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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호흡

김살로메(소설가)
등록일 2013-01-31 00:06 게재일 2013-01-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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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는 언제나 다짐으로 시작해 결국 후회로 끝나지. 오늘 당신이 없는 사이, 누군가에게 당신에 관해 이야기할 것만 같았어. 그러고 싶지 않았어. 한 호흡만 참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온당한 말은 세상이 먼저 수용하게 되어 있거든.

역시나 당신 모르게 나는 당신을 아프게 했어. 그렇게 치욕스런 하루가 지났어. 젊은 시인 박준은 이렇게 말하네.`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았다`고. 하지만 시인이 못되는 나는 그대 아프게 한 벌로 어깨뼈마디마디가 쑤시는 아픔을 견뎌야 했어.

후회할 일은 언제나 한 호흡 사이에 일어나. 물 한 모금 들이켜거나, 침 한 번 삼키거나, 하늘 한 번 쳐다보거나, 입술 한 번 앙다물거나…. 그 짧은 시간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후회하는 거지. 집을 나설 때 우리는 몇 가지 스스로에게 다짐하지. `유쾌한 대화는 즐기되 쓸 데 없는 말은 삼가자, 의견은 말하되 논쟁은 피하자, 비겁한 자기변명 따위는 사절하자, 말해서 허망할 일이라면 차라리 침묵하자` 등 숱한 경험들이 가르쳐준 자기만의 어록을 새기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지.

하지만 순간이야. 물 위에 뿌린 말처럼, 하늘에 새기는 글씨처럼 이 모든 다짐들은 너무 쉽게 사라지고 말아. 아무리 결연한 다짐도 그 영속성을 담보하진 못해. 애초에 다짐이란 건 밧줄처럼 길고 단단한 게 못되거든. 장난기 가득한 신은 다짐이란 말에 `잠재적 휘발성`이란 속성을 부여해놓았어. 당연히 다짐은 까먹기 위한 것, 후회를 위한 필요조건이 되고 말지.

마음의 평화가 찰나에 흐트러지는 건 참아야 하는 한 호흡보다 반 박자 빠른 악마의 유혹 때문이야. 그 반 박자 빠른 유혹을 한 호흡 안에 쥐락펴락할 수 있는 자만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 `내가 아파서 그대가 아프지 않`기까지 나는 아직 멀었어. 오늘도 당신을 아프게 한 나는 비굴한 자책으로 오후토록 아파야했어. 무서운 건, 내일 하루도 변함없이 다짐하겠지만 속절없는 후회로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야.

/김살로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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