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축제장서 폐지 줍는 30대 주부와 5살 아들의 기막힌 사연<br>아버지 사고로 하반신 마비 의지했던 삼촌·오빠 숨져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혹시 사회봉사 명령이라도 받은 걸까. 도대체 누구인가?`
주말이면 이따금씩 안동시 천리동 허름한 한옥촌 구석구석을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콧노래를 부르며 폐지를 줍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축제장. 매일 신나는 음악에다 연신 폭죽이 터지는 이곳에서 매일처럼 새벽 늦게까지 사람들이 떠난 축제장 구석진 곳을 다니며 폐지를 줍고 있었다. 지난 7일까지 열흘간 열린 축제기간동안 항상 다섯 살배기 아이와 함께 나온 그녀는 골판지 박스와 흩날리는 폐지 등을 모으면서도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안동이 친정인 5년차 주부 신선영(37·대구)씨. 그녀에겐 다섯살·세살 배기 아이가 있다. 아이들은 축제장 폐지를 줍는 엄마랑 떨어지지 않으려는지 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엄마 일을 돕기까지 한다.
그녀가 아이들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야 하는 사연은 이렇다.
2004년 봄 선영씨의 친정 아버지(70)가 전신이 마비되는 큰 사고를 당해 대구의 한 병원에 실려 오면서 그녀의 어머니(65)는 8년여 동안이나 병원을 집인양 산다. 홀로 병실을 지키는 친정어머니가 늘 안쓰러웠던 그녀는 매일같이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아버지의 병수발에 애쓰는 어머니를 돕느라 병원을 출근하다시피 했다. 그러느라 대구서 운영하던 조그마한 샌드위치 가게도 문을 닫아야 했다. 하지만 깊어가는 병세에 목 아래쪽 전신이 완전 마비되는 회복불능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결국 퇴원에 이르렀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선영씨가 유일하게 의지했던 삼촌도 안동-대구를 왕래하며 사고 뒷수습을 하다가 홧병을 얻어 2개월 만에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이어 도움을 주던 사촌 오빠(39)마저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선영씨 친정집은 어디하나 의지할 곳 없는 막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저마저 결혼하는 바람에 아버지 병수발을 혼자 다해야 하는 어머니의 고생이 더욱 심해지셨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누워만 있는 남편의 혈액순환을 돕기위해 자세를 바꿔주느라 손가락과 팔 관절 전체에 관절염이 생겼지만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남몰래 흐느끼고 있다. 사고 이전에는 한때 안동에서 누구나 알만한 큰 부자집이었지만 이제는 하루하루 생계가 곤란한 지경이 돼 버렸다.
하지만 남편 몰래 쌈짓돈을 송금하는 딸에게 어머니는 부담을 주기 싫어 언제나 적금 통장에 몽땅 담아 되돌려 보낼 뿐이다. “지저분하고 자랑스런 일도 아니지만 그저 고생하는 울 엄마를 돕는 일인데 남들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리 힘든 일도 아니예요” 그녀는 시간이 나면 친정으로 와서 폐지를 줍는 어머니를 거든다.
안동탈춤축제가 연인과 가족에게 가을의 추억을 남기며 끝난 다음날인 8일 새벽 1시. 코가 시릴 정도로 밤 공기가 차가워진 새벽 어둠속에서 여느 때처럼 작은 손수레를 끌고 나타난 선영씨는 아이와 함께 텅빈 축제장을 누비다가 총총걸음으로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안동/권광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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