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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회문화 (下)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우리 모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지만 또한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우리 인생은 다분히 우연의 연속이기도 하다.내가 태어난 것도 그렇다. 내가 나 자신을 디자인 해서 태어나게 된 것도 아니고, 내 부모님이 나를 디자인 해서 태어나게 된 것도 아니다. 내가 잉태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수 없이 많은 정자 중 하나가 성공하여 지금의 내가 생기게 되었다. 내 부모님이 그 날 그 시각에 결합하지 않았으면 나의 존재는 영원히 불가능 했다. 부모님들이 서로 만나게 되고 결혼에 이르는 과정도 생각해 보면 수많은 우연의 요소가 크다. 그러니 내가 잘났다고 자만해도 안 될 것이고, 남만 못하다고 자소해도 안 될 것이다.그러나 결혼은 전혀 남남인 무촌(無寸)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일심동체의 무촌(無寸)이 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의 하나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신랑 신부는 자신들의 배우자 선택과 미래 가족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자주권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선택을 해야 한다.결혼식 준비도 그러해야 한다. 서양에서 신랑 신부는 그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양 부모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자신들의 결혼식과 피로연을 갖는다. 결혼식은 30분이면 충분하고, 피로연은 밤이 깊도록 계속되기도 한다. 신부 신랑과 서로 친밀한 사이이니 피로연은 자연스럽다.신랑 신부의 젊은 친구들이니 사회적 장벽 없이 서로 인사하고 어울린다. 신랑 신부의 날이다. 신랑과 신부가 같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물론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 신부와 신랑의 아버지, 하객들이 서로 노래하고 춤추고 마시며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한다. 신랑 신부는 미래의 삶을 자신들의 힘으로 스스로 개척하고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결혼 후 여러 해 자신들의 힘으로 저축하고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한다. 부모가 도와주기는 하지만 신랑 신부는 자신들의 힘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들의 가족을 세워 나간다.우리 한국은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갑을 문화`가 새로운 인생의 출발지점인 결혼식부터 영향력을 행사한다. 부모들이 결혼식을 열어 주고, 부모님들과 관계를 가진 분들이 결혼식의 주빈을 이룬다. 그날 많은 하객들은 신랑 신부와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신랑 신부와 모르는 사이니 하객들의 축하는 형식적이다. 하객들은 끼리끼리 밥먹고 헤어진다.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날이기보다 부모들의 날이다. `갑`인 부모들이 `을`의 결혼을 시켜 주는 것이다.그날은 부모들의 사회적 신분을 과시하는 날이다. 소홀히 다룰 수 없다. 단지 몇 시간 진열하고 버려지는 식장 입구에 즐비하게 전시한 화환들과 하객들의 사회 신분이 부모님들의 재력과 사회신분의 상징이다. 따라서 결혼식은 `허례허식`적이고 형식주의로 흐르게 되고 낭비가 많다. 멋있게 보여야 하고, 비싸게 차려야 한다. 결혼식장은 공장의 생산과정처럼 움직인다. 축하금도 부모님들이 관리한다.집은 결혼시초에 부모가 사주는 것으로 자식들은 기대한다. 결혼은 부모들의 허리가 휘어지게 만들고 마음에 큰 부담을 안기고 빚까지 짊어지게 한다. 결혼식이 즐겁기 보다 부담스러운 행사다.눈치 때문에 간략하게 할 수도 없다.젊은 신랑 신부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생활을 개척하는 마음 태도를 갖도록 해야 한다. 건강이 있고, 젊음이 있으니 내 생활을 내 힘으로 세워나가자. 부모들의 돈을 내 돈처럼 귀히 여기고 그분들의 돈을 노후를 위해 쓰시도록 효도하자.다른 문화의 장점들을 우리 문화에 이식하여 우리 문화를 더욱 더 아름답게 만들자.

2017-11-07

사회문화 (中)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교육처럼 중요한 활동도 없다. 건강이 중요하고 따라서 의술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겠지만 교육이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중요성은 더욱 지대하다. 육체 건강을 주로 다루는 의술에 비하면 교육은 인간의 정신, 감정, 인생관, 철학관, 인성 등 전인(全人)을 다룬다. 교육 철학자 존 듀이는 “교육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삶 자체다”고 말했다. 주로 개인의 복지를 다루는 의술에 비하면 교육은 과거와 현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미래를 움직인다는 면에서 그 영향력의 폭이 넓고 중요성이 막중하다. 넬슨 만델라는 “교육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라고 했다. 인간의 신체는 인종적으로, 시대적으로 보편성을 지니므로 의술의 도입이 가능한, 다분히 기술적인 분야다. 반면 교육은 다양한 개인의 재능, 개성, 관심사, 장래 목표들을 다뤄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재능, 관심사, 가치관에 적합한 분야를 자유롭게 추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교육은 다양한 사회 환경과 목적에 맞추어 진행돼야 하기 때문에 과학, 공학,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접근 방식이 사용돼야 한다. 이처럼 교육은 개인이 자신의 특성을 최대화 하고 동시에 사회질서와 발전에 공헌하도록 지도하고 훈련하는 역사적, 사회적 사명을 수행한다. 그런데 한국 현 교육은 간단하다. 목표는 하나다. 명문대학에 가려고 목숨을 건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운동도 사회생활도 인성교육도 없이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인생의 첫 18년을 보낸다. 모든 생활이 직접, 간접으로 대학입시를 위한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대졸 실직자 비율도 따라서 높다.왜 너도나도 대학을 가려 하는가? 대졸이 아니면 시집도 장가도 가기 쉽지 않은 사회문화 관습 때문이다. 대졸이 아니면 `갑을` 사회에서 `을`로 평생 머물 가능성이 높은 사회문화 때문이다.그러면 왜 명문 대학 입학에 목을 매는가? 너도 나도 대학에 가니 명문 대학을 졸업해야 명문 직장에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명문 직장에 들어가야 `갑`에 속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포스코의 초대 이사장 고(故) 박태준은 발전을 가로막는 한국 전통과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우리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부정적 요소들이 대부분 조선시대에 뿌리내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반들이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논리에 따라 생산활동에 종사하는 양민들을 경멸하고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힘을 쏟은 결과 나라의 생산활동, 무역활동이 위축됐던 것입니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자신의 일에 비하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해 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생산직 근로자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직업적 자부심을 북돋워 주어야 합니다.”그러면 명문 대학의 학생들은 진정한 배움을 경험하는가? 한 유명대학 교수진들이 자교 학생들을 위한 지침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현행 교육제도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각 학생들의 진로와 인생관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뤄주지 않고 지나치게 입시준비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지식에 의존해 진학할 대학과 학과를 결정하고 결국 정체성,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 그리고 인생목표, 비전, 소명, 사명 등에 관해 거의 백지상태인 수준으로 대학에 입학한다. 대학 진학한 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인생의 의미와 목적 및 방향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문제의 시발점은 `갑을` 문화에 있다. 그 문화권에서 `갑`에 들어가려는 심정은 자연적이다. 그러나 부모들은 내 자녀들이 진정으로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부모들은 내 자녀들이 각자의 다양한 재능, 개성, 관심사, 장래 목표들을 추구하도록 지도하자.

2017-10-24

사회문화(上)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필자가 35년간 미국에서 활동하고 2010년에 한국에 와서 크게 두 번 놀랐다. 필자의 정신세계 시계가 1974년에 멈춰 있었기에, 두 시대의 한국이 선명하게 비교된다. 도착하자 첫 눈에 놀란 것은 물론 눈부신 경제성장과 크게 윤택해진 생활이었다. 행복한 놀람이었다.한 예로, 40년 전에는 신혼여행을 보통 2~3일 국내 명소, 명산 지역에서 보냈는데, 이제는 7~10일간 해외여행을 가고 있다. 중고등학생 수학여행도 종종 이와 비슷하고, 대학생들 일반인들도 개인 여행을 주로 해외에서 보낸다. 공공시설들도 많이 현대화되었고, 협소한 토지의 장점을 살려 교통 통신 등 인프라도 현대식이고 효율적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물질경제의 변화가 있어왔다. 한국에서 지내면서 필자는 두번째 크게 놀랐다.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놀람이다. 한국의 정신문화, 사회구조가 40년 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물질의 윤택함과 대조적으로 정신문화, 사회구조는 과거의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OECD권에 속하는 경제수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하위수준의 행복지수를 갖게 되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한국의 사회문화의 몇 특징들을 연재 글로 논해 본다.첫째, `갑을` 문화가 사회행동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고 있다. 흔히 보는 예를 들면, 행사가 열릴 때 보통 여러 명의 `귀빈`들의 축사로 30분 정도 보낸다. 축사 내용도 보통 천편일률적이다. 축사는 보통 참석한 이들 중 사회적으로 제일 신분 높은 `귀빈` 이름부터 시작해 모든 `귀빈`들을 열거한다.축사마다 사회적으로 신분 높은 `귀빈`이름이 반복되니, 마치 신도들이 교주나 신으로부터 축복을 기다리는 종교 행사같이 보일 정도다. 행사의 목적과 관계없이 사회 권력의 서열은 한국에서는 항상 절대 명제다. 축사 후 보통 `귀빈`들은 곧 행사장을 떠난다. `일반 귀빈`들은 기다렸다가 제일 신분 높은 `귀빈`을 선두로 수행원들을 포함해 일제히 우르르 떠난다.필자가 미국에서 다양한 행사에 참석했지만, 사회자 또는 행사 주최의 대표가 행사의 목적을 소개한 후 행사 본 내용으로 신속히 진행해 들어간다. 보통 `귀빈`들 자리가 따로 있지 않고, `귀빈`들은 축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여하기 위해 행사 중에 자리를 지킨다. 한국에서는 학교 세미나회의장, 문화강당에 교수자리가 따로 있거나, 아니면 교수들끼리 학생들끼리 따로 앉는다. 교수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손실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교수들은 `갑`이고 학생들은 `을`이라는 사회의식을 강화해 시대를 역행한다.작년에 미국 대학에 한 학기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교수들과 학생들이 같이 앉아 세미나를 즐기고 토론하는 대조적인 장면을 자주 보았다. 백발에 허리도 구부정한대도 계속 배우겠다고 젊은 교수들, 학생들과 같이 앉아 있는 은퇴한 교수들의 모습은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하였다.MIT에서 세계적인 혁신기술개발의 선구자로 알려진 미디어 랩(Media Lab)의 모든 지도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을 자신의 학생들과 연구원들 랩 안에 갖고 있다.사무실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학생들은 지도교수와 지리적으로 심적으로 항상 가까이 지낸다. 스탠포드의 혁신교육으로 유명한 디스쿨의 주임교수는 학생들 실험실 중앙에 학생들과 나란히 자신의 사무실을 갖고 있다. 무심코 보면 그의 자리를 학생들 자리와 구별할 수 없다.그의 사무실은 칸막이 벽도 없어서 사적 대화는 별도의 회의실에 가서 한다고 주임교수는 필자에게 설명했다.미디어 랩이나 디스쿨이 공간이 없어서 그와 같이 지도 교수 사무실을 학생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그것이 그들의 문화이고, 그 문화는 협업을 장려하고 창의와 혁신을 가져온다.다른 문화의 장점들을 우리 문화에 이식하여, 우리 문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자.

2017-10-11

결실의 가을(下)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다음 주에 두 가지 축제와 축하가 벌어진다. 한국인들은 자연의 은혜와 피땀 흘린 첫 결실을 조상께 감사하며 바치는 축제 중의 축제인 추석을 보낸다.세계는 2017년 노벨상을 발표한다. 수십 년 피땀 흘려 이룬 연구 업적들을 축하하는 축하 중의 축하다.필자는 2010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2년마다 급회전한 국가적 구호들의 공통점들과 그 결실들을 생각해본다.첫째, 한국에서는 주로 정부가 연구 개발 사업을 주도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실전 경험도 계획도 없었던 기업, 학교, 연구 단체들이 자금을 정부에서 받으려고 유행하는 구호에 맞게 꾸민 안을 제출하고 정부에서 돈이 나오면 그제야 소유의식이 결여된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이같은 문화는 진정한 창의, 혁신가들의 접근 방식과 전혀 앞뒤가 다르다. 그들은 소비자들도 생각지 못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연구개발을 위한 협업망을 밑바닥에서부터 구축하고, 실험중인 제품을 민간 벤처에 들고 찾아가 검증을 거쳐 투자받아 혁신적인 제품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소리없이 자력으로 구호대신 행동과 결실물을 가지고 `4차 산업혁명`을 밀고 나아간다.둘째, 연구개발 자원문제다. 먼저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생기면 보통 넓고 화려한 공간부터 차린다. 사람도 경험도 없이 화려한 공간부터 차리는 문화의식이 문제다. 몇년 전 유명 대학이 지방 정부의 특혜조건을 받아 혁신연구소를 신설했다는 소식을 듣고 원장을 찾아갔더니, 원장실이 운동장같이 거대하고 고급 가구들로 가득했다. 비서실도 따로 차려져 있었다. 이러한 문화의식은 창의적인 혁신가들과 우선 순위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차고, 침실, 기숙사 등 비좁고 초라한 곳에서 겸허하게 출발한다. 그들은 돈을 쥐고 혁신적인 일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들의 자원은 혁신적 아이디어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명감이다.셋째, 한국인의 홍보 활동은 투입되는 자원을 내세우지만 그 구체적인 성과는 빈약하거나 부재하다. 한국인들은 `얼만큼 부어 넣었느냐`가 결과를 정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순수 자연계와 달리 결실과 생산성이 인간 사회의 업적을 측량하는 요소가 돼야 한다. 성공적인 창의, 혁신가들의 홍보물은 업적과 결실물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우리는 정부 돈 받아 일을 진행하므로, 돈이 끊어지면 과제도 중단되는 일이 빈번하다. 그동안의 정부자원 투입으로 개개인의 배는 채웠으나, 거품 꺼지듯 사회적 낭비로 끝난다. 연구 개발에 OECD 국가 중 최상 수준인 GDP의 4% 이상을 퍼붓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연구 개발에는 그 일부만 투입되는 셈이다.정부 주도하에 전국에 10여 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화려하게 세워졌으나 공간을 채우느라 고심하는 것을 필자는 보았다. 내 아이디어, 내 손으로, 내 피땀 흘리지 않고 정부에 의존하고 돈부터 챙기고 공간부터 세우니, 시작 전부터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은 낭비만 `창조`하고 만다.어느 교수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교수 둘이서 일단 융합과제를 제출하고, 연구는 각자 따로하고, 보고서 쓸 때만 얼굴보는 식`이라고 개탄했다.이에 대해 다른 교수는 `그러한 현상을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고 비관했다.융합은 세가지 형태를 지닐 수 있다. 자연과학 내에서, 인문사회학 내에서, 또 이들 두 학문 사이에서 융합이 이뤄진다.한국에서 융합에 관심, 열정, 또는 경험있는 인재는 가뭄에 콩나듯 찾기 어렵다.미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현을 듣는 것은 쉽지 않지만 기술용어인 `인공지능`은 일상 속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다.우리도 요란히 장구치고 나팔 불지 않으면서도 실질적 활동으로 혁신과 융합, `4차 산업혁명`을 우리 힘으로 스스로 이뤄 나가자.

2017-09-25

결실의 가을(中)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언급하였듯이 2010년부터 7년 간 한국에서는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글로벌`에서 `창조와 혁신`, `혁신과 융합`,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등으로 급회전해왔다.그러나 약 2년 마다 바뀐 국가적 구호들이 과연 얼마나 알찬 결실을 맺었을까? 오늘은 `글로벌`과 `창조, 혁신`구호를 생각해 본다.필자가 2010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글로벌`이라는 문구가 만발함을 보았고. 많은 도시들이 `글로벌 시티`를 홍보하고 있었고 많은 정책들과 연구과제들도 `글로벌`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었다. 그 무렵 수익금의 80%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어느 회사 중역이 포항공대에서 특강을 하였다.특강 중에 그는 “해외에서 효율적으로 일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고 청중에게 물었다. 즉각 청중으로부터 “영어”라고 첫 대답이 나왔다. 그는 “아니다. 영어는 기본이다”고 하면서 잘라버리고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제시했다.문화란 무엇인가? 사회 성원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행하는 생각, 생활, 관습, 제도들이 문화를 이룬다. 남들 다하는 것이 문화이고, 아무 생각 없이도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글로벌 문화`의 척도를 필자는 `얼마나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거주하려 하고 불법체류자들이 계속 늘어나 골머리를 앓는가`에 두고자 한다.1년에 100만 명씩 이민자를 받아들이는데도, 1천200만 명의 불법체류자로 고민하는 미국트럼프 정부의 이민 제한정책을 한국인들은 일반적으로 반대한다.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학생들, 전문가들에 대해 높은 반감을 갖고 있다. 한국은 언제쯤 다양한 외국인들이 거주하고 불법거주자들이 계속 늘어나 골머리를 앓는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라가 될까?그런데 2012~2013년 경에 `글로벌`이 `창조`와 `혁신`으로 바뀌어 한국 경제는 `창조경제`로 탈바꿈했다. 2013년 어느 신문 기사를 잊을 수 없다. `창조경제안을 제출하라`했더니 기존안(案)에 `창조`문구만 덧붙여 가져오더란다. `창조`로만 끝나지 않고 `미래`를 더해 `미래 창조`가 범람했다. 인간 활동이 근본적으로 미래를 향한 것이니,`미래 창조`는 모양새를 부리는 군더더기라고 혹평받을 만 하다.창조란 무엇이고, 혁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창조와 혁신의 척도로 필자는 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에 서거했을 때,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사용하고자 한다.그 기사는 나무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잡스가 세운 애플회사가 나무의 열매라면, 나뭇가지들은 `사고하고 창조하는 자유`이고, 줄기는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이며, 뿌리는 `헌정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라고 규정했다. 이 비유는 애플이라는 열매를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개인의 자유와 헌정의 결실로 묘사한다.이처럼 과학과 공학은 창조와 혁신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나아가 창조와 혁신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 기술개발에 그치지 않고, 사회 행위와 문화를 변화시키고 경제적 가치를 더할 때 진정한 결실을 맺는다.효용성이 높을수록, 비용이 낮을수록 가치가 커진다. 비용은 주로 생산기술에 의해 정해지는 반면, 효용성은 소비자들의 가치의식과 사회경제 행위에 의해 정해진다.이처럼 창조와 혁신의 꽃과 열매는 개인의 자유와 자주성(autonomy)을 장려하는 사회환경 또는 문화 안에서 번성한다.어느 교수는 한국 풍토를 충격적이고 실망적으로 내게 묘사했다.그는 “한국이 개인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라고 표현했다.이는 한국 사회의 창의성과 기술적 사회적 혁신을 저해하는 가장 심각한 걸림돌이고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해 필자도 그와 의견을 같이한다.

2017-09-12

결실의 가을(上)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이제 가을로 들어선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과 여름에 땀 흘려 씨 뿌리고 가꿔서 이제 결실을 거둬들이는 시기가 다가온다. 인생도 그러하다. 어려서 씨 뿌리고, 청년시기에 가꾸고, 장년에 결실을 거둬들인다. 노년에는 훈훈한 방에서 반려자와 인생을 회고하고 자식들과 함께 즐기며, 친구들과 세상 앞날을 이야기한다.인생에 예외는 항상 있으나 `심은대로 거둔다`, `사필귀정`도 그 뜻이리라.사업이나 프로젝트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우리 경제는 과거에 경제부흥을 위해 흘린 피땀의 결실이고, 지금도 흐르는 땀의 열매이다. 이제 우리는 애써 이룩한 경제발전의 선진 궤도를 한 단계씩 높이고 새로운 인지기술에 기초한 4차 산업혁명 경쟁에 피땀을 흘리는 선구적인 혁신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구태의연한 허례허식으로 귀한 시간과 애써 축적한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2010년 한국에 돌아와 `글로벌`이라는 문구가 만발함을 보고, 나는 `맞아. 그래야지`하며 기뻐했다. 다수의 도시들이 `글로벌`을 홍보했고, 많은 정책들도 `글로벌`을 중심 주제로 했다. 2012~13년에 `글로벌`이 `창조`로 바뀌어 `창조 도시`가 우후죽순 같이 나타났고 한국 경제는`창조 경제`로 탈바꿈됐다. 2013년 어느 신문 기사를 잊을 수 없다. 어느 정부 부서의 장이 `창조 경제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더니 기존안에`창조` 문구만 덧붙여 가져왔다고 했다.2014~15년에는 `혁신, 융합`으로 구호가 바뀌었다. 교육계와 연구 단체들은 `혁신교육, 융합연구`의 깃발을 들고 요란했다.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개최된 `2016 다보스 세계회의`와 이세돌이 인공지능과 벌인 바둑경기 참패를 계기로 2016~17년에는 한국의 정책과 관심이 하루 사이에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바뀌었다.짧은 7년 간 글로벌, 창조, 혁신과 융합,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등 역사의 흐름을 바꿀만한 거대한 정책 구호와 관심이 급회전하였다.그동안의 구호들과 관심사들이 과연 얼마나 알차고 결실을 얻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지면상 다음으로 미루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최근 사회 변혁의 결실을 맺은 예들을 참고하며 한국의 정책구호와 관심사의 내면을 들여다보자.첫째, 우리는 아직도 선진세력을 뒤쫓고 있다. 남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신장해야 한다. 과거의 빠른 모방과 달리 이제는 창조적, 혁신적 산업혁명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과제요 관권이다. 소비자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것을 창안해야 한다. 과거에는 뒤에서 선진 그룹을 추격했지만 이제는 남보다 앞장서 달려야 한다.둘째, 개개인들이 솔선하여 행동하는 사명감이 부족하다. 각계의 `지도자들`을 선두로 모든 개인들이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솔선하여 행동해야 한다. 결실을 맺는 혁신가들은 독특한 사명감으로 무장하여 `불가능`에 도전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우주에 자국을 남기고자 하였고, 마크 저커버그는 세계인들을 연결시키고자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정주영, 박태준 같은 한국의 혁신 기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국가 사랑, 국민 복지를 사명으로 삼고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그들의 공익에 기초한 정신과 열정이 가치있는 결실들을 가져왔다.셋째, 우리는 너무도 요란하게 전시효과적으로 시작하고, 결과에 대해선 조용하다. 용두사미 격이다. 성과와 결실을 제시해야 한다. 성공적인 혁신가들은 소리없이 시작하여 피땀 흘려 자력으로 협업자들과 애쓴 후, 그 결실을 세상에 소개한다. 그들은 사람과 결실에 집중한다.대조적으로 우리는 종종 정부공모에 응해 받은 돈으로 `삐까번쩍` 공간부터 차리고, 개회식 열고, 정부 관료들을 줄줄이 초대한다. 우리는 사람과 결실보다 내용도 없이 돈과 물질공간을 먼저 내세우고 너무도 윗 사람에게 엎드린다.

2017-08-29

진정한 해방과 독립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어제는 8·15 광복절이었다. 72년 전 한국은 36년간의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해방 후 일본의 강점기간 보다 두 배의 기간이 흘렀다. 우리는 얼마나 진정한 해방과 독립,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해방은 독립을 의미하고 독립은 자유를 의미한다. 독립과 자유는 동시에 책임을 수반한다. 얼마나 우리 각자가 자율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해방과 독립,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측정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전쟁, 사회, 카스트 관행 등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극한 상황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는 하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각자가 자율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지고 행동하도록 허용하는 환경과 문화도 매우 중요하다.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40여 년간 미국의 유명한 대기업에서 활동하고 은퇴한 후 한국의 모 대학에서 몇 년간 연구교수로 활동한 분이 들려준 예를 소개한다.그는 미국회사를 대표해 자주 한국을 방문, 한국회사들과 비즈니스 협약을 체결했다. 미국 회사는 그가 한국회사 대표들과 협상하여 사인한 계약을 그 회사의 계약으로 받아들이는데, 한국회사를 대표한 사람들은 그들이 협상안에 사인하고도 최고경영자의 심의와 결재를 기다려야 했다.한국 최고경영자의 심의와 결재를 기다리는 기간이 흔히 몇 달씩 걸리기도 하고 그사이 상황이 바뀌기도 하여, 함께 일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가 미국회사에서 일할 때가 연상됐다.필자는 1981년 다른 미국 회사대표들과 협의하고 회사로 돌아왔는데, 회사에서는 생각이 좀 달랐다.그때 필자의 상사가 `당신이 회사를 대표했으니 당신이 동의한대로 받아들인다`고 말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개인에게 자율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일의 질, 개인의 열정, 조직능률과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개인의 자율성이 낮을수록 개인의 책임감, 창의력이 자연히 떨어질 것이다.담당자는 조직 전체를 위해 창의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대신, 윗사람의 입맛에 맞추려 할 것이다. `위에서 바꿀테니, 내가 너무 애쓸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고, 일의 결과에도 관심이 떨어질 것이다.반면,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할수록 주인의식과 책임감도 신장되고 창의력을 발휘하여 조직 전체를 위해 일을 추진하고자 할 것이다. 주인의식은 일의 결과에도 책임감을 갖고 일을 제대로 추진하도록 동기부여를 더할 것이다. 독일의 나치정권 하에서 독일군들이 수많은 시민을 대량학살하고도 전범재판에서 위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책임을 회피하였다. 군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하에서 우리도 얼마나 내적 양심을 따를지 확신할 수 없으나, 개인들이 자율적으로 행할 수 없거나 스스로 책임지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유를 누리지 못하거나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다. 진정한 독립인, 자유인은 자율적 책임을 위임 받기도 하고, 스스로 그 책임을 솔선해 짊어져야 할 것이다. 미성년자는 성인에 비해 자율성도, 책임을 지는 자유도 없다. 미성년자에게는 `보호자`가 있고, 그가 보호자의 동의없이 체결한 계약은 일반적으로 무효다.요즘 보통 30대에 결혼하는데 한국 신혼들은 대부분 미성년자같이 자신의 자유권을 포기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법적 성년이 된지 10년, 20년 지나서도 자신의 가정을 자신들의 힘으로 시작하지 않고, 허리 부러지게 애써 모으고 은퇴할 날이 다가오는 부모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혼들이여, 둘이서 젊은 혈기와 사랑으로 뭉쳐 맨 주먹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가정을 꾸미는 보람과 긍지, 희열을 만끽하라. 두 부부의 재능과 취향, 그리고 가치를 추구하는 가정을 자유롭게 건축하라.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새내기들에도 비슷한 격려를 강력히 권해본다.

2017-08-16

하루에도 백 번씩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필자는 미국에서 강의할 때 매 과목마다 미국 학생들에게 한자(漢字)를 하나 가르쳐 준다.학생들에게 `사람(man)을 어떻게 한자로 쓰는지 가르쳐 주겠다, 이 글자는 쓰기는 간단하면서도 그 의미가 심오하므로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다음, 사람 인(人)을 칠판에 크게 써 보인다. 학생들에게 왜 한자로 사람을 이처럼 표기하는가 질문하면, 한자를 전혀 모르면서도 미국학생들은 즉시 `사람들은 서로 의지하며 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한국에서 지난 7년간 가르치면서 같은 질문을 하면 한국 학생들은 물론 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연에 의존해 사는지, 자연으로부터 얼마나 막대한 혜택을 `공짜`로 받고 사는지 기술한 바 있다.오늘은 우리가 얼마나 서로 의존해 사는지 생각하고자 한다. 내 주변을 둘러보라. 내가 만든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내가 입고 있는 옷, 살고 있는 집, 먹는 음식, 시속 100㎞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 강을 쉽게 건너게 해 주는 다리, 산을 가로지르는 터널, 교육, 행정, 국방, 법, 치안 등 내게 필요하고 또 일상 즐기는 것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홀로 산다면 얼마나 고생일까? 씨 뿌리고, 재배하고, 수확해야 곡식을 얻는다. 곡식도 요리해야 먹을 수 있다. 옷은 어떻게 만들지? 집도 내 손으로 세워야 하는데 갖가지 재료를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건축하지? 자동차 비행기도 내가 만들어야 여기 저기도 다녀보고 자연의 경이로움도 즐길 수 있는데, 언제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설계하고 고안해 만들지?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인류는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할 때까지 지구가 공같이 둥글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고, 코페르니쿠스 때까지도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믿었었다.우리 각자는 직·간접으로 어떤 품목들을 생산하고 사회조직 질서를 운영하는데 종사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남들이 만들었거나 수고한 덕분에 살고 있다.어느 하나도 혼자서 만들거나 이루지 못한다. 혹자는 내가 번 돈 주고 사서 쓴다고 가볍게 지나치려 할지 모르나 돈 주고 구입하는 것도 인간 공동체가 있으니 가능하다.대통령이나 조직의 장이 큰 일을 한다지만, 모든 것을 혼자할 수 없고 주위에서 도와야 한다. 그의 보좌관들도 역시 혼자 할 수 없고 아래 보좌관들이 도와야 한다. 이렇게 서로 의지하는 인간 사회가 존속하게 된다.아인슈타인의 저서 `내가 보는 세상(The World As I See It)`의 첫 대목을 소개한다. “그는 현재 생존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과거에 생존했던 수 많은 사람들 덕분에 산다고 기술하고, 자신이 받은 대로 남에게 주어야 함을 `매일 백 번씩`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감사한다”고 썼다.`매일 백 번씩` 고마워하고 자신이 받은 대로 남에게 줘야 함을 자신에게 상기시킨다?처음 그 글을 읽었을 때, 내 눈을 의심하고 그 대목을 다시 읽었다. 분명히 `매일 백 번씩`이라고 쓰여있었다. 필자가 아인슈타인을 만난다면 제일 먼저 질문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수십년 만에 한국에 와보니 길들이 깨끗한 편이어서 우리의 문화수준이 높아졌다고 흐믓해 했다.그런데 어느날 아침 일찍 동이 트기 전 볼일이 있어 나왔더니 길을 청소하는 분들이 이길 저길에 보이지 않는가? 서서 이리저리 다니면서 길 청소하시는 분들 때문에 우리는 상쾌한 환경를 즐긴다. 고마운 분들이다.아침 사무실 화장실을 가면, 벌써 깨끗하고 상쾌하게 청소되고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구부리고 솔질하고 걸레질하느라 허리까지 아팠을텐데, 고마운 분들이다.밤 늦게 귀가하면, 어두운 아파트 구석 구석을 점검하는 분들을 종종 본다. 남들 잠자는 시각에 우리의 안전을 돌보는 고마운 분들이다. 고마운 분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끝없이 서로 감사하며 살자.

2017-08-01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 행복지수는 뒤처져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한국이 경제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나, 행복지수는 OECD 국가들 중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경제적 `성공`이 반드시 행복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알버트 슈바이처가 “성공이 행복의 열쇠가 아니고, 행복이 성공의 열쇠다”고 말했듯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이 삶의 질은 물론,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성공`을 촉진시키는 촉매역할도 할 것이다.필자는 지난 칼럼을 통해 포스텍 박태준 미래전략연구소가 2016년에 발간한 `행복지도 (Happy Map)를 만들었어요`라는 책자를 인용해 우리 자신을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 관점에서 숙고해 보았다.36인의 외국인 기고가들은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왜 행복지수는 뒤처져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첫째,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행복할 시간도 없다.둘째,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본다.셋째, 공동체 감각이 결여돼 있다.이 세가지 현상들이 서로 얽혀있겠지만, `남의 눈치를 심하게`보는 문화가 `물질만능주의` 철학관을 갖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공동체 감각이 결여되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한 외국인 기고가는 “한국사회의 성공은 학력, 지위, 재산 등 세 가지 척도로 측정되는데 모두 아주 강력한 물질만능주의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지적한다.세계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물질을 중히 여기지만, 유난히 한국인들은 성공과 행복이 물질소유,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행복지도의 기고가들은 입을 모은다.심하게 남의 눈치를 의식하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다 보니,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문화가 형성되고, 너도 나도 모두 힘든 불행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왜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을까?1919년 4월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공포한 첫 헌법은 독립국가로서의 초심을 천명하면서 한국 사회문화의 근본 문제와 그 해결 방향을 시사한다.`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공동사회`라는 이름 하에 개개인이 존중되는 대신, 소수의 `갑`이 다수의 `을`의 권리를 짓밟는 사회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로 자연히 변모하기 마련이다.어떻게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를 탈바꿈하여 모두가 성공하고 더욱 행복한 사회를 세울 수 있을까?사회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의 필요설을 5단계로 제시하였다.먼저 신체적 필요에서 시작하여 안전, 사랑과 소속감, 자존감, 자아완성에 도달한다.“커서 뭐 할래?”하고 물으면, 우리 어린이들은 흔히 대통령, 장군, 사장 등이 되겠다고 하는 반면, 미국 어린이들은 화가, 음악가, 운동선수, 소방원 등이 되겠다고 한다.양쪽 대답 자체는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우리 어린이들이 전자를 선택할 때 사회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기 위한 동기로 선택하는가?어린이들의 대답에는 보통 사회에서`갑`의 계급에서 대접받고자 하는 동기가 밑에 깔려 있다.모두들 자신의 재능, 관심사, 가치관에 상관없이 제한된 자리를 목표로 경쟁을 하면 대부분은 실패자가 되고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과정이 공평치 못하고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체념에서 끝나지 않고 분노로 변할 수도 있다.반면에 미국 어린이들은 자신의 재능과 관심에 부합하고, 그들이 선호하는 업을 선택한다. 자아완성이 그들의 목표다. 그들 개개인 모두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내 미국 친구의 조카는 해양 연구를 좋아해 수입은 보잘 것 없지만, 뉴질랜드에 이주해 해양 연구하며 산다. 다른 미국 친구의 딸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하더니 동물간 의사소통을 대학에서 공부하고, 50살이 넘게 30년 동안 방대한 산맥과 국립공원을 다니며 동물언어를 연구하고 있다.자아완성을 인생의 성공, 행복으로 삼는 사회문화를 이루자.

2017-07-19

외국에는 어린이들만 사는가?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2007년 미국 버지니아텍 대학에서 한국 시민권자인 대학생이 32명의 교수와 학생을 총살하고 17명을 중상에 빠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당시 미국 역사상 한 개인이 저지른 최대의 총격 사건이었다.다음날 내가 있었던 미국 대학에서 유학하던 여학생이 미국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폭력을 자행할 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당시 미국에서 30여 년 생활해 온 나는 이런 충격적인 일에 대해 3억 이상의 인구 중 몇몇 개인들이 산발적으로 폭행을 저지를 지 모르나 사회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말해주고 안심시키려 했다.그래도 그는 불안해 하길래 2001년 이슬람 테러단들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두 빌딩과 인근 빌딩들을 붕괴시키고 워싱턴의 국방성 건물을 공격하여 약 3천 명이 죽고 6천 명이 다치고 100억 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를 가져왔던 테러사건을 예로 들었다.불에 타고, 불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수십층 높이에서 뛰어내려 죽고, 붕괴되는 육중한 빌딩에 무참히 압사된 사람들 중 아직도 1천600 명 정도만 신원이 확인되었다.그런 와중에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은 워싱턴무슬림센터를 찾아가 미국에 사는 그들이 미국 사회에 큰 공헌을 하였다고 말하고, 미국인들이 그들을 존경하도록 호소했다고 한다.무슬림들에 대해 산발적인 공격이 있었으나 무슬림들에 대한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문과 방송에서 거듭 강조하던 것을 기억한다.미국도 모순과 불완전을 찾자면 끝도 없겠지만 1만 명에 가까운 무고한 시민들을 사상하고 수백억달러의 재산 피해를 가져온 외국인 테러 집단과 같은 인종인 개인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가적으로 존경스럽고 성숙한 어른다운 모습이었다.우리도 외국인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성숙한 문화를 세우자.사소한듯 하지만 중요한 예를 들어보자. 우리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외국인들을 보통 `애들`로 칭한다. `미국 애들`, `일본 애들`, `중국 애들`, `애네들`이라고 칭하고, `미국 사람들`, `일본 사람들`, `중국 사람들`, `이 사람들`이라고 칭하는 경우는 드물다.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을 멸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주변 지인이 `일본애들`이라는 표현을 하면 나는 웃으면서 “일본에는 어른들은 없고 애들만 있나 보죠?”라고 질문한다.필자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대부분 눈을 껌뻑이다 곧 깨닫고는 `일본 사람들`이라 표현하기 시작한다.그런데 대화에 빠져 말하기 시작하면 다시 `일본 애들`이라는 표현이 그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을 흔히 본다.외국인들이 우리를 `한국 애들`이라고 칭하면 우리는 분노할 것이다.그러니 우리의 습관을 아는 미국 사람들이 “한국 애들은 우리를 `미국 애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면 누워서 침 뱉은 자신을 자성해야 한다.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버스를 탔는데 기사가 반말로 대하고 이유없이 큰 소리로 혼자서 외국인에 대해 험담을 했다며 어느 교수는 씁쓸해 하였다.몇 년 전 미국에서 한국 식당을 경영하는 분의 자성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서양 사람이 음식을 시켜 먹고 있는데 그가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려니 생각하고 그분은 종업원들과 외국인을 멸시하는 험담을 하고 있었다.서양인이 식사를 마치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정중히 인사한 뒤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이니 “제 아내가 한국사람입니다”고 나갔다고 한다.한국인을 멸시하는 표현을 알아듣고도 그 서양 사람처럼 나도 상대방에게 정중히 인사할 수 있을까?우리들이 외국인들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하듯이 외국인들을 존중하는 문화를 세우자.

2017-07-04

태산이 높다 하되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이제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방학 중에 우리 자녀들은 어떻게 시간을 선용할까? 필자는 최근 혁신적 교육, 교육혁신, 창의교육, 영재교육 등에 관해 연구하면서 자녀교육은 자녀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교육`하면 보통 학생교육 또는 자녀교육을 생각하지만 실은 학생교육 이전에 교사교육, 교사교육 이전에 부모교육이 선행돼야 한다.학생교육은 학교에서 교사들이 맡아주니 교사교육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교사는 무슨 교육에 집중해야 할까? 페스탈로치는 “읽기를 가르치는 학교도 있고 계산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다. 그런데 왜 사람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는가”라고 통탄하였다.교사는 가르치는 전문 지식은 물론 스스로 교사로서의 소명감, 인간으로서 인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최근 교육의 나라라고 호칭되는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되려면 모두 석사 이상의 특별 사범대학 훈련을 받도록 제도화 되어 있다. 사범대학에서는 전문 지식은 물론 인성교육에 집중한다. 교사들과 각 학교에 교육의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은 물론이다.우리도 교사들의 자질과 그들 자신의 사명감을 보다 중요시하고, 그들의 신분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학생들 앞에서 보다 소중히 해줘야 한다.그런데 한국의 교사들과 대화해 보니 교육다운 교육을 시행하는데 태산 같은 큰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다.장시간 자녀들을 과외시키고 또한 학교에서도 입시 위주의 교육을 요구하는 부모들이 자율적이고 교육다운 교육을 어렵게 한다고 교사들은 하소연한다.그래서 부모들과 말해보니 자기 자녀들이 장시간 학원과 학교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위해 비싼 돈 쓰고, 잠과 운동, 사회활동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없었다.다만 아직도 학벌과 사회신분이 중요한 사회에서 내 자녀가 남보다 앞서려면 남들 하는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부모들의 하소연이다.진퇴양난이다. `남들이 입시위주, 과외를 안 시키면, 나도 안 할 수 있다`는 말뿐이지, 앞장서는 부모는 보기 어렵다. 손가락으로 남을 탓하면, 다른 세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다.자녀에게 첫 교사는 당연히 부모다. 교육은 아기가 태어나면서 시작되고 평생 지속된다.부모들은 자녀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어머니 은혜` 동요는 이처럼 노래한다.“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어버이의 은혜는 물질적 보살핌은 물론 “사람되라”는 가르침에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지.교육 철학의 대가인 존 듀이는 “교육은 인생의 목적을 넘어 인생 자체이다”고 갈파했다.학생 시절 독일의 권위주의적이고 지식암기 위주의 교육에 항거하다가 쫓겨나기까지 했던 아인슈타인은 “교육은 사실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을 훈련하는 것이다”고 말했다.2013년 8월에 발표된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인재 육성방안`에 이런 문구가 있다.“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 등으로 창의인재 육성에 한계가 있다.”태산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을 깨기 위해 정부의 교육·고용정책이 수없이 바뀌어 오고 있다.누가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을 형성하고 있는가? 현 사회의 주축인 30~50대의 부모들이다. 사회를 이끌어 온 60~70대 조부모들이다. 이 기성세대들이 `개인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의 주역들이다. 창의인재 육성에 한계가 되는 학벌·경쟁위주의 교육·채용환경을 혁신하는데 우리가 앞장서야 한다. 창의인재 육성에 걸림돌을 제거하자. 태산을 넘어가자.“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2017-06-20

시민의식, 주인의식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지난달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기념하였다. 새 대통령도 선출하였다.그래서 한국사회가 얼마나 더 좋아질까? 하루 아침에 세상이 달라지고 나 자신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나 개인과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오늘의 시련이 시련이 아닐 것이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으면 오늘의 편안함이 가시방석 같으리라. 다음과 같은 단순하나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 본다.어린이들이 내가 얼마나 위함 받는 지에 관심을 갖는가. 아니면 부모님과 가족들을 위해 어떻게 더욱 애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승들은 제자들로부터 내가 얼마나 대접받는가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제자들을 위해 어떻게 더욱 애쓸 수 있는가?새 대통령을 선출한 국민들 각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새 대통령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말처럼 `국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숙고하고 있을까? 대선 이후 새 대통령에게 부탁한다는 글은 많았으나, 국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지 자성하는 글은 읽지 못했다.우리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도, 먼저 공동체 일원으로서 자신의 책임과 소명을 보다 충실히 이행하고자 스스로 자문하고 실행한다면 희망을 크게 가질만하다. 이것이 공동체에 대한 시민의식이요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이다.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소매걷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땀 흘려 일한다면, 대통령도 자연히 후원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너 좋고 나 좋은 일이다. 이것이 시민의식, 주인의식의 행동강령이요, 동시에 그 결과다.그런데 우리 경제가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하는 동안 시민의식, 주인의식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몸은 커졌으나, 사고 방식과 행동은 어린이 같은 격이다. 시민의식 또는 주인의식은 먼저 시민이자 주인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성을 갖춰야 하며, 동시에 스스로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지는 윤리적 태도와 행동을 기반으로 세워진다. 이는 `개인없는 개인 이기주의`와 정반대이다.운동경기는 시민의식, 주인의식을 귀하게 여기는 개인들과 이를 존중하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먼저 경기 규칙이 정해지고, 실전 경험있고 공정한 심판관이 지정되면, 나머지는 각 팀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몇 명의 선수를 기용해야 하는가, 선수연봉은 얼마여야 하는가, 선수들이 일주일 몇 시간 훈련해야 하는가, 누구를 코치로 고용하는가 등은 체육협회가 규제하지 않으며 각 팀이 자율적으로 정할 일이다.자유 경쟁시장제도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거래를 위한 시장경쟁 규칙을 세우고 치우침 없이 감독한다. 상품 생산량, 노동고용, 상품가격, 회사의 장 임명, 상품구매 등은 소비자와 공급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에서 정부의 과거 행태를 “소도 말도 웃을 후진국적 정치 폭력이 백주에 횡행했던 지난 시절이 다만 어이 없을 뿐이다”고 묘사했다.그러나 정부만 탓할 일도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흔히 독점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상도덕과 윤리를 거스르는 불법적인 행위들이 근본문제이다.도둑 하나를 10명이 당해내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의 작은 옷을 훌훌 벗고, 어른에게 맞는 큰 옷을 입자.시민으로서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주체성을 행사하고,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소명과 책임을 스스로 이행하는 성숙된 마음태도의 옷을 입자. 그리하여 국가경제의 지속성과 삶의 행복을 동시에 달성하자.시민의식, 주인의식을 배양하는 `새마음 운동`을 나 자신부터 시작하자. 내 마음부터 다스리자.

2017-06-13

한 달 생활비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월 생활비가 얼마일까? 필자가 계산해 보겠다. 어렵지 않다. 각자의 한달 생활비는 천문학적 비용이다.먼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물을 생각해보면, 하루에 세 번 먹는 음식이 있다. 한끼만 걸러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안 먹고도 5주 정도는 생존한다.더 긴요한 것이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마시는 물이다. 물을 섭취하지 않고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5일 정도 생존할 수 있다.더 급박한 것이 있다. 인간은 공기를 5분만 섭취하지 않아도 생명이 끊어지게 된다. 탄광이 붕괴돼 사람이 나오지 못하면, 먼저 공기 공급이 급선무다. 그 다음이 물 공급이다. 그리고 음식이다.우리는 공기를 돈 주고 사 마시지는 않는다. 부유한 사람에게도 가난한 사람에게도 모두 공짜다. 물은 어떤가? 수돗물 값을 내지만, 너무 가난해 물도 마시지 못해 죽게 됐다는 사람은 없다. 음식? 소득이 낮았던 시대에는 음식이 한국인들 가계부의 가장 큰 항목이었으나, 지금은 다르다.그런데 다이아몬드는 어떤가? 산업적 용도가 있지만, 없어도 생명에 지장없는 다이아몬드는 무척 비싸다. 공기처럼 아무나 마음대로 가질 수 없다. 생명에 절대 긴요하지만 무료로 공급되는 공기와 대조적이다. 경제학에서 이 현상을 `가치의 모순(Paradox of Value)`이라 부른다. 가장 가치 높은 공기는 `시장가격`이 제로인데, 없어도 살 수 있는 다이아몬드의 `시장가격`은 가장 비싼 부류에 속한다.내 손으로 직접 공기를 만들어 호흡해야 한다면 생존할 사람이 있을까? 공기를 돈 주고 마신다면 그 비용을 감당할 부자가 있을까? 이 비용은 천문학적 숫자일 것이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물도 다를 바 없다.음식은 어떤가. 모든 동물은 궁극적으로 식물을 먹고 산다. 식물은 공기, 물을 태양의 빛과 합성시켜 영양분을 생산한다.태양? 지구보다 약 100만배 큰 태양으로부터 지구가 한 시간 받는 열은 인류가 1년간 사용하는 에너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24년 간 사용할 에너지를 받는다. 매달 우리는 720년간 사용할 열을 태양으로부터 받고 있다. 화폐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직접 태양열을 만들어야 한다면 생존할 사람이 있을까? 태양이 없다면 지구는 곧 꽁꽁 얼게 될 것이다. 사서 쓴다면 그 비용을 감당할 부자가 있을까? 비용은 천문학적 숫자를 초월할 것이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그뿐인가? 우리 몸을 둘러보자.두뇌작동이 멈추면, 곧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최근 두뇌 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두뇌의 진면목이 드러나고 있다. 컴퓨터 중에서도 컴퓨터인 두뇌의 쉬지 않는 작동을 인공지능 시대에 돌입한 오늘날에도 대체할 방법이 없다. 두뇌와 그 기능도 공짜다.1분에 72번 박동하는 심장은 어떠한가? 심장이 멈추면 곧 사망하게 되고, 불규칙적으로 박동해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내 노력 없이 심장은 밤낮없이 내가 자는 중에도 박동하고 있다. 하루에도 10만 번 이상, 일년에 3천800만 번 박동하는 심장을 우리가 인공호흡하듯 애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잠도 못 자고 어떻게 내 스스로 인공호흡할 수 있으랴. 심장도 그 기능도 모두에게 공짜다.산소를 들이키고, 다른 해소를 배출하는 허파도 있다. 우리 몸에 이것들 뿐인가. 지구를 몇 번이고 감을 수 있는 혈관, 내장을 비롯한 여러 신체 부위들의 작용, 세포분열, 손톱, 발톱 등 우리가 받는 수많은 자연의 혜택은 한도 끝도 없다.아인슈타인은 자연을 이해하면 그로부터 인간의 행동규범이 어떠해야 하는가 배울 수 있다고 했다.당신과 나의 실질 생활비는 차이 없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사회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실질 생활비는 차이가 없다.

2017-05-23

새마음 운동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오늘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중요한 날이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에게 한 가지 꼭 부탁하고 싶다. 미국에서 35년간 생활하고 2010년 한국에 돌아와 보니 그리도 가난했던 한국이 이룬 눈부신 경제발전에 놀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총 국민생산액이 세계 10위까지 육박했고 일인당 국민생산액은 세계평균의 약 두 배 반으로 올랐으며, 수출입 총 무역액이 국민생산액만큼 왕성해져 세계 10위권에 안착하였고, 중공업과 IT분야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제압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아시아의 호랑이나라` 중 하나임을 실감케 했다.1960~70년대와 확연히 다른 세상이 되어 산에는 푸른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산과 산을 긴 터널과 높은 다리로 연결해 하늘을 달리는 듯한 상쾌한 기분에 자랑스런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불붙은 새마을 운동이 눈부신 경제발전에 발동을 걸어주었고, 이제는 개발도상국에 새마을 운동이 전수되기까지 한다.그런데 어째서 한국의 행복지수는 경제발전보다 훨씬 뒤쳐져 있을까?먼저 `국민생산`의 허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시장에서 거래된 생산`만 `국민생산 `통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내가 조그만 땅에 손수 야채와 과일을 재배하여 식탁에서 즐긴다면 분명히 생산은 증가하지만 `국민생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시장에서 같은 야채와 과일을 구매하여 먹는다면 `국민생산`에 포함된다.반대로 내가 차사고를 내 구급차가 오고 사람들이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으면, 비록 재산이 파괴되고, 시간을 써야 하고, 고통을 당하는 등 손해가 막심하겠지만, 이 모든 `시장경제` 활동은 `국민생산 `통계에 포함된다.손수 가정일을 하는 것의 경제적 가치는 밖에서 벌어들이는 것보다 약 2.5배라고 한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생산적 활동가치는`국민생산` 통계에서 무시되지만, 사람을 고용하여 그 일들을 시키면 `국민생산`이 늘어난다. 집안일 하는 대신 일을 다니면 `국민생산`이 더욱 늘어난다.이처럼 실질적 생산활동과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활동들이 `국민생산`에서 제외되는가 하면, 재산과 시간을 낭비하고 생활을 빈곤하게 만드는 활동들이 `국민생산`에 포함된다.미국이 튼튼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뤘던 1960년대 로버트 케네디는 `국민생산`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물질적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같으나 오히려 `행복과 만족의 가난`에 빠지는 위험성을 경고했다.1968년 연설에서 그는 `국민생산`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몇 가지 예를 들었다.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튼튼한 자물쇠를 만들고, 공기오염을 정화하고, 담배광고를 하고, 무기를 만드는 활동은 `국민생산`을 증가시킨다.그는 동시에 `국민생산`에 포함되지는 않지만 실질적으로 생산적이고 행복과 만족을 고조하는 활동도 열거한다. 어린이들의 건강, 교육의 질적 수준, 행복한 결혼 생활, 공개적 토론의 지적 가치, 용기와 지혜, 서로에 대한 정, 나라에 대한 긍지와 사랑, 정부관리들과 지도자들의 충실성 등 `국민생산` 통계에 포함되지 않지만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고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그는 지적했다.1960년대에 범국민적으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이 한국의 경제부흥을 가져왔듯, 새 대통령은 행복과 만족의 가난함을 극복하는 `새마음 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추진하길 부탁한다.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진하면서도, 케네디가 지적한 실질 생산과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활동들을 범국민적으로 추진하자. 가치관과 인간사회를 풍요롭게 해 같은 물질을 갖고도 몇배 더 행복한 생활을 경험하자.대통령을 기다릴 것도 없다. 내 스스로, 내 가정에서 내 배우자와 자녀들과 그리고 내 지역에서 `새마음 운동`을 추진하자.`새마음 운동`도 언젠가 다른 나라들에게 전수하자.

2017-05-09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다음달 5월에는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이 있다. 8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몇 주 전에 `어머니 은혜` 동요를 들으며 눈물에 젖어 있었다.네 아이를 기른 경험이 있기에, 낳고 기르는 부모의 은혜를 어디에도 비할 수 없음을 내 아내와 나는 실감하며 그래서 자녀를 손수 기른 모든 부모들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그런데 나는 동요의 2절을 들으며 깊은 묵상에 잠겼다.“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니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사람 되라”고? 어머니가 사람을 낳았지 짐승을 낳았나?맞았어.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이지. 그래서 “사람 되라”이르시는구나.1986년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이 남긴 유서가 내 머릿 속에 떠올랐다.아직 미숙한 소녀의 글이지만, “사람 되라”이르시는 어머니의 상과 비교된다.어머니들과 부모들이 자식들의 장래를 위한다고 하겠지만, 실은 “사람 되라”이르지 않고 오히려 `개인 없는 개인이기주의자`가 되라고 오도하고 있다.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에게 “사람 되라”일러야 하는지 소녀의 글을 지면의 한계상 일부를 중략해서 생각해 본다.“난 1등 같은 것은 싫은데, 앉아서 공부만 하는 그런 학생은 싫은데, 난 꿈이 따로 있는데, 난 친구가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은 엄마가 싫어하는 것이지. 난 인간인데 친구를 좋아할 수도 있는데 어쩔 땐 나보고 혼자 다니라고까지 하면서 혼내시기도 했지. 나에게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라고 하는 분, 그분이 날 15년동안 키워준 엄마라니 너무나 모순이다.”“순수한 공부를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잘나지도 않은 졸업장 하나 받아 고개들고 다니려하는 공부 천만번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게 해놓고는 자기이익만을 위해 거들먹거리면서 나라를 위해 눈꼽만치도 힘쓰지도 않으면서 외국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하는 공부만 해서 행복한건 아니지 않는가?”“공부만 한다고 잘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무엇이든 이 사회에 봉사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면 보람있고 행복한 것이잖아. 꼭 돈벌고, 명예가 많은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잖아.”“매일 공부밖에 모르는 엄마. 그 밑에서 썩어 들어가는 내 심정을 생각해 봤어? 난 로보트도 아니고, 돌멩이처럼 감정이 없는 물건도 아니야. 밟히다 밟히다 내 소중한 삶의 가치관까지 밟혀버릴 때는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떨어. 하지만 사랑하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에. 아, 차라리 미워지면 좋으련만, 난 악의 구렁텅이로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엄마를 구해야만 해. 난 성적이라는 올가미에 들어가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삶에 경멸을 느낀다.”“`전교 ○등, 넌 떨어지면 안된다. 선생님들이 널 본다. 수업시간에 넌 항상 가만히 있어야 한다. 넌 공부 잘하는 학생이니까 장난도 치지마라. 다음 번에 ○등해라. 왜 떨어졌어? 공부해! 엄마 소원 성취 좀 해줘. 서울대학교 들어간 딸 좀 가져보자. 그렇게 한가하게 음악 들을시간 있으면 그 시간에 공부해` 매일 엄마가 했던 말이야.”“엄마가 뭔데 내 친구 편지를 읽는거야. 난 사람도 아닌가? 그리고 돈? 그게 뭐야. 그게 뭔데 왜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거야. 난 눈이 오면 마음껏 놀고 싶고, 난 딱딱한 공해보다는 자연이 좋아. 하긴 지금 눈이 와도 못나가는 걸. 자꾸 한탄만 했지, 그렇지? 졸업하면 나는 아예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갇혀서 죽도록 공부만 해야 할거야.”“난 나의 죽음이 결코 남에게 슬픔만 주리라고는 생각치 않아. 슬픔만 주는 헛된 것이라면, 난 가지 않을거야. 비록 겉으로는 슬픔을 줄지는 몰라도, 난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줄 자신을 가지고 그것을 신에게 기도한다.”

2017-04-25

한국을 한국인들보다 더 사랑하는 외국인들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고, 자신의 모습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종종 발견한다. 녹음된 내 음성을 들어봐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스포츠팀들이 자신들의 플레이를 녹화해 리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남의 피드백이 필요한 것도 그 이유이리라.교육자들도 그들의 가르치는 것을 동영상으로찍어 스스로 리뷰하거나 다른 이들로 하여금 관찰하도록 하고 피드백을 받는 것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필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 하겠다.외모만 아니라 내 자신의 내모도 그러하다. 그래서 “자신을 알라”는 동서고금 지혜의 말은 내 자신이 성숙해질수록 더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가 보다.독일에서 서양사를 공부하고 연구한 한 교수는 자국의 역사는 자국인이 쓴 기록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타국인들의 기록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개인도 마찬가지이리라. “당신은 일반적인 운전자보다 안전 운전하는 사람입니까?”라는 설문에 50%가 넘어 80%가 “예”라고 대답한다는 심리분석도 같은 부류의 문제이다.포스텍박태준미래전략연구소가 2016년에 발간한 `행복지도 (Happy Map)를 만들었어요`라는 책자는 우리 자신을 외국의 배경과 관점에서 숙고해 보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돼 소개한다.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36인의 이 외국인들은 `한국인들 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로 소개돼 있다. 그들은 외국에서 한국을 좋아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고 연구도 했으며, 한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학, 한국역사, 한국문화석사 박사 공부를 하기도 했다. 몇몇은 한국인으로 귀화해 한국을 `우리나라`로 칭하며 글을 쓰기도 한다.그들은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왜 행복지수는 뒤처져 있는가를 분석하고 한국사회의 개선점을 지적하는데, 이를 세 가지 문제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물질만능주의`이다. 세계 모든 국가의 사람들이 물질을 중히 여기지만, 유난히 한국인들은 성공과 행복이 물질소유,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그들은 입을 모은다.한 외국인은 “사회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강조함에 따라 생겨난 성공에 대한 아주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른 이는 “한국사회의 성공은 학력, 지위, 재산 등 세 가지 척도로 측정되는데 모두 아주 강력한 물질만능주의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지적한다둘째,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본다. 남의 눈치를 전혀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한국인들은 유난히 남의 눈치를 본다고 그들은 지적한다.어느 외국인은 “모든 사람이 성공을 똑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같은 것을 원한다면 경쟁이 따른다. 그 목표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면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한 외국인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인간성의 기본적인 속성과는 반대로 동질성이 강요된다. 적성보다 학교 이름을 보고 학교를 정한다.”고 말한다셋째, 공동체 감각이 결여돼 있다.어느 기고가는 “더 위험한 것은 협동과 공동체정신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잃는 것이다. 이제는 더 고차원적인 가치를 개발할 시간이다. 성공적인 삶은 인간성을 보여주는 사회적인 가치들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경각심을 울리기도 한다.한 기고가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한국보다 뒤처져 있지만 정신문화, 사회행복지수는 한국보다 높다고 지적하면서 한국 사회가 행복지수를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대목들을 읽으면서 필자는 부끄러운 마음을 느꼈다. 그들의 글들을 읽으면서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를 어떻게 모두가 성공하고 더욱 행복한 사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면서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말을 묵상해본다.“잘 먹고 잘 살려고 태어난 게 아니야. 좋은 일을 해야지…. 사람은 의식주를 얼마나 잘 갖추고 누리며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

2017-04-11

남의 권리를 존중하는 개인주의 사회

▲ 서의수 전 포스텍 교수·경제학필자는 대학을 마치고 3년의 사회생활 후 1974년에 미국으로 떠나면서 미국의 개인주의 사회보다 동양의 공동주의 사회가 더 낫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자유대로 생활하니 무질서하고 무책임하지 않겠나`고 생각했었고 공동주의는 `공동의 이익을 구하니 질서와 책임감이 지배하리라`는 생각이었다.그런데 미국에서 살아보니 무질서 가운데 질서가 있음을 발견하게 됐고, 개인의 책임이 동양문화에서 보다 더 강하게 지켜짐을 발견하게 됐다.`왜 그럴까?` 생각하다보니 문득 `그럴 수 밖에 없구나` 무릎을 쳤다.나의 개인주의를 지키려면, 남의 개인주의도 존중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진정한 개인주의는 서로의 개인을 존중해주는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결과가 신기하게 느껴졌다.작은 예로, 미국에서 부모가 어린아이를 동반하고 식당에 오면 아이들이 떠들석하거나 의자 위와 아래를 오르락 내리락 하거나 여기저기 주위를 돌아다니지도 않는다.자유방임의 교육사회에서도 식당에서 부모의 단속은 엄한 것이다.네 명의 아이들을 키웠기 때문에 부모 심정을 이해하는데 그런 장소에서 아이들을 풀어주고 부모들은 모처럼 해방감을 즐기고 싶지 않겠는가?입장을 바꿔 보자.모처럼 연인과 근사한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옆 테이블 아이들이 떠들썩하거나 식당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돌아다닌다면 자연스레 얼굴이 찌푸려질 것이고 밥맛도 떨어지며 더이상 아이들이 귀엽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남의 개인 권리를 존중하는 개인주의 사회`는 이처럼 남의 권리를 존중함에 그치지 않고, 공공장소의 질서를 지키고 공공장소를 너도 나도 즐기게 만들어 사회적 행복감과 가치를 고조시켜 준다.각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경쟁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수요공급의 균형을 이루고 공정시장 가격이 형성된다. 시장 또는 사회의 복지와 개인들의 이익이 함께 최적화된다는 경제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시장이론이 사회적으로도 적용된다고 하겠다.30여 년 미국 생활 후에 2010년 한국에 돌아와 경제학과 재무학을 가르쳐 보니 오랜 미국 생활로 잊고 살았던 한국 사회만 사용되는 독특한 단어를 여럿 듣게 됐다.이른바 `갑을관계`, `상명하복`, `위계질서` 등의 표현인데 이는 TV사극을 통해 더욱 명확히 깨닫게 됐다.사극의 주요인물은 왕과 주변 사람들인데, 드라마의 과장이 섞여 있을지 모르나 왕은 절대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신하는 물론 고관들도 왕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말을 잘못했다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기도 하니 인간이 사는 세상이 과연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극마다 보여지는 모습은 비슷했고 상명하복 등 공동사회의 병폐는 왕실 곳곳에 뿌리깊게 박혀 있었다.이처럼 공동사회는 왕과 신하 사이에서만 아니라 양반과 노비, 심지어는 같은 계층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진실은 권력에 의해 결정되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주장하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사회였던 것이다.그러한 인간관계가 반복되는 장면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 당연한 것으로 생각이 변하거나 무감각해질 것 같아 사극을 더이상 안보기로 했다.공동사회라는 명목 하에 개개인이 존중되는 대신, 소수의 `갑`이 다수 `을`의 권리를 짓밟는 사회는 어느 저명한 교수의 말처럼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로 자연히 변하기 마련이다.공동사회의 이 역설적인 결과는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우리 사회가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라면 이는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이 교수로부터 이러한 표현을 처음 들은 이후, 한시도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우리 사회가 개인 없는 개인 이기주의 사회라니….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며 성장한 고향인데.

201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