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새해를 맞아 세웠던 갖가지 계획이나 다짐들도 연례행사처럼 하나둘씩 없던 일이 되어가기 십상인 시기이다. 새로운 결심이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계획에 비해 의지가 너무 약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에 비해 계획이 너무 큰 것이다.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앞은 의지박약이고, 뒤는 의욕과잉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경우이다. 의지박약으로 인한 실패는 보통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지만 의욕과잉의 폐해는 주위까지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로는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용할 때가 있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가 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족(漢族)`이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중국의 한(漢)나라는 오늘날 우리가 `중국적`이라 부르는 문화의 많은 원형들을 이룩한 시대이다. 서역(西域) 경영을 통하여 지상에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제국을 건설한 것도 이때이고, 음양오행설을 체계화하여 동양적 우주관의 기본틀을 마련함으로써 천상의 질서를 장악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이다. 하지만 이렇듯 강성한 한나라도 처음부터 팽창적 기조로 국가를 통치한 것은 아니다. 한나라는 전국시대의 오랜 병화와 뒤이은 진시황의 폭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 유명한 초한전(楚漢戰)의 산고를 거쳐 탄생한 왕조이다. 이 때문에 건국초 한나라 통치집단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은 적극적이며, 공격적인 정책이 아니라 누대에 걸친 국가적인 피로도를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휴식이었다. 한나라 초기 이와 같은 시대적인 요구를 읽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긴 황제가 3대 문제(文帝)와 4대 경제(景帝)이다. 40여 년 동안 계속된 이들 부자 황제의 통치 기간 동안 한나라는 오랜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역사는 이 시기를 `문경지치`(文景之治)라고 부르며, 중국역사상 3대 태평성대 가운데 첫 번째 시기로 꼽는다. 한나라의 강성은 이때 축적된 국가적 역량을 바탕으로 뒤를 이은 5대 황제 무제(武帝)가 적극적인 팽창정책을 펼친 결과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무엇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 정치보다 하지 않는 정치에 대한 예찬이 많다. 노자(子)가 대표적이다. 노자는 정치를 네 등급으로 나눈다. 이에 따르면, 최고의 정치는 백성들이 통치자의 존재를 전혀 의식할 필요가 없게 해주는 정치이다. 두 번째는 백성들이 통치자를 칭송하고 기리는 정치이다. 세 번째는 통치자의 이름만 들어도 백성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정치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저급한 정치는 통치자 이야기만 나오면 백성들이 비웃는 정치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최상의 정치는 두 번째 정치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것이 최고의 정치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최고의 정치는 통치자 덕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잘난 덕에 스스로 행복하다고 백성들이 생각하게 해주는 정치이다. 백성이 가지고 있는 본유의 능력들을 신뢰하고, 그것을 가로막는 일체의 인위적인 절차나 장치를 스스로 삼가는 동양적 무위(無爲) 정치의 이상이다.
새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한 지도 한 달여가 다 되어 간다. 얼마 안 있어 새 정부 국정운영의 청사진이 담긴 보고서도 발간될 것이다. 의지박약이어서도 안 되지만 의욕과잉의 정책들도 삼갈 일이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유용할 때도 많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준다. 특히 건국 이후 시종일관 팽팽하게 당겨지기만 했던 `대한민국`이라는 활의 시위를 생각할 때 한 번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국가경영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