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매우 컸어요.
바다는 종일 어린 흰고래 같은 파도를 비늘처럼 세웠고
숲은 나뭇잎 한 장 한 장의 등을 다 보여 주었어요.
바람이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지요.
꿈틀거리는 세상이 온통 바람이었거든요.
오거리 대형 전광판이 시 승격 60주년 행사를 광고하며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는 자막을 몇 번이고 되돌릴 때,
형산로터리에서 두어 개 단체가 걸어놓은
근조謹弔 플랜카드가 휘날릴 때,
내가 그대와 약속한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
여전히 푸짐하게 차려진 이기와 흉계를 꾸역꾸역 집어 먹을 때,
급기야 친절하게 서로 먹여주기까지 할 때,
저 멀고 먼 광장은
바람이 불러 낸 노란 물결로 출렁였습니다.
콘크리트 위로 장황히 번지는 그 거대한 민들레 꽃밭은
도시의 잿빛 봄을 깨우고 흔들며 흘렀지요.
석간조 사내들을 싣고
공단 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공사 중인 형산교를 지날 때,
그대와 내가 웃으며 헤어지고도
섬처럼 둥둥 쓸쓸한 저녁을 표류하다 결국 술집으로 붉게 들 때,
분향소가 철수되고 만장이 태워질 때,
그 때도 바람은 돌아가지 않았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누군가는 낮은 책상 앞에서 등 굽혀 시를 쓰고
누군가는 어쩌면 질끈 눈을 감았음에도,
기계 속 세상에도 바람이 살아 급속히 전송되는 조시(弔詩) 한 자락.
크고 작은 모습으로
사납고 훈훈하고 따뜻하고 차갑게 다녀가는,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깨우고 일으키는,
이제, 바람을 기억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