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경북분원 주임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와 교훈을 남겨놓고 떠났다.
돌이켜 보건대 두 달 전 검찰 수사를 받기 시작해 봉하마을 사저 근처의 45m 절벽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유난히 도덕성을 내세웠던 전직 대통령으로서 심적 고통이 컸을 것이다.
가족이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 컴퓨터에 유서를 남겨놓고 뒷산 바위로 발길을 옮기던 전직 대통령의 좌절 절망 치욕감을 어렴풋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나, 비판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이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다만 법률가 출신의 대통령이 수사를 받다가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밖에 대처할 수 없었을까 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노 전 대통령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인물도 드물다.
빈농(貧農)의 가정 출신에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변호사와 국회의원을 거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영욕이 교차하는 굴곡진 한평생을 살고 갔다.
그는 2002년 국민경선 드라마와 깨끗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 젊은 세대의 인터넷 파워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 집권 초기에는 권위주의 청산, 부패와 특권의 타파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기 초 불법 대선자금과 대북송금, 정보기관의 휴대전화 도청 수사를 통해 투명한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에 파병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한 것도 평가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의 권위와 품위에 걸맞지 않은 언행으로 빈번히 비난을 자초했고 선거 개입 발언으로 2004년에는 탄핵 위기까지 가는 오점을 남겼다. 지나치게 좌(左)로 기운 경제 사회 교육 정책은 다수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6·25전쟁의 폐허에서 세계 13위의 경제 강국으로 일어선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욕의 역사’로 규정해 분열과 갈등을 키웠다는 점도 부정하기 어렵다.
최고 권력자와 관련한 비리와 부패는 역대 모든 정권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부정과 비리는 마약과도 같은 것이어서 권력을 잡은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게 마련이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천문학적인 뇌물수수죄로 처벌을 받았다. 민주화 이후에도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아들들이 구속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럼에도 최고 권력자 주변에 불법과 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통찰이 따라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계기로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거나, 부패나 비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에 일대 반성이 필요하다.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이 적절한 견제를 받지 못하면 부패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여전히 대통령이나 청와대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대통령 가족이나 친인척, 측근 인물에 대한 주변의 유혹을 감시하고 차단하려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을 비롯한 사정시스템의 강화가 필요하다.
최고 권력자의 불행한 종말은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이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전국 방방곡곡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정치와 무관하게 국민과 어울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모든 이의 간절한 소망이다.
재임 때보다 퇴임 후의 모습이 더 아름다운 대통령을 배출하자면 우리 모두 힘을 보태야 한다. 이번 비극을 끝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거보(巨步)를 내디딜 때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이고 가족과 핵심 측근들은 이번 사태를 교훈으로 삼아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의 불행을 종식시키고 한국 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할 막중한 과제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어떤 경우에도 노 전 대통령의 비극과 망자에게 보내는 조의를 국민 분열의 재료로 이용하려는 책동은 경계할 일이다.
일부 세력은 마치 그의 죽음에 이명박 정부와 검찰이 책임이 있는 양 선동하고 나섰다. 우리 국민은 그런 억지에 결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성숙하다고 믿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애석한 일이긴 하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은 어디까지나 권력 비리였다. 그리고 유서에 쓴 것처럼 ‘삶과 죽음을 자연의 한 조각’으로 파악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우리의 관심은 최고 권력자의 도덕성에 대한 성찰과 함께 다시는 이런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