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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쨌건 삶은 계속된다

6개월 전인 2024년 12월 3일 늦은 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그 이후 오늘까지 한국 사회엔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비상계엄은 그 즉시 국회에 의해 해제됐고, 계엄을 선포했던 전 대통령 윤석열은 탄핵된 후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이 결정됐다. 지금은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그의 아내 역시 검찰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진통을 겪어야 했다. 선거운동 기간 주요 대선 후보들은 서로를 향해 비판과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후보와 가족의 도덕성 문제, 과거 적절치 못했던 발언과 행실, 후보 선출까지의 잡음 등이 질타의 대상이었다. 네거티브 선거전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심해졌다. 이에 따라 국민들도 진보와 보수, 청년과 노년, 남성과 여성으로 갈려 상처가 될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6월 3일. 6개월의 혼란 끝에 21대 대선이 끝났다. 누구는 승리했고, 누구는 패배했다. 국민 10명 중 5명은 승리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고, 10명 중 4명은 패배한 김문수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결과가 어떻건 대선 과정은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피투성이 싸움이었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앞으로의 6개월, 아니 새 대통령의 임기 내내가 지난 6개월의 갈등과 상처를 봉합하는 화해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왜냐? 승리한 후보와 패배한 후보는 물론,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모두에게 어쨌건 삶은 단절 없이 계속되는 것이니까.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허니, 오늘. 국민은 과도한 환호나 비탄에 빠질 이유가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04

트럼프와 TACO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는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도망간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신조어 타코가 빠르게 유행 중이라 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치킨 복장을 한 트럼프의 사진까지 나돌아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소식이다. 이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때문이다. 폭탄이라고 불릴만큼 강력한 관세정책을 펼쳤지만 경제적 압박이나 시장에서 불안하게 반응하면 곧바로 철회하는 일들이 그동안 반복되었다는 것. 그로 인한 불신이 쌓이면서 정책에 대한 불만이 조롱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연방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대통령의 권한을 벗어난 것이라며 무효 판결을 내리자 트럼프 관세정책이 조롱거리로 전락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의 정책에 반발하는 다른 사례도 있다. 최근 영국 등으로 이민가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들은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관세정책과 이민자 추방정책, 소수자 적대 정책 등에 환멸을 느껴 유럽 등지로 이민을 간다는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치를 표방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트럼프가 자신이 내세운 정책의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런 대목이다. 지난 4월 미국 전역에서는 트럼프 정책을 규탄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고, CNBC의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 55%나 됐다고 한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GA)는 트럼프의 구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켜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03

축구가 뭐길래

일단 지난 1일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나라 외신 보도를 요약한 걸 읽어보자. ‘...(전략) 군중이 폭력사태를 일으켜 적어도 2명이 목숨을 잃고 200명 가까운 사람이 다쳤다. 뿐 아니다. 소요를 진압하던 경찰관이 혼수상태에 빠지는 사건도 일어났다. 프랑스 내무부는 그날 밤 파리에서 491명, 다른 지역을 합하면 559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전했다.’ 유럽에 전쟁이 일어났냐고? 아니다. 놀랍게도 프랑스 축구팀인 생제르맹(PSG)의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일으킨 소동이란다. 이걸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축구에 이겨서 좋다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불이 붙은 폭죽을 쏘고, 위험한 물건을 마구잡이로 던지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니 대체 ‘축구가 뭐고, 우승이 뭐길래’란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그날 밤. 10대 소년이 칼에 찔려 사망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경적을 울리며 과속하는 자동차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경찰은 흥분한 군중을 진압하기 위해 물대포까지 동원했다고. 이게 무슨 난리인지. 비단 프랑스 축구팬만의 문제는 아니다. ‘훌리건(hooligan)’이라 불리며 걸핏하면 경기장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영국 축구팬, 자책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축구선수를 총으로 쏜 콜롬비아 축구팬은 또 어떤가? 한국 역시 예전엔 축구나 야구 등 프로 스포츠 경기장에서 발생한 폭력사태가 드물지 않았다. 축구는 이기는 팀과 지는 팀이 있는 스포츠의 하나일 뿐이다. 맞붙는 두 팀은 ‘전쟁’이 아닌 ‘경기’를 할 뿐이고. 그러니, 팬들도 제발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고 그냥 축구는 축구만으로 즐기시길.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02

자식 농사

우리 속담에 “자식도 농사와 같다”는 말이 있다. 농사를 짓는 일처럼 자식을 키우는 일도 제때 낳고, 낳은 자식은 잘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식을 농사에 비유한 것은 한국인이 농사를 전통적으로 중요시 여겨왔던 오랜 농본의식에서 비롯된 생각이다. 한국인에게 농사는 먹고사는 삶의 전부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농업을 산업의 으뜸으로 삼는다는 철학이다. 백성의 생업이 농업에 달려 있고, 나라의 경제도 농업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내려져 있는 사상이다. 이런 농본주의 사상 속에서 자식 키우는 일을 농사짓는 것과 비유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농사를 통해 수확을 얻는 것과 같이 자식의 성공과 출세를 통해 우리의 부모들은 수확만큼의 큰 기쁨을 얻는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자식 농사가 잘됐다는 것은 반드시 자식의 출세나 성공만을 기준 잣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자식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었다 하더라도 시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인물이라면 자식 농사가 잘됐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바른 인격과 인성을 지니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일 떼 자식 농사도 잘됐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의 얼굴을 닮는다”는 말은 부모가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자식도 본받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다는 뜻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아들의 도박 및 음란글 게재가 대선을 앞둔 정국에서 논란이다. 이 후보가 “잘못 키운 제 잘못”이라며 사과성 발언을 했지만 대선 판세에 악재가 될지 주목된다. 대선 후보들의 자식 농사는 후보들의 가정교육과 가풍을 살펴보는 주요 요소란 점에서 유권자들에게는 주요 관심사가 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01

펫팸족 1500만명 시대

과거 애완(愛玩)동물이라 부르던 호칭이 요즘은 반려(伴侶)동물로 바뀌었다. 애완의 완(玩)은 장난감을 뜻하는 완구에 쓰이는 한자 말이다. 사람이 동물을 대할 때 장난감처럼 좋아하는 도구 정도로 여겼다는 뜻에서 나온 표현이 애완이다. 반려(伴侶)란 짝이란 뜻이다. 사람이 단순히 동물을 좋아한다는 의미를 넘어 사람과 동물이 동등한 관계라는 뜻이다. 동물도 사람과 감정을 교환하고 아픔을 나누고 소통하는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적 흐름이 호칭까지 바꾸게 된 것이다. 2020년 동물보호법 개정으로 동물의 정서적 가치가 인정되고, 그 생명과 복지를 위한 법적 보장의 길이 열리게 됐다. 학자들은 이때부터 반려동물이란 표현이 공식적 법률적 용어가 됐다고 한다. 최근 펫팸족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Pet+Family의 줄인 말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반려동물의 인구 비중이 전체 인구의 약 30%에 이른다는 말이다. 열 집 중 세 집은 반려동물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2015년 반려동물 시장 규모가 1조7000억원 정도였으나 올해는 4조원이 넘을 거란 추측이 나온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산업을 펫코노미라 부른다. 관련 분야로는 먹거리를 비롯해 영양제, 의류, 액세서리, 펫보험, 장묘업, 동물병원 등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런 사회적 추세를 반영하듯 대선후보들도 반려동물 의료비 경감 등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반려동물 팔자가 상팔자라 할만하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9

‘대통령의 아내’라는 자리

지위가 높은 사람의 부인을 일러 영부인(令夫人)이라 칭한다. 보통은 선출된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아내를 부를 때 사용된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영부인 역시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이니 매사 몸가짐과 언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건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영부인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나 말이 남우세스러운 꼴로 대중 앞에 노출되는 걸 우리는 드물지 않게 봐왔다. 최근에도 그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지난 2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영부인과 함께 베트남을 찾았다. 그런데, 하노이공항에 도착한 비행기 입구에서 눈꼴사나운 장면이 연출됐다. 영부인이 마크롱 대통령의 뺨을 때리듯 강하게 얼굴을 미는 모습이 여과 없이 영상을 통해 전해진 것. 스물다섯 살 연상의 아내에게 밀쳐진 프랑스 대통령은 면구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걸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봤다. 프랑스 당국은 즉각 “영부인의 장난”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늦었다. 각국 외신들이 ‘둘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 아닌가’라는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으니. 비단 프랑스 영부인만일까? 적절치 못한 행실로 국민들의 입길에 오르내린 영부인이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내는 공식 행사장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대통령이 내민 손을 뿌리쳐 화제가 됐다. 한국의 전 대통령인 문재인과 윤석열의 아내, 즉 한국 영부인들 역시 적지 않은 구설수에 휩싸여 있다. 영부인은 벼슬이 아니며,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자리는 더욱 아니다. 그 사실을 잊는 순간 자신은 물론 남편까지 망치게 된다. 그러니, 다들 자중하시라.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28

포항이 크루즈관광 명소라면

크루즈 관광이란 단순히 배를 타고 이동하는 개념의 관광 서비스 산업이 아니다. 지금은 숙박, 교통, 관광, 엔터테인먼트를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리조트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바다 위의 호텔에서 숙박을 하지만 배 안에서 제공되는 즐길거리로 여행의 재미는 배가 된다. 갖가지 세계 요리를 맛볼 수 있는가 하면 수영장, 놀이시설, 스파, 카지노, 영화관, 피트니스 등 다양한 위락시설은 크로스만이 가지는 장점이다. 또 특급호텔 서비스를 여행 기간 내내 누릴 수 있다는 것도 크루즈 여행의 매력이라 하겠다. 그래서 크루즈 여행을 찾는 인구는 매년 늘어난다. 작년 12월 포항 영일만항에서는 관광객 1100명을 태운 대형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호가 일본 오루타항으로 출항했다. 이 배는 오루타, 삿포로, 하코다테 등을 거쳐 5박6일 일정을 소화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선사 소속의 코스타 세레나호는 11만4000톤급 선박으로 길이만 290m에 이른다. 포항은 동해안 유일의 항만인 영일만항이 있는 곳이다. 영일만항을 모항이나 기항으로 하는 크루즈관광 산업이 활성화된다면 포항은 동해안 최대의 관광명소는 물론 환태평양 관문 역할도 가능하다. 포항시는 2019년부터 크루즈관광 유치에 많은 공을 들여왔지만 아직은 크루즈의 불모지다. 대형 국제 크루즈 선박을 몇 채 띄운 적은 있으나 영일만항이 크루즈항이라고 아는 이는 드물다. 경주 APEC을 맞아 영일만항에 크루즈선을 띄우는 것이 검토되고 있다. APEC 경주를 찾는 관광객의 부족한 객실을 크루즈선으로 대체한다는 아이디어다. 포항을 크루즈 명소로 만들 좋은 기회 아닌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7

자랑할 건 ‘여권 파워’가 아니다

외국을 여행하는 사람의 국적과 신분을 증명하고, 방문하는 국가에 자국민의 보호를 당부하는 문서. 여권(旅券)이다. 그 여권으로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많은지를 가늠해 이른바 ‘여권 파워’라고 부르는 모양. 최근 한국 여권의 ‘힘’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가 하나 나왔다. 영국 런던에 자리한 글로벌 시민권 및 거주 자문회사 헨리&파트너스는 ‘2025 헨리 여권 지수’를 발표하며 한국과 일본이 공동 2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헨리 여권 지수’는 여권 소지자가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국가의 수가 많을수록 높은 순위를 준다. 국제항공운송기구의 데이터가 조사의 토대다. 이 조사에서 여권 파워가 가장 강한 국가는 싱가포르로 드러났다. 싱가포르 여권 소지자는 비자 없이 193개 나라를 방문하는 게 가능하다. 한국과 일본의 여권으로는 190개 나라를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다. 해외 관광이 보편화된 시대이기에 나쁜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한국 여권 파워는 세계 2위”라고 외치고 다니는 건 좀 낯 뜨거운 일인 듯하다. 왜냐고? 이어지는 ‘헨리 여권 지수’ 순위를 보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여권으로도 비자 없이 189개 나라를 여행할 수 있고, 오스트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웨덴 여권도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나라가 188개다. 한국과 겨우 1~2개 국가 차이. 무엇이건 자화자찬이 과하면 웃음거리가 된다.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국가가 많은 걸 자랑할 게 아니라, 여행자로서의 매너를 잘 지키는 게 진정한 자랑거리가 아닐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26

담배 소송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공단 재정 누수 방지 등을 목적으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500억원대의 담배소송이 11년만에 항소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14년 소송을 시작한 이 사건은 2020년 1심 재판부가 원고 측인 공단 쪽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질병이 흡연 외 다른 요인에 의해서도 발병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담배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공단 측은 즉각 항소하며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학술적 자료와 담배 퇴치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의견수렴을 증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소송이 11년을 끌어오는 과정에서 담배의 유해성에 대한 범국민적 인식이 크게 높아졌고, 시민단체의 호응도 커져 항소심에서의 판결이 1심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 지 여부에 대해 세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1990년대 후반 46개 주 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의료비용 환수를 위한 소송을 제기해 우리 돈으로 약 280조원에 달하는 배상을 받아낸 바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1심과 다른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견해가 조심스레 나오기도 한다. 미국의 담배 배상 판결 후 캐나다 등 세계 많은 나라에서는 영향을 받아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11년을 끌어온 담배 소송은 재판부의 판결 결과를 떠나 담배판매 기업과 흡연자들에게 주는 사회적 메시지는 분명히 있다. 유해 물질을 파는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따지는 것과 판결이 국민의 건강권, 소비자 보호 등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5

보이스피싱 경계령

전화를 통해 개인정보를 빼내 사기를 치는 수법의 보이스피싱은 영원히 근절이 되지 않는 범죄일까. 수많은 서민에게 억울한 피해를 안기고 있는 범죄지만 당국의 꾸준한 단속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보이스피싱 사기는 오히려 더 늘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올 1분기 보이스피싱 범죄는 전년 동기대비 건수는 17%, 피해 금액은 120% 증가했다. 사기 피해가 오히려 대형화되는 추세다. 피해자 연령은 정보기술 이용 수법에 취약한 50대가 가장 많았다. 50대 이상 피해자 비중은 2023년 32%, 2024년 47%, 올 1분기는 53%까지 높아졌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 한다. 전화 통화를 통해 인증을 거치는 일들이 개인이나 공공기관에서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피해자 상당수가 피해를 입고도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이미 많은 피해가 발생한 뒤다. 대책도 없다. 금융감독원이 21일 고금리와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자금이 절박한 자영업자 등 서민층을 겨냥한 대출 빙자형 보이스피싱이 극성을 부린다고 경계령을 발령했다. 1분기 보이스피싱 피해자 중 42%가 대출 빙자형이라고 하니 나쁜 죄질에 분통이 저절로 터진다. 장사가 안돼 빚을 갚지 못해 쩔쩔매는 서민층을 상대로 금융사기를 치는 악질 보이스피싱 범죄에 강력한 철퇴를 내리는 방법은 없을까. 벼룩의 간을 빼먹는 세상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2

손흥민과 ‘임신 협박’

언필칭 ‘막장 드라마’ 방불이다. 젊은 여성 하나가 두 명의 남성과 동시에 연애를 했다. 와중에 임신을 했는데 여성은 그 아이가 어떤 남성과의 관계에 의해 생긴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둘 모두에게 “임신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으면 돈을 내놔라”고 한다. 남성 가운데 하나는 협박을 무시했고, 나머지 한 남성은 3억 원이란 거액을 송금한다. 이후 여성은 낙태를 했고, 결국 아이는 누구의 자식인지 알지 못하게 됐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혀를 찰 일인데, 이야기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여성은 또 다른 남성을 만나 교제한다. 헌데, 그 남성이 3억 원을 여성에게 준 남성에게 연락해 “여성이 당신을 만날 때 양다리를 걸쳤다. 사기와 공갈로 고소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줄 테니 내게 700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이건 여성 한 명과 남성 세 명이 등장하는 ‘치정 스릴러 영화’ 스토리가 아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요약한 것이다. 협박에 못 이겨 3억 원을 건넨 사람은 유명 축구선수 손흥민이고, 협박을 한 여성과 7000만 원을 요구한 남성은 구속됐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범행도구로 사기와 협박을 일삼은 여성의 행태는 ‘금수(禽獸)와 다르지 않다’고 질타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웬걸. TV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판사 출신 변호사가 덤덤한 어투로 말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이것과 유사한 사건이 적지 않아요. 나도 재판정에서 여러 번 봤고요.” 대체 세상이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21세기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본 듯해 입맛이 한없이 쓰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21

경제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많은 국가로부터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 질서를 깨뜨리고 경제적으로도 서방 국가에 많은 피해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 국민에게는 인기가 높다. 러시아 국민에게는 복지와 혜택을 가장 많이 준 대통령으로 인식되는 탓이다. 푸틴은 작년 대선에서 87%의 높은 득표율을 획득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상승해 러시아 경제가 되살아 나 국민적 여론은 나쁘지 않다. 그의 권위주의식 통치에도 다수의 국민은 그는 과(過)보다 공(功)이 더 많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만약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부과 등으로 미국의 부를 축적하게 되고 그 돈으로 국민에게 혜택을 준다면 미국인들도 트럼프를 계속 지지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이 아닌 방법으로 정권을 잡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면 그 역시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의 한 명으로 평가받았을지 모른다. 남미의 병자로 불리던 아르헨티나가 경제학자 출신인 밀레이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만에 경제가 재건되었다고 한다. 정부 지출삭감 등 강력한 개혁 조치로 어렵던 경제에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IMF 총재도 “포퓰리즘 척결의 경제 개혁이 인상적”이라는 말로 그를 칭찬했다. 대선을 앞두고 한 여론기관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차기 대통령은 경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대답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고 한다. 경제회복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경제적 안목과 역량이 이런 국민적 여망을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대목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20

가난 선택한 대통령 호세 무히카

지난주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라는 긴 이름을 가진 우루과이 사람이 여든아홉 살 나이로 죽었다. 많은 국가가 그의 죽음을 알리며 애도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호세 무히카는 농부였고, 13년이란 오랜 수감생활을 겪었던 민주화 투사였으며, 제40대 우루과이 대통령이었다. 사연과 굴곡 많았던 남아메리카 현대사 속에서 그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다. 우루과이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 월급 90%를 사회에 기부하고, 자신의 집무실을 떠도는 노숙자들의 숙소로 개방했으며, 기사 딸린 대형 세단을 마다하고 조그만 승용차를 직접 운전했던 지도자로 기억한다. 그래서다.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그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대통령’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지구 위 수많은 권력자들이 ‘검은 돈’ 탓에 권좌에서 밀려나 험한 꼴 겪는 걸 무시로 봐왔던 사람들에게 호세 무히카는 ‘별난 권력자’가 분명했다. 경제 성장률과 교육 수준의 향상, 문맹과 극빈층 줄이기, 사회적 소수자 보호라는 호세 무히카의 정치 지향은 재임 중에는 물론 퇴임 후에도 지속됐고, 이는 우루과이 사회를 보다 높은 단계로 성장시켰음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지난 2024년 4월이다. 그가 “식도암으로 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알게된 우루과이 사람들 다수가 눈물을 흘렸다. 정치인이 대중들에게 ‘검약’과 ‘탈권위’란 키워드로 기억되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의 죽음이 절대다수 국민들의 진심 어린 슬픔으로 이어지는 건 더 어렵다. 하지만, 호세 무히카는 그걸 해냈다. 한국도 이제 그런 대통령 하나쯤 가질 때가 됐는데…. 요 며칠은 우루과이가 부럽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9

홀리데이 포퓰리즘

정부가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수경기 진작에 있다. 설날이 있은 1월도 임시공휴일을 하루 지정하면서 6일이 연속 쉬는 날이 됐다. 가정의 달인 5월도 어린이날이 석가탄신일과 겹치는 바람에 다음날이 대체공휴일이 되고, 중간에 낀 금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네티즌 간 논란이 있었다. 징검다리가 낀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 길게는 일주일 정도 황금연휴가 만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임시공휴일을 내수경기 활성화의 촉매제로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연휴 지정 효과가 나타난 사례는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연휴를 기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내수경기는 오히려 엉망이 되고 만다. 시중의 상인들도 연휴가 이어지는 게 오히려 더 두렵다고 말한다. 작년 12월 계엄선포 이후 우리나라 내수경기는 최악이다. 올들어 트럼트 발 관세전쟁이 시작되면서 수출까지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밝힌 경제 동향에서 5개월 연속 경기 하방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도 먹고 입고 마시는데 지갑을 잘 열지 않는다. 유통경기가 전례 없이 불황이다. 백화점업계는 올 1분기 매출이 역성장했다고 울상이다. 이런 가운데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후보들이 주 4.5일 근무제를 공약으로 꺼냈다. 나아가 주 4일제 근무까지 하겠다고 한다. 저출생 극복과 노동시간 단축을 핑계로 주 4.5일제 정책을 내세우나 아직은 우리 경제가 주 4.5일제를 수용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심성 포퓰리즘은 국민 경제를 멍들게 할 뿐이다. 유권자인 국민의 현명한 판단이 옥석을 가려야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8

수상한 비행기 선물

중동의 부호 카타르 왕실이 트럼프 정부에 4억 달러짜리 보잉 747-8 비행기를 선물로 전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정가에 온갖 추측들이 오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을 앞둔 가운데 갑자기 왜 이런 발표가 나왔고, 비행기를 선물한 카타르의 저의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추측도 난무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비행기를 대통령 전용 비행기로 사용하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소유권을 트럼프 도서관에 넘기겠다고 밝혔다. 특히 카타르가 국방부를 통해 기증한 만큼 대통령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국 헌법에는 현직 대통령 등 공직자는 국회의 동의 없이 외국 정부로부터 선물을 받아선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많은 비난 여론에도 정작 트럼프는 “공개적이고 투명한 거래”라며 대응하고 있다. ‘하늘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비행기 가격은 우리 돈으로 무려 56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정부가 외국에서 받은 선물 가운데는 역대 최고 가격이라 한다. 미국의 민주당과 시민단체들은 “이해충돌 발생” “노골적 부패”라는 비난을 쏟아붓고 있으나 트럼프는 “공짜 선물을 거절할 이유 없다”는 식의 반응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탄핵 소추감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 독일의 총리를 지낸 메르켈은 그의 회고록에서 트럼프를 “부동산 개발업자의 눈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이라 혹평했다. 트럼프 취임 후 그의 관세 정책과 일련의 행동들은 이미 세계인의 눈밖에 난 바 있다. 그들은 카타르의 비행기 선물을 대가 없이 전달된 거로 보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정가에 갈등이 불씨가 켜진 것이 아닐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5

벌써부터 더위가 무섭다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국가’라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된 것 같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요즘엔 안 추우면 덥다. 이제 이 나라엔 겨울과 여름만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며 봄과 가을은 다람쥐 꼬리처럼 짧아졌다. 지난해 여름 극악했던 더위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6월 중순에 시작된 폭염이 추석 연휴가 끝난 9월 말까지 계속됐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종일 돌아갔고, 냉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곳에 사는 취약계층은 무더위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랬으니 “더위가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아르튀르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기억하는 지인은 “시집 제목이 지난해와 올해 한국의 더위를 예언한 것 같다”는 농담까지 던진다. 실제로 그렇다. ‘올여름 더위도 무시무시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기상 전문가들은 초여름부터 끈적이는 땀을 쏟아지게 만들 무더위가 올 것이라 예보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인도 해양과 열대 서태평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 때문에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질 것이다. 서태평양의 수온이 올라가면 한국 여름철 기온에 영향을 미치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달한다. 그렇기에 이번 여름은 시작부터 폭염이 심할 것”이라 부연했다. 지난해 겪은 더위가 무서웠던 탓일까? 벌써부터 에어컨 구매를 예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직은 5월 중순임에도 거리엔 반팔 셔츠를 입은 직장인과 반바지 차림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다시 ‘공포스런 여름’이 오고 있다. 너나없이 모두들 준비 단단히 해야겠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4

“전쟁은 이제 그만”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는 전 세계에 보내는 첫 공식 메시지로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자주 말했던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는 메시지로 그의 뜻을 전승했다. 1945년 종전된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군사전쟁으로 기록됐다. 전쟁으로 인한 직접 사망자가 5000만~5600만명, 전쟁관련 질병이나 기근 등의 이유로 사망한 사람이 추가로 1900만~28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의 뒤끝은 항상 눈물과 상처뿐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좋은 전쟁, 나쁜 평화란 이 세상에 있었던 적이 없다”란 말로 전쟁의 비극을 표현했다. 전쟁은 군사력을 동원해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권력을 잡은 자들의 욕심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반복 돼온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존재가 전쟁이다.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는 가장 원시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인류는 여전히 비극적 방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전쟁은 당사자 간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 경제적으로 주변 국가들로 하여금 심각한 타격을 입게 하고 세계를 긴장 국면으로 몰아간다. 가자지구 내 전쟁 또한 세계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이 종전 협상으로 마무리되었으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닌 듯 하다. 새 교황 레오 14세는 지구촌에서 조각 조각 벌어지는 분쟁을 두고 “사실상 3차 세계대전 상태”라고 말했다. 영국의 한 여론조사 보도에 의하면 미국 등 서방국의 국민 45%가 5~10년 내 3차 세계대전 발발을 우려한다고 했다.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레오 14세 교황의 간절한 기도가 전쟁 종식의 신호탄이 되었으면 한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3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미국 부자

첨예화된 자본주의는 돈을 신(神)의 지위까지 끌어올렸다. 어느 국가라 특정할 것도 없다. 지구 위 대부분의 나라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부자”라고 답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친구와 선후배는 물론, 부모와 형제까지 돈 앞에선 낯빛을 바꾸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지저분한 사기 협잡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유산 싸움 이유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탓이다. ‘돈은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돈을 잘 쓰는 건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부자는 사회적 존경을 받게 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최근 “나는 부유하게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며 가진 돈의 사회 환원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00년 설립된 게이츠재단은 지난 25년 동안 140조원에 가까운 돈을 사회에 돌려줬다. 앞으로는 사회 환원을 더 빠르게,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게 빌 게이츠의 뜻이라고 한다. 그는 “향후 20년간 내 재산의 거의 전부인 99%를 임산부와 아동 사망률을 낮추고, 소아마비와 말라리아 등의 병을 해결하며, 빈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부하겠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사용될 돈은 대략 280조원. 지금까지의 기부금보다 2배 많은 수치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겠지만 ‘그는 부자로 죽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빌 게이츠의 선언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 돈은 때론 독(毒)이고, 때론 약(藥)이 된다. 어떻게 쓰여야 약이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2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

스승의 날이 만들어진 것은 학생들의 단순하고 순수한 생각에 의해서다. 1963년 충남 강경고 청소년적십자단 학생들이 병환 중이거나 은퇴한 스승을 찾아 위로 활동을 해보자는 것이 유래가 성립한 배경이다. 이 운동이 계기가 충청남도 은사의 날이 민들어졌다.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한참 이후인 1982년도의 일이다.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잡은 것은 민족의 스승이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년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엣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스승은 가르침을 받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존경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학에 등장하는 말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도 스승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스승에 대한 은혜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공자의 뛰어난 70명의 제자를 칠십자라 부르는데, 그들이 공자의 사상을 후대에 전하면서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한 사람의 훌륭한 스승이 미치는 영향력은 이렇게 큰 것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 마음으로 존경했던 선생님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그때처럼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단을 떠나가는 선생님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가장 선망의 대상이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다시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집단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범사회적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진다”는 가사처럼 그들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1

한국인의 울화통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최근 설문 조사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특별히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관련한 조사를 해 보았더니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만성적인 울분상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특히 30대와 저소득층일수록 울분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의 70%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대답했으며, 공평에 대한 믿음이 낮을수록 울분 정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울분(鬱憤)이란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뜻하는데, 울화(鬱火)와 비슷한 표현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생긴 병을 울화병, 심화병, 속병이라 부른다. 여기서 나온 울화통은 몹시 쌓이고 쌓인 마음 속의 화를 속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내면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다. 특히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 살면서 제대로 표현도 못해 남성보다 속병을 앓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미국정신의학협회는 한국인의 울화나 화병 등은 한국문화와 연관된 특수한 질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증상이 지속될 경우는 정서 장애의 하나로 본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의미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이 만성 울화를 겪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나라와 국민을 안정시키는 일보다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 우리나라 3류 정치에도 책임이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