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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오규원

관리자 기자
등록일 2009-06-02 22:39 게재일 200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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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 오규원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문학과지성사·2005)




내가 제일 많이 올라가본 산이 경주 남산이다. 산이 그리 높거나 험하지 않아 등산이 힘들지 않아서 좋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라의 문화 유적이 산재(散在)해 있어 등산하는 게 아니라 문화유적 속으로 걸어가는 듯하여 더욱 좋다. 경주 남산에는 유독 돌부처가 많다. 목이 없는 부처, 목만 덜렁 남아 있는 부처, 돌 속에 들어가 있는 감실부처, 돌의 표면에 서 있는 선각부처 그 모양도 갖가지다. 몇 해 전 고인(故人)이 된 오규원 시인의 시 ‘부처’는 경주 남산의 코가 떨어져나간 돌부처 한 분을 모셔다놓고 있다. 어떤 관념 속의 부처가 아니라 말 대로 날(生)이미지의 그냥 돌부처다. 새가 얼굴에 똥을 누고 가건, 누가 영험을 얻으려 코를 떼어가건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웃고 있는 돌부처. 그런데 그 부처의 모습이 우리가 통상의 관념 속에 자리하고 있는 부처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 아닌가. 어찌된 것인가. 의미를 배제한다는 ‘날이미지’가 더 큰 의미를 낳고 있으니.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라는 구절이 너무 좋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다시 경주 남산으로 발걸음을 옮겨야겠다.


해설<이종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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