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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최근 개봉된 민규동 감독의 ‘허스토리(Herstory)’는 실존인물이 존재하는 다큐같은 영화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여성사업가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정부에게 사죄와 손해 배상을 요구한 관부재판 과정을 담고 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의 법정투쟁 결과, 위안부 문제에 일본의 책임이 있음을 최초로 일부 인정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두고 시선 차이가 존재한다. 전쟁범죄로서 일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양국이 외교적으로 처리할 문제라는 입장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다시는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하며 박근혜 정부와 아베정권이 체결한 ‘12·28 합의’는 위안부 문제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인도적 성폭력 범죄에 대한 가해국의 반성이 없는 정부간 합의로 탄생한 ‘화해치유재단’을 해체하라는 분노가 높았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서도 거론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는 2015년에도 피해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하향식으로 처리되었다. 일본 정부가 강조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은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또 다른 압박이었다.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여성들의 몸과 삶을 유린한 성폭력에 대한 가해자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전제돼야만 화해와 용서의 미래가 가능하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권고한 것처럼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 없다면, 그 합의는 단지 휴지쪽에 불과한 것이다. 피해자 할머니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2015 한일합의를 즉각 폐기하고 피해자 중심적 문제해결을 추진하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1992년 1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주축이 돼 시작한 수요시위는 폭염의 날씨에도 계속되고 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이후 주한일본대사관 앞 집회가 발전한 정기수요시위는 위안부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다. 수요시위 1천회를 기념해 2011년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됐고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평화나비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세대를 너머 연대하고 있다. 이제 정대협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로 확대되어 전쟁과 여성, 전시 성폭력의 이슈로 위안부 문제를 환기시키며 평화운동의 깃발을 높이 세우고 있다.“과거의 일 아닌 현재의 일이다.” 수요시위에 나온 손피켓에 쓰인 문구다.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시대에 일어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과거이자 현재진행형 사안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민족문제에서 이제 젠더 이슈로 발전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미투운동’의 효시처럼 힘이 없는 여성이기에 당했던 공동의 기억이자 더 이상 그런 험한 세상은 안된다는 미래에 대한 절규다. 역사의 증인으로 나선 피해 할머니 가운데 27명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진심어린 사과와 진정성 있는 해결책이 나와야 한일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남자들의 이야기’였던 ‘히스토리(History)’에서 여성들은 주변인이었다. 여성들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고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를 도모했던 역사를 그린 영화 ‘허스토리’는 의미가 크다. 할머니와 어머니, 딸로 이어지는 세대간의 과제로 위안부 문제를 사유하며,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의 역사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허스토리’ 영화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2018-07-24

“여자들이 애를 안 낳는 게 문제야”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지난 해 우리나라 신생아 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출산율 1.68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발표한 ‘2017 세계인구 현황 보고서’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세계 198개국 중에서 초저출산 기준인 1.3명 이하인 9개국에 속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 5일 발표한 대책이 저출산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그동안 정부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다. 지난 10년간 126조원이 넘는 재원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출산율은 예측보다 훨씬 더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출생아 수를 높이는 데만 집착한 출산율 제고정책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이를 낳으면 출산장려금을 주는 방식은 여성들의 코웃음만 샀다.여성들은 아이를 “한 명 키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의 ‘2018년 저출산 정책에 대한 2040 여성근로자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47.9%의 여성들이 아이가 두 명이면 좋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1명만 낳겠다고 하였다. 15.5% 여성들은 아예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했다. 저출산의 이유로 ‘소득과 고용불안’이 첫 번째였다. 10명중 8명의 여성이 ‘일과 가정 양립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저출산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보았다.그런 점에서 기존의 출산장려 캠페인 방식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설정하고 제도와 구조개혁을 통해 저출산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내놓은 정책을 보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2019년부터 시행되는 주요 저출산 대책은 추가적인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제도를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고용보험 미적용자에게도 출산지원금을 제공하고, 배우자 유급 출산휴가를 10일로 확대하고, 8세 이하 아이를 둔 부모의 경우 임금 삭감없이 하루 1시간씩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한부모 가정에 대한 양육비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다.이러한 저출산 대책은 근본적인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 “여성들이 일하는 것만 좋아서 결혼도 안하고, 저만 생각해서 애를 안 낳으려는 게” 문제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급격한 저출산 현상은 여성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다. 취업난과 주택난, 높은 사교육비,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와도 연관이 있는 복합적인 문제다. 무엇보다 가정과 사회 곳곳에 성평등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이 저출산 문제의 본질이다.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비혼과 만혼이 늘어나고 있으니 저출산은 당연하다.불안한 고용 상태에, 일하러 가면서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는 형편이라면, 아이를 낳을 수 없을 것이다.이에 스웨덴 모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복지 인프라에 기반을 두고 기본적으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출산율 증가는 여성 고용률과 긍정의 상관관계가 있다. OECD 국가중에서 여성 고용률 1위인 스웨덴의 출산율은 1.91명이다. 이는 국가, 사회, 기업의 여성노동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된 결과다. 결국 여성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부부가 공동육아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만, 아이들을 낳는 합리적 선택으로 귀결될 것이다.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 씨는 “이렇게 미안하기만 할 아이를, 키우지도 못할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고 있을까” 고민하며 한숨을 쉰다. 이는 소설속의 상황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문제다. 오는 10월에 발표 예정이라는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에 혁명적인 발상과 접근이 담기길 기대한다.

2018-07-10

‘페미니스트 시장’이라구요?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이제 한국 페미니스트 정치의 시작점은 제로가 아니라 1.7%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보다 높은 지지를 받아 4위를 차지한 90년생 신지예 후보의 말이다. 더구나 한국YMCA와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청소년 모의투표 운동본부’가 실시한 선거에서는 36.6%의 지지를 받아 박원순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이러한 결과는 비단 서울만의 일이 아니다. 제주지사 선거에서 85년생 고은영 녹색당 후보 역시 득표율 3.5%로,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앞서는 3위를 기록하였다. 원외 정당인 녹색당의 젊은 여성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의 78%를 여성으로 공천하였다. 미세먼지, 탈원전 등 환경 이슈만이 아니라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공약으로 내세워, “화장실과 밤길을 걷는 여성의 공포를 정치가 풀어주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6·13 지방선거 기간에 북미정상회담 못지않게 젊은 여성들에게 뜨거운 관심은 성차별 이슈였다.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대한 수사가 기폭제가 되어,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공론화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거대한 물결을 형성하였다. 신지예 후보는 이에 무관심했던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불법촬영 피해자 지원조례’를 제정하겠다고 하였다. 사적인 일상이 정치의 현장임을 일깨워주었다.궁극적으로 ‘페미니스트 시장’ 선언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7년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 문제에 무관심했던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서울시장 8번 후보의 득표율의 의미는, 실제 당선이 되지는 않더라도 여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투표하겠다는 유권자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단지 여성의 표를 의식하여 상투적으로 여성관련 공약을 포함하거나, 여성정치인을 장식적인 역할로 한정짓고 소비했던 기성 정치권을 심판한 것이다. 밀레트는 “가부장제의 원리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나이든 남성이 젊은이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결국 ‘페미니스트 시장’ 선언은 젊은 여성만이 아니라 소외되고 배제당하는 청년,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2018년은 페미니즘 정치의 원년이 될 것이다. 지난 촛불혁명 이후 여성들은 광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웠다. 여성이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화하기 위해 투쟁해 왔던 활동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이제 여성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여성의 경험을 담은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공론의 장에서도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의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말하며 연대하고 있다. 이 세상 절반의 여성들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이 참다운 민주주의라고.6·13 지방선거에 입후보한 9천363명의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 신지예 녹색당 후보는 낙선했지만 승리한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서울이 제 출마 목표였다.” 페미니스트 시장을 선언하며 던진 출사표의 의미는 단지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만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평등의 의미를 확장하려는 시도라 할 것이다. 함께 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이들은 가장자리에 있지 않다.

2018-06-19

어떤 일꾼을 선택하셨나요?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6·13 선거가 시작돼 선거관리위원회가 설치한 벽보와 펼침막을 보며 유권자의 고민이 시작됐다. 5월 31일부터 6월 12일까지 짧은 공식선거운동기간에 후보자들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서 자신을 알려야 한다. 바쁜 일상 가운데도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의 면면과 공약을 살피며 누가 더 나은지 결정해야 한다. 과연 어느 후보가 민의를 잘 대변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사람일지, 유권자로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대선 이후 처음으로 하는 선거라는 점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부각되고 있지만, 지방선거가 국정운영에 대한 심판장처럼 활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야당 대표의 말처럼 “남북관계 하나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것이 이번 지방선거”라는 정치 프레임은 선거과정에 생산적인 논의보다 프로파간다만 난무하게 만든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감을 뽑는 6·13 선거는 공허한 권력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상의 시선으로 내려와야 한다. 지난 4년 얼마나 우리의 삶이 나아졌는지 엄정하게 평가하고, 동시에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실질적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살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과 지역을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기회이기에 주권자로서 한 표의 가치를 삶의 정치에 둬야 한다.SBS ‘최후의 권력’ 제작팀이 쓴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산마리노공화국의 인상적인 사례가 나온다.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는 아주 작은 국가인 산마리노에서 정치는 봉사활동이다. 의원들은 정치인으로서 어떠한 특권도 기대하지 않는다. 의회장 근처 주차권도 주민들이 우선이니 자신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세탁소를 운영하거나 농부로서 생업에 종사하며 언제 어디서나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수렴해 정치에 반영한다. 선거철에만 볼 수 있고 표를 얻기 위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산마리노 의원들처럼 언제든 가까이에서 주민들을 위해 진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 선거가 끝난 후에 권력자가 돼 군림하거나 당리당략에 휘둘리며 무능력하게 허송세월을 보낼 사람을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선거에 대한 유권자의 무관심과 의무로 하는 투표행위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이 20만 건이 넘는다고 한다. 해당 코너는 직접 대통령께 정책을 제안하며 자신들의 생각을 전달하는 장이자 또한 국민 의견을 듣고 수렴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위만 바라보고 대통령이 일거에 해결해 주는 정치가 아니라 보다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주변부터 바꿔가는 참여와 실천의 태도다.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천국이란 실상 그 설계나 내용이 얼마나 행복스러워 보이느냐보다 그것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택 여부와 내일의 변화에 대한 희망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느냐”의 여부라고 했다. 결국 위에서 기획된 근사한 청사진보다 주권자로서 함께 만들어가는 정치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중요하다.따라서 시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 사회는 유권자의 손에 달려 있다. ‘촛불’과 ‘태극기’로 시민사회가 양분되고 여론을 조작하는 인터넷 정치가 가능하며 여전히 비방과 모함으로 선거가 진행되는 상황이기에 유권자의 통찰력이 더욱 요청된다. 대화와 토론, 질문하고 경청하는 소통과정을 통해 공동체 문제에 둔감하지 않은 현명한 시민이 정치적 주체가 돼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뽑아야 될지 고민한다면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그려볼 일이다. 선거는 지금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회다. 산마리노의 의원처럼 주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꾼을 뽑는 6·13 선거가 되길 기대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후보를 ‘왜’ 선택하려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2018-06-05

카네이션 꽃과 해바라기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저도 교수님처럼 늘 배우려는 자세를 본받아 이번 주도 수업 열심히 듣겠습니다” 금요일마다 진행되고 있는 ‘숙명라이프아카데미’에서 만난 학생들이 ‘스승의 날’에 보내온 카톡문자다. 동원육영재단 후원으로 진행되는 ‘숙명라이프아카데미’는 지·덕·체가 조화로운 인재육성을 목표로 50여명의 학생을 1년동안 교육하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필자가 속한 대학의 경우 4명의 교수가 조별 멘토링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행합일(知行合一), 호연지기(浩然之氣), 화이부동(和而不同),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조를 명명하여, 학생들에게 키워주고 싶은 가치를 자연스레 생각해 보도록 하였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발견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갖춘 성숙한 인재로 배움이 이어지도록 기획하였다.의미 있는 관계를 통해 좋은 영향을 받을 때 우리는 성장한다. 스승의 날에 다시 떠오른 마이크 뉴웰 감독의 ‘모나리자 스마일’, 이 영화는 관습화된 시선에 길들여진 학생들에게 캐서린 왓슨 교수는 ‘진정 원하는 자신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상류층의 근사한 남편을 만나는 것이 대학교육을 받는 목표였던 웨슬리여대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미술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자극한다. 부모가 원하는 삶,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 전시용 삶이 아닌, 학생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이끄는 영화를 통해 대학교육에서 우선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영화 ‘모나리자 스마일’에서 교수학습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왓슨 교수가 처음 부임해 강단에 서서 강의를 할 때 정답을 바로바로 말하던 학생들이, 정작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해보라는 데는 망설이고 주저한다. 왓슨 교수는 고흐의 ‘해바라기’ 작품을 보여주며 명작을 그대로 따라 그리며 작품을 모사하는 미술 수업이 아니라, 서로 둘러앉아 각자가 느낀 점과 의견을 얘기하는 열린 수업을 진행한다. 모범답안처럼 기계적으로 답변하던 학생들에게 직접 자신이 느끼고 발견한 것을 글로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교육을 하며, 학생들 곁에서 그들의 얘기를 듣고 함께 나눈다. 이를 통해 학생 자신을 주체로 세우는 교수자의 역할을 보여준다.이 영화는 또한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를 보여준다. 학생들은 왓슨 교수가 대학을 떠날 때 “우리를 기억하시라구요”라고 말하며 고흐의 ‘해바라기’를 모티브로 각자 개성 있게 그린 다양한 작품들을 비춰준다. 왓슨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어느새 자신만의 관점을 갖고 성찰하는 개인으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던지는 메시지는 크다.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떠나는 왓슨 교수의 뒤를 따라가며 배웅하는 모습은,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학생들은 이제 자기 동력을 갖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찾아간다는 점을 암시한다.“교원이 스승의 날에 학생으로부터 카네이션 꽃을 받을 수 있나요?” ‘스승의 날’ 즈음해서 학교 홈페이지에 감사실 명의의 공지가 올라왔다. 2016년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스승의 날’ 학생들이 주는 꽃이 법적으로 저촉이 되는지 여부에 관한 질문과 답변을 담은 안내였다. ‘스승의 날’이 의례화되어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는 날이어서는 안 된다.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보이지 않는 카네이션 꽃이어도 충분하다. 삶에서 깨달음을 주는 사람은 사실 모두 스승이다. 스스로 새롭게 보고 배우고 익혀가도록 옆에서 거드는 일이 교육이다. 돈과 권력, 욕망으로 환원되는 세속적 가치를 너머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에 진정한 사제지간이 있다. 사랑을 담은 문자와 재치있는 이모티콘으로 ‘스승의 날’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준 학생들이, 그래서 내게는 또 다른 스승이다.

2018-05-23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남한 땅을 밟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갔다가 다시 넘어온 깜짝 상황이었다. 신록이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나란히 ‘도보다리’를 걷다가 벤치에 앉아 두 정상이 대화를 나누던 모습 또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멀리서 온,… 아,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냉면을 공수해 왔다며 던진 가벼운 농담이 정상회담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이는 서울과 평양의 물리적 거리만이 아니라 정치적 거리를 좁히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화와 협상 테이블에서 ‘빵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게 된다. 먹을 것을 나누며 담소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되고 유대관계도 형성된다. 남북한 화합의 상징처럼 떠오른 평양냉면의 인기는 남북한 미래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을 보여주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 대한 평가도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전보다 좋아졌다’고 응답한 사람이 65%였던 반면, 1%만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북한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의 이미지는 이복형인 김정남을 죽인 포악한 독재자이자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된 로켓맨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생중계로 진행되면서 언론은 유머감각이 있는 현실적인 실용주의자로서 김정은 위원장을 평가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안보를 들먹이며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폄하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내걸고, 북한의 ‘위장평화쇼’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심지어는 “다음 대통령은 김정은이가 될지 모르겠다”는 말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북한은 악의 축이고, 북한과 대화를 주장하는 집단을 ‘주사파’라며 과거 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그들은 ‘퍼주기식’ 대북지원이 핵개발로 이어졌다는 식의 냉전 구도에 갇혀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혹은 선거의 유불리와 당리당략에 고착화되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동 협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4·27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평화를 제도화하려는 장기 프로젝트다.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이라는 공동 목표하에 더이상 소모적인 대결과 전쟁은 없음을 천명하는 것이자, 분단이냐 통일이냐의 양자택일 구도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평화를 담보하기 위해 새 판을 짜려는 기획이다. 2000년 6·15선언, 2007년 10·4선언으로 이어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의 역사가 2018년 4·27선언을 통해 남북한이 공존하는 미래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유한국당이 부추기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강경 기조는 한국의 현재와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상대와 소통을 위해서는 먼저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를 믿을 수 없다고 만나지 않고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면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남북한 관계의 진전을 위해 초당적인 협력이 긴요하게 요청된다. 지금의 남북한 평화 무드가 신기루가 되지 않도록 야당도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안보 프레임에 갇혀 북한을 압박하고 고립시키는 대북정책은 한반도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 남북한 정상이 경계선을 넘어갔듯이, 여야간에 인식의 간극을 좁혀가야 한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길은 저 멀리에 있지 않다.” 한반도의 평화로운 미래는 여야를 초월해 하나가 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2018-05-09

‘아가씨’·‘아줌마’로 호명되는 여성노동자들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월 6천원을 올려달라.”샤넬이라는 명품 브랜드 이미지에 가려진 판매직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이 팍팍하다. 샤넬 노조가 결성된 지 10년 만에 첫 파업투쟁에 나섰다. 노조 측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원가상승’을 이유로 상품 가격을 평균 2.4% 올렸는데도 회사는 0.3% 임금인상안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게 보이는 매장 직원의 70%는 최저임금 기준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며 불합리한 갑을관계를 경험하고 있다. ‘아가씨’로 불리는 여성노동자들은 혹실드(Hochschild)가 언급한 상대방의 지위와 행복을 강화하는 친절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하는 감정노동을 요구받는다. 또한 여직원 복장규정에 따라 용모를 아름답게 꾸밀 것을 강요받는 미적노동까지 감내해야 한다.2014년 개봉되었던 부지영 감독의 ‘카트’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영화는 ‘더마트’에서 계산원으로 혹은 청소원으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갑작스레 해고 위기에 처하면서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여 투쟁한 실제 사례를 담고 있다. 그들은 주장한다. “계약직이 암만 파리 목숨이라도 이건 아니다.” 마트 노동자들을 ‘여사님’으로 부르던 회사는 이들이 일방적인 해고 통지에 항의하자 ‘이 아줌마들’이라고 칭하며 무시한다. 회사에 가장 충실했던 모범계산원 선희는 외친다. “저 생활비 벌러 나와요, 반찬값 아니고.”이처럼 ‘최저임금’의 여성화, ‘비정규직’의 여성화는 일자리의 젠더 불평등을 반영한다. 2017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따르면 여성취업자의 46.4%가 서비스직, 판매직, 단순노무직 등에 종사한다. 매장판매원, 청소원,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상당수가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아가씨’ 혹은 ‘아줌마’로 소비되고 착취된다. 성별분리된 고용시장은 여성 일자리를 특정 직종과 직무로 고착화하여 여성노동은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쉬운 것으로 저평가한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어 성별과 관계없이 평등한 기회와 대우를 보장하라고 했지만, 실제 여성노동의 대부분은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여 있다.그러하다 보니 남녀 노동환경은 실질적 평등과 거리가 멀다. OECD의 ‘한국 노동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고용률은 56.2%다. 절반이 넘는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지만 고용의 질은 좋지 않다. 성별 임금격차만 보더라도 OECD 평균인 15%와 비교해 볼 때 36.7%로 두 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남성이 100만원을 번다고 할 때 여성은 64만원을 받는 셈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임금 구조는 성차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마트의 경우 여성의 평균 급여는 남성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마트측은 남성들은 정규직 관리자가 대부분이고 여성들은 주로 계산원이기에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는 남성은 가장이고, 여성은 생계보조자라는 전제에 근거한 가부장적 문화에 기인한 것이다.영화 ‘카트’의 사례였던 홈플러스가 대형마트 최초로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였다는 소식이 그나마 희망적이다. 올 7월부터 정규직이 되는 직원들 가운데 여성 노동자가 98.6%를 차지한다고 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가 10년만에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여성들의 사회적 노동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여성들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동현장에 뛰어든다. ‘아가씨’와 ‘아줌마’라는 호명 뒤에 숨은 젠더 관념에 기반한 위태로운 일자리가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양질의 노동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고 30년이나 지났으니 더 이상 여성 노동자가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사회는 아니어야 되지 않겠는가.

2018-04-24

멘토링,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청춘, 그 시작을 노래하다” 2018년 한국장학재단 ‘사회리더-대학생 멘토링’ 출발을 선언하는 ‘KorMent Day’의 슬로건이다. 지난 7일 경희대학교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멘토링 프로그램 발대식이 있었다. 사회 곳곳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멘토’로, 대학생 ‘멘티’들에게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 1기가 시작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총 2천225명의 멘토와 1만7천984명의 멘티들이 함께 하였다. ‘배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멘토링 활동에 올해는 전국에서 모인 321명 멘토와 2천700여 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하였다.멘토링(mentoring)은 그리스 신화에 배경을 둔 말이다.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는 오디세우스가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인 멘토르에게 부탁하고 떠났는데, 귀향하여 훌륭하게 장성한 아들의 모습을 보고 멘토르의 지혜와 격려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에 멘토링이 유래되었다. 이처럼 멘토링은 인생 선배인 멘토가 멘티의 잠재력을 믿고 이끌어 주는 정서적 지지와 실질적인 지도 과정을 의미한다. 현명한 스승으로서 때로는 든든한 친구로서, 멘토의 역할은 멘티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멘토링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와 소통의 관계다. “참다운 스승은 말로써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삶으로써 열어 보입니다. 제자는 그 곁에서 항상 새롭게 배우면서 깨닫습니다. 좋은 스승은 제자 내부의 본질이 꽃피어 나도록 도울 뿐입니다”라고 강조했던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멘토링의 본질은 본보기를 보이는 데 있다.멘토링은 사회적 자본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힐빌리의 노러 저자인 밴스의 경험처럼, 미국 러스트 벨트에 속하는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이 성공한 비결은 곁에 멘토가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본은 친구들이나 동료, 멘토에게서 얼마나 많이 배울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척도라고 할 수 있으리라. 사회적 자본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사회적 자본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성공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불리한 조건으로 인생이라는 경주에 뛰어들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힘든 상황에 낙담하고 주저앉으려 할 때 곁에서 따스한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고 다독여주는 존재가 있다면, 서로의 온기만으로도 삶의 풍경은 달라진다.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초대 이사장은 멘토링 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된 배경으로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든다. 2009년 5월 높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목적으로 설립된 정부기관에 멘토링을 접목하여,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미래 세대들이 성품과 역량을 갖춘 준비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학재단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인생에서 배운 바를 나누고 사람을 귀하게 섬기는 사회적 가치의 확산이 그것이다.멘토링은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폴 마이어는 “나는 많은 좌절과 상실은 물론 수많은 상처와 실망도 경험했다. 그러나 ‘사랑’은 늘 활짝 핀 꽃처럼 내 삶을 환하게 해 주었다”고 하였다. 멘토링을 통해 멘티만이 아니라 멘토도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매해 한국장학재단 멘토링에 참여하여 여러 대학 학생들과 인문고전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행복한 책읽기’ 모임을 진행하면서 나 자신도 세월을 지나 훌쩍 성장한 멘티를 만나는 기쁨과 동시에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돌아보고 조금 더 높고 멀리 내다보는 자유로운 시선을 키워가고 있다. “행복한 관계에 시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혜자’가 있을 뿐”이다. 멘토와 멘티가 서로의 시간과 마음을 내어 어울리는 멘토링이, 한국장학재단 KorMent의 로고인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가길 기대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2018-04-10

지금은 대화와 협상이 필요한 시간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반대를 위한 반대`, 여전하다. 한국정치는 바뀌지 않았다. 여야간에 개헌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다. 지난 13일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의 헌법 개정 자문안을 받는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지방선거 때 동시에 투표로 개헌을 하자는 것이 지난 대선 때 모든 정당과 모든 후보가 함께 했던 대국민 약속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개헌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를 밝혔다. 이에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청와대는 허황된 문재인 관제개헌을 포기하라”며 “야당을 공격하기 위한 위장 개헌공세”라고 맞받았다. 한편 민주당 강훈식 대변인은 “한국당의 제안은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개헌 발의를 막기 위한 전형적인 꼼수”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국회, 여당과 야당간의 말싸움이 오고가고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 중요한 상황에 입씨름으로 소일하는 형국이다.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 시기문제를 두고 서로의 생각이 다르다. 별도로 국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막대한 선거비용이 소요되고 개헌을 위해 필요한 투표율을 확보하는 문제가 있어 동시선거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청와대와 여당의 주장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뤄지면 정권심판론에 묻힐 수 있다고 본다. 또한 4월 임시국회에 제출할 청년 일자리 대책과 실업 안전망 강화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해 `선거용`이라고 반발하며 `포퓰리즘의 전형`으로 몰아가고 있다. 효과적으로 개헌 논의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여야당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먼저 고려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지난 해 촛불혁명을 통해 시민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나라다운 나라`, 더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의가 헌법 개정의 근본 목적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헌법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국가 최고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여야간에 개헌안에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개헌 저지선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라는 점에서 자유한국당의 동의가 없다면 개헌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아리스토텔레스는 `Politika`에서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이라고 했다. 이는 교육과 입법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하며, 특히 “훌륭한 입법자가 할 일은 국가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훌륭한 삶과 그들에게 가능한 행복에 참여할 수 있는지 고찰하는 것”이라고 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에 기반하여 세워진 6공화국 헌법이 30년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해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야기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 권력분산과 인권 존중의 가치가 새로운 헌법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과 함께하는 개헌`을 표방하며 국민들의 의견을 온라인으로 받고,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수사가 무색하게, 정치권의 날선 공방이 국민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개헌 논의에 앞서 새로운 정치문화가 절실한 이유다. 한국정치는 늘 국민을 앞세웠지만 제로섬(zero-sum) 게임을 벌여왔다. 승패의 논리로 여야 모두 자신의 몫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상대보다 더 얻어내려는 목표만 앞세웠다. 그러나 공격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게 되면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여야 양측이 우호적인 합의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면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고 협력을 통해 더 큰 가치를 발견하려는 대화의 자세가 필요하다. “어디서나 성공의 요인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의도와 행위의 목표를 올바로 설정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목표에 이르는 수단을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언명이 2018년 개헌 정국에도 요청된다. 대화와 협상이 필요한 시간이다.

2018-03-21

설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다들 그러고 살아왔어.” 여성들에게 설 명절은 이제까지 `다들 그렇게 살아왔던` 가부장제 문화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민족 최대 명절은 그동안 못 보았던 가족과 친척들이 만나는 반가운 날이면서, `명절증후군`과 명절 후 이혼율이 급증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통과 관습이 만나는 부담스런 자리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차례 준비로 육체적 부담과 정신적 고충, 심지어는 감정노동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며느리`에게 명절은 증폭된 가사노동만이 아니라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시댁 식구들을 대해야 하는 의무도 수반되는 날이다. 그러기에 설 명절을 `잘` 보내는 것은, 주고받는 덕담마냥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명절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이러저러한 씀씀이로 경제적 부담이 큰 것이 첫 번째 이유로 꼽히고 있다. 그 다음으로 남성들은 가족, 친척들의 잔소리를 듣는 것이, 여성들의 경우는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한다. 남성과 여성의 다른 응답은 명절 가사노동이 대체로 여성들에게 부과되어 왔고 숙명처럼 감당해 왔던 고유한 의무임을 보여준다. 명절에 해외로 여행을 가거나 차례 상을 돈을 주고 맞추는 경우도 늘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시댁으로 내려가 각종 명절음식을 만들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감당한다. 차례상에 안주상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상을 차리고 또 치우는 일이 진행된다. 빨갛게 표시된 연휴기간에도 쉴 틈 없는 노동으로 주부 10명 중 6명이 관절에 무리를 느끼는 때도 명절이다.“명절 때 시댁에 안 갔어요. 그래서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선호빈 감독의 가족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가 장안의 화제다. 감독의 실제 아내는 며느리이기에 당연히 해야 하는 명절 가사노동을 거부한다. 가족을 위해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감내해 왔던 시어머니와 시어른에게도 자신이 할 말을 다하는 신세대 며느리와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다.또한 결혼 23년차 주부가 쓴 `며느리 사표`도 저자인 영주가 명절을 앞두고 시부모에게 `며느리 사표`라고 쓴 봉투를 내밀며 독립적인 삶을 선언하는 책이다. 여성들이 결혼 후 당면하는 며느리와 아내, 엄마, 주부라는 이름하에 겪는 구조적 불평등을 역설한다.시댁에서 “며느리는 제일 밑바닥”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 비해 요즘 며느리들은 많이 편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가부장제 문화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며느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드물다. 시어른이 말씀하시면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좋은` 며느리의 미덕이다. 따스한 가정을 찬양하는 신화 속에서 여성은 자신보다 다른 식구들을 먼저 배려한다. 형식적이고 추상적인 성 평등은 명절이 되면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남성들이 먹고 마시고 TV를 보고 낮잠을 자도, 여성들은 음식을 장만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당연히 한다. 관습으로 굳어진 남녀 간의 성역할과 가부장적 전통이 답습하고 있는 명절의 뒷풍경이다.이렇듯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명절의 불편한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여성에게 가중되는 명절 가사노동의 불균형을 인식하고 남성들도 공동으로 분담해야 한다. 평소에도 한국 남성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이고 여성은 5배가 넘는 227분이라고 하지 않던가. 고된 가사노동으로 먼저 기억되는 명절이 아니라 조상의 음덕을 기리며 따스한 정을 느끼고 돌아오는 명절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역할과 의무만 남은 명절이 아니라 일상이 바빠서 못 만났던 가족과 친척과 반갑게 대화 나누며 새해를 설계하는 날이어야 한다.다음 세대의 행복한 명절문화를 위해 여성들이 고생하는 명절 문화에 혁명이 필요하다.

2018-02-20

최저임금과 알바천국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박사청소, 경비 노동자 인력을 줄이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운영하려는 학교의 구조조정 방향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캠퍼스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 일부 대학교들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비용부담과 인력 운영의 합리화를 이유로 무인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파트타임으로 대체하려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려는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에서 주변적 위치에 놓인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7천530원을 둘러싼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극심한 소득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고 하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해 6천470원에서 16.4% 상승한 7천530원을 2018년 최저임금으로 책정하였다.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을 염려하여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마련하고,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금 제도를 통해 각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최저임금이 포퓰리즘에 입각하여 정치적으로 결정되었다고 비판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바람에 중소기업과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 인건비 부담이 커져서 감원을 할 수밖에 없고, 물가상승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건물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지불해야 하는 높은 비용을 저임금으로 상쇄해 왔던 구조에서 최저임금이 복병이 된 셈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차라리 `알바`를 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자조의 소리도 들린다.최저임금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은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노동시장의 유연화는 필요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을 양산해 왔다. 핵심 업무와 주변업무로 이원화하여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주화하거나 임시직으로 대체하였다. 이른 바 `단순 노무, 비숙련직`으로 분류되는 일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실직 가능성이 높아 언제든 사회 취약계층으로 전락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소득격차와 삶의 질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내쳐질까 전전긍긍하는 불안이 반복되는 삶은 일상을 피폐하게 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스테판 에셀은 20세기와 21세기가 낳은 새로운 폐해로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 가로놓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격차”를 지적하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발표를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51.0%를 받고 있다. 저임금은 돈의 액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함몰시키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는 장치로서 최저임금은 중요하다. 토마 피케티도 `21세기 자본`에서 부가 갈수록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며 가장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만 된다고 강조하였다.2000년 이래로 청년 실업률이 최악이라고 한다. 높은 등록금과 해외연수와 무급인턴을 감내하며 화려한 스펙을 만들고도 대학생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 시장에 20, 30대의 쏠림 현상도 저렴한 `알바`와 불안정한 비정규직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낮은 임금과 해고의 두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란 과연 가능한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저임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상후하박`의 임금논리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상생의 노력이 필요하다.그런 점에서 `진정한` 알바천국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준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2018-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