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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읽고 떠들 수 있는 권리를 허(許)하라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우리는 계급을 미리 정하고 조건반사적 습성을 훈련시킨다. 우리는 사회화된 아기를 내놓는다. 아기들은 책과 꽃에 대한 본능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할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쓴‘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주목한 구절이다. ‘문명사회’는 사람들을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구분한다. 아기 때부터 책과 자연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도록 책과 꽃에 다가갈 때마다 요란한 소리와 전류쇼크를 준다. ‘하수구 청소부’로 배치되는 엡실론 계급은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존재로 양육된다.이러한 문명사회의 “도서관에는 오직 참고서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가 쓴 책은 ‘미개한 땅의 이야기’로 치부되어 읽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촉감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고통을 느낄 경우 ‘소마’를 먹고 행복해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세상, 쾌락적인 감각에만 의존하는 세계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2019년 ‘책의 날’을 앞두고 문득 드는 생각, 우리는 어떤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독서 출판을 증진하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5년 유네스코가 제정하였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과 세계적인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에 ‘책’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든 날이다. 에스파냐에서는 책과 장미의 축제가 펼쳐지고, 세계 곳곳에서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우리도 곳곳에서 책의 날을 기념하지만, 현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밀리고 있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책의 해’였던 작년만 보더라도, 일본의 평균 독서량이 40권이었던 것에 비해 우리는 8.3권을 읽었다. 1천만관객 영화가 나오고, 게임산업 매출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출판계는 위기를 호소한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책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고등학생 7명 중의 1명은 3년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학생들도 대부분 생기부에 독서활동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입시모드로 전환된 사회에서 학생들의 하루는 영어와 수학학원 공부만으로도 빡빡하다. 학업이 우선인 환경에서 독서는 뒷전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어 독서를 포기하는 ‘독포자’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대학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매일 토익 책을 펼치고 인적성검사 기출문제를 푼다. 입시부담은 취업부담으로 이어져 독서는 나중 일이다. 이런 점에서 동원육영재단이 독서를 통한 인성교육을 강조하며, 대학생들이 폭넓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의 의미가 크다. 멘토 교수로서 참여하고 있는 ‘숙명라이프 아카데미’의 경우 올해 ‘동료수업’을 마련하였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발표와 독서토론을 하며 수업을 이끌어가도록 하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 질문하고 소통한다. 혼자서 읽는 독서에서 사회적 독서로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다.최근 부산시청 로비에 ‘꿈+도서관’이 마련된다는 소식이 더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과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늘어나야 하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시민이 행복한 책읽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부산시가 시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로비 공간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하겠다고 한 것은 큰 변화의 시작이다. 행정업무만 보고 총총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1층 로비에 위치한 도서관을 잠시 둘러보다가, 누군가는 책 장을 펼쳐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기적같은 효과를 낳을 것이다. 진정으로 ‘멋진’ 신세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책의 날’에 만방에 외친다. 자유롭게 책을 읽고 떠들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그런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라.

2019-04-22

우리 모두는 노인이 된다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키케로의 책 ‘노년에 관하여’는 30대 젊은이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가 80대 카토를 찾아와 노년의 삶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카토는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 없다면 모든 인생 시기가 부담스러운 법”이라며 노년이 되었다고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로마 최고 정치지도자였던 키케로는 카토를 통해 철학하는 삶에 기반한 노년의 행복을 말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평균적인 노인들의 삶은 어떠한지, 과연 영예롭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무엇을 시사하는가?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 보고서’에 의하면 핀란드가 지난 해에 이어 1위를 차지하였다. 현재생활만족도를 비롯해 사회적 지원, 1인당 국민총생산, 기대수명, 자유, 관용, 부패 등을 더해 행복지수를 산출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59개국 중에서 54위였다. 1인당 GDP 27위, 기대수명 9위는 상위권이었으나, 사회적 지원 91위, 부패 100위, 자유 순위는 144위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대수명과 사회적 지원 사이의 갭이다. 사회적 자본이 빈곤한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노인 세대의 양극화가 심하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노년기에 더 결정적이다. 호텔 수준의 고급 실버타운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노인과 대조적으로 쪽방촌에서 홀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독거노인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나이 드는 경우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OECD에서 발표한 ‘2019년 국가별 노인빈곤율 현황’에서 한국은 46.5%로 1위였다. 노인 두 명 중의 한 명이 경제적 궁핍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저소득 계층 20% 중에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계 비중도 42%로 나타났다.행복지수가 높은 유럽국가 노인들은 여유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노년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모아놓은 재산이 없다면 기본적인 생활조차 쉽지 않다. 계층간, 지역간 차이가 있지만 공식적인 은퇴 이후 노인문제는 두드러진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40만원이고 기초연금 최고액이 30만원이다. 노인복지를 위해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법원이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하여 노동 가동 연한을 만 65세로 판결한 것은 평균수명의 증가한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근로복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경제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우리는 궁금한 게 있으면 이제 노인을 찾지 않는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인은 무능력하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만 권위를 지닌 원로는 사라지고 있다. ‘6·25를 겪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은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든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며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나무라고, 젊은 세대들은 ‘꼰대’로 부르며 이들의 말을 무시한다.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실종되면서 노인혐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노인들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없다.한국사회에서 품위 있고 아름다운 노년은 가능한가? 노인의 삶의 질은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주류 집단에 속한 젊은 사람들 모두가 언젠가 비주류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노인’이 유일하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와 국가가 노인문제를 두고 토론해야 한다. 노인들이 고립되고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노년은 “연극의 마지막 장”처럼 깊은 감동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노년의 문제는 특별한 사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

2019-04-08

‘몰카공화국’이 되었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한국에서는 몰래카메라를‘molka’라고 부른다.” 몰카는 은폐된 곳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상대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단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모텔 객실에 숨겨놓은 초소형 몰래카메라로 투숙객의 사생활을 찍어 생중계한 ‘모텔 몰카’ 사건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미국 CNN은 홈페이지 ‘탑 스토리’ 코너에 투숙객 몰래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한국의 몰카 소식을 다루며, “한국에서는 2017년에는 6천400건이 넘는 불법 촬영이 경찰에 신고되었고 계속해서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한국이 “불법촬영이라는 전염병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하였다.‘몰카 공화국’이 되고 있다. 지하철, 버스 등을 비롯해 공중화장실, 숙박업소와 사무실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몰래카메라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몰카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모텔 몰카’사건은 몰래카메라를 활용한 성산업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보여주었다. 전국 10개 도시, 30개 모텔의 객실에 1㎜ 초소형·위장형 카메라를 설치해서 투숙객 1천600여 명의 침실을 몰래 촬영하고 음란사이트에 올려 수익을 창출한 디지털 성범죄였다.투숙객들이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생활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유통되었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2016년 조사한 범죄판례 분석결과에서 몰카 재범률은 53.8%로 나타났다. 다시 되풀이할 만큼 중독성이 강한 범죄라는 점에서 몰카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몰카’가 더 심각한 이유는 상호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범죄라는 인식 없이 몰래카메라를 남용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 첨단화된 스마트폰을 활용한 몰카도 급증하고 있다.비단 상업적 용도만이 아니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상대방 몰래 비밀스런 정보를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몰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촬영이 이루어지기에, 낮은 수준의 사생활 침해라고 해도 몰카는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몰카포비아’가 확산되고 있다. CCTV와는 달리 몰래카메라는 자신도 모르게 비밀리에 촬영되는 터라 일상이 공포가 되고 있다. 화장실 공간만이 아니라 안경, 시계, 볼펜, 휴대폰충전기, 자동차 열쇠 등 생활용품으로 몰래카메라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특히 여성들에게 몰카포비아는 더욱 심각하다. 많은 여성들이 몰카의 폭력성에 분노하고 불안해한다. 불법촬영된 사진과 동영상이 온라인 공간에 유포되어 남성들의 눈요깃감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몰래카메라에 대한 위기의식은 ‘몰카 찾는 팁’, ‘몰카 탐지 어플’ 등 검색어로 나타나고 있다. 개인들이 몰카 탐지용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여성들이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거리시위를 하는 것은 몰카의 범죄성을 방증하는 것이다.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몰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불법촬영’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다.몰카로 인해 사생활이 노출되고 위협받는 것은 한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더구나 ‘모텔몰카’처럼 개인의 은밀한 영역까지 카메라로 담아 실시간으로 유통한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파되는 환경이기에 폭력성이 더 크다. 몰카 위험에 개인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몰래카메라로 인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법촬영에 대해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몰카는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다.

2019-03-25

이제는 협상의 시대다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올해 3월 1일은 여러 의미가 더해진 날이었다. 1919년 일어난 3·1운동 100주년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다. 지난 2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백범 김구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는 정부의 상징성을 보여주었다. 그 자리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도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라고 하였다. 3·1절 기념사에서도 “신한반도 체제로 담대하게 전환해 통일을 준비해 나가겠다”며, 이를 국민과 함께 남북이 함께, “3·1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선언하였다.또한 3월 1일은 통일부가 설립된 날이었다. ‘통일’이라는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정부 부처로 1969년 국토통일원이 창설된 이래로 50년이 지났다. 그동안 통일부는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남북한 교류 협력 및 탈북자 지원, 국내외 각계각층을 위한 통일교육을 실시하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지난 50년 동안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가장 부침이 컸던 조직이기도 했다. 국내외 환경 변수로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에 한계가 많았다. 통일의 비전과 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진폭이 컸다.통일부 50주년 행사에서 조명균 장관은 “다른 조직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통일부가 오래 됐다는 것은 그 만큼 통일이 늦어졌다는 뜻”이라며 분단을 빨리 종결하는 것이 통일부의 소임임을 환기시켜 주었다. 하노이회담 이후 북미관계의 시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재점검이 요구되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태극기 부대들이 “좌파 독재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 문제를 풀어가는 게 좋을지 쉽지 않은 장이 펼쳐지고 있다.2017년 5월 4일 타임지는 문재인 대통령을 ‘네고시에이터(The negotiator)’로 소개하였다. 강인하고 비장한 이미지의 표지 사진과 함께 “협상가 문재인, 김정은을 다룰 수 있는 남한의 리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문구로 대선 후보로 나선 문재인 대통령에 주목하였다. 2018년 4월에는 ‘2018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12월에는 매년 타임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 5위로 문재인 대통령을 꼽았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고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하면서 한반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점이 선정 이유였다. 타임지가 ‘위대한 협상가’로 부른 문재인 대통령이 제2기 통일부를 이끌 수장으로 ‘협상의 전략’을 쓴 김연철을 선택했다.‘협상의 전략’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상 결과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는 지금도 휴전과 종전 사이에서 혹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로 표현한다. 또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달성한 독일사례를 다루며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주목한다. 브란트의 ‘작은 발걸음 정책’이 불가능해 보였던 독일 통일을 가능하게 했다며 “진심만큼 강한 무기는 없다”고 강조한다.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적인 삶에 초점을 맞춰 대화하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했던 브란트의 접근이 동서독 관계정상화와 결국 통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이제는 협상의 시대다.” 제40대 통일부장관 내정자 김연철은 말한다. “협상은 문제해결을 위한 차선책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이 되었다”고. 또한 “때를 아는 것이 협상의 유일한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북미대화가 다시 교착상태로 빠진 지금, 우리 안의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려면 협상이 필요하다. 남남갈등을 해결하고 주변 국가를 설득하며 통일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협상력이 관건이다. 문재인 정부 2기 통일부가 통일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는 중대한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바로 지금이 협상력이 필요한 ‘때’다.

2019-03-11

취업인가 창업인가, 극한직업시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영화 ‘극한직업’이 누적 관객수 1천500만명을 돌파했다. 마약반 형사들이 조폭을 검거하기 위한 좌충우돌 분투기가 치킨 집을 무대로 펼쳐진다.“세상에 이런 맛은 없었다”는 수원 왕갈비 맛 치킨으로 영화 속 치킨집은 대박이 난다. 그러나 현실의 사정은 다르다. 특별한 기술이 없이도 진입할 수 있는 업종이다 보니, 치킨집들은 한 집 건너 늘어나지만 얼마 못가서 문을 닫는다. 높은 건물임대료와 최저임금, 프랜차이즈 갑을구도 속에서 자영업 상황이 녹록치 않다.경기침체로 취업환경도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시 취직 공부를 하는 실정이다. 대학 졸업장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기준 대학 졸업예정자의 정규직 취업률은 11%로, 열 명 중의 한 명만이 안정된 일자리에 입성하였다. ‘SKY’졸업생들 취업사정도 만만치 않다.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평생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취업 문제는 지방대학으로 내려갈수록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청춘들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고 있다.공무원은 평생 안정된 직장, 고정된 수입을 보장해 준다. 각자의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공무원 시험 준비로 청년들은 학원 앞 컵 밥을 먹고 비좁은 고시원 생활을 감내한다. 이런 상황을 LA타임스는 하버드대 입학보다 한국의 공무원에 합격하는 것이 더 어렵다며, 새벽부터 밤까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기현상을 보도하였다. 최근 정부가 ‘국가공무원 총정원령’을 개정하여 올해 1분기에만 1만명 정도 공무원을 증원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공무원 시장에 수험생들이 더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각자도생’식으로 각 개인이 불안한 미래를 해결하려 고군분투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불행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혁신으로 세계경제가 바뀌고 있는데 지금과 같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다수가 ‘백수 취준생’으로 공무원 시험을 공부한다면 비싼 등록금을 낸 이유가 무엇인가? 미래 일자리에 걸맞는 취업교육이든, 앙트러프러너십에 기초한 창업교육이든 학생들이 제대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대학이 변해야 한다. 또한 치킨집을 차려 몇 년 안에 폐점하는 상황에 정부는 무겁게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의 자영업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7.0%보다 높은 25.4%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고령화시대에 인생 2막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세계 경제는 긱이코노미(Gig Economy)로 재편되고 있다. 고용시장은 그 때 그 때의 필요에 따라 일을 맡기는 추세가 확대되고 있다. 자율성, 유연성을 이유로 정규직을 꺼리고 외주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다이앤 멀케이가 지적한 것처럼, 긱경제는 “숙련된 노동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구조이기에 새로운 기술과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학교, 학위, 직함, 이름을 중시하던 이전과 달리 특정 지식과 기술, 재능과 경험이 중시되는 환경인 것이다. 이제 대학 학위가 더 나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다.졸업도 취업도 창업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치킨집을 차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일찌기 하워드 가드너가 ‘미래 마인드’에서 언급했던 훈련 마인드, 종합 마인드, 창조 마인드, 존중 마인드, 윤리 마인드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최소한 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계속 훈련해 갈 수 있도록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의 이익을 넘어 사회 전체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숙련된 인재가 자본보다 더 부족하다고 말한다. 대학 졸업생이 쏟아지는 2월 졸업식을 지켜보며, 취업과 창업, 어느 것도 만만치 않은 극한직업의 시대, 대학과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2019-02-25

주마간산(走馬看山) 청도일기(靑島日記)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칭다오에 왔으면 칭다오 맥주지요. 전대광이 박자를 맞추듯 말했다. 칭다오 맥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10대 브랜드중의 하나였다. 술로, 그것도 중국 고유의 술 마오타이나 우량예가 아니라 서양의 술인 맥주로 서양에 수출해서 G2의 경제대국 중국을 대표하는 10대 브랜드에 들었다는 것은 좀 이상스런 일일 수도 있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에 나오는 청도에 대한 구절이 새삼 떠올랐던 것은, 지난 주 한국사고와표현학회 회원들과 다녀온 중국 청도 여정 때문이었다.‘중국속 유럽’이라는 별칭처럼, 청도는 청나라 시기 독일의 조차지로 주황색 기와지붕 건물이 보존된 구도심과,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건축물이 들어서 깔끔하게 계획된 신도심이 대비가 되는 도시였다.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쓴 ‘열하일기’처럼 세심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글이면 좋으련만, ‘주마간산’ 인상기처럼 칭다오 맥주박물관, 해천만쇼, 산동대학에서 느꼈던 단상을 나눈다.청도여행을 오면 제일 먼저 방문한다는 칭다오 맥주박물관! 박지원이 청나라 문물이 발달한 이유로 하찮은 ‘기왓조각’이나 ‘버려진 똥’도 활용하는 실용정신을 지적했던 것처럼, 2019년 중국은 1903년 독일이 만든 맥주공장 시설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10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물관 공간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입힌 증강현실(AR)로 맥주의 제조공정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또한 맥주를 유리컵에 담아서 시음해 보는 체험공간을 두어 자연스레 칭다오 맥주를 홍보하며 구매까지 유도하였다. 중국 사회주의경제가 독일 식민시기의 유산조차 보존하고 새롭게 재탄생시켜 관광자원화 한 현장이었다.또한 중국 근현대 역사와 문화가 결합한 해천만쇼! 천창대극원에서 관람한 ‘몽귀금도’는 독일인 마술사와 중국인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었다. 사회 정치적 격동기에 굴절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삶의 서사를 인문학적 감성과 상업적 마인드로 잘 결합하여 기대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일제,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역사적 소재를 가미한 러브 스토리에 춤과 음악, 마술, 드라마와 화려한 쇼를 융합한 공연예술의 극치를 선보였다. 중국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이별, 재회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한 기획력과 첨단 영상을 활용한 세련된 무대 연출로, 사람들 발길을 이끈 이른바 ‘컬처노믹스’로 문화를 경제와 접목한 사례였다.마지막으로 청도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았던 산동대학교 도서관! 대학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이 함께 떠난 터라 캠퍼스 투어는 더 특별하였다. 천하 인재를 위해 국가 부강을 위해 교육한다는 산동대학교 정문의 교석과 곧장 연결된 중심 위치에, ‘대학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는 도서관이 우뚝 서 있었다. 도서관 로비에서 친절하게 안내 서비스를 해 주던 두 대의 ‘로봇 도우미’는 중국이 한 발 앞서 대학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상징처럼 읽혀졌다. 대학사회에도 이미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결합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음을 중국에서 알게 되었다.“중국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중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정글만리’는 ‘14억 인구에 14억 가지의 일이 일어나는 나라’이기에 중국의 변화 양상을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잠깐의 청도 일정에서도, 시진핑이 강조한 ‘중국몽(中國夢)’의 실체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하는 가운데 경제발전과 교육성장으로 구현되는듯 했다. 일견 중국을 잘 아는 듯 말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제라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는 나라, 중국의 저력과 가능성을 목격했던 여정이었다. 중국을 공부하고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청도 워크숍이 내게 남긴 숙제다.

2019-02-11

체육계 성폭력, 코치는 ‘코칭’을 아는가?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체육계도 ‘미투(#MeToo)’다.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를 지도했던 조재범 코치가 상습 폭행만이 아니라 강간, 상해 혐의로 추가 고소되었다.어린 선수들의 몸과 마음에 고통과 상처를 준 코치와 감독의 성희롱과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체육계를 구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학교운동부 및 합숙훈련을 특별 점검하기로 하였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을 구성하여 대한체육회 소속 선수 13만명의 실태를 전수조사하기로 했다.체육계 성폭력 이슈를 보며 스포츠 정신, 코치의 역할과 코칭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스포츠 정신은 선수가 자신이 땀 흘린 만큼 최선을 다해 정정당당 겨루고 공정한 심판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승리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자세를 포함한다. 그러나 지금의 체육계는 과연 스포츠 정신이 살아 있는지 궁금하다. 대한체육회가 절대 권력으로 군림하였다고 한다. 선수로서의 성장과 경기출전권 등 모든 것이 감독과 코치의 손에 의해 결정되었다.선수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된 ‘스카이 캐슬’에서 선수들의 인권은 뒷전이었던 것이다.일등주의 문화, 상명하복 분위기에서 선수 개인에 대한 인격적인 존중은 무시되어 왔다. 수면 위에 드러난 것만 보더라도 코치의 욕설과 폭행이 다반사였고, 일부 여성 선수들은 성추행과 성폭력까지 감수해야 했다.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것이 덮어졌다.스포츠 정신에 반하는 체육계의 고질적인 병폐는 차제에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체육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 인권교육과 성교육이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선수들이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습권을 보장해 주고, 합숙시설에서 군대처럼 훈육하는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련자 모두가 책임을 공유하는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코치와 선수간에 개방적인 학습 파트너십에 기반한 코칭이 자리 잡아야 한다.‘코치’는 스포츠 분야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비즈니스 코칭, 커리어 코칭, 라이프 코칭 등의 형태로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코칭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코칭을 받는 사람이 더 나아질 것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이루어지는 활동이다. 엘리자베트 하버라이트너는 ‘코칭 리더십’에서 “코칭이란 지원을 통해 스스로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확대하여 능력과 의욕을 높일 수 있게 하는 리딩 방식”이라고 정의하였다. 스포츠 영역에서 코치는 자신의 선수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코칭을 통해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며 최선의 길을 안내해주어야 한다.선수의 가능성을 믿고 가장 가까이에서 성장을 도와주고 지원하는 것이 코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코치와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관계다. 이는 코치가 성실한지, 언행이 일치한지, 약속한 것을 이행할 능력이 있는지 등을 통해 선수들은 코칭을 받으며 자연스레 알게 된다. 코치가 하는 코칭이 선수들이 보다 효과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도록 일깨워주고 자신의 역량을 개발해 가도록 유도함으로써 성취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코치와 선수간에 인간적인 존중과 신뢰가 없는 금메달은 상처뿐인 영광이다. 코치를 선수가 고발하는 지금의 한국체육계의 현실을 보며, 근본으로 돌아가 묻는다.“코치는 코치이(coachee)를 한 인간으로 정중하게 존중하여 대한다. 코치는 개인적으로, 성적으로, 재정적으로 코치이를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국제코칭협회 윤리원칙을 체육계 코치들이 알고 실천했는지를.

2019-01-28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대학 교수는?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어떠한 전문직 종사자들보다도 교사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식견을 지니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학의 거장 존 듀이는 ‘경험과 교육’에서 그리 말한다. 이 말을 한국의 대학사회에 적용해 보면 적잖이 공허하다. 많은 대학들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교수 집단을 세분화하여 단기 계약직 교수들을 양산해 왔다. 강의전담교수, 산학협력교수, 초빙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등의 비정규직 교수들은 ‘교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긴 하나, 정년 전임들과 비교할 때 임용조건이 천양지차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하기에 그들의 형편이 열악하다. 교원지위 안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비정년 전임 교수들의 상황은 강사보다 낫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다.우리 사회 곳곳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대학 비정규직 교수들 상황도 다르지 않다. ‘비정년 트랙 전임 교원’은 2000년대 초에 등장하였다. 교수정원을 늘려 보이되 구조조정이 용이한 경영의 효율성에 따라 교수와 강사 지위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그야말로 비정년 전임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성이 어정쩡하게 혼합된 자리다. ‘비정년’이기에 고용 불안 문제는 강사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전임’이기에 일반 정년 교수들처럼 연구실도 제공되고 강의실 안팎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논문을 발표하며 교내외 일들에 참여하는 교육과 연구, 봉사의 의무를 지닌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정년 전임교수의 경우 1~3년의 계약기간에 재임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오랫동안 근무했던 대학일지라도 곧바로 짐을 싸고 방을 빼야 하는 처지다.비정년 전임 교수들의 현실은 대학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정년과 비정년으로 교수들을 구분하고 계층화하는 구조에서 대학의 지식노동이 동등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트랙이기에 임금과 승진에서의 차별만이 아니라 교수로서의 권리가 거의 없다. 수업시수가 많아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교육전담 교수라고 해도 학생들과 면담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인 공간을 배정받기 어렵다. 더구나 대부분 교육교수로 있기에, 재임용 과정에서 학생들의 강의평가 결과는 더욱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도 한다.강사와 교수의 경계에 서 있는 비정년 전임 교수들은 재계약 할 때마다 불안함과 허탈감이 증폭된다고 말한다. 계약 조건에 따라 반복적인 재임용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매년 교원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다양한 활동의 내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가 정년 보장을 약속하지 않았기에, 대학 상황이 바뀌거나 교육과정이 변경되는 경우 ‘유연하게’ 계약에 따라 고용 여부가 판단될 수 있다. 이처럼 대학이 전임교원 숫자를 교육부에 보고할 때는 전임 신분으로 해석되지만 학교 내부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요동치는 자리가 바로 비정년 전임 교수들의 실상인 것이다.대학사회가 자본의 논리로 흔들리고 있다. 대학이 경영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할 때 1순위는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 교강사들이다. 연구비를 줄이고 대규모 강좌를 늘리고 노동조건이 악화되어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이들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된다.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고려해 본다면, 비정년 교수들의 상황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볼 수만 없다.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중요한 이유가, 대학 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계약서 규정만 지켜 퇴출을 면하려는 보신주의를 가져온다. 정년 자리만 보전하는 전임교수도 있는 현실에서 비정년 트랙의 고착화는 위험하다. 교육과 연구에 헌신하고 학생들의 성장과 학교 발전에 기여하는 비정년 교수에게는 정년 트랙으로의 이동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 학문과 교육의 ‘공동체’인 대학의 역할이다.

2019-01-14

진짜 교육이 필요한 시간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고등학교 역할이 뭔데, 대학가는 거 아냐?” 그렇게들 말한다. 대학입시만을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고3교육이 수능이 끝나자 블랙홀에 빠졌다. 체험학습으로 떠났던 고3 수험생들의 강릉펜션 참사 사고 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 이후 한 달 간 마땅한 교육프로그램 없이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지 않은지 전수 점검하겠다”고 공표하였다. 허술한 고3 수험생 관리가 사고를 불러왔다고 본 것이다. 수능 이후 교육이 공백 상태라는 점은 현장시찰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사들은 “수능과 기말고사가 끝나면 사실상 더 가르칠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가르칠 것이 없겠는가? 과연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입시감옥에서 풀려난 고3 학생들을 위한 학교교육이 없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붙잡고 있었던 교육이 멈췄다. 학교는 단축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하루 종일 자습하라고 하거나 수업마다 영화만 줄곧 틀어준다. 고3학생들은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 학교에 나오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이 시간만 때우다 간다. 수능 이전에는 빼앗겼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도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단결석을 하거나 조퇴를 하기도 한다. 이 시기 많은 고3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신청한다. 교실 교육이 사실상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 학교도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권장한다. 현장체험학습은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학생들이 교외에서 체험한 다양한 활동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이번 참사의 본질은 현장체험학습에 있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일정과 맞물린 고등학교 교육의 한계다. 고3 교사들은 행정업무와 진로지도로 수능 이후의 교육에 사실상 신경쓸 여력이 없다. 수시와 정시가 혼재한 시기에, 대학마다 너무도 다른 입시전형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의 부담은 과중하다. 더구나 평생교육 시대에 교육은 학생 스스로 배움의 주제를 갖고 자유롭게 탐구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이어야 되기에 체험학습이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배움은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실 교육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부는 차제에 “수능 후 고3 학사관리 내실화 방안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 말이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으려면 교육 현장에 구체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 일회성 행사나 전시용 교육이 아니라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기 전에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험공부식 교육에서 도외시 될 수밖에 없었던 교육의 정상화가 도모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인성·창의·예체능 교육을 통해 그동안의 치열한 입시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도록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한다. 머리만 쓰던 교육에서 학생들이 온몸을 사용하고 감성과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말로만 강조되고 뒷전으로 밀려났던 교육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공부를 강조하는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에 유학한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의 저자 조한별은 책에서 “수업(授業)도 아니고 수업(受業)도 아닌 수업(修業)이 되는”, 이른 바 자신과 세상을 연결시키는 교육을 강조한다. 고3학생들을 방치했던 수능 이후 고등학교 교육이 그처럼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의 비전을 찾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공동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생기부에 한 줄 기록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해보고, 독서기록장에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며, 남에게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성숙한 삶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수능 이후 진짜 교육이 이뤄지는 시간이길 소망한다.

2019-01-07

평가와 피드백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박사12월은 평가의 달이다. 학교는 수행평가로 대학은 학점으로, 기업은 인사고과로 그간의 활동을 평가한다. 대학 수업의 평가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연세대는 2019학년도부터 상대평가를 폐지한다고 한다. 성균관대도 2020년부터 의과대학 교육에 인성기반 절대평가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학에 와서 협력을 가치로 강조하면서도 평가는 여전히 경쟁하도록 하는 상대평가 제도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과연 교육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지금의 평가제도가 의미가 있는지,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좋은 의사가 되는데 실제 도움이 되는 평가인지, 질문을 던진 결과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지난 주 참여했던 여러 자리에서 다시금 ‘평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지난 8일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주최한 교양교육 컨설턴트 연수에 참석하였다. 대학 교양교육을 견인하기 위해 그동안 해 온 심화컨설팅과 사후모니터링 과정을 돌아보며 교양교육을 위한 평가도구 개발과 인증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인 ACE사업에서 지원 대학을 선정할 때 전공 영역보다 교양 분야에 더 배점을 두었기에 각 대학이‘잘 가르치는 대학’을 표방하며 교양교육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외형적으로 교양교육이 자리잡고 확산되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앞으로 대학평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열띤 토론이 있었다.9일은 한국작문학회와 대학교육개발센터협의회가 주최한 공동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가한 덕분에 평가와 피드백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서울대에서 ‘사회과학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발표자는 학생들의 노력을 반영하여 발전 정도를 평가하려면 절대평가 방식이 적합하다고 하였다. 글을 처음부터 잘 쓰는 학생이 높은 학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글의 완성도를 위해 피드백을 수용하고 노력한 과정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피드백과 연계된 평가는 학생의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다.교육 현장에서 평가는 단순히 성적을 매기는 도구가 아니다. 학생들의 수준을 체크하고 잠재능력을 발견하는 지도의 기초로 활용된다. 교육 목표에 따른 성취기준과 학생의 학습수준을 평가해 세심한 피드백으로 연결하는 것이 평가의 교육적 의미다. 조셉 포크먼은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면 학습이나 자기계발은 절대 기대할 수 없다”며 “작은 피드백의 위대한 힘”을 강조하였다. 결과로서 아웃풋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성취도를 이전과 이후로 비교하여 살펴봄으로써 변화와 성장을 독려하는 평가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밖에 있는 타자의 평가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신이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먼저 발견하도록 이끄는 평가여야 한다.평가는 무엇보다 공정성과 신뢰성, 타당성을 확보해야 결과에 이의가 없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정답이 있는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평가는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치세계도 마찬가지다. 정치철학과 입장에 따라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천양지차다. 정치는 선거결과로 평가된다. 또한 국정수행 지지율과 여론조사를 통해 수시로 평가받고 피드백을 얻는다. 평가는 기본적으로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목표에 맞추어 노력하는 과정이 평가되어야 한다. 단 한 번의 채점으로 평가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내년 예산안이 통과된 시점에, 문재인 정부 집권 3년차가 지금보다 나은 평가를 받길 기대한다.

2018-12-11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유감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정치학 박사한국은 ‘과잉교육 사회’다. 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지난 15일, 외신들은 “학생들이 하루 16시간까지도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고, ‘SKY’로 불리는 명문대 진학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을 받는” 한국의 현실을 다루었다. 우리 사회 구조적 병폐 중의 하나가 대학입시다. 문재인 대통령은 “출발선의 불평등”을 개선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신분 상승의 욕망이 개입된 대학입시를 개혁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위원회 숙의 결과를 보더라도 대입제도를 둘러싼 여론 수렴이 쉽지 않음을 방증한다. 수능 비율 확대를 말하면서 동시에 수시 전형도 강조하는 입시 딜레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대학 입시를 위한 공부지옥에서 학생들을 벗어나게 하면서 또 제도의 공정성을 담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현재 수시중심 입시제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고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학생부 종합전형이 문제다.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수시전형을 위한 스펙쌓기로 학생과 학부모가 감당하는 비용이 커지고 있다. 학생의 노력보다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요구되고 어느 교사를 만나는지가 더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숙명여고 사태는 이 제도가 오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는 “학생의 다양한 자질을 평가하는 ‘수시’를 현 77%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에 17.9%가 찬성한 반면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정시’를 현 23%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53.2%였다.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변수가 개입될 수시는 안된다는 여론이다.지금의 입시제도에서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오죽하면 대학입시를 거부한 학생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투명끈”을 말하겠는가. 고등학교는 이미 대학입시 준비 기관으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생기부’에 몇 줄 추가하려고 이것 저것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져 분주하고 피곤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교과활동과 학교생활을 꼼꼼히 기록해야만 하는 부담이 커졌다. 하지만 ‘생기부’ 작성과정과 결과에 대한 불신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학부모들은 대학별로 너무나 다양한 수시전형으로, 자녀의 입시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지 난감해하며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닌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사교육 시장만 번성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대학입시를 정상화하려면 논술과 면접시험을 강화해야 한다. 누군가가 꾸며주고 만들어 준 서류로는 알 수 없는 학생 개인의 잠재력과 인성이, 읽고 쓰고 말하는 과정에서 보인다. 지금의 수능시험은 “실력과 관계없이 지문과 문제를 얼마나 빨리 읽는지가 관건”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한 문제라도 놓치지 않으려면 생각할 여지없이 바로 답을 찍을 수 있어야 한다. 수시에 합격한 경우 수능시험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수능결시율이 매년 증가하여 올해는 10%가 넘었다고 한다. 수능마저 무력하게 만들고 있고 학교생활 기록과정에 비리가 작용할 수 있다면 수시의 비중을 줄여야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팽팽하다.현재 입시제도에서는 수험생 10명 중 8명은 수시로 진학한다. 그렇다면 학생부 종합전형보다 학생의 실력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논술과 면접이 ‘상대적으로’ 공정하지 않겠는가. 논술은 기본적으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반영하여 출제하도록 돼 있어 학교 교육에 충실해야 하고, 형식적으로 독서기록장만 채운 경우 실제 논술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더구나 면접은 학생들을 직접 보면서 학업이수능력 외에도 여러 측면을 살필 수 있다. 온전히 수험생만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입시제도가 공정하다. 수능이 끝났지만 다시 대학입시를 위한 전략을 짜고 있는 지금,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묻는다.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은 내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2018-11-27

여성과 정치, 한 걸음 더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70년 전까지만 해도 투표권조차 없었던 원주민 출신인 내가 뉴멕시코 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아메리칸 원주민 최초로 여성 하원의원이 된 뎁 할랜드의 당선 소감이다. 지난 6일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는 여성정치의 진보를 보여줬다. 1920년에 여성도 참정권을 얻었지만 공적인 정치공간에서 소외됐던 무슬림, 이민자, 인디언,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출신 여성들이 대거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최초의 무슬림 여성의원이 된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라쉬다 틀라이브, 소말리아 이민자 일한 오마르, 첫 흑인 여성의원인 아야나 프레슬리, 텍사스 최초의 라틴계 의원 베로니카 에스코바르 등이 그들이다. 이제 엘리트 백인 여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 정치의 장에 들어섰다.미국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여성들의 높은 정치참여다. 여성을 멸시한 트럼프에 대한 분노와 ‘#미투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웠던 여성의원이 많이 당선됐다. 특히 민주당이 8년만에 하원을 석권하게 된 배경에는 여성 후보들의 활약과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435명을 뽑는 하원 선거에 역대 최다인 237명의 여성이 출사표를 던졌고, 그 중 185명이 민주당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여성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지역사회와 밀착해 활동해 온 여성정치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선거였다.정치는 남녀의 고정된 성 역할이 견고하다. ‘여성들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로 남성중심의 정치구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정치영역에 여성의 배제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미투운동’의 거대한 흐름은 정치 분야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이 남성이 독점하던 정치 지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비키 랜달은 ‘여성과 정치’에서 “여성은 선천적으로 비정치적이지 않다”며, 여성 접근이 용이해지는 메커니즘이 구축되면 정치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현실정치의 장에 여성이 대표권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만 허락되면 새로운 변화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미국 11·6 선거결과 여성정치에서 진전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정치는 남성권력의 몫으로 여겨져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대표성을 제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국 여성들의 높은 교육성취와 대조적으로 여성들의 정치적 권한은 낮았다. 여성들은 정치자원인 조직과 자금에서 밀리고 정치 분야에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됐다.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구조와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심상정 의원의 남녀동수제 발언에 주목한다. 국회와 내각에 여성들의 동등한 참여를 강조하는 ‘남녀동수’ 운동은 사회 전반으로 여성들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정치는 모든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한다. 그런 까닭에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주체들이 평등하게 정치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말뿐인 성 평등을 너머 정치적 의사결정에 여성들의 역할과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 드루드 달레룹은 여성 눈으로 볼 때 지금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려면 ‘누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지, ‘어떤’ 사안이 정치적 안건이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평등을 위한 다양한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한 걸음 더’ 현실 정치의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11·6 미국 중간선거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다.

2018-11-19

유튜브와 가짜뉴스, 이유 있는 논란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유튜브(YouTube)는 ‘갓튜브’라고 불린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듯이 21세기는 유튜브로 통한다. 신과 같은 존재가 된 유튜브 세상에 ‘가짜뉴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가짜뉴스의 온상으로 유튜브가 지목돼 민주당 허위조작정보 대책특별위원회는 구글 코리아를 방문해 국내법 위반 소지가 있는 유튜브 콘텐츠 삭제를 요청했다. 정부도 가짜뉴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온라인 콘텐츠에 대한 팩트 체크와 규제 강화가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여론통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 목소리도 작지 않다. 1인 미디어 시대 절대강자 유튜브의 가짜뉴스 논란의 해법은 무엇인가?2005년 11월 동영상을 올리고 공유하는 장으로 시작한 유튜브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엄청난 양의 동영상 콘텐츠를 바탕으로 유튜브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IPTV, 위성방송, 케이블TV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2018년 유튜브를 시청하는 전세계 사용자 수는 19억 명이 넘는다. 국내 동영상 플랫폼 점유율에서 유튜브가 85.6%를 지배했고 아프리카TV, 네이버TV는 2~3%에 불과했다. 국민 10명중 4명이 하루 1시간 이상 유튜브를 시청하고 전 연령대에서 가장 선호하는 채널로 꼽혔다. 유튜브는 누구나 소비자이면서 생산자가 될 수 있기에 개인용 방송장비 판매도 급증하고 있다. 독특한 콘텐츠가 있다면 남녀노소 누구든 유튜브 공간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유튜브 콘텐츠는 자극적이고 즉각적이다. 특별한 자격조건 없이 누구나 동영상을 제작하고 배포할 수 있는 자유로운 장이기에 무책임한 내용도 생산될 수 있다. 공신력을 전제로 하지 않은 한 개인의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유튜브 공간이 특히 보수논객들이 활동무대가 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 탄핵 당시 인터뷰로 주목을 받았던 ‘정규재 TV’의 경우 구독자가 28만명이나 되고, ‘신의 한수’, ‘황장수의 뉴스브리핑’도 25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대표도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고 ‘TV 홍카콜라’의 도메인을 등록했다. 기존 언론매체와는 달리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1인 미디어 환경은 비용은 줄이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유튜브 ‘가짜뉴스’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이러한 문제제기가 보수 유튜버에 대한 탄압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 콘텐츠 중에서 언론보도 형태로 유통되는 뉴스 동영상이 마치 사실을 다루는 것처럼 인식됨으로써 야기되는 부정적인 파장에 대한 우려다. 유튜브는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고 메시지를 증폭시키는 선전도구가 될 수 있다. 한 개인의 편향된 시각과 자극적인 콘텐츠가 현실 영역에 쉽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임에도, 유튜브는 사회적 책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미 20대와 60대 유튜브 이용자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가짜뉴스로 의심되는 유튜브 콘텐츠를 접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로 세상을 이해하고 가짜뉴스에 기반한 여론이 만들어질 여지가 잠재해 있다.“사방이 거짓말과 허구로 둘러싸인 무서운 시대다.”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말한다.가짜와 진짜를 판별할 수 없다면 디지털 문맹이나 다름없다. 무책임하게 유포되는 가짜뉴스가 진실로 포장되지 않도록 잘못된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능력과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독일의 경우 가짜뉴스 유통금지법과 사회관계망법을 통해 가짜뉴스를 제작, 유포하는 것을 제어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도 가짜뉴스에 대한 이유 있는 논란에 대해 공적 토론과 더불어, 유튜브 공간에서 책임감 있는 프로슈머로 성장하도록 21세기 민주주의에 걸맞는 시민교육이 요청된다.

2018-10-30

학생들을 춤추게 하라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교육의 중심은 가르침과 배움의 만남에 있다. 그 만남 속에서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우치다 타츠루는 ‘교사를 춤추게 하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학생들을 즐겁게 배움의 장으로 안내하는게 아니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8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청소년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한 달 평균 9명의 학생들이 자살했고 그 가운데 70.5%가 고등학생이다. CNN은 “한국의 가혹한 입시제도가 만든 높은 부담감이 청소년들의 높은 자살률로 이어졌다”고 평했다.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학습 부담과 입시 스트레스가 비극적인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이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를 만들고 있다.고등학교 들어간 3년 내내 학생들의 시계는 온통 입시에 맞춰져 있다. 무거운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서 밤 늦은 시간까지 학교와 학원의 좁은 책상을 떠날 수 없다. 주말조차 휴식이 없다. 잠을 줄여 공부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해 수행평가, 동아리, 봉사 및 체험활동, 독서기록을 채워야 한다. 서점가에 나온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사교육의 대명사인 강남 대치동의 학원들을 분석한 책, 입학사정관제를 겨냥해 초중고 12년 로드맵을 짜야 한다는 엄마들의 입시전략을 다룬 책들이 그것이다. 학생들만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다. 밤늦은 시간 학원 앞에서 아이들을 차로 실어 나르는 학부모들도 고생이다. 학생들이 장시간 ‘공부’하고 있지만 이는 공부가 아니다. 이해하고 생각하기보다 무조건 외워야 하고 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 패턴을 익혀야 된다. 국어와 영어시험에 나오는 긴 지문을 꼼꼼히 읽다가는 시험 문제를 다 풀 수 없다고 학생들은 말한다. 수험생들에게 반복되는 얘기 중의 하나가 시간관리가 당락을 좌우한다는 말이다. 실전에서 시간에 쫒기지 않으려면 미리 시간을 줄여 연습하고 고정적으로 출제되는 문제 유형을 집중 공략하고 한 문제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수능시험의 경우 1교시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4~5시까지 학생들은 그렇게 초긴장 상태에서 시험문제를 풀어낸다. 학생들의 사고 능력이나 문제해결능력을 기르는 것과 거리가 먼 교육의 퇴행이자 자살이다.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부, 시험에만 시간표가 맞추어진 교육이 바뀌지 않고 있다. 창의력이 중요한 시대에 여전히 입시교육에 머무르고 있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과정의 즐거움, 배우는 기쁨을 주지 못하고 있다.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하도록 기획된 수시전형조차 원래의 취지가 실종되었다. 학생이 했던 활동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교육 시장에서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아 번듯하게 다듬어지고 부풀려진 생확기록부로 승부한다. 입시 전형이 너무 복잡해서 학생 혼자서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합격하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다. 스펙을 만들고 스토리를 포장하는 것이 대입 수시전형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수시 합격 발표 이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실에 교육은 없다.우치다 타츠루는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영화 ‘스피드’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시속 80㎞로 질주하는 버스에서 폭탄을 제거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교육개혁은 그런 복잡하고 정교한 조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질문이 없는 교실, 단순 암기와 시험공부식 교육 현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그 길이 막막하다. 내신 성적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는 장에서 자연스레 가르침과 배움이 도모되고, 자기답게 바로 서는 공부가 이루어질 수 없을까? 지금처럼 높은 점수, 좋은 학교가 학생들의 인생을 결정한다면 입시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을 춤추게 하는 교육, 미래 세대가 ‘지금’ 행복한 교육은 우리에게 먼 유토피아인가.

2018-10-23

9월 평양정상회담, 그리고 ‘안시성’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북한에 가서 송이선물 받더니 나라 땅을 내주고 온 건가”, “위장평화 공세에 속는 결과는 참담하다” 9월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연이어 23~27일 유엔 총회에 참석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달하고, 북미간의 교착상태를 풀고자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온 문재인 정부에게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 말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혹평은 북한의 비핵화 해결과 남북한 관계 회복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략적인 이익을 앞세워 반대를 위한 반대, 대안이 없는 비판은, 어렵게 만든 현상황을 다시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보수 언론은 “장미빛 희망에 빠져 비핵화의 가시적인 성과도 얻기 전에 안보 태세의 긴장부터 풀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9월 평양공동선언은 지난 4월 판문점선언과 비교해 볼 때 진일보하였다. ‘평화’를 논의했던 것에 한 걸음 나아가 실질적인 ‘협력’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주춤했던 북미관계도 다시 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를 먼저 정상화시키고 견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새로운 북미관계를 만들어보려는 정부의 노력과 의지의 결과다. 서로에 대한 신뢰만이 난국을 돌파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특히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에게 한 연설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다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5.1경기장에서 집단 체조극 ‘빛나는 조국’을 관람하고 7분간 연설을 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는 메시지를 전세계로 타전하였다. 한반도가 분단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로 가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개천절 노래의 작사가 정인보 선생은 ‘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저서 ‘조선사연구’에서 “외적 요소가 거세질수록 격랑을 헤치고 나갈 열쇠는 ‘얼’에 있다”고 하였다. 순안공항에서부터 삼지연공항까지 여정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 ‘얼’이 깃든 행보였다고 해도 넘치는 찬사가 아니다.“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은 그렇게 말했다. 당태종 이세민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안시성의 5천명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안시성 전투는 체급이 다른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지혜롭게 전략을 짰고, 군사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성안 사람 모두가 “성의 마지막 벽돌이 되어서라도 지킬 것”이라는 혼연일체의 자세가 있었다. 심지어 양만춘과 불편한 관계였던 연개소문조차 우리는 모두 ‘고구려인’이라는 점에 지원군을 보냈기에 안시성 전투가 승리의 역사로 남은 것이다. 국가 위기상황에서는 큰 틀에서 협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얼의 명멸에 따라 흥망과 성쇠가 생긴다”고 했던 것처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거기에 있다.남북한관계의 미래에 이제 뒷걸음질은 없어야 한다. 정권과 관계없이 명확한 목표와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계속해서 진전하도록 정부, 국회, 기업, 시민사회가 협의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구축되고 작동해야 한다.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에 함께 나서야 한다. 어렵게 만든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안보불안’을 거론하며 폄훼하고, 발목을 잡는 것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2인3각 달리기도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 넘어지지 않고 완주하는 비결이다. 서로의 생각과 힘을 모아야 한다.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양만춘이 했던 말처럼, “모두 함께 한 것이다”라고 이 시대가 미래 역사에 기록되길 소망한다.

2018-10-02

20대에게 ‘자기만의 방’을 허하라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집은 ‘사는(Buy)’ 것 아니라 ‘사는(Live)’ 곳이다.”그러나 한국사회는 거주하기 위해 사는 집이 아니라, 재테크의 수단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자 사고 파는 물건이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오고, 학생들의 장래 희망 1순위가 건물주라고 하겠는가. 부동산 투기세력의 초과소득, 건물 자산을 토대로 임대료만으로도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불로소득이 문제다. 최근 이슈가 된 ‘궁중족발 사건’도 임대료 폭등이 원인이었다.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도 작동하지 않는 시장 상황에서 집없는 세입자, 임차인들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특히 서울의 높은 집값은 전월세를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점점 더 변두리로 밀어내고 있다.주택 문제는 청년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 열심히 저축을 해도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꿈이 되고 있다. 평균소득을 버는 경우 한 푼도 쓰지 않고 13년간 모아야만 서울 평균 매매가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살 수 있단다. 집은 고사하고 당장 매달 내야 하는 월세만으로도 허리가 휘청이는 청춘이다. N포세대로 불리는 그들이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의 근저에 높은 집값이 있다. 연애, 결혼, 출산, 무엇보다 행복한 미래를 접게 하는 것이다. 턱없이 높은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노오력’을 해도 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잦은 이사를 해야만 한다. 비싼 방값을 줄이려고 결국 좁은 고시텔을 찾거나 옥탑방, 반지하의 어두운 골방을 감수해야 한다.20대의 주거 빈곤층 비율이 가장 높다.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이 30% 이상일 경우 주거 빈곤층으로 분류된다. 국토연구원이 실시한 ‘2017년 주거실태조사’에 의하면, 20대가 47.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30~40대의 주거 빈곤층이 15%인 정도와 비교하면, 특히 20대 초반 대학생의 주거문제가 심각하다. 국토연구원의 ‘국토정책 브리프’ 자료에 의하면 청년 4명 중 한 명은 번 돈의 절반을 주거비로 지출하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언’,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 등 사회운동이 시작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경우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높은 등록금 외에 방값을 포함한 생활비 지출이 만만치 않다. 대학생들이 학교 앞 원룸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와 거리행진에 나서고 있다. 해당 지역의 평균 월세와 비교해 본 결과 대학가 주변의 월세가 훨씬 더 비싸기 때문이다. 대학생의 40% 이상이 객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전국 4년제 대학기숙사 수용률은 21%에 불과하다. 대학생 주거 안정을 도모한다고 LH 대학생 전세 임대주택도 늘리고, 교육부가 2017년부터 행복기숙사를 확충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여자 대학생들은 학교 앞 방을 찾을 때 주거환경과 치안 여부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화여대 반경 500m의 집값이 서대문구 평균보다 69.4% 비싸다고 한다.“대체 왜 이렇게 집값이 비싼 걸까요?” 독립된 경제 주체로 살고 싶은데 너무 높은 집값은 처음부터 청년들의 발목을 잡는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지금보다 나은 생활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 주거비 부담이 비혼, 저출산, 소득불평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독립된 공간과 경제적인 자립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2018년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여성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내 집이 없고 자기만의 방이 없는 청년은 미래의 꿈도 접을 수밖에 없다. 20대들이 온전한 방에서 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2018-09-18

이제 만나러 갑니다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미국 CNN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비극”이라고 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어린 딸과 뱃속의 아들이 65년의 세월이 지나서야 늙으신 어머니, 아버지를 만났다. “죽은 줄 알았는데 만났다”, “만나보고 싶었는데 다 돌아가셨다.” 이산가족들은 그동안의 그리움과 사연을 쏟아냈다. 이번 만남은 4·27판문점선언에 포함된 이산가족 상봉 합의에 따라 이루어졌다. 8월 20일에 금강산에서 이루어진 상봉에서 1차는 남측신청자 89명이 북한의 가족 197명을, 2차는 북측신청자 81명이 남한의 가족 324명과 눈물의 상봉을 했다. 최고령 101세 할아버지, 최연소 상봉자인 7세 아이 등 4세대가 금강산 방문길에 함께 했다. 이들의 만남은 ‘작별상봉’ 이라는 말처럼 2박3일 동안 6차례, 총 12시간으로 끝났다. 이산가족은 분단 역사의 상처다. 전체 이산가족 13만여 명 가운데 생존자인 5만6천명이 아직 상봉을 못한 채 기다리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 차원에서 지속되어야 함에도 분단 40년만에 이루어진 1985년 첫상봉 이래 국내외 정치상황과 별개로 진행된 적이 없다.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은 로또보다 더 어려운 당첨순서를 기다려야 했고, 제한된 상봉인원과 일시적 이벤트인 상봉행사만으로는 이산가족들의 고통을 줄일 수 없었다. 서로의 생사도 모르고 서신교환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북이산가족들은 유엔 세계인권선언이 천명한 가족권이 무시된 채 살아왔다. 남북문제도 사람이 먼저다. 이산가족 문제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사안이 없다. 무엇보다 이산가족의 고령화가 시급한 첫 번째 이유다. 80세 이상 이산가족이 전체 63.2%를 차지하고 있다. 8월 이산가족상봉에서도 남북한이 각각 100명씩 신청했으나,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아 상봉을 포기한 경우가 생겼다. 너무 늦기 전에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실향민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은 “이산가족의 한 사람으로 그 슬픔과 안타까움을 깊이 공감한다”며 이산가족 문제를 남북이 함께 해야 할 ‘최우선적인 인도적 과제’라고 하였다. 금강산에서 잠깐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인원 확대와 정례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이산가족의 기다림이 더는 길어져서는 안 된다. 이산가족의 절실함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제도로, 법으로, 예산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통일부는 내년도 이산가족교류 관련 예산을 대면상봉 6회, 고향방문 3회를 가정하여 올해 120억원에서 336억원으로 증액하였다. 다시 남북한 관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국회도 ‘판문점선언’을 비준해야 한다. 광복절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진정한 광복의 의미라고 하였다. ‘평화’라는 단어를 21차례나 언급했다. 상호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평화를 구축하는 과정은 더디고 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화만큼 중요한 가치가 없다. ‘선을 넘어 생각한다’에서 박한식 교수는 “평화접근법은 승자와 패자로 나누지 않는다. 지배를 통해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청와대는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의 방북이 취소되고 북미대화가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북특사 카드를 꺼냈다. 미중관계도 순조롭지 않은 상황에서 비핵화가 먼저라는 미국과 종전선언 주장을 되풀이하는 북한 사이에서 솔로몬의 지혜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지금까지 걷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어서 어느 하나 어렵지 않은 과제가 없다.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생각하더라도 과거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거나 마냥 지체될 수 없다. 앞으로 가는 길에 우리 사회의 통합된 목소리가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5일 평양에 가는 대북특사단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주길 기대한다.

2018-09-04

결국 교육이 먼저다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대입문제에 있어 국민 모두가 만족하실 수 있는 정답은 없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의 발언처럼, 대학입시 제도를 둘러싼 논의들이 분분하다. 국가교육회의에 대입안을 정해달라고 1년 유예하며 공론화 과정까지 거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에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종안이 기존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도 하거니와, 수능 조합이 복잡해져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도 달라진다. 특히 정시모집 비율을 30% 이상 권고하겠다는 교육부 발표에 대해 “미래가 없는 망국적 대입제도”라는 목소리마저 들린다. 전략적으로 대입제도를 바라보면 딜레마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문제는 대입제도가 아니다. 학교 교육만 충실히 받으면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상론이다. 사교육비를 경감시키려 EBS와 수능을 연계한 것이 학교에서는 EBS 문제풀이식 수업을 하고, 학원에서는 EBS 핵심을 재정리해 주며 왜곡되고 있다. 수능점수로 줄을 세우는 폐해를 극복하려고 마련된 수시조차 학부모의 정보와 경제력이 결정적이다. 수시를 대비해 ‘스펙 쌓기’에 매달리고 다양한 전형의 정보를 놓칠세라 입시설명회를 찾아다닌다. 고액 과외를 받고 입시 컨설팅 비용을 지불하며 대입 포트폴리오 전략을 짜야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기 유리하단다. 돈으로 학생들의 미래가 갈린다. 초중고 모든 교육과정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성공한 것으로 귀결되는 사회 분위기로는 어떤 입시제도도 현답이 될 수 없다.우리 사회는 어떤 대학을 가는가가 평생을 좌우할만큼 학력 자본사회다. 그러기에 그 관문인 대학입시에 너무 많은 사회적 비용이 소모되고 있다. 학교 시험문제가 유출되었다는 의혹과 성적조작이 의심되는 부정이 개입되고, 비교과와 봉사활동이 기록되는 학생부에 비리와 편법이 판친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수시전형의 공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한편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창의적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교실에서는 정답만을 외우게 하고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는 수능대비 시험공부 방식이 지배적이다.지난 여름 학생들에게는 방학이 없었다. 무더위로 몸살을 앓던 여름보다 학원의 열기는 더 뜨거웠다. 보충학습과 방학숙제를 없앴는데, 학생들은 하루 종일 공부만 하며 버텨야 했다. 학원가에는 ‘방학동안 한 학기 공부를 통째로 준비하는’ 고액의 특강이 성행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내 성적을 올려준 사람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선생님이었다”고 고백한다. 내신을 잘 받아야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밀어주는 ‘학종 관리도 유리하다’고 말한다.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뒤쳐져서는 안 된다’며 2학기를 대비하는 특강과 선행학습을 받게 한다. 학원과 과외로 사교육 시간이 계속 증가하며 학생들이 감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 공교육 정상화를 말하고 인성교육을 강조하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공허한 담론이다.정권에 따른 입시 혼란은 없어야 한다. 올바른 방향으로 기획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교육백년대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내신 성적을 위해 학교를 옮기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대학입시에만 매몰되어 있는 교육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대학진학률이 높은 고학력 국가인 일본을 ‘세계최저의 대학국가’라고 비판하였다. 서울대에서 A+를 받은 답안지가 교수가 말했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었다는 연구를 보더라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인재를 키울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동시에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 질문해야 한다. 결국 교육철학과 비전이 먼저다. 대학입시제도는 그것의 결과다.

2018-08-21

사법부의 권위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 박사사법농단 의혹이 커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정권이 원하는 재판 결과로 뒷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대법원 판결들이 지배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리 결론을 내놓고, 이를 합리화하는 법리를 찾는 식이었던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청와대에 정치적 코드를 맞추고 국회의원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언론을 활용하고자 전방위로 사법권을 남용하였다. 법의 해석과 판단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파기했다. 참여연대는 법원행정처를 ‘대법원판 기무사’로 비판했다. 무너진 사법부의 권위를 어찌할 것인가?대법원은 삼권분립의 가치를 훼손하고 권력의 시녀를 자초하였다. 정무적 판단에 따라 일선 판사들의 개별 사건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나 사법부 판결에 대한 불신이 초래되고 있다. ‘국정운영협력’을 위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KTX 해고승무원 사건 등을 활용했다. 박근혜 정권의 뜻을 받들어 일제강제징용 재판을 고의로 지연하거나,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에 개입하여, 그 댓가로 법관의 해외공관 파견을 늘리고자 하였다.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후의 보루이기는커녕 지배세력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은폐하는 도구가 된 것이다.법은 권위를 부여받은 힘이다. 자크 데리다는 ‘법의 힘’에서 법을 ‘권위의 신비한 토대’라고 하였다. 법적 판단에 우리가 복종하는 이유가 바로 그 권위에 있다. 전직 대통령, 국회의원, 재벌도 잘못이 있으면 법적으로 구속시키는 것이 사법부의 권위고 힘이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를 공평하게 바라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자 의무다. 이처럼 사법부의 권위는 권력에 편향되지 않고 자유, 평등, 정의의 가치를 판결에서 구현하는데 있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함축하는 법적 공평성이 핵심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밀착하고 추종한 대법원의 정치화는 사법부의 정체성과 권위를 심대하게 훼손하였다.시민들의 분노에는 법조 엘리트들의 거만한 시선도 한몫을 했다. 상고법원이 필요하다는 문건에서 “일반 국민들은 내 사건은 대법원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들이기에, 상고법원이 어떠한 장점이 있는지 일반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여기서 ‘일반 국민’은 사회적 권력과 자본과 거리가 먼 서민들을 지칭한 것이다. 더구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3심제의 권리를 ‘이기적’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대법원 재판 청구권을 자신들의 업무과다의 원인으로 본 부박한 인식을 드러냈다. 법에 호소하는 국민을 고려하고 존중하는 공적 책임감을 찾기 어렵다. 마사 누스바움은 재판관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정확하게 상상하여 사려 깊게 측정하는 분별 있는 관찰자여야 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가면을 쓴 또 다른 권력’이었다.몽테스키외가 쓴 ‘법의 정신’을 말하지 않더라도,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고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 그는 “민주정의 원리는 사람들이 평등의 정신을 잃을 때 부패한다”고 지적하였다. 법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면 삼권 분립은 이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제3자적 시각에서 균형감있는 판결로 말하는 존재가 사법부다. 그러기에 법정에서 중요하게 요구되는 덕목이 독립성과 공정성이다. 법은 물 흐르듯이 아래로 흘러가야 한다. 재판관 중심의 제도적 편의주의가 국민들의 권리보다 우선해서는 안된다.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이 퇴임하고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이 취임하였다. 차제에 법조 엘리트들의 이익에 복무하느라 실종된 사법부의 권위가 바로 세워지길 기대한다.

2018-08-07

폭염은 재난이다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찌는 듯한 무더위가 밤낮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구의 80%가 넘는 지역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학자 마디클 만은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폭염사태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충격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폭염지도만 보더라도 전역이 붉게 표시돼 있다. 폭염이 심할수록 오존 농도도 급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장기화된 폭염을 특별재난 수준으로 인식하고 관련대책을 꼼꼼히 챙겨달라”고 했다. 계속되는 폭염에 ‘긴급폭염대책본부’를 가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재난에 누가 대가를 치르고 있는가?폭염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치명적이다.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 판매가 늘어났어도, 전기세 부담으로 장시간 가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뜨거운 열기가 밤에도 식지 않는 옥탑방이나 다닥다닥 밀집해 있는 쪽방, 습기가 가득한 지하방과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 수밖에 없는 빈곤층에게 폭염의 현실은 더욱 가혹하다.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 환자들의 건강도 폭염으로 위협받고 있다. 열사병, 실신, 탈수증, 열 스트레스 등 온열환자가 급증하면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도 지난 해 보다 3배 늘어났다고 한다.이제 폭염은 사회적 재난이 되고 있다. 특히 폭염과 사투를 벌어야 하는 극한 직업, 땡볕에서도 야외 작업을 해야만 하는 건설노동 현장의 상황은 심각하다. 콘크리트와 철근에서 나오는 열기로 노동자들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훨씬 더 높다고 한다. “폭염주의보나 경보가 있을 때는 1시간당 10~15분씩 쉬게 하라”는 ‘옥외작업자 건강보호 가이드 라인’이 있어도, 휴식 기준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제대로 된 휴게 공간 없이 잠시 숨을 돌리는 게 전부라고 한다. 공사기간에 맞추려면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휴식권은 조항에만 존재할 뿐이다.폭염은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온난화로 전세계 수백만 명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국제의학전문지인 ‘린셋카운트다운’ 보고서는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가 현재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공중보건에 폭넓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기온상승이 물 부족, 공중보건 약화, 빈곤과 불평등 문제로 확산될 것임을 예측했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은 기후변화의 이상 신호가 분명하다.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2050년까지 평균기온이 3.2℃ 오르면서 한반도 전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폭염으로 받는 고통이 크다. 정부의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폭염에 취약한 계층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재해 예방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야외에서 일하는 육체노동자들의 폭염 피해가 가중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등 사회적 재난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기후변화와 같은 환경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삼림재생이 온난화를 억제하는 잠재력이 큰 만큼 숲을 일구고 도시에 그린벨트를 확장해야 한다. 자연을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여겨왔던 인간중심적 태도와, 자신만의 편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이용하던 생활양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고 상품과 화폐를 얻기 위해 자연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대가가 나타나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생태계 위기는 미래 세대에게 심각한 위협이다.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고, 생명의 가치, 평등한 삶을 지향하자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에코페미니즘 시각은 “자연속의 모든 생명이 협력과 상호 보살핌, 사랑을 통해 유지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지구는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는 곳임을 자각하고, 환경문제에 생태적 대안을 접목해 상생의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제 ‘새로운 세계를 짜야’ 할 시간이다. 폭염 재난이 우리에게 준 숙제다.

201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