을 유지한다.인생의 가을인 40대 초부터 60대 중반의 시기에 많은 분들이 서열 사회의 부조리에 얽매여 30∼40년의 경력을 낭비하지 말도록 우리의 사고 방식과 사회 문화를 개선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렇게 하면 중년의 위기의 일차적 요인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18-10-16

결실을 위해 준비함(上)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9월이다. 가을이 시작되었다.평균 수명이 80을 넘은 현재의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하면, 인생의 가을은 40대 초반부터 60대 중반에 해당할 것이다. 여름에 벼가 힘차게 자라고 이제 무르익어 가면서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인생도 비슷하다.인생의 가을은 사회인으로서 가정에 대한 책임을 가진 자로서 수행할 일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은퇴 후의 인생의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인생에 중요한 기로점의 하나이다.40∼60대에 큰 변화들이 가속적으로 일어나므로 오늘은 40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청년기 20∼30대에 무쇠같이 일하고 뛰었는데 인생의 가을에도 여전히 뛰기는 하지만, 40대에 들어서 육체적인, 감정적인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자신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생긴다. 글씨를 읽으려면 전보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안경을 맞춰야 한다. 안경을 꼈다 뺐다 익숙치 않아 불편하기만 하다. 여성들이 주로 이 시기에 갱년기를 경험한다. 주위 사람들 특히 남편의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다.10대 청소년 시기에 그랬듯이, 이 시기에도 남녀 모두 감정적인,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인생은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지금까지 뭘 했는가? 등등.사춘기 ‘위기’시에 이런 질문들을 했었는데, 30년 후에 비슷한 질문들을 다시 던지고 있다. ‘도대체 내가 30년간 성장한 것인가?’하고 질문하게 된다.필자가 40대에 같은 나이 또래의 여러 친구들이 우울해 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중년의 위기’를 경험할 때 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내 나름대로 그들을 세워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덕분에 나는 개인적으로 ‘중년의 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그 시기를 넘겼다.이 시기의 ‘위기’는 ‘사춘기의 고민’보다 훨씬 심각하고 다급하다.사춘기에는 아직 책임감 없이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아직 직면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지만 이 시기의 ‘위기’는 매일 매일 현실에서 직면해야 하고, 청년 시기의 20년간의 세월이 이미 흘러가버려 적응할 시간과 기회도 짧다.필자의 친구들의 경험을 토대로 하면 40대의 회의(懷疑)는 세가지 외부적인 요인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사회 생활, 특히 직업 또는 사업. 둘째는 배우자와의 관계, 셋째는 자녀들 문제다.필자의 친구들과 가진 대화를 기초로 하면 사회에서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중년의 위기’의 핵심인 것같다. 사회인으로서, 가족을 이끄는 엄마 아빠로서 사회생활이 견고하지 못하면 자괴감도 들고 가족의 신뢰도 떨어지게 된다. 사회생활 20년이 흐른 시점에서 내가 뒤쳐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위계사회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에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 타의에 의한 ‘명퇴’가 눈 앞에 가깝게 보일 수도 있다.이러한 현상 또는 생각들이 당연히 불안과 회의를 불러 일으킨다.낮에 일하고 가정으로 돌아와 배우자와 다시 만나는 것이 주저스러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네를 배회하는 지인들도 있었다.요즘은 주로 30대에 결혼하니 결혼한지 10년 정도 되었지만, 부부 사이가 전보다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벌어지면 ‘중년의 위기’가 악화될 뿐이다.자녀들이 10대가 되면서 반항적으로 나가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부모를 최고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부모에게서 벗어나 멋대로 하는 것이 자녀 눈에는 멋있게 보이는 시기이다. 몇년 후 대학갈 시기가 되거나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자식과 부모가 아니라, 성인 대 성인으로 마주해야 한다.우리의 사고 방식과 행동 방식을 의식적으로 크게 조정해야 한다.

2018-09-11

자연과 인간

▲ 서의수전 포스텍 교수자연의 신묘막측함과 웅장함은 상상을 불허한다. 지난달 알래스카를 약 3주간 여행하면서 그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아인슈타인은 인간 사회의 하나님은 부인했지만, 자연과 우주의 신묘막측함과 웅장함을 인정하고 창조자를 인정했다. 먼저 캐나다 밴쿠버에서 3일간 시내와 강변을 구경했다. 현대식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져 있어 그 지역의 물질적 부유함을 증거하고 있었으나, 저녁이 되니 길가에 히피같은 걸인들, 걸인같은 히피들이 줄줄이 길가를 차지하고 있어 인간 사회 내의 큰 괴리감을 느끼게 했다.밴쿠버 북쪽으로 약 150km 외곽지역을 달리면서 그 지역에서는 높다고 하는 산에 올라가 보기도 했다. 여름에도 눈에 덥힌 멀리 보이는 더 높은 산봉우리들을 감탄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그 산속을 한 시간 이상 걷기도 했다. 별천지였다.그런데 앞으로 더 놀라운 광경들을 보게 되리라고 꿈도 꾸지 못했다.밴쿠버에서 크루즈를 타고 알래스카를 향해 첫날은 하루종일 북진을 하는데 산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대부분 바다에서부터 산들이 절벽처럼 솟아있었다.평상 버릇처럼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여름인데도 눈에 쌓인 산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있지 않는가? 신기했다.알래스카는 미국 본토의 20%의 크기란다. 미국 본토가 남한의 약 100배이니 알래스카는 남한의 약 20배인 셈이다.스캐그웨이에서는 만(灣)처럼 생긴 양쪽에 산들로 늘어져 있는 곳을 배로 한 시간 달려 하인즈(Haines)에서 지프차를 내 손으로 몰고 거의 두 시간 산속 깊이 올라가면서 수천 수만년 우거진 숲에 감탄이 저절로 튀어 나왔다. 스캐그웨이에서 시작해 100년 전에 금(金)을 찾아 10만명이 눈 덮이고 첩첩히 쌓인 산을 넘고 또 넘었다는 길을 기차로 달리면서 자연의 웅대함은 물론,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의 위대함과 허무함을 느꼈다.금을 찾아 미국에서 수만명이 수백㎞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해 도보로 다시 수백㎞를 걸어 나섰고, 절벽 같은 산을 따라 수십㎞에 달하는 철도를 건설하기도 했다.그러나 금을 찾아 나선 사람들 중 약 3%만 그들이 찾은 금으로 그들의 수고와 희생의 가치를 건졌다고 한다.대다수는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고, 죽기도 했단다. 교통수단으로 사용된 말들도 먼 길을 추위 가운데 달리면서 허다하게 죽어갔단다. 거의 모든 남자들이 가족을 집에 떼놓고 왔으며, 그들이 모인 곳에는 매춘부들이 들끓었다.캐나다 지역인 도슨시에서는 공립공원에 엄청 잘해 놓은 어린이 놀이터 주위를 거닐었고, 유명한 유콘(Yukon)강을 건너 섬에 사는 200명을 위해 정부가 무료로 페리(ferry)를 24시간, 365일 운영해 주는 복지시설에 감탄했다.여행의 절정인 드날리 국립공원 안으로 버스를 타고 약 80km를 들어가면서 첩첩히 둘러싸인 산들, 광활한 평야같은 툰드라를 통과하면서 야생동물들도 보며 하루종일 자연인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경비행기를 타고, 국립공원을 횡단하면서 수없이 많은 거대한 빙하들을 내려다 보고, 미주 대륙에서 제일 높고 구름 위로 솟은 해발 약 7천m인 맥킨리산과 그에 버금가게 높은 산들을 우회할 때, 하늘나라에 올라왔나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그곳에서 앵커리지를 거처 수어드까지의 이틀에 걸친 약 800㎞ 기차여행은 드높은 산들과 물들의 절경의 연속이었다. 그곳에서 케나이 반도로 3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 전에 영상으로 보기만 하였던 거대한 빙하 앞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얼음 조각들을 보기도 했다.알래스카 여행을 하며, 내가 태어난 한국을 여러번 생각했다.우리 한국인들은 비록 땅은 비좁지만 마음은 알래스카의 산들처럼 우람하게 솟아올라야 하리라고 생각했다.

2018-08-22

인생의 여름(下)

▲ 서의수전 포스텍 교수인생의 여름은 20대 초부터 40대 중반까지 약 20여년 간의 기간인데, 이 시기에 중요한 일은 장래 진로를 단단히 닦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독특한 재능과 관심, 그리고 가치관에 맞는 진로를 선택해야 하듯이 결혼하는 두 사람의 개성과 관심이 서로 조화되고 보완적이어야 좋다. 행복한 결혼과 가정은 무엇보다 서로 진정으로 아껴주고자 하는 태세를 갖는데서 출발한다. 결혼은 젊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므로 결혼식에 가족, 친척은 물론, 결혼 당사자들의 친구들이 조촐하게 모여 실용적이고 의미있게 진행하도록 필자는 지난 글에서 권했다.오늘은 결혼생활에 대해 생각해 본다.먼저 결혼생활에서 남녀 동등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한국의 전통과 반대이다. 필자가 자랄 때, 어머니가 아버지 친구들 대화에 대꾸하면 ‘여자가 남자들 말하는데 대꾸한다’고 핀잔이 혹독했다.할머니께서도 사위와 그 친구들에게서 장모의 권위를 인정받지도 못했다.전통적으로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누구의 말인가가 중요한, 미개하고 차별이 심한 사회였다. 그런 문화에 젖어 여자들은 이등(二等) 시민처럼 뒷전에서 수동적으로 잠잠히 기다려야 했다.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여성권(女性權)이 신장되었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속해 있다는 전통적인 관행을 아직도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인다. 결혼은 두 성인들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두 성인들은 그들 서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고 동시에 상대방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인권(人權)이 한국 사회 모든 곳에서 존중돼야 하는데, 이는 사회의 가장 기본단위이며 사회문화의 요람(搖籃)인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자녀 양육과 교육에도 우리가 이전에 토의한 기본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자녀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인정받고 자주성을 가지고 성장하려면 자녀양육과 교육도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그리고 자녀들이 친구 사이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인정받고 성장해야 한다. 자녀들이 자신의 독특한 재능과 관심, 그리고 가치관에 맞는 진로를 선택하려면 그들이 지나치게 남의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자주적인 삶을 개척하도록 교육받고 그런 환경에서 자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통념(通念)이 지배적인 것 같다. 자녀들은 진로 선정과정에서, 결혼 상대자 선택에 있어서, 결혼식 절차에 대해, 그리고 결혼한 후에도 그들의 성인으로서 가정을 이룬 부부로서의 자주권이 충분히 행사되지 못하고 부모들의 일방적인 지시를 따르는 경우가 흔하게 보인다. 또 이 시기는 집을 장만 할 때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집을 사주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남자가 결혼할 때 집 키를 들고 오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보통 기대한다. 이제 가정을 시작하면서 그 비싼 집을 부모가 사주어야 한다니 사치다. 젊은이들의 장래에 좋다고 볼 수 없다.“부모가 자녀들이 결혼할 때 집을 사주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결혼한 젊은 부부들이 힘을 모아 계획을 세우고 땀 흘려 저축하고 내 집을 내 손으로 장만하는 것이 훨씬 그들에게 좋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협동과 애정이 더욱 탄탄해질 것이고, 수입 한도 내에서 저축하고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는 자연적인 훈련을 받는 셈이다. 그리하여 내 손으로 장만한 당당한 내집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겠는가.부모가 집을 사주어 편하게는 쓰지만 그들은 냉엄한 인생살이 훈련도 경험하지 못하고 말 것이다. 부모들이 집값의 일부를 내 준다든지, 무이자로 빌려 주는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 부모가 빚까지 얻어가며 젊은이의 피땀이 들어가지 않은 집을 장만하는 것은 부모가 남의 눈치 보면서 ‘나는 갑이다’고 과시하기 위한 문화일 뿐이라고 보여진다.

2018-07-17

인생의 여름(中)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여름이 본격적으로 무르익어 간다.여름은 인생으로 말하면 20대 초부터 40대 중반까지 약 20여 년 간일 것이다. 이제 어엿한 성인(成人)으로서, 사회인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한다. 결혼도 하게 되고, 자녀를 포함한 가족 부양도 하게 될 것이다.오늘은 결혼과 결혼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결혼은 개인적인 선택이며, 제3자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할 수 없음을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결혼 상대를 구하는 첫 관문인데 바로 이 시작점부터 문제가 걸린다. 지난 칼럼에서 돈, 명예, 어떤 타산에 끌려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찾으라고 필자는 권하였다. 부부는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서로 받으려고 또는 받기를 요구하는 결혼은 행복하기 어렵다. 서로 주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으로 결합된 부부는 행복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주는 즐거움과 받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무촌(無寸)들이 사랑으로 결합하고 그 사랑이 승화되어 하나의 무촌으로 변신한다. 아름다운 기적이다.인생사 전반에 걸쳐, 내 이익만 차리려고 결정하면 대부분 후회스런 결과를 경험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듯하다. 물질적, 세속적 타산으로 결코 무촌으로서의 행복한 가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결혼식 준비에도 문제가 많다.한국에서는 먼저 남의 눈치를 봐야 한다. 내 원하는대로 할 수 없다. 왜 그럴까? 결혼은 젊은 자녀들이 하는데, 결혼식은 부모들이 시켜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결혼식은 결혼하는 젊은이들의 결혼식이 아니다. 부모들의 결혼식이다. 하객들도 주로 부모들과 관련된 분들이다. 그러니 부모들의 재력과 사회적 권력을 과시해야 한다. 결혼 쌍방의 부모들끼리도 눈치를 살펴야 한다. 결혼식장에서 부모들의 권위가 서야 한다. 얼마나 많은 하객들이 오는지, 어떤 하객들이 오는지, 화환들은 얼마나 진열되는지, 축하금은 얼마나 들어오는지. 모든 것이 물질적이고, 외형적이다.10년 전 쯤에 어느 유명 대학 총장의 아들 결혼식에 간 적이 있었다. 한국 관습을 몰라 보통 축하금을 얼마나 하는지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는 ‘사회 계급에 따라 축하금이 다르다’고 하면서 금액들을 가르쳐 주었다. 축하금을 들고 결혼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저절로 내 입이 크게 벌어졌다. 입구에 화환들이 그처럼 넓은 로비를 완전히 둘러 진열하고도 모자라 연결된 공간으로까지 넘쳐 흐르고 있었다. 내 추산으로는 화환이 수 백개 되었다. 화환 하나에 십만원이라면 모두 수천만원이 단지 몇 시간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각 화환에 누가 보냈는지 씌어있는 것을 보고 또 놀랬다. 개인들의 이름 앞에 소속 기관과 직함이 크게 씌어져 있었다. 큰 기관장, 직책 높은 사람들의 화환이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얼마나 개인 돈으로 그 화환을 보냈을까? 화환을 보내는 동기는 무엇일까?한 번은 다른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결혼식장을 향하여 부지런히 걷고 있었는데, 지인이 반대편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자기는 참석할 시간이 없어 ‘눈도장’ 찍고 간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일순간 멈칫하다가 말의 뜻을 짐작하고, ‘바쁘다며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다 가는가’ 물으니 그래도 결혼하는 젊은이 부모들에게는 인사는 해야 하고 축하금도 손수 전하는 것이 예의라고 그는 말하고 달아나듯 뛰어갔다.결혼식의 초점은 ‘결혼을 시키는 부모들’이 아니라, 결혼당사자들이 되어야 한다. 결혼당사자의 가족, 친지들, 친구들이 참석하면 족하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 악수하고 끝날 부모 친구들이 왜 주객들이 되어야 하는가? 결혼식과 관련된 허례허식적이고 낭비적인 풍습은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앞날의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데 해로울 뿐이다.

2018-07-03

인생의 여름(上)

▲ 서의수전 포스텍 교수벌써 여름이 되었다. 이곳 저곳에 꽃들이 우리 주위를 아름답게 수놓고, 나뭇잎들은 점점 진한 녹색으로 변하면서 생기(生氣)를 뿜어내고 있다. 여름은 인생으로 말하면 20대 초부터 40대 중반까지 약 20여년 간의 기간일 것이다. 이제 어엿한 성인(成人)이다. 신체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성인의 자유와 특권을 누린다. 동시에 책임도 따른다. 기로(岐路)에 놓인 시기이다. 사회인으로서 자리잡기 시작해야 한다. 결혼도 하게 되고, 자녀를 포함한 가족 부양도 해야 할 것이다. 내 집도 장만할 때이다. 내 부모는 곧 연로과정을 시작할 것이다. 오늘은 새내기 사회인으로서 커리어(career)를 어떻게 쌓아갈 것인지, 그리고 일생의 반려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필자는 3개월 전에 인생의 봄철에 대해 논하였다. 봄은 씨앗을 뿌리고 씨가 뿌리를 내리는 시기이다. 나무마다 각각 필요한 토양과 기후 그리고 태양과 수분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줄기와 가지를 뻗고 잎을 내어 열매의 결실을 준비하기에 바쁜 때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인생의 봄철에 뿌리는 씨앗은 개인의 특유한 재능과 관심있고 가치를 두는 분야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여름은 성장의 시기이다. 사회생활의 출발점이다. 어떻게 출발해야 하나? 커리어 초기에는 기술적인 전문성(technical expertise)이 특히 중요하다.회사 초년생을 채용하는 주 목적도 거기에 있고, 일생을 통해 기술적인 전문성이 깊고 확대되어 개인의 안정과 승진의 주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여기서 말하는 기술적인 전문성이란 공학적인 기술만을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법조계에서는 법에 대한 지식일 수 있고, 교육계에서는 가르치는 분야에 대한 지식과 효율적인 교수법이 각각 전문적 기술이다.내게 적합한 방향으로 커리어를 출발하지 않으면, 후에라도 방향을 조절하는 것이 현명하고도 실질적이다. 이 모든 것은 내 재능과 관심 그리고 가치관에 적합한 전문성을 확고히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출발 방향을 가능한 빨리 과감히 결정하고 조절해야 한다. 아직 젊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기회이다. 이 기회는 세월이 흐를수록 약해져 간다. 아직 시간이 있고 큰 책임감 없을 이 시기에 신중하면서도 자유롭게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커리어 방향을 확고히 하는 것이 훗날에 축복이 될 수 있다.돈도 중요하고 권력과 명예도 유용한 것이지만, 자신의 재능과 관심과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비교적 쉽게 커리어를 쌓고, 또한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을 즐기는 첫 관건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안녕(安寧)뿐 아니라, 사회복지에 기여함을 그 목적지로 삼아야 한다고 필자는 이전 칼럼들에서 역설했었다. 이 목적지는 일생을 통해 우리의 종국적인 초점이 되어야 한다.인생의 여름은 일생의 반려자와 짝을 맺는 시기이다. 요즈음은 결혼을 피하거나 연기하는 경향이 짙다. 시대의 흐름과 개인의 선택에는 이유들이 있다. 개인들이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을 나눠 보고자 한다. 커리어를 정하는 기본 원칙이 결혼에도 적용된다. 일생의 반려자를 돈, 명예, 어떤 타산에 끌려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찾으라고 필자는 권한다. 반세기 동안 종사해야 하는 커리어를 내 재능과 관심과 가치에 부합해야 하듯이, 반세기 이상 함께 살 수 있는 아내와 남편도 서로의 취향과 가치관 등이 맞고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사랑해야 행복할 것이다.인생사 전반에 걸쳐, 내 이익만 차리려고 결정하면 대부분 후회스런 결과를 경험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듯하다.부부는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서로 받으려고 또는 받기를 요구하는 결혼은 행복하기 어렵다. 서로 주고자 하는 진정한 사랑으로 결합된 부부는 행복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주는 즐거움과 받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8-06-13

이민 생활문화

▲ 서의수전 포스텍 교수1970년대 초 미국에 이민와서 45년 이상 살고 있는 어느 지인 부부와 당시의 이민 이야기를 지난주에 서로 나누었다. 남편과 두 어린 자녀는 한국에 남겨놓고 여자분이 먼저 600달러(지금 가치로 약 4천달러)를 들고 단신으로 미국에 왔단다. 그분은 갖고 온 돈이 달랑달랑 할 즈음 겨우 거처를 마련하고 직업을 구해 가족들이 오게 된, 절망적이기도 했고 가슴 조이게 하는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나도 그 때쯤 미국으로 먼저 떠난 아내와 합류하기 위해 200달러를 들고, 600달러하는 편도 비행기 값을 후불로 갚기로 하고 미국에 도착하였다. 나는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원주민들 보다 3∼4배의 시간과 땀을 흘리며 공장에서 서투른 노동부터 시작하였다. 한국인의 이민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증가하였고, 먼저 온 사람들은 바쁜 가운데서도 새 이민자들을 돕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땀을 흘렸다.한국 이민자들은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였지만, 흔히 부부가 세탁소 또는 조그마한 서양 또는 동양 식품점을 밤낮 없이 주말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일주일 100여 시간 일하며 생활터전을 마련하였다. 이민생활은 이곳에서 당장 필요한 기술이 없으면 모두들 원점에서 출발한다. 너도 나도 팔 걷고 땀 흘리며 일한다. 그런데 20여 년 전부터 대형 식품점에 밀려 대부분의 한국인 영세 식품점은 문닫은지 오래다. 여름에 거대한 선풍기를 틀어도 비지땀을 흘리며 일해야 하는 세탁소는 몇 년 전까지도 부부가 열심히 일하면서 운영해 왔다.최근 대형 박리다매(薄利多賣) 세탁소가 영세 세탁소를 휩쓸면서 한국인 개인들이 운영하던 세탁소들이 문을 닫아가고 있다.그러나 한국인들은 부정적인 일은 남 앞에서 내색하지 않는다. 내색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지인 부부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한국인들이 이민 사회에서도 얼마나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의식하고 남의 눈치를 보는지, 그래서 비싼 것, 고급품을 가지려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한 사회 문화는 반대로 한국인들이 돈 자랑, 자동차 자랑, 집 자랑 등으로 생색을 내게 만든다.최근 식사 약속에 조금 일찍 한국 식당에 도착하였다. 주차하면서 벤츠와 BMW, 그리고 일제 고급차들이 많이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내려서 자동차들을 둘러보니, 모두 41대의 주차된 자동차 중에 고급차가 16대였고, 미제 자동차 3대, 한국 현대자동차 4대, 나머지 18대는 일반 일제 자동차였다. 미국에서 작년에 총 고급 수입차는 10% 수준이었다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미국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미제 자동차는 주차장에 3대뿐이었다. 한국 자동차 4대를 발견하고 조금 안도감을 가졌다.주차된 자동차들은 비록 한정된 샘플이지만,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의 일반적 자동차 소유 패턴을 반영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이 학군과 주택 값으로 볼 때 수준 높은 지역이지만, 이 곳에 고급차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워싱턴 지역이 미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 정도의 상위 지역이지만, 이 지역 자동차의 40%가 고급차는 분명 아니다.자동차 소유는 개인적인 것이다. 필자의 통계의 제한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부유한 유럽국가들도 필수품인 차와 집을 소규모로 갖고 사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필자는 ‘갑을’ 위계를 기초로 하는 사회문화가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한국인들이 모이면 일반적으로 먼저 서열이 확인된다. 나이, 학력, 사회 신분(돈, 지위 등)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미국에 살면서도 한국인끼리 그러하다면,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더 하리라. 사회 구석 구석에 박혀있는 ‘갑을’ 위계를 기초로 하는 사회문화를 각자 힘을 다해 개혁하도록 하자.

2018-05-29

새 생명의 계절에 (下)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벌써 5월이 되었다. 봄이 무르익고 있다. 주위가 꽃동산이 되었고, 이제는 나뭇잎들이 진한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번 두 칼럼에서 ‘인생의 봄, 즉 태어나서 대학생활까지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인생의 봄은 교육과 배움을 통해 내 인생의 뿌리를 내려야 할 시기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어떻게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릴 수 있는가?’도 논했다. 두 가지의 뿌리가 필요하다. 즉 인성(人性)과 전문성. 인성? 아무리 혈기와 지능이 있어도 인성이 없다면 망조(亡兆)가 나게 된다.전문성? 사회 환경을 전혀 무시하지 않으면서, 나의 재능, 나의 관심, 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나의 전문성을 키워 나간다면, 나의 경쟁 상대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의 재능, 나의 관심, 나의 가치를 충분히 살리면 성공이다. 모두 성공할 수 있고, 모두 행복할 수 있다.필자는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를 개인이 존중받고 모두가 성공하고 모두 행복한 사회로 만들자’고 주창했다. 곰곰이 생각하면, 전문성도 성공도 행복도 인성에 달려있는 것 같다.지난달 4월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돌아보면서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럽 국가들이 작지만 강한 나라 (소위 강소국·强小國)가 되는 한 비결을 발견했다고 믿는다. 물론 어느 사회에도 예외가 있고, 완전한 사회는 없다.오래 전에 처음 유럽을 방문했을 때, 유럽사회와 문명 그리고 문화의 깊은 뿌리를 느꼈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말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뿌리가 깊지 못하다고 느꼈다.지난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여 며칠동안 동쪽으로 독일 북부의 여러 도시들과 함부르크 지역을 거쳐 덴마크 코펜하겐까지 약 800km를 운전하여 가면서 넓고 평평한 푸른 농원들이 잘 경작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자연과 인간의 조화(調和)를 느꼈다. 살펴보니 이 지역의 가용(可用)면적이 70%도 훨씬 더 되는 것 같았다. 반대로 ‘작은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져 가용면적이 30%밖에 안 되는 한국이 불쌍하구나’하고 느꼈다.그런데 한국과 대조되는 다른 것들을 보았다. 여행하면서 돌아보니 소형차들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대형 차들은 물론 중형차들도 찾아보기 어려웠다.집들은 어떠한가? 집들은 대부분 잘 가꾸어져 있었고, 하나같이 작았다. 한 가족 살기에 충분한 사이즈였다.우리는? 너도나도 큰 차, 큰 집을 쓰려고 한다. 내가 한국에 7년간 머물면서 대형차로 변모하는 한국사회를 관찰하였다. 제한된 주차장에 주차하기가 더욱 더 힘들어짐에도 말이다. 또 땅이 부족해 수십층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형편인데도. 네덜란드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미국을 한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유럽에 비해 모든 것이 크고 낭비가 많다고 평했다. 유럽은 사용하기에 충분하면 작고 절약형으로 만족한다고 그는 말하였다. 이번에 모두 5천km를 주행하면서, 베를린, 파리, 벨기에 브뤼셀, 로마, 나폴리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도 비슷하게 느꼈다.땅도 좁고, 가용면적도 작은 한국은 왜 유럽처럼 검소하게 실용적으로 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사회적 사고(思考)방식 또는 인생철학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은 남보다 더 큰 차, 더 큰 아파트를 사용해야 ‘갑’계급에 머물 수 있는 사회이다.한국에 최근 거주하면서 필자는 자라는 봄에 피는 새 꽃과 같은 학생들이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identity) 분명히 알고, 자주성(autonomy)을 발휘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도록 인도해야 할 중요성을 절감했다. 새싹들이 인생의 봄에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의 무거운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개개인이 존중받고 개개인 모두가 성공하고 개개인이 행복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도록 돕자.

2018-05-09

새 생명의 계절에 (中)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지난 칼럼에서 `인생의 봄, 즉 태어나서 대학생활까지 인생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또 인생의 봄은 교육과 배움을 통해 내 인생의 뿌리를 내려야 할 시기라고 필자는 주장했다. `어떻게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릴 수 있는가`도 논했다. 두 가지의 뿌리가 필요하다. 즉 인성(人性)과 전문성. 지난 칼럼에 먼저 인성교육에 대해 논하면서 “아무리 에너지, 지능이 있어도 인성이 없다면 망조(亡兆)가 나게 된다”며 그 인성을 정직성으로 필자는 축약했다.오늘은 뿌리의 다른 면, 전문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문성이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 전문성은 영어로 `professional expertise`라고 표기된다. 영문 표현의 두번째 단어는 특정 분야에서의 지식과 기술을 말한다. 첫번째 단어는 오랜 기간의 배움, 훈련, 경험을 요구함을 시사한다. 그러므로 전문성은 특정 분야에 깊은 지식과 기술을 의미한다.이제 독자들은 왜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지 자연히 이해할 것이다. 나만의 특정 분야에 깊은 지식과 기술을 지니면 본인의 사회적 가치가 높아진다. 소위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내가 깊은 지식과 기술을 갖출 특정 분야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어렵지 않다.세가지를 자문해 보라. 나는 어떤 독특한 재능을 갖고 있는가? 나는 항상 어떤 것에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는가? 나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가? 이 세 질문에 공통적으로 언급된 단어는 `나`이다. 사회동물로서 우리는 항상 사회 여건을 고려해야 하지만 먼저 나 자신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도 내 자신의 재능, 관심, 가치를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혹자는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전통적으로 `갑을`문화가 지배하고, 위계질서가 엄한 사회에서 나의 독특한 재능, 관심, 가치를 기초로 내 전문성을 결정하라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 사회에서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직업`을 살펴보라. 그들은 일반적으로 독특한 재능을 갖고 있는 분야,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 마음에 품고 있는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이 큰 부자는 아닐지 모르지만, 독특한 재능을 갖고 있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니 먹고 사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마음에 품고 있는 가치를 구현하면서 산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내 잘난 맛에 사는 것이 인생인데, 남의 말을 이러쿵저러쿵 하지 마세요`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권고는 현실적이 아니라고 혹자는 생각할지 모른다. 학벌이 중요한 사회에서 명문학교 들어가고, 명문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결혼도 명문 집안과 하고 인생을 편하게 누리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지금까지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경제와 생활도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런데 요즘 사회는 전보다 더 행복한가? 개인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가정과 자녀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만족하게 살고 있는가?개인의 독특성, 관심사, 가치관을 무시하고 서로 머리 위에 앉으려고 경쟁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 이기주의`사회로 변모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머리 위에 앉는 사람은 제한된 소수이고, 나머지는 실패자들이다. 행복한 사람은 소수이고, 다수는 불행하다. 개인의 재능과 가치가 충분히 살려지지 않으니, 개인적으로도 손실이고 사회적으로도 손실이다. 다수가 불행하게 느끼면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사회 환경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나의 재능, 나의 관심, 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전문성을 키워간다면 나의 경쟁 상대는 나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의 재능, 나의 관심, 나의 가치를 충분히 살리면 성공이다. 모두 성공할 수 있고, 모두 행복할 수 있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를 `개인이 존중 받고 모두가 성공하고 행복한 사회`로 만들자.

2018-04-03

새 생명의 계절에 (上)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봄이 되었다. 봄은 사계절(四季節)의 시작이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고, 겨울에 수확한 것들을 즐긴다. 각 계절마다 할 일들이 많고, 즐길 것들도 많다. 모든 계절이 중요하지만 생각해 보면 봄이 사계절 중 가장 중요한 것 같다.봄은 사계절의 시작을 의미한다.그리고 생명의 시작이요 동물들도 동면(冬眠)에서 깨어나 활발히 움직인다. 이 기간에 우리들은 씨를 널리 뿌리고,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도록 물도 때 맞춰줘야 하고, 신경써 햇빛 조절도 해줘야 한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농경(農耕)의 상대적 중요성이 인간 사회에서 작아졌지만, 여전히 봄에 우리들은 일년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일한다. 학교도 봄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텃밭도 봄에 가꾸기 시작한다.그뿐이랴. 봄은 만발하는 꽃의 향기와 알록달록한 색을 즐기며 일년을 바라보는 희망의 계절이다. 자연의 사계절에서 우리는 인생(人生)의 네개의 단계를 배울 수 있다.인생의 첫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생의 봄에 우리는 인생을 계획하고 준비한다.인생의 봄은 아기가 새 생명으로 태어나서 대학생활까지 자라는 과정을 망라한다. 생명 자체가 고귀하기 짝이 없지만 이 어린 생명들은 깨물고 싶도록 순진하고 귀엽기도 하다.이 인생의 봄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먼저 인생의 뿌리를 깊고 넓게 내려야 한다. 무슨 말인가? 인생의 봄은 교육의 시기이다. 성장하는 어린이, 젊은이들이 배워야 한다.미국의 저명한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교육이란 인생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교육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육의 뿌리는 먼저 인생 철학의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자라는 동안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슨 목적으로 사는가?”에 대해 견고하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어떻게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릴 수 있는가? 인생의 뿌리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인성(人性)과 전문성이다. 먼저 인성이다. 미국의 억만 장자의 한 사람인 워렌 버핏은 사람이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세가지 자질(資質)을 갖추어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한다.첫째, 에너지, 둘째 지성(intelligence). 그런데 어느 개인이 셋째 자질을 갖추지 못하면 첫 두개의 자질들이 개인을 망조(亡兆)가 나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아무리 에너지가 왕성하고 머리가 좋아도 망하게 되는 세번째 자질은 정직성(integrity)이다. 생각해 보면, 궁국적으로 모든 것이 정직성과 신임(信任· Trust)에 달려 있다. 버핏은 사람을 채용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지원자가 충분한 에너지와 지성이 있다 하더라도 정직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더이상 볼 것 없다고 그는 말한다.교육에 대한 현자(賢者)들의 말을 인용해 본다. “교육은 사실을 배우기 보다, 사고력을 훈련하는 것이다.”(아인슈타인)“시험 점수를 높이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배움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지니 풀부라이트)“교육의 목적은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것 보다, 인생을 준비시키는 것인데, 삶의 목적은 목적 있는 삶을 보내는 것이다.”(로버트 번)“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누리며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정주영)“나와 내 가정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 가정만큼만 커진다. 내 직장을 위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직장, 이웃만큼 커진다. 항상 민족과 국가를 걱정하면 민족과 국가만큼 성장할 수 있다.”(김형석·철학자 겸 수필가)이처럼 교육은 목적있는 삶을 살게 해주고, 사고력을 개발시키고, 이웃과 사회, 민족과 국가를 위해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누가 그 교육에 앞장서야 하는가?부모들이다. 그들이 아니면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부모들이 그러한 교육으로 무장돼 있지 않다면 어떻게 그런 교육을 베풀 수 있겠는가?학생교육 이전에 부모의 인생철학이 중요하다.학생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2018-03-20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면서(下)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과거 왕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유교사상에 젖어와서 그런지 공복(公僕)인 한국 관료들의 권력이 막강하다. 그에 따른 폐해가 크다. 개인들과 단체들도 이에 책임이 있다. 개인들과 단체들은 정부에서 정책을 내릴 때까지 좀처럼 솔선하여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정부가 프로젝트를 시행하기 위한 프로포절(proposal)을 모집하면 이전 관심도 경험도 없이 벌떼처럼 너도 나도 응모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돈만 보이고, 공복인 정부와 관료들에게 목을 매고 사는 것 같다.정부가 솔선해서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까지 프로젝트에 관심도 없었던 사람이나 단체들이 응모 조건에 맞추어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고 응모하고 그제야 사람들을 모을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문제이다. 정부는 평상시에 그러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경험도 쌓고, 실질적인 준비도 해온 사람들이나 단체들에게만 프로젝트를 허락해야 한다.사회 행사나 심포지엄도 정부 `요인`들이 참석해야 의미를 갖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행사나 심포지엄은 보통 30분 정도 `요인`들의 각종 천편일률적인 `축사`로 시작된다. 마치 교주가 축복을 내리는 것 같다. 그런데 축사가 끝나면, `요인`들은 가장 지위 높은 사람을 선두로 우르르 퇴장한다. 그들이 퇴장할 때까지 행사가 잠시 중단되기도 한다. 요인이 퇴장하니 잠시 중단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사회 행사나 심포지엄이 요인들을 위해 진행되는 격이다. 요인들이라도 사회 행사나 심포지엄도 자신의 스케줄 때문에 도중에 떠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적이어야 하고, 통상으로는 토론에 참여하여 더욱 의미있고 실속있는 토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 행사나 심포지엄에 남아 토론에 참석하거나 참여할 요인들만 초대하여, 그들이 사회 행사나 심포지엄에 실질적인 공헌을 하게 해야 한다.필자가 믿기 어려운 다른 문제점은 관료나 정부가 바뀌면 프로젝트 또는 프로그램이 흔히 중단되거나 바뀐다는 것이다. 몇년 전에 한국 정부가 산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신인 또는 중견 중에서 잠재력이 좋은 전문가들을 뽑아 실무와 학문적인 배움을 겸하는 3년 과정의 아카데미를 개교하였다. 필자는 그 아카데미를 주관하는 관계자들을 만나 앞으로의 계획과 전략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관계자들은 선거가 1년 뒤고, 정권이 바뀌면 이 아카데미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면서 실질적인 장기계획과 전략을 갖고 있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이처럼 무책임한 관료들의 반응은 내게 충격적이었고, 장기 계획을 세울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 크게 실망하였다.그리고 1년 후 정권이 바뀌고, 몇 개월 후에 그 아카데미는 문을 닫았다.이전 예산으로 지어진 새 건물은 무용지물이 되었다.이러한 현상은 근본적으로 정부와 관료들이 공복으로 나라와 국민을 상전으로 섬기지 않고, 오히려 군림(君臨)하는 행태의 결과이다.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 새 학기마다 100명이나 되는 학생들과 더 잘 익히 알고 지내려고 한 학생당 15분간의 대화 스케줄을 세워 개인 대화를 나누었다. 15분이 지났는데도 학생들이 미국 학생들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교수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야 학생들이 일어나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한번은 교수휴게실에 몇 명의 교수들과 한담을 하고 있었는데, 환경미화원이 죄인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시선을 옆으로 해서 바닷게처럼 옆 발치로 걸어 들어와 그런 자세와 걸음으로 잽싸게 청소를 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허리 피시고 천천히 하세요`하니, 그분은 `네`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여전히 오금을 피지 못하고 청소하고 있었다.지난 번 글에도 언급했듯이, 병원에 가면 의사는 몇마디 묻고 자세한 설명도 없이 어떤 치료를 왜 하는지 설명도 없이 환자를 내보낸다. 의사는 `갑`이고 환자는 `을`이라는 사회 의식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 이유들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2018-02-27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면서 (中)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하루는 대기업에서 대형 버스를 몰고 와서 교수들을 데리고 공장을 견학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참석자 이름을 기업 직원이 체크하기 전에 사과를 구했다. 교수들을 잘 몰라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순으로 호명해야 하는데 가나다 순으로 호명하겠으니 양해해 달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기업체에서는 직위 별로 부르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단체에서 야유회를 할 때도, 흔히 직원들이 먼저 나와 야유회 시설들을 설치하고 준비한다. `상사`들은 나중에 나타나 뒷짐지고 구경하거나 평상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만 한다.야유회에서도 `상사` 부인들과 직원 부인들이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상사는 야유회에서도 상사이고, 상사 부인은 부인들 사이에서도 상사 부인이다.한 번은 기업의 남자 임원과 그의 방에서 대화하고 장소를 이동하게 됐다. 서류가 들어있는 상자를 함께 옮겨야 하는데 여직원을 불러 상자를 들고 따라오게 하는 것이 아닌가?여직원이 자신의 상자를 들려 해도 옆에 있는 남자 임원이 손수 들어줄텐데, 자기 서류 상자를 여직원을 시켜 나르게 하다니 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한국에서 빌딩에 들어가고 나올 때 뒤에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 잡아주는 것을 보기 드물다. 뒤에 누가 따라오는 줄 알면서도 뒤를 쳐다보기는커녕, 본인만 들어가 버린다.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고 나갈 때도 비슷하다.미국에서는 흔히 앞사람이 문을 열고 뒷사람이 먼저 들어가도록 문을 붙들고 기다려 준다. 뒤에 들어가는 사람이 노약자, 여자인 경우는 예외가 없다.아는 사람들의 조직과 사회에서는 계급의 고하가 철저하다. 그러니 계급의 고하가 분명치 않은 공공장소에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다.학계에서 기술혁신 개발기관으로 제일 유명한 곳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MIT의 미디어 랩(Media Lab)일 것이다.그 랩에는 25개 정도의 연구팀이 있는데, 각 팀을 주도하는 연구 책임자들 모두가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는 않다.미디어 랩의 현 총괄 책임인 일본계 미국인 조이이또는 2011년에 임명 당시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벤처 기업가다. 40년 이상 랩에 있었고 지금은 부 책임자 겸 연구실 책임자도 박사학위가 없다.한국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학위가 있어야 하고 지위 서열 단계를 밟아야 한다.미디어 랩의 웹에 연구팀 책임자들이 소개되어 있다. 책임자들 이름과 연구팀 이름만 적혀 있다. 박사인지 아닌지, 교수인지 연구원인지, 정교수인지 부교수인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직함과 서열이 분명히 표시되는 한국의 관행과 너무도 다르다.혁신 대학교육으로 잘 알려진 올린(Olin) 공과대학의 교수 명단을 봐도, 알파벳 순으로 나열돼 있고, 총장 등 요인들도 알파벳 순으로 중간 중간에 끼어 있을 뿐이다. 한국의 어느 학과를 방문 했는데, 벽에 학과 성원들이 소개돼 있었다.위에 학과장, 부 학과장,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직원 순으로 적혀 있었다.최근 아래 다리가 좀 부어 오른 것 같아 주치의를 찾아갔다. 의사는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가지 질문들을 물었고 나와 거의 30분을 사용하였다. 가능성있는 여러 원인들을 내게 알려주고, 나는 어떤 치료 방법을 선호하는지 묻기도 했다. 내게 매우 흡족한 의학 상담이었다. 상담이 깊어지면서, 한국에서 병원에 가 치료도 받고 의사와 상담도 했었지만, 의사가 이렇게 자세히 환자와 상담하기는 드물 것이라고 생각됐다.한국에서는 시간도 매우 짧지만, 일반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하고 묻는 기회가 거의 없다.그 다음 주에 병원으로부터 설문지를 받았다. 그 설문은 환자가 의사의 스킬에 만족하는지, 그를 능력있는 의사로 보는지, 내 상태에 적합한 치료를 했다고 보는지 등 의사의 일반적인 능력 평가로부터 시작되었다.내가 놀란 것은 의사가 내 말을 귀담아 듣고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 왜 진행하는지 잘 설명해 주었는가라는 질문들이었다.

2018-02-12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면서(上)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한국에서 쇼핑을 하던 어느 날 미국과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미국에서는 점원이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물건을 쇼핑 봉투에 넣어 손님에게 건네줄 때, 서비스를 받은 손님은 물건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점원에게 “땡큐”라고 흔히 말한다. 점원은 “유 워 웰컴(천만에요)”라며 자연스럽게 대응한다. 손님이 점원에게 “땡큐”라고 말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나는 한국에서 쇼핑 중에 손님들이 물건을 건네받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이 일반적인 관례인지, 예외적인지 확인하고자 그후 쇼핑할 때마다 계산대 줄에 서서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바로는 손님이 물건 받으면서 점원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손님이 서비스하는 점원에게 왜 “땡큐”라고 하지 않을까 궁금했다.아침에 운동하기 위해 둘레길을 걸으면 맞은 편에서 운동하는 분들과 마주보며 지나친다. 또는 나보다 빨리 걷는 분은 나를 패스하여 지나가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이때마다 “굿 모닝”하며 인사하는 것이 일반이다.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인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맞은 편에서 운동하는 분들과 마주 보며 지나가면서 인사를 나누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를 패스해 지나가는 분에게 내가 먼저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를 하면 어떤 분은 놀라는 기색으로 인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대꾸도 없이 지나가 버린다. 왜 그럴까?하루는 어느 총장 부인 친척이 미국에서 방문하여 총장 부인과 같이 산보를 하고 있었다. 반대 편에서 한 청년이 조깅을 하며 지나가면서 “안녕하십니까?”하고 인사했더니 총장 부인이 대응도 안하고 “나를 언제 안다고”라고 중얼거리더란다. 내가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으나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다.왜 서로 인사하지 않을까 궁금했다.그런데 아는 사람들끼리의 인사는 깍듯하다. 자세도 단정히 하고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그런데 인사 하는 방식이 대칭형이 아니다. 한쪽은 허리를 많이 굽히고 다른 쪽은 뻣뻣이 서서 인사한다. 전자가 먼저 허리를 굽히고 인사해야 하고 후자가 손을 내밀어야 전자는 두 손으로 악수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인사는 함께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을`이 `갑`에게 드리는 것이고 `갑`은 `을`을 축복하듯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 아는 사람들끼리 이처럼 서열에 따라 예의를 갖추어 깍듯이 인사하는 것을 보고, 손님이 점원에게 고맙다고 인사 않고 둘레길에서 마주 지나가면서도 인사하지 않는 이유를 내 나름대로 알게 되었다.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보다 신분이 먼저다. `갑을`이라는 사회문화 때문이다 `갑`이 `을`에게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 문화다.손님은 `갑`이고 점원은 `을`로 간주되는 문화다. 어깨를 스칠 정도로 좁은 둘레 길에서 마주치며 지나가도, 누가 `갑`인지 `을`인지 알아야 `을`이 인사할 수 있는 문화다.그러니 내가 먼저 인사할 수 없다. 내가 먼저 인사할 수 없으니 서로 고개는 약간 돌리고 숙인 채 곁눈으로 상대방을 살피며 지나가게 된다. 어색한 장면이다. 그러나 사람이 먼저다. 신분은 어느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 필요할 뿐이다.미국에선 사람 이름이 먼저 표시되고 직함은 다음에 쓴다. 한국은 반대로 직함이 먼저 오고 이름이 나중에 온다. 미국 대학 교수실 문에는 보통 교수 이름만 씌여있다.내가 박사 공부할 때 내 지도 교수 옆방을 쓰고 있었는데 그의 방문에도 내 방문에도 개인 이름들만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교수` 직함이 붙어 있다. 어떤 경우엔 `조교수,` `부교수` 서열까지 붙여 놓는다.단체에서 야유회를 가면 흔히 직원들이 먼저 나와 야유회 시설을 설치하고 준비한다. `상사`들은 나중에 나타나 뒷짐지고 구경하거나 평상 서로 대화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만 한다.야유회에서도 `상사` 부인들과 직원 부인들이 쉽게 어울리지 않는다.

2018-01-30

우리의 새해 목표(下)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필자는 지난 칼럼에 새해에 개인들이 각자 자주성(autonomy)을 넓히기로 결심하면 좋겠다고 썼다. 이는 자신을 위한 새해 다짐이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늘은 개인의 자주성을 보완하는 하나를 추가하려 한다. 새해 다짐으로 내가 속해 있는 사회와 조직을 항상 염두에 두는 `시민 정신`을 새해에 기르면 좋겠다. 시민정신에 대해 필자가 지난 칼럼들에 언급한 문구들을 여기에 엮어 본다.우리 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는 동안 시민의식, 주인의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몸은 커졌으나 사고방식과 행동은 어린이 같은 격이다. 시민의식은 먼저 시민이자 주인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성을 갖춰야 하며, 동시에 스스로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지는 윤리적 태도와 행동을 기반으로 세워진다. 이는 `개인없는 개인 이기주의`와 정반대이다.내가 미국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한자(漢字)를 하나 가르쳐 줄텐데, 의미가 심오하면서도 간단하기 때문에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 다음, 한자로 사람(man)을 어떻게 쓸 것 같으냐고 내가 물으면 학생들은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칠판에 사람 인(人)을 크게 써 보이고 `왜 사람을 이렇게 표기하는가?`라고 물으면, 한자를 전혀 모르면서도 미국학생들은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아인슈타인은 그의 저서 `내가 보는 세상(The World As I See It)`의 첫 대목에 그는 현재 생존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과거에 생존했던 수 많은 사람들 덕분에 산다고 기술하고, 자신이 받은 대로 남에게 주어야 함을 `매일 백 번씩`자신에게 상기시키고 감사한다고 썼다.내 주변을 둘러보라. 내가 만든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내가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집, 먹는 음식, 시속 100㎞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강을 쉽게 건너게 해 주는 다리,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 교육, 행정, 국방, 법, 치안 등 다른 이들 덕분에 우리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수 많은 것들을 즐기며 산다.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홀로 산다면 얼마나 고생일까? 씨 뿌리고, 재배하고, 수확해야 곡식을 얻는다. 곡식도 요리해야 먹을 수 있다.옷은 어떻게 만들지? 집도 내 손으로 세워야 하는데 갖가지 재료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건축하지? 자동차 비행기도 내가 만들어야 여기 저기도 다닐 수 있는데, 언제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설계하고 고안해 만들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미국이 튼튼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뤘던 1960년대 로버트 케네디는 `국민생산`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물질적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같으나 오히려 `행복과 만족의 가난`에 빠지는 위험성을 경고했다.그는 `국민생산`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생산적이고 행복과 만족을 고조하는 활동도 열거한다. 어린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적 수준, 행복한 결혼 생활, 공개적 토론의 지적 가치, 용기와 지혜, 서로에 대한 정, 나라에 대한 긍지와 사랑, 정부관리들과 지도자들의 충실성 등 `국민생산`통계에 포함되지 않지만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그는 지적했다.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말을 묵상해본다. “잘 먹고 잘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좋은 일을 해야지…. 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누리며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최근 어느 신문에 한국에서 한국인과 결혼하고 사는 덴마크인이 “덴마크인이 행복한 이유요? 서로 돌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그의 한 대목은 이렇게 말한다.“나 자신의 귀함을 알고 다른 사람 또한 귀하게 여기며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며 내 이웃을 돌아보고 함께 살아간다면 어느 순간 행복이 찾아와 있을 것입니다.”새해에 나의 자주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여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를 보다 밝고 행복하게 만들자.

2018-01-16

우리의 새해 목표(上)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새해 초에 우리는 흔히 새해 목표를 세운다. 한국 사회가 새해 목표로 하면 좋겠다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들을 적어본다.먼저, 개인들이 각자 자주성(autonomy)을 넓히기로 결심하면 좋겠다. 자주성을 넓히기 위해 자신의 발로 스스로 서야 한다. 어떻게 스스로 설 수 있을까?각자가 자신의 재능, 자신의 관심사,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추구하자. 이렇게 하면 나의 독특한 위치를 개발하게 되고,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 보다 일이 더 쉽게 성취되고, 더 행복하게 느낄 수 있다.이때 나의 경쟁자는 나 자신 뿐이다.내 업적은 내가 얼마나 남보다 더 잘했는가 보다는 얼마나 내 재능과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했느냐에 의해 측정된다.내 자긍심은 내 관심사에 얼마나 내 열정을 쏟았느냐에 따라 느끼게 될 것이다. 내 삶의 보람은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추구했는가에 의해 정해질 것이다. 이처럼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과정, 그리고 내가 쏟아 넣은 열정에 역점을 두면, 비록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너도 나도 모두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미국에서 35년 살고 2010년에 한국에 와서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가지 목표를 향하여 경쟁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독특한 개인적 목표들을 추구하는 것을 찾기 어려웠다.모두가 오직 한 목표, 즉 돈 많이 벌고 좋은 집과 물질을 누리며 높은 사회적 신분 또는 권력을 즐기는 것에 집중하고 모두가 물질, 명예,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남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성공으로 간주 된다면 소수만 `성공`하고 행복해 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패자`가 되고 불행하게 느낄 수 밖에 없다.어린이들과 학생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하는 것을 새해 목표이자 장래 커리어(career)의 지침으로 삼도록 권한다.남이 하는대로 하거나 남과 경쟁하기 보다 자신의 재능, 열정, 가치를 추구하도록 하자.단기적으로는 현 사회의 학벌주의, 사회신분주의 장벽과 싸워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 한국 사회 문화와 관행도 점차 자주성 있는 사람을 선호하지 않겠는가?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기로 새해 목표를 세우자.그 선물은 다름 아닌 부모의 시간이다. 자녀교육은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학교는 주로 지식을 가르쳐 주지만 인성교육과 사회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말과 생활 행실로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서 내 자식이 가장 귀중하다면 나의 가장 소중한 것, 즉 부모의 시간과 부모 자신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젊은이들은 부모와 사회에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세워나가는 것을 새해 목표이자 삶의 지침으로 삼도록 권한다. 학자금, 자동차와 집 등을 내 손으로 장만하도록 하자.부모의 도움을 받더라도 제3자의 빚과 똑같이 충실히 사랑과 돈으로 갚아나가자.사회인들도 보다 더 자주성을 발휘하는 것을 새해 목표로 삼도록 권한다.내 부서, 내 회사, 내 동네를 내 것처럼 알고, 무엇이든 도움되고 향상성 있는 일을 솔선하도록 하자. 매니저들, 임원들도 자주성을 스스로 나타내고, 직원들도 그리하도록 부추기자.서로 눈치 보면서 움츠리고 윗 사람 지시만 기다리지 말자. 능동적으로 동료들에게 접근해 아이디어를 나누고 윗 사람에게도 접근하여 자신과 다른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여 조직의 주인처럼 적극적으로 활동하자.매니저들, 임원들은 직원들이 이처럼 하도록 독려하고, 자신들도 솔선수범하자.은퇴한 시니어(senior)들은 그들의 `황금기`를 적극적으로 선용할 수 있는 몇 개의 프로젝트를 새해에 시작하도록 권한다.일을 꼭 해야 하지 않는다면 기본 생활이 보장된다면 일생에 하고 싶었는데 가족을 돌보고 일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들을 즐기자.또한 사회를 위한 일에도 시간과 정력, 그리고 돈도 사용하여 사회적인 약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돕자.

2018-01-03

인생 `황금기`는 따로 없어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필자의 지난 칼럼들은 사회적인 측면과 사회 문화에 초점을 두었다. 오늘은 필자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눌까 한다.필자는 올해 초 `은퇴`하기 전까지 필자의 대학시절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했었고, 그 때로 돌아가서 영원히 머물러 있고 싶어했었다. 대학생은 법적인 성인의 특권과 자유를 누리면서도 성인들이 짊어지는 가족이나 자신을 부양해야 할 의무에서도 면제되어 사는 것을 즐기고 싶은 `얌체`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은퇴하고 보니 훨씬 더 좋은 황금기를 즐기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지금 시점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자유 때문이다.이제는 내 자녀들도 성장하여 독립했으니 자녀 양육의 짐에서 벗어났고 국가 사회보장제도와 내가 저축한 것으로 `먹고 살 것`과 건강보험은 보장되어 있고 목숨과 같은 `시간`을 내 뜻대로 쓸 수 있으니 과연 황금기가 아니겠는가?그런데 회고해 보니 나는 평생 황금기를 누리며 살아온 행운아 임을 최근 깨달았다.한국전쟁 직전에 태어나 전쟁 기억도 없고 자라는 동안 나라 전체가 가난했으니 내가 가난한 줄도 모르고 살았고 학업 성적과 학벌이 목숨 같이 중요한 사회에서 걱정 없이 지내다가 1970년 중반에 20대 젊은 나이로 당시 세계 최강국인 미국으로 이주하여 자녀들 낳고 혈기 있게 35년을 살았다.생각해 보니 지나간 매 시기가 나에게 `황금기`였다. 지난 7년간 한국에서의 생활도 황금기였다. 내 인생에서 그처럼 강한 목적을 갖고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연구에 몰두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터득하기를 즐기는 나는 미국에서 대학생들에게 경제와 비즈니스를 가르치다가 우수한 한국 공과대학 학생들에게 영어로 경제와 비즈니스를 가르치는 새 경험을 즐겼다. 공과대학에서 내가 좋아했던 과학과 공학에 대해 내 능력이 부족하지만 겉이라도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내게 무척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그곳에서 몇 년간 혁신교육에 대해 연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도 했고, 다시 공부한다면 교육학을 하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혁신교육 연구를 하면서 교육학은 물론, 심리학, 사회학, 역사, 인류학, 과학, 공학 전반을 아우르는 다제적 연구를 즐겼다.사람의 신체를 독립적으로 주로 다루는 의학에 비해 교육은 지성, 감성, 영성까지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전인을 다룬다. 또한 교육은 사회문화의 산물인 만큼 사회적 요소를 고려하여 교육해야 하고 또 교육이 사회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교육은 자라는 세대들이 미래사회를 위하여 대비하도록 하는 수단이므로 교수들은 미래 기술과 산업, 그리고 미래의 사회 변화를 잘 주시해야 하고 학생들을 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은퇴하고 나의 제2의 고향 미국으로 돌아와 요즈음은 아침, 저녁에 어린 손자 손녀들과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같이 보내는 희열을 맛보고 있다.정기적으로 운동도 한다.수영, 걷기, 댄스 등을 하면 신체 건강 못지 않게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느낀다.인터넷으로 홍수와 같이 쏟아지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읽으면서 은퇴 하기 잘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품기도 한다. 특히`페북`을 통한 다양한 정보 공유, 의견 교환은 공통 관심사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 간에 찬반의견을 나누며 배우는 맛을 즐기게 해준다.무엇보다도 나를 20여 년 길러 주신 부모님, 나와 지금까지 40여 년 인생의 겸허한 반려자인 내 아내가 내 `황금 인생`의 최대의 공로자들이다. 한 가지 불안은 앞으로의 건강이다. 건강이 나이와 함께 약해지는 것은 불가항력이겠으나 아직은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니 나는 행운아다.은퇴하고도 쉬는 시간없이 뱅뱅 돌아가며 세월이 간다.빠르게 짧아지는 인생이 아쉽기도 하지만 의미있는 일을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은퇴하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한다.

2017-12-19

기성세대의 개혁정신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역사적으로 많은 개혁들은 기존하는 부조리를 뜯어고치고자 하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기존 질서와 문화가 개혁의 온실이었다. 마틴 루터는 500년 전 당시의 기존 교회에서 행해지는 부조리를 뜯어고치고자 행동을 취하였고, 그 운동은 프로테스탄트교 또는 개신교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까지도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인 성서를 당시 상용언어로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번역하는 사람들을 화형에 처하기까지 했고, 악명 높은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었고, 교황과 왕들 간에 끊임없는 권력 투쟁 등 세속적으로도 수치스러운 행위를 자행하고 있었다. 19세기에 칼 마르크스가 유물론 사상과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한 것도 당시의 두가지 기존 체제이었던 중세 교회와 봉건제도에 대한 도전에서 싹튼 것이다. 교회의 부조리와 모순적인 행위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유물론 사상을 발전하게끔 만들었고, 사회를 지주 계급과 농노 계급으로 나눴던 착취적인 봉건제도는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하는 발판이 됐다.시장경쟁 자본주의가 18세기에 싹트고, 1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자본가 계급에 의한 노동자 `착취`가 어린이 노동자에게까지 확대되면서 공산주의 이론에 힘이 가했으며 1917년에는 러시아에서 공산 혁명이 발생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발생한 남북전쟁도 당시의 기존질서의 하나였던 노예제도를 쟁점으로 하여 일어났다.미 백인들은 남부의 거대한 땅의 농산물을 다루기 위한 편법으로 흑인들을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수입`하였고, 노예들은 대(代)를 이어 인간의 권리와 존엄이 짓밟히며 살아오고 있었다. 인류평등과 사랑을 기초로 한 기독교가 강했던 남부지역에 노예제도가 번창하였던 것도 종교가 노예제도를 정당화 또는 묵인했었기 때문이었다. 흑인들이 겪었던 참혹상황들은 저절로 우리의 눈을 적시게 만든다.중세부터 20세기까지 서구 국가들이 유지해왔던 식민제도 역시 그러하다. 식민 정책은 3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원주민 지역에 상선이 들어가 원주민들의 물질욕구를 사로잡고, 다음에 선교인 배가 들어와 원주민들의 정신과 영혼을 사로잡고, 군인들 배가 들어와 무력으로 지역을 장악한다. 미국만 해도 미대륙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개척`하는 과정은 `용맹`의 양면성인 개척정신과 무자비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백인 개척자들과 대결하는 원주민들의 수난 과정도 역시 눈을 적시게 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개혁들은 얼마의 기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도 다른 문제들을 대두시켜 또다른 개혁을 필요하게 한다. 새로운 기성세대와 질서의 개혁이 필요하다. 개신교가 500년 전에 가톨릭교회의 세속적으로도 수치스러운 행위들을 일부 제압했으나 교리와 종교적 관행을 제외하면 가톨릭교회와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왔고,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교파로 분열됐다. 과학과 기술, 그리고 지식의 발전과 함께 이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하여 종교의 힘이 일상생활과 인류의 문명 발전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공산주의 제도는 70년 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시점으로 세계적으로 붕괴되었으나 이제는 민주주의 정치의 부조리들이 세계적으로 표출되어 사회 불안정감은 계속되고 있다. 링컨이 19세기 중반에 노예해방을 선포하고도 흑인 차별정책은 그 후 100년간 지속되었고 차별적 관행의 잔재는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군사력에 의한 식민제도는 20세기에 거의 사라지고 피 식민국가들이 독립하였으나 식민지 세대에 억눌려 있었던 내부파벌이 폭발되고, 독재자들이 생명과 인권을 유린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무력 충돌들을 일으키면서 경제후진과 사회혼란을 초래하였다.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헌법상의 민주정치를 실현하고 우리의 사회문화와 관행들을 끊임없이 개선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은 물론 기성세대들도 앞장서야 한다.

2017-12-05

고마운 분들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지난 2010년 미국생활 35년 만에 한국에 와 보니 내 눈에는 그동안 강산이 서너 번이 아니라 수없이 변했다. 한자(漢字)도 사라지고, 새로운 단어들도 못 알아듣겠고, 한국화된 영어를 한국어로 표기하니 읽고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역이민 생활을 하는 셈이었다.특히, 돌아다니려면 길도 서툴고, 새 지역도 많이 생기고, 서울에선 전철 버스 노선도 하도 많아, 미국 와서 어리둥절 하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때마다 지나가는 분들에게 묻곤 했는데, 하루는 세 분이나 친절히 시간 내어 가르쳐 준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오전에 서울 동쪽 지역에 소재한 대학을 방문 후, 학교 정문 앞 거리에서 인천 송도로 가기 위해 인근 전철 정거장을 찾고 있었다.마침 길을 건너기 위해 기다리던 한 학생에게 물었더니 이리저리 가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재빨리 길을 건너고, 우리는 다음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그 학생이 반대편에서 우리를 향해 다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우리에게 길을 잘못 알려주었다고 하며 다시 설명해주고, 이번에는 우리와 함께 길을 건너고 어느 지점까지 동행해 주기까지 했다.전철역 안에서 들어와서는 송도로 가기 위해 어느 전철과 버스를 타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미리 확인해야 했다. 마침 편의점이 있어 주인에게 물어보았는데 주인은 손님들이 북적이고 있었고 물품가격을 지불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손님들도 아랑곳 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스마트폰을 검색해 주었다. 그분의 설명대로 연세대 입구 전철역까지 와서 송도 가는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버스번호 별로 구분된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전광판에는 그 버스가 곧 온다고 하고도 세 번이나 오지 않아 옆의 학생에게 물었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고 버스회사에 전화까지 하고 노선의 특수성 때문에 우리가 가는 방향과 반대편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알려줬다.이제는 그만 가 보라고 해도 우리가 타는 것을 확인하겠다며 그 학생도 함께 우리 승강장으로 이동하지 않는가. 다음 버스가 오기까지 오래 걸려 기다리면서 그 학생과 전공과목과 장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한 번은 스마트폰 네비에 의존하여 대전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대전 입구에서 스마트폰 배터리가 소진되었다. 마침 길가에서 요구르트, 우유 등을 파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니 그 분도 물품을 사려는 손님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오히려 내가 그분에게 나는 기다릴테니 손님 서비스부터 하시라고 말해야 했다.그 분의 설명을 듣고 내 차로 돌아와서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그 분이 상품들을 자리에 두고 우리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더 좋은 길을 찾았으니 그리로 가라는 것이다.지난 여름에는 아내와 함께 포항에서 미국으로 오기 위해 네 개의 육중한 짐과 세 개의 작은 짐을 들고 인천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주차장에 짐들을 내려놓고, 한 짐씩 끌고 승차장까지 가야 했다.첫 짐을 끌어다 놓고 다른 짐을 가지러 오는데 여자 두 분이 한 짐씩 끌고 오는 것이 아닌가? 한 분은 짐 하나를 더 가져다 놓으려고 다시 주차장으로 가려고 했다.여자분들에게 힘든 일이므로 내가 하겠노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가게 했다.한국에서 최근 7년간 있으면서 이 외에 내가 길을 묻거나 교통편에 대해 물으면 친절히 시간 내 준 고마운 분들은 엄청 많았다.40여 년 전 미국으로 떠날 때도 느꼈지만, 개인적으로 우수한 재능과 좋은 마음씨를 가진 분들이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서구 사회 보다 많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 갑을 사회`에 살다 보니 집단으로서의 사회행위는 서구 사회 보다 많이 뒤떨어진다고 필자는 본다.개인들의 좋은 자질, 성품들을 공동 사회에서도 십분 발휘하여 우리 사회가 더욱 윤택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도록 만들자.

2017-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