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희귀종 꽃들을 가장 많이 기르고 싶다”는 현등 벽종사 스님(46·사진).
포항시 북구 장기면에 위치한 그의 정원을 들어섰다. 구석구석 어느 한 군데 꽃이 없는 곳이 없다.
오는 10월말까지 연다는 ‘세계 희귀꽃 전시회’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보다 고운 꽃들을 선보이고자 삽질을 하는 그의 모습마저도 꽃 같다. 사찰이라기 보다는 아담한 꽃 박람회에 온 듯한 느낌이다.
그는 비구니 스님이다. 아침 일찍 단정한 차림새로 법당에 들어가 아침 예불로 하루를 시작해 저녁 예불로 하루를 마치기 전까지 족히 10시간은 꽃들과 함께 시름한다.
꼭 지켜야 하는 약속처럼 꽃을 매만지듯 다듬지 않든 그는 꽃들에게 충실하다.
“언제나 땀의 진실을 믿으면서 부지런히 돈 많이 벌고 보람되게 소비하면서 어려운 이웃, 춥고 배고픈 사람들, 그늘진 곳을 소리소문 없이 보살피는 작은 부처, 작은 예수, 작은 등불이 되어 보세요. 그 등불은 세찬 비바람에도 꺼지지 아니하여 세상의 한기(寒氣)를 온기(溫氣)로 덮여주면서 칠흙같은 어둠을 삭히는 희망 입니다. 열심히 살면서 마음 다스리는 공부, 게으르지 마세요. 인생 칠십년, 참으로 짧습니다.”
올해로 꽃을 키운지 꼭 7년째. 사랑으로 보듬으면 사람이나 식물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법랍 19년째. 춘천이 고향인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둘째 오빠의 죽음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으면서 스님이 되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1990년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해 혜인스님을 은사로 통도사에서 구족계수지를 하고 수덕사, 범어사, 해인사, 동화사, 위봉사, 월정사 등에서 수행정진 했다.
1994년 수행정진을 하다 병이 나는 바람에 수행을 그만두고 갈곳을 찾다 우연히 벽종사와 인연을 시작했다.
“생사대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달렸던 그 세월은 고뇌의 세월이면서 진정한 수행자의 행복한 길이었습니다. 저는 중노릇을 남보다도 열배 아니 스무배의 힘든 고통의 시간들이었지만 그러나 지금 또한 잿빛 승복을 입은것에 대해 한번도 후회를 해본적이 없습니다. 다음생에서라도 다시 수행자의 길을 가고 싶을뿐 입니다. 제 목적은 상구보리 하와중생 이니깐요.”
그는 연꽃에 반해 꽃 기르는 일을 시작했다.
“은사 스님절을 찾았다가 우연히 수련을 보고 반해서 토굴생활을 하던 때에 몇 종류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발품까지 팔아가면서 수집을 하기 시작했구요. 첫번째의 연꽃이 필때의 설레임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관리하기가 힘이 들지만 연잎이 하나둘씩 펼쳐지면서 연꽃봉우리가 하나둘씩 올라와서 꽃을 피우면 힘든시간들은 그 순간 만큼 보상을 받곤한답니다.”
그가 제일 좋아 하는 꽃은 연꽃이다. 연꽃 가운데 미국 자생황련과 중국품종인 홍화건연과 특히 우리나라 연꽃차로 유명한 잎에서도 연향기가 나는 광주 매곡동종품종인 온양백련을 제일 좋아 한다. 야생화는 캘리포니아 포피를 제일 좋아 한답니다. 그래서 ‘세계 희귀꽃 전시회’에서 처음 소개되는 여러 품종들을 군락으로 심었다.
“올해 처음 소개되는 품종들이 제법 많습니다. 다양한 색상의 겹꽃양귀비와 전세계에 20∼30 종류 가운데의 향기종 매발톱들과 다양한 매발톱들 그중에서도 독특하겠지요.”
희귀꽃 전시회는 불사를 하는 데 돈이 필요해 시작하게 됐다.
“신도수는 많지 않고 운영비는 있어야 했지요. 우연히 방송에서 오래된 일본사찰에서 경제불황으로 신도수가 줄어들어 사찰안에 찻집을 열어 스님들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 저거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스님들도 법당에 앉아서 법문만이 하는것이 아니라 찻잔을 손님한테 줄수도 있는것이 포교구나하는 생각을 했지요.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눈이 아름답고 마음이 행복해지고 고민과 슬픔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이것 또한 마음 공부라 잠시 모든짐을 놓아 버리고 쉬어가는 순간들의 인연을 맺어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틀을 벗어나 잠시 마음의 눈으로 꽃을 볼때, 그저, 보아라! 꽃이다. 그런 마음이었어요.“
올해 3년째 꽃 전시회를 열고 있는 그는 남보다 먼저 한발 앞서 가려니 모든것이 갖추어진 상태가 아니라 부족한 상태로 9917.4㎡ 되는 정원을 이리저리 바꾸고 옮겨가며 품앗이를 쓰지않고 하다보니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지난해 두 번 쓰러져 2달동안 몸져 누워 있기도 하고 올해 1회 야생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3개월째 2∼3시간을 2만포트 넘게 파종해 심다보니 힘이 많이 든다.
“하지만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면 힘이 저절로 나더군요. 다 채우고 나면 또다시 나를 비우는 작업으로 들어 가야 겠지요.”
그는 꽃씨를 파종도 하게되고 꽃을 피워 보는것두 얼마 되진 않는다. 그저 마음의 눈으로 할뿐이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없지만 목적은 있습니다. 꽃을 가꾸는 것이 제 본업이 아님니다. 저는 수행자가 본업입니다.앞으로 이곳 불사가 끝나면 저는 본업인 수행자로 돌아갈 것 입니다. 그것만이 저의 기쁨이요 출가자의 목적입니다.”
가꾸다 멈춘 꽃에게 촉촉한 단비가 내리고 있었던가? 종교인들의 순수한 믿음이 날로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 순수한 믿음으로 출발해 그 믿음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그의 곁에 활짝 핀 꽃들과 함께 그는 화려한 봄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