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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문도시로 가는 길

▲ 박창원수필가 1990년대 말,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IMF 사태는 인문학의 위기를 불러왔다. 대학 인문학 관련 학과 지원자의 감소, 교양과목의 축소, 취업 불안이라는 구체적 현상을 통해 나타났다.그러고 나서 20년 가까이 흐른 요즘, 새로 인문학의 열풍이 불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단 강좌가 여기 저기 개설되고, 지자체마다 `인문도시`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기업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많은 지자체들이 인문도시 간판을 내걸고 있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현 시점에서 종전의 물적 성장 위주의 성장 정책은 더 이상 시민들에게 도시의 비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시민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데 인문학인 처방이 필수불가결의 요소라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다.포항시에서도 최근 `미래를 여는 환동해 역사문화도시 포항`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과 손잡고 `영일만 친구, 인문학에 철들다`라는 주제의 인문도시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이 사업에서는 포항의 인문역사자원 발굴과 재발견을 통해 철강도시 포항을 역동적인 문화도시로, 소통과 공감의 인문역사문화도시로 변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3년간 인문강좌, 인문체험, 인문축제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프로그램을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인문학, 청소년인문학콘서트, 지역아동센터 및 공장근로자, 농어촌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인문학` 등의 인문강좌와 지역의 인문학적 자산을 공유하는 인문체험, 인문축제 프로그램을 연차별 주제(1차년도:빛, 2차년도:철, 3차년도:바다)에 따라 운영한다.특히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4일을 인문주간으로 설정, 포항시 곳곳에서 `빛과의 만남`이라는 주제의 개막식, `포항의 빛을 찾아서`라는 주제의 인문학 토크콘서트, `빛으로 수놓다`라는 주제의 전시회, `포항, 미래의 빛을 만나다`라는 주제의 현장+토크, `포항의 빛을 찾아 떠나는 기행`이라는 주제의 스토리텔링 테마기행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행사의 종류만 보고 있으면 포항이 어느새 인문도시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포항이 인문도시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인문도시를 지향하는 포항시의 인문환경을 들여다보면 열악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이다. 인근 도시에 비해 역사·문화적 자원이 참으로 빈약하다. 그리고 수십 년 간 채색된 철강도시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인문도시라는 이미지는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행정조직도 인문도시 지향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앞서나가는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인문도시사업단이나 인문도시담당관이라는 조직도 없다. 인문학 연구역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지역 대학에 관련 학과가 없고, 민간 연구기관도 부족하다. 인문학을 진흥시키려는 예산도 턱없이 모자라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도 낮다.인문도시란 `인간다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도시`이며 동시에 `인간다운 인간이 만드는 도시`라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오랜 전통과 매력 있는 문화, 휴머니즘의 정신과 민주주의의 정신, 아름다운 경관 등의 인문환경과 시민들의 인문역량을 두루 갖춘 도시라 할 것이다.인문학이 우리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수불가결의 요소가 틀림없다면 멀다고, 험하다고 이 길을 포기할 수는 없다. 빈약한 역사·문화적 자원은 하나씩 발굴하여 소중하게 챙겨야 한다. 인문학 연구 인력도 많이 양성해야 한다. 효율적인 업무를 위한 행정조직도 필요하다. 생색내기가 아닌 실질적인 예산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라야 인문학이 자랄 수 있다.현재의 인문도시 사업은 마중물이다. 눈앞의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멀리 내다보면서 뚜벅뚜벅 가야 한다. 그 성과는 20년, 30년 후에 나타날 것이다.

2017-11-17

문화의 변화, 힐링의 문화

▲ 하재영포항문인협회장 시월을 보내면서 곳곳에서 치러지고 있는 문화 행사 소식을 접하게 되고 가까운 곳의 문화 행사는 직접 참여도 한다. `문화대국`, `문화 발전`, `문화 국민`, `시민문화`, `선진문화` 등의 타이틀에서 쉽게 보듯 문화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의 용어가 되고 있다. 사전에 설명한 문화의 여러 뜻 중 첫 번째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 또는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해 낸 물질적, 정신적 소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다.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일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기본 덕목이다. 과거보다 더 풍요롭고 멋지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없어진 문화가 있는가 하면 변화하고 있는 것도 있고 새로 생긴 양식의 문화도 있다. 변화하고 있는 문화 중 대표적인 것은 장례문화다. 예전에는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은 만사를 제쳐 두고 초상난 집의 일을 거들었다. 그것이 연세 많은 노인의 죽음일 경우 호상(好喪)으로 마을 축제 형식으로 치러졌다. 출상 전날 밤이면 마을 공터에서 상여를 메고 발을 맞추는 놀이도 했다. 그 시절의 그런 장면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가장 중요시되었던 죽음 의식은 오늘 도시 곳곳에 `장례식장`이란 식장에서 간단한 의식을 마치고 끝나게 된다. 과거의 의식은 `상여놀이`라는 문화로 재현할 뿐이다. 그와 반대로 새로 생긴 것은 기기(器機)를 이용한 문화다. 이미 과학의 산물을 이용한 문화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놀이로 발전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드론(Drone) 문화다. 드론은 하늘이란 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과학발전의 산물이다. 드론을 이용한 촬영은 한 컷의 사진에서 동영상으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영상물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드론을 이용한 놀이 문화도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 대신 드론으로 축구하는 경기도 머지않아 놀이문화로 발전할 것이다.대중성 있는 문화가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일부 소수만이 즐기는 문화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화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여기는 지역자치 단체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경주는 신라문화제를 주도하고 있고, 포항시는 가을을 맞아 일월문화제를 추진하였다. 대부분 관에서 주도하는 문화행사는 시 공무원과 주민을 동원하는 행사로 진행되고 있는 편이다. 개인과 기업, 시민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도 치러지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행사를 제외하고는 일반인의 자발적 참여를 얻기 힘든 면이 있다.지역성이 강한 독특한 문화 행사는 지역의 자원이고, 힘이고, 발전의 동력이다.과거와 미래를 잇는 오늘의 문화가 우리 곁에 있을 때 그 문화는 더욱더 사랑받고 발전할 것이다. 사람이 몰리는 문화 현장은 볼 것뿐만 아니라 들을 것도 있으며, 맛볼 것이 있고, 느낄 것이 있기에 경제효과를 가져온다.노래 한 곡, 시 한 편, 그림 한 점이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시월의 끝자락이다. 이미 펼쳐진 지역문화를 보다 발전시키는 일은 무엇보다 지역민의 관심이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문화현장을 시민들이 스스럼없이 찾을 때 그 시간은 힐링의 시간으로 그야말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아름다운 시간이 되고, 지속발전 가능한 문화행사가 될 것이다.

2017-10-30

가난한 아버지의 잊을 수 없는 선물

▲ 박철화 문학평론가나는 둘째다. 위로 형을 두었다. 그래서인지 먹고 입을 것 가리지 않고 부족하던 내 유년 시절 단 한 번도 새 옷을 입지 못 했다. 세 살 터울의 형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혹시 아래로 남동생이 있었다면, 그에게 물려줄 가능성 때문에라도 그나마 어쩌다 하나 쯤 새 옷을 차지할 수 있었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여동생만 둘을 두었다. 어릴 때, 그게 늘 불만이었다. 똑 같은 아들인데, 왜 나는 매번 형의 헌옷을 물려받아야만 하나? 장손에다 체격이 좋았던 형의 옷은 깡마른 내게는 잘 맞지도 않았고, 옷감의 질이 좋지 않을 때라 온전하지도 않았다. 손재주가 좋은 어머니 탓(?)에 수선을 거친 옷은 얼추 모양을 갖추었지만, 안에는 늘 기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양말마저 꿰매어 신고 다니던 때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정말 간절하게 새옷을 입어보고 싶었다.하지만 우리는 방 셋에 열 식구 넘게 사는 대가족이었다. 10남매의 장남으로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한달 치 쌀을 사는 게 고작이었다. 재봉질부터 시작해서 안 한 게 없는 억척스런 어머니의 노력으로 배를 안 곯는 게 다행이었다. 새옷 타령은 입 밖으로 꺼내놓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하지만 어린 게 참아봐야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인가 나는 그 간절한 바람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았다. 아니 어쩌면 간파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서운 아버지가 바람 차가워지는 계절이 오면 좋은 선물을 해주마고 약속을 한 것이다. 나는 그게 바로 따뜻한 코트나 멋진 색깔의 바지일 것으로 생각했다. 늘 새 옷을 입고 와서는 속을 긁어놓는 사촌동생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런데 옷은 없었다. 아니 아무 것도 없었다. 있었다면, 완연한 가을날, 나와 여동생 둘을 데리고 아버지가 긴 산책을 나선 것이 전부다. 선물을 주겠다는 말에 끌려 마을을 지나고, 언덕을 넘고, 산골짜기를 지나 알 수 없는 먼 곳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온 게 다였다. 어린 여동생 둘은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자마자 거의 기절하듯 쓰러졌다. 나 역시 마음이 무너지며 몸까지 무너져 내렸지만, 너무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그때 아버지가 곁으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넌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어른이 되면 오늘 걸은 게 평생 좋은 선물이 될 거다.”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이 말만 안 들었어도! 아버지가 무섭지만 않았다면, 소리 지르며 원망을 내뱉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소리 죽여 울기만 했다. 그래서 더 억울했고, 지금도 그날의 환멸이 잊히질 않는다. 나는 그때 복수하듯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옷도 사주지 못 하는 무능한 아버지는 절대 되지 않을 거야!”내 기억에 처음으로 새 옷을 입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가을 무렵이다. 지금도 그 바지를 입고 기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 옷은 금방 사라졌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시커먼 교복을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그런데 나는 지금도 거의 유일한 습관으로 시간만 나면 걷는다. 특히 마음이 어지럽고, 사는 게 쉽지 않을 때는 걷는 것 이상의 위안과 해결책이 없다. 그렇다고 그날 힘들게 걸은 일이 아버지의 말처럼 꼭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가난한 아버지의 자기 위안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걷기 습관을 아직 갖고 있다. 그리고 이번 가을에도 만산홍엽(滿山紅葉)과 반가이 만나며 산에 오를 것이다.

2015-10-15

대답보다 질문으로

▲ 정석수 구미종합사회복지관장·신부말의 홍수시대, 온갖 뉴스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말의 온기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권한을 지나치게 행사한 그녀의 말투와 행동은 한 기업의 리더라는 것을 의심케 한다. 또 한 젊은 청년이 경찰서에서 한 행동은 투자실력에 비해 너무나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돈이나 자리에 바탕을 둔 행위가 아니라 따뜻한 인성에서 출발한 결과를 상상해 본다. `2030 대담한 미래`에서 최윤식씨는 미래 산업에서 승리하기 위한 3가지 능력을 이야기 하고 있다. 경제(돈)나 신기술보다 첫째로 꼽은 것은 인문학적 능력이다. 인문학은 단순한 교양차원을 넘어 사람의 정신과 사람을 연결하는 지식이다. 이 지식을 활용하여 통찰력과 상상력과 연결력의 능력을 기르게 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래 인재의 필수 조건으로 통찰력과 상상력이라고 한다.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으로 변화의 흐름을 잡아내는 능력을 기르고, 상상력으로 새로운 미래를 창출해 사람들의 흐름을 변화시킨다면 멋질 것이다.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 가상과 현실의 교차적인 연결을 통하여 기술적 발전만이 아니라 인간적 사랑의 흐름이 증폭되는 세상, 꿈이 아니기를 바란다.미래의 변화를 만드는 7가지 힘 가운데 하나로 윤리성을 언급하고 있다. 갖가지 위험은 비윤리적 행위, 비정상적인 상황, 부패와 부정에 있다. 소비자는 냉정한 선택으로 윤리적 차원에서 문제 있는 기업의 활동에 영향을 주게 된다. 땅콩회항이라는 사건을 통해 볼 때, 불매운동과 예약율의 저조는 그 단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고 기업의 가치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마저 곤두박질 할 수 있다.마음의 여유를 잃어가듯이 공간의 여백도 잃어가고 있다. 서울역에서 손님이 쉴 수 있던 공간은 어느새 상점으로 변화가 되어 있었고 중앙 부분 역시 물건을 파는 곳으로 변화돼 시선은 막혔다. 물질적 차원에로 닫힌 사회의 한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다. 그래서 일까 너와 나의 맞잡은 연대성보다 갑과 을의 횡포가 여전히 2013년에 이어 여전히 2014년 연말에도 뉴스로 장식되고 있다.이러한 사회적 어둠, 개인적 질곡을 뚫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빛, 그분이 내려오기를 간절히 기다려진다. 한국천주교주교위원회 자선주일 담화문에서 관심과 연대를 국가나 정부의 몫으로 한정지을 수 없기에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보잘것없는 나눔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마는 마더 데레사의 정신으로 크기나 숫자로 따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2014년 3인 가구 월수입 132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410만명으로 추산되는 현실에서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희생이 따르지 않는 아픔이 없는 자선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은 사회적 연대를 이루기 위한 기본적 자세를 알려준다. 호주의 전 총리 밥 호크는 “가장 중요한 일이 언제나 가장 큰 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요란스럽게 사랑의 연대의 대열에 동참하라고 나를 호출하기보다 스쳐지나가는 미풍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지역사회의 기업과 많은 단체에서 김장을 나누어 사랑의 온기를 나눈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김치는 다양한 재료를 하나의 맛으로 배치시킨 하이브리드 패치워크 가운데 교배형 패치워크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제각각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새로운 조직으로 승화된다면 새로움은 배가될 것이다.볼테르는 “사람을 대답이 아닌 질문으로 판단하라”고 했고, 프랜시스 베이컨은 “진중한 질문은 지혜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했다. 질문을 통하여 학습의 효과가 최대 150퍼센트까지 향상된다는 연구가 있다. 좁은 기내에서 일하는 승무원에게 따뜻한 말을 전하며 질문을 하였더라면. 자신이 가진 재산으로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질문을 하였다면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텐데. 하느님께서 한밤중 꿈에 솔로몬에게 질문을 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느님의 말씀께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도 같은 질문을 하셨다. 예리고에서 눈 먼 이를 만나시어“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고 하셨다.

2014-12-29

제대로 된 지역 철강산업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제언

▲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세계 각국에는 뛰어난 경쟁력을 지닌 산업들이 밀집돼 있는 클러스터들이 산재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클러스터로는 실리콘밸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클러스터는 지역 내에 소재와 부품 그리고 완성제품에 이르는 일련의 서플라이체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서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재는 부품에, 부품은 최종제품에 부가가치를 추가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개발해 동일 업종의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을 모색한다. 이와 같은 자율적인 선순환 메커니즘의 작동은 각 기업 자체의 이노베이션을 가속화하면서 동시에 클러스터 전체를 혁신적인 클러스터로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우리들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화두 중에는 생태계라는 단어가 있다. 생태계라는 것은 좁게는 어느 한 지역에 국한시킬 경우 늪지 또는 연못이나 저수지가 될 수도 있다. 동해안의 맑은 청정해역 전체를 생태계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바다 생태계는 플랑크톤부터 최상위의 포식자에 이르기까지 먹이사슬의 각 계층별로도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조건은 그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각 개체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낚시 포인트라는 것도 결국은 이와 같은 생태계가 매우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다는 전제하에 읽어내는 것이며 그러한 낚시 포인트에서 낚시에 실패하는 것은 결국 우리도 모르는 가운데 어디선가 폐수가 흘러들어와 생태계를 파괴했거나 수입산 배스라는 물고기가 들어와 그 생태계를 존속시키는 DNA를 완전 변질시켰기 때문일 것이다.이렇게 보면 산업의 생태계도 최대한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제대로 된 클러스터와 생태계는 결국 같은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클러스터와 생태계는 또 다른 제대로 된 클러스터와 생태계와도 무리 없이 융복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저수지에 빗물이 아무리 쏟아져도 같은 민물이기 때문에 큰 지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포항지역 경제로 눈을 돌려보자. 포항은 창조도시를 지향하면서 보다 역동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강소기업으로 육성될 만한 혁신적인 기업들을 유치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편 포항의 경우 이미 대부분 철강산업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보다 엄격한 잣대로 선진국의 클러스터와 비교한다면 아직은 진정한 철강산업 클러스터라고 하기에는 좀더 발전시킬 영역이 남아있다. 현재의 포항 철강산업 생태계는 포스코가 지난 수십 년간 규모가 확대되면서 보다 세분화시킨 다양한 업무분야를 좀 더 전문화하거나 경영효율의 제고를 위해 스핀오프를 통해 형성시킨 먹이사슬에 가깝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먹이사슬 내지는 서플라이체인의 형성이 자연발생적이 아니어서 경직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좀 심하게 말한다면 클러스터가 아닌 일종의 기업집적지인 셈이다.물론 이러한 기업집적을 클러스터라고 간주하고 포스코로부터 하위의 협력업체로 이뤄진 큰 그림을 생태계라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포항의 이러한 기형적인 클러스터와 생태계가 진정한 자율경쟁과 생존을 통해 특히 소재에서 부품으로, 부품에서 최종제품으로 이어지는 서플라이체인이 부재한`2%`부족한 클러스터의 상황에서는 여타 기업들의 유치를 통해 자연스럽게 포항스타일의 클러스터에 융합되어 제대로 된 생태계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앞으로 포항에서 향후 수십 년 후에 진정한 창조도시로 불리는 생태계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플랑크톤에 해당하는 지역 대학출신의 지역내 창업을 유도하는 가장 기초적인 생태계의 기반조성과 더불어 가능한 지역내에 부족한 철강기반의 최종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유치에 중점을 두어 진정한 철강산업 생태계를 조성시키는 전략의 추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2014-10-31

포항 신성장 해법은 해양관광

▲ 한영광 포항대 명예교수 포항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포항지역은 해양관광자원의 보고이다. 해양관광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국민소득 수준의증가로 인해 생활수준이 괄목하게 향상 됐으며, 주5일제 근무도 정착 확대돼 여가시간이 증가하고, 건강을 추구하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어촌과 어항을 중심으로 해양활동형 관광이 내륙관광 보다 그 수요가 크게 증가 하고 있다. 또한 사회변화의 특성은 과거의 점진적 이고 연속적 변화에서 급격하고 단절적 변화로, 가치 중심은 경제적 생산성에서 문화적 창의성과 환경으로, 경제활동 공간은 국경 있는 경제에서 국경 없는 경제로 급변하고 있다. 더욱이 국제정치환경은 육지중심의 단기적 고강도 분쟁에서 해양경계를 둘러싼 장기적 저강도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로 해양을 기반으로한 관광자원의 개발은 가속화될 전망이며, 이에 따른 기반조성이 되면 해양관광수요는 가속화될 것이다.지난해 말 포항시가 발표한 사회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시민이 바라는 포항미래상에 질문에 대해 해양관광문화도시 49.2%, 쾌적한 전원도시 29.2%, 첨단산업도시 25.6%로 응답 했으며 시민들의 문화요구가 강하게 나타났다. 그동안 포항은 철강 산업도시로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렸으나 사회가치를 물질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이동하는 사고의 대전환으로의 도시이미지를 제시 했다.이런 의미에서 포항은 천혜의 자연해양자원이 풍부하고 해양관광 인프라가 비교적 잘 구축 돼 있어 시민들이 요구한 해양관광문화도시 변모 시키는 데는 별다른 애로가 없다. 우선 포항지역은 영일만을 중심으로 사빈(sand beach)이 대체로 그 규모가 크며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모래의 이동이 발달했다. 사빈배후에 발달한 사구는 일렬로 배열돼 있으며 사구의 열이 해안선과 나란히 발달해 주위에 해송이 우거져 청정해역과 더불어 빼어난 해수욕장이 산재돼 있다.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가 전국 해안에 조성한 `해안누리길`을 국민들이 자주 찾을 수 있도록 철도와 연계한 관광 상품을 발표 했다. 해안누리길은 해안경관이 수려하고 해양문화 및 주변 관광자원이 풍부한 전국 52개 노선을 발굴한 바닷길이다. 경북 동해안은 포항의 호미면 대보리, 울릉의 도동 저동, 영덕의 병곡면 병곡리 영해면 대진리, 울진의 근남면 신포리 평해면 월송리가 선정 됐다. 특히 울릉의 독도는 국제적인 해양 영토분쟁지역으로 세계인 주목하고 있어 해양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최근 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관광의 별`에 죽도시장 영일대누각 포항운하가 후보에 올라 기대를 걸고 있을 만큼 해양자원 풍부하다. 올해 말에 개통되는 KTX로 인해 포항의 해양관광은 더욱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 인데 이것을 어떻게 활용 할 것인가 과제이다.경북 동해안의 해양위락관광자원이 산재돼 있어 마리나를 개발해 해양스포츠거점을 포항으로 해 해양위락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마리나는 프레저 보트 항을 중심으로 한 해양 레크리에이션의 기지화를 말하는데 현제 플레져 보트 정박지 기능만이 있기 때문에 동해안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해양성 위락시설을 집산 화해 포항을 마리나 기지화 하여 시설집적 및 이웃지역과 연계한 공간창출이 필요 하다.포항 해양관광의 시너지효과를 거양하기 위해서는 동해안의 시군이 함께 참여하는 광역해양관광이 추진돼 제휴하고 연계(tie-up and link-up)시켜 협력하는 데서 그 해법을 찾아야한다.

2014-03-28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책

▲ 김현욱 시인뉴질랜드의 도서관 사서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화이트는 그림책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책입니다. 앞으로의 기나긴 독서 생활을 통해 읽게 될 책 가운데 가장 소중한 책입니다. 그 아이가 그림책 속에서 찾아낸 즐거움의 양에 따라 평생 책을 좋아하게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됩니다. 때문에 그림책은 가장 아름다운 책이어야 합니다. 화가와 작가와 편집자, 제작자, 그리고 독자가 어우러져서 어떤 책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조각이나 영화처럼 그림책도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형식입니다”그림책의 `그` 자도 몰랐던 작년 겨울, 구미에서 조의래 선생님의 그림책 강의를 들으며 큰 충격과 설렘을 느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전에 그림책을 알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뿐더러 관심도 없었다. 세상에, 그림책이라니! 영유아들이나 보는 유치하고 조잡한 책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편견이고 오해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조의래 선생님의 강의를 계기로 그림책의 매력에 푹 빠졌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괜찮다. 천만다행이다.학교로 돌아와 추천 그림책을 한 권 한 권 읽었다. 아니, `읽었다`라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즐겁게 만났다`가 어울린다. “그림책이란 언어 예술과 회화 예술의 조화물을,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물리적 형태로 형상화해낸 것입니다. 때문에 편집자와 제작자의 참여가 아주 중요합니다. 그림책은 문장, 그림, 편집, 제본, 이 네 가지 모두에 대한 종합적 이해가 없으면 어느 부분의 창작도 어렵습니다” 일본 아동도서출판의 명문 `우쿠인칸쇼텐`의 창업자이자 50년 이상 어린이책 계몽운동에 헌신한 세계적인 아동도서 전문가 `마쓰이 다다시`의 말이다. 언어 예술과 회화 예술의 아름다운 조화물이 바로 그림책이다.어린이에게 그림책을 보게 하면, 그림 때문에 오히려 어린이의 상상력이 묶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를 그리는 능력이 손상된다는 일부 의견에 대해 마쓰이 다다시는 “어린이의 자유로운 발상이나 풍부한 상상력은 그림책을 읽는 경험을 통해 더 자라고 발전합니다. 절대 묶이지 않습니다. 겉만 화려하고 예쁘기만 한 소수의 그림책이 위험할 뿐입니다. 그림책을 어린이에게 많이 보여주십시오”라고 반박한다.사실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체험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체험의 기회를 가장 풍부하게 제공하는 매체가 바로 그림책이다. 산만하던 아이도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자세를 고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림이 머릿속에 영상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림책의 그림은 매우 중요하다. 그림책을 통해 반복되어 쌓인 영상 경험이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큰 영향을 준다. 유아기에 양질의 좋은 그림책을 꾸준히 접하는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가 훗날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최근에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부모가 점점 많아지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자녀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도리어 안 하는 만 못하다. 그림책 읽어주기의 목적은 그저 기쁨과 즐거움이어야 한다. 자녀와의 따뜻한 소통과 나눔의 장이어야 한다. “어디가 재미있었니? 어떻게 재미있었니? 어떤 그림이 마음에 들어? 줄거리가 어떻게 되지? 주인공이 왜 그랬지?…” 그림책을 읽으면서 또는 읽어준 후 끊임없이 질문을 늘어놓는 부모가 종종 있는데 처지를 바꿔서 생각해보자. 그림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쓰고 발표하고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면 과연 그림책에 매료될 수 있을까?모쪼록 많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행복과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림책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호기심에 가득 찬 표정을 덤으로 즐기면서 말이다.

2014-03-14

신뢰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 장태원 시인사람과 사람 나라와 국민 사이에 신뢰가 없다면 살얼음판 같이 깨지기 쉬운 사회다. 남자들이 이발할 때 마지막 코스로 면도를 한다. 이발사는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시퍼런 면도날로 코밑과 턱밑의 거친 수염을 밀어낸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드러운 이발사의 손길에 잠을 자게 된다. 만약 우리가 이발사를 신뢰하지 못하고 정신이상자로 의심한다면 오금이 저려 면도는커녕 소름이 돋아 잠시도 앉아있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 그 이발사가 발광하거나 실수로 날선 면도날로 우리 경동맥을 끊어버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시퍼런 칼날 앞에 긴장을 하기는커녕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 잠의 나락에 빠져든다.이와 같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논어의 안연 편에 잘 나타나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어느 날 공자에게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는지 물었다.공자는 “식량을 넉넉하게 하고(足食), 군대를 튼튼히 하여 나라를 지키게 하며(足兵), 백성의 믿음을 얻는 일이다(民信)”라고 대답하였다. 자공이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자공이 다시 나머지 두 가지 가운데 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묻자 공자는 식량을 포기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라고 대답했다. 나라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사회에도 신뢰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공자의 메시지다.불과 십여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적선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구국도 국민과 병사들의 장군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신뢰는 절망적인 상황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하지만 불신의 대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며 사회의 품격도 떨어지게 한다. MB정권에 있었던 광우병 파동이나 지난 연말부터 새해벽두까지 온 나라를 달궈왔던 코레일 민영화, 그리고 현재도 불꽃이 타고 있는 의료민영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 사회가 불신과 저신뢰 사회의 늪에 빠지게 된 원인은 부도덕과 부정직의 만연과 지나친 성과주의, 우월적 지위의 횡포인 갑을관계, 그리고 반이성적 사회 풍조와 양치기 소년 같은 정치인의 거짓말에 있다. 정치가 사회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갈등을 치유하고 해소하기는커녕 진영논리에 매몰되어 정파적 이해득실에 따라 인화성이 강한 사회적 이슈에 정치적 레토릭으로 오히려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그러면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한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데에 있다. 기초자치단체의 정당공천제 폐지는 지난 대선 때 여야가 내세운 핵심공약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지금 여당에서 오픈프라이머리니, 지방자치단체 파산제 도입이니 뭐니 하는 것은 초점을 흐려서 어물쩍 넘어가려는 꼼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지자체 파산제가 도입되면 구조조정을 압박할 수 있게 되어 지자체장의 과시용 사업이나 선심성 사업에 과도한 예산을 쏟아 붓던 고질적인 병폐가 차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파산제가 좋으면 이미 시행중인 미국이나 일본같이 도입하면 될 터이고 정당공천제 폐지는 공약대로 지키면 될 일이다. 만약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극에 달할 것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 눈감고 아옹하더라도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정치인들이 왜 기초자치의 정당공천제라는 꿀단지를 철옹성처럼 그토록 고집하는지를.`철강입국`이라는 기치아래 영일만 모래밭에 기적을 일궈내 포스코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킨 창업자 박태준, 그의 뒤에는 “박태준을 건드리면 누구든지 가만히 안 두겠다”는 종이 마패와 함께 인사 및 경영에 대한 전권을 박태준에게 준 박정희가 있었다. 이들의 절대적 신뢰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영일만 신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신뢰가 서야 갈등이 사라지고 나라가 바로 선다.

2014-01-24

존경하는 달, 12월

▲ 하재영시인 12월도 아니 올해도 저물어간다. 인디언 호피족은 12월을 `존경하는 달`이라 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내가 하는 일에 진정 충실했는지, 남을 많이 존경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사실 이름 앞에 `시인`이란 직함을 걸고 종종 글을 쓰면서 시인답게 깔끔한 문장에다가 절묘한 시적 언어를 조합해 글을 썼는지 반성할 때가 있다. 글이라는 것이 자동카메라로 사진 찍듯이 셔터만 누르면 그냥 써지는 게 아님을 백 번 천 번 깨달을 때가 있다. 더욱이 `시인`이란 명함을 내 놓을 땐 시(詩) 고료로 커피 몇 잔 마시기도 힘든 세상에 스스로 바보같은 사람임을 인정해 달라고 상대에게 확인받는 느낌이라 쌉싸래하다. 그래도 내 직장이 있고 그곳에서 나오는 월급이 있기에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더욱이 내가 머물고 있는 직장이 교육현장이다 보니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가르치려했지만 되돌아보면 부족하고 부끄럽다. 남을 가르치는 일은 어렵지만 그만큼 보람찬 일이다. 맹자님 말씀에 `군자삼락(君子三)`이란 것이 있다. 맹자(孟子) `진심편(盡心篇)`에서 양친이 살아 계시고 형제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고 해 훌륭한 인재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군자삼락의 하나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사실 요즘 가르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예전과 달리 다양한 직업이 있는 만큼 배우는 학생들도 다양한 꿈을 갖고 있고 그 실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교단 현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모습은 산만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학생들이 많다.며칠 전이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 서성인다. 문을 열고 보니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데 선생님이 생각나서 찾아왔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말썽을 많이 피우던 제자였다. 너무 의젓한 모습으로 사람이 바뀌어 있었다. 사람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임을 다시 깨닫게 해 주는 만남이었다. 그런 일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며 종종 겪게 된다.“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성공하면 선생님 찾을 필요 없다. 대신 힘들 땐 선생님을 찾아오렴. 소주 한잔 나누며 위로의 말을 해 줄 수 있다.” 예전에 제자들과 헤어지며 했던 말이다. 어떤 면에서 돈을 벌기 위한 한 방법으로 교직생활을 하지만 그것은 시를 쓰는 일 이상으로 보람된 일이고, 감사할 일이며, 미래의 인물들을 만나는 특별한 혜택이라 고마울 뿐이다.얼마 전 지역 문학단체의 봉사자로서 중견 소설가를 초빙해 강의를 부탁했었다. 오래 전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사표를 낸 전업 작가였다.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구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현재 중견소설가로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냥 있으면 지금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경력이 됐을 텐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삶은 한 번 있는 생이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일은 축복일 거예요. 작지만 운명적인 이야기 집(소설)을 짓는 일은 행복을 만드는 일입니다.”존경하는 달이라 인디언 호피족이 이야기했던 12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소설뿐이겠는가. 인간살이가 다 운명적인 만남의 씨줄과 날줄로 얽히는 것 아닌가. 두 번 살 수 없는 삶의 한 선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미치는 일은 고돼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그것이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 되는 것 아닐까. 우리 사회는 지금 존경받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당리당략과 이해타산에 집단적 행동을 요구하게 만드는, 그러면서 상대편은 무조건 타도의 대상으로 몰고가는 불안정한 사회가 되고 있다.내가 당신을 존경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은 당신의 요구대로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그냥 신뢰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2013-12-20

예술작품의 가치척도와 효율성

▲ 하재영 시인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낭보가 전해졌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3~2014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 디비전A(1부리그)에서 이상화 선수가 일곱 차례 1위를 하였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돔 스포르토바 빙상장에서 열린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부상을 딛고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이다.야구,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의 이런 종목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으로 금, 은, 동의 순위를 정해 실력을 인정하지만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은 그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이따금 언론에 소개되는 고가의 전위적 예술품을 접할 때 특히 그렇다.데미안 허스트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의 이름과 작품은 많은 사람의 관심 밖에 있지만 언론을 통해 종종 소개되고 거론된다. 작품의 오브제를 실제 유골을 사용하였고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8천601개 붙였다. 그 중 큰 것은 50캐럿 이상이나 된다. 죽은 자와 산자의 허영심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이다. 그런데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면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게 있는가보다 한다. 하지만 값으로 이야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당시 그 작품을 만드는데 무려 220억원의 돈이 들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통해 맘이 편안하고 위안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혐오스럽고, 때론 섬뜩할 정도다. 이 작품이 얼마에 팔렸냐하면 940억원에 팔린 것이다. 분명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했기에 그런 값이 나온 것이다. 그것도 6년 전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쓰레기 같은 작품이라며 폐기처분해야한다고 주장했다.그런 예는 동서고금에서 숱하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때 찾아가는 유명한 건축물 에펠탑에 얽힌 이야기도 그렇다. 1889년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과 다음해 치를 세계박람회 준비로 구스타프 에펠의 설계에 따라 300m 높이의 철골조 탑을 짓기로 하였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소설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다며 골목으로 다녔고, 화가 드가는 에펠탑의 철거를 주장했다. 현재 에펠탑은 파리의 랜드 마크로 세계인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도대체 예술이란 것이 무엇일까? 예술 하는 사람 중에는 모파상 같은 고집도 필요할 것이다. 난 싫다. 반면에 독자 역시 그게 싫기 때문에 네 작품은 쓰레기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얼마 전 포항문예아카데미 16기 문집을 발간하고 축하하는 자리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쓴 작품이지만 아직도 부족하여 더 공부해아 할 시라 생각하는데 쓰신 분이 시를 낭송하자 다른 수강생이 눈물을 흘렸다. 교정을 보며 그 시 때문에 친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만약 그에게 조금 어려운 시였다면 그런 감동을 주었을까?일상의 사소한 글감이지만 그의 글은 그 사람에게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 시가 그에게 평생 좋은 시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품이란 것은 시대에 따라 항상 낯선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형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예술작품을 멋있게 향유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종종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데미안 허스트의`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해도 그것은 일반인의 일상에서 멀리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로 머물 뿐이다. 남과 다른 특별한 것을 중요시 하는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예술정신이라 하더라도 예술가는 소비자에게 왜 너는 내 예술을 이해하려 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없다.어떤 면에서 자기 옆의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 더 큰 예술은 끌어안고 사랑할 사람이다. 예술은 스포츠 경기처럼 수치로 일등, 이등 나누기 힘들지만 독자는 늘 자기의 안목으로 등수도 매기고, 그것을 향유한다. 그렇기에 예술의 가치척도는 소비자의 눈에 있음을 부인 못할 것이다. 그 소비자는 현재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미래에서 걸어오는 사람임을 더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3-12-13

하이쿠와 바쇼

▲ 조현명 시인바쇼(芭蕉)는 17세기 일본에서 하이쿠를 쓴 시인이다. 하이쿠는 17글자의 짧은 시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이다. 우리나라에는 `하이쿠의 시학`이란 논문집을 낸 이어령 박사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비교적 깊이 연구되고 알려져 있는 편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최근 역사 교과서 왜곡 기술문제나 독도영유권주장 등으로 한일 간의 이해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일본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문학으로부터 그들의 문화적 정신적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학 중에서도 하이쿠는 일본인이 만들고 아직도 향유하는 독특한 문학으로 일본인의 축소지향성을 그대로 드러내어주는 시가이다. 하이쿠를 말하면서 바쇼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그 이전에 언어적 유희에 머무른 수준이었다면 그가 고행과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깊은 생각 또는 깨달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점 때문이다. 바쇼로부터 하이쿠는 오늘날 세계에 일본이 자랑하는 3대 문화 유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주저 없이 소개할 만한 것은 `오쿠노호소미찌(奧の 細道)`라는 기행문이다. 바쇼는 그의 나이 46세 때 일본의 동북부지방 2천수백km를 151일간에 걸쳐 도보로 여행한다.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간략한 산문과 하이쿠를 섞어서 남긴 글이다.이 기행문을 읽다보면 하이쿠가 결코 실내나 정원에서 가만히 앉아 만들어진 시가 아님을 알게 된다. 사실 하이쿠는 여러 사람이 주고받으면서 36구 100구 심지어 1천구, 1만구까지 연이어지는 렝꾸(連句)로 였다. 첫 사람이 5-7-5조의 17자로 제1구를 지으면 둘째사람이 이 발구에 영감을 얻어 7-7조의 14자의 협구를 짓는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협구에서 영감을 얻어 17자의 3구, 연이어 14자의 4구를 지어 영감의 게임을 이어간다. 바쇼 이전에는 발구가 `렝꾸의 시작`이라는 의미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는데 이 발구가 단일구로서 독립적으로 `하이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바쇼에 의해서 제1구인 발구는 `오쿠노호소미찌`에서 단일구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중 그의 대표적이 하이쿠인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소리네`라는 구는 동북기행 중 야마가타 번의 영내에 입석사라는 산사에서 지은 시다. 뜻을 옮겨보면 `온산은 매미소리로 가득한데 그 소리가 사방의 기암 괴석 속으로 스며드는 듯하니, 한 여름의 산 속은 더욱 고요하고 유현하기만 하다`쯤이다. 즉 매미소리가 산중의 정적과 유현을 깨기는커녕 이를 더 한층 깊게 하고 있다는 뜻으로 `소리가 스며드는 바위`라는 투명한 질감과 `스며드는 매미소리`라는 부드러운 감각이 조화를 이뤄 우주의 법칙을 표현하기라도 한 듯 정제되고 고양된 환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오쿠토호소미찌`에는 50여구가 기행문과 함께 실려 있고 모두 고행으로 얻어진 값진 깨달음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여백의 미를 살려낸 절창들이다. 그중에 있는 것은 아니나 바쇼의 하이쿠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는 역시 다음의 하이쿠다.`옛 연못에 개구리 뛰어 드는 물소리`바쇼의 나이 43세 되던 해 1688년 봄에 지은 구인데, 파쇼의 문인들이 스승에게 에도의 후카가와 강변에 지어준 파초암에서 씌어졌다 전한다. 주변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는 연못이 주변에 있었다. 어느 날 바쇼가 방에 조용히 앉았는데 연못 쪽에서 퐁당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작은 개구리 한마리가 크고 넓은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정적이 깨어졌다가 다시 고요함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정경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도 하고 또 일설에 의하면 에도의 장경사에서 불정 스님과 선문답중에 만들어진 구라고도 한다. 불정 스님은 바쇼에게 좌선을 전수했다고 한다. 시각과 청각의 감각적인 이미지가 결합되고 옛과 현재 그리고 고요와 파문등 여러 세계가 만나는 깊이를 드러낸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은 `옛 연못`이 상징하는 `전통적 일본정신`을 `개구리`로 상징되는 `예술가로서의 바쇼`가 비장한 예술적 결의로 뛰어들어 그 예술을 새롭게하며 영원히 공명시킨다는 뜻을 가진다고도 했다.이 정도로는 바쇼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겠다. 깊이 이해해 보기 위해 읽어볼 책은 앞서 적은 이어령 교수의 작품과 `음유시인 바쇼의 동북일본 기행-이만희`,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유옥희`등이 있다.

2013-12-06

국밥이야기

▲ 조현명 시인으스스한 추위가 찾아오는 늦가을, 낙엽을 떨어뜨리는 찬 바람이 불면 국밥이 생각난다. 국밥에는 왠지 정겨움이 있다. 옛날 소나 돼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하는 흥겨움이 있다. 털이 숭숭 거무스럼하게 붙어있는 돼지껍질을 씹으며 희어멀건 사골육수에 고춧가루를 풀어 벌겋게된 것을 후루룩 마시면 그보다 더 든든하고 맛나는 것도 없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자 미군부대에서 버려지는 돼지 뼈를 구해 설렁탕을 만들어 먹은 것에 시작됐다. 우리의 음식이 그때 막 새로 시작된 것들이 많다. 부대찌개가 그렇고 밀면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이름이 약간 비호감인 `돼지국밥`은 이후로 도시사람들은 외면했던 음식인데, 그래도 고기 양도 많고 맛이 좋아 서민들이 즐겨찾았고 지금은 전국 어디에 가도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국밥은 돼지 사골을 고아 육수를 내고 거기에 밥을 풀고 간을 해서 먹는 음식이다.장터에 가면 꼭 있는 것,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마솥에 끓고 있는 국물과 건더기를 한 사발 받고 나면 침이 꼴깍 넘어가는 쇠고기 국밥이다. 먹고 나면 속이 뜨듯해지고 힘이나는 한국인의 최고의 밥상 `쇠고기 국밥`, 시골 장터에 많은 반찬도 있을리 없지만 필요도 없다. 그저 깍두기 몇 점이면 후루룩 꿀꺽, 입에 벌겋게 기름을 묻히며 먹는 저 깊은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 한국의 장터에만 있는 맛이다. 이 맛을 칼칼하고 달달하고 시원하다고 말해도 모자라는데, 들어간 무와 대파 소고기, 고춧가루, 갖은 양념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거기에 걸쭉한 이야기나 반주라도 섞이면 세상 시름을 잊을 법도 하다. 그런 게 우리나라의 국밥일 것인데 오랫동안 끓고 끓여서 푹 고아낸 저 육수가 든 가마솥은 몇 백 명이 와서 배불려도 끄떡없이 아직도 그득하다. 시골 인심을 닮았고 시골의 풋풋한 맛을 쇠고기 국밥은 다 가지고 있다.그와 다르게 콩나물 국밥은 재료면에서 쇠고기 돼지고기와는 거리가 먼 나물로 된 독특한 국밥이다. 해장국으로도 잘 알려진 콩나물 국밥은 내게 어릴 때 어머니의 단골 메뉴라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그 때 할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는데 할머니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숙취 해소를 위해 자주 아침마다 해장국을 끓이셨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많이 썼는데 콩나물공장이 생겨난 이후로 슈퍼에서 콩나물을 주로 구할 수 있다. 콩나물 만큼 국물을 시원하고 담백하게 만드는 재료도 다시 없을 것이다. 콩나물 국밥을 끓이기 위해서는 콩나물 다듬은 것과, 배추김치, 고춧가루, 참기름, 청양고추, 홍고추, 대파와 새우젓, 다진마늘, 멸치 다시마를 준비한다. 먼저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우려낸다. 콩나물도 삶아서 우려낸 물과 멸치국물을 뚝배기에 새우젓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다 넣은 다음 그 위에 붓고 끓인다. 새우젓은 간을 맞출 때 사용한다. 계란을 위에 얹어먹어도 좋다. 이 콩나물 국밥은 저칼로리의 웰빙 음식으로 알려져 사람들이 그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즐긴다. 특히 전주 콩나물 국밥이 유명한데 비빔밥까지 유명한 고장에 더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한번 꼭 찾아 볼만하다.국밥은 우리나라 최초 집밖에서 사먹었던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최초 음식점이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 이전에는 집 밖에서 식사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듯하다. 음식점이란 말도 없었고 주막이라 했으니 말이다. 주막의 상차림의 주된 메뉴는 술이었다. 결국 음식은 안주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주막이 밥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밥집은 대부분이 국밥집이었다. 국밥은 재료인 `소`, `돼지`, `콩나물`, `다슬기` 등에 의해 `쇠고기국밥`, `소머리국밥`, `돼지국밥`, `콩나물국밥`, `다슬기국밥` 등으로 불린다. 서민음식이며 장터에서 쉽게 나누는 음식, 잔치집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나눈 음식이 국밥이다. 손님이 갑자기 예상보다 많아져도 물만 좀 더 붓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그만이었던 융통성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국밥을 먹고 있으면 왠지 흥성거리는 잔치집이 생각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훔치는 일군들이 생각난다. 그 옛날 고향을 멀리 떠나와 주린배를 뜨듯하고 든든하게 채우고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2013-11-22

포항운하, 문화의 흐름이 물길처럼

▲ 하재영 시인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럴 것이다. 쌀밥 보리밥 먹고 김치와 고추장 먹던 입맛으로 갑자기 피자를 먹고, 스파게티를 먹으려면 적응하기까지 배탈도 여러 번 날 것이다. 으레 하던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지금까지 했던 일이 편하고 새로운 것은 낯설어 두렵기까지 할 것이다. 포항에 낯선 길이 생겼다. 낯설기에 조금 두렵고 신기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호기심을 갖고 찾아간다. 포항운하다. 운하라 하지만 어떤 면에서 있던 것을 제 형태로 되돌렸다고 볼 수 있다. 운하는 육지를 파서 인공적으로 강을 내고 배가 다닐 수 있게 한 물길이다.세계적으로 유명한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한 수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인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서쪽에서 홍해까지 갈 수 있는 물길이다. 남아프리카 희망봉 앞을 지나지 않아도 돼 아시아와 유럽의 거리를 일만 킬로미터 이상 단축시겼다.예전에 포항엔 몇 개의 섬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흔적으로 해도, 상도, 대도, 죽도, 송도 등의 이름에서 섬도(島)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나이 드신 분들은 섬들의 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그 섬에 대해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한다.수에즈 운하와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포항이란 지명에 운하를 붙이고 물길을 트면서 포항운하는 그 나름대로 운하 성격을 갖게 됐다. 포항운하는 배가 물건을 나르는 운하가 아니라 포항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운하이며, 타 지역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하는 관광용 운하다. 운하가 개통됨으로써 송도(松島)는 섬으로 자기 본성을 되찾았다고 볼 수 있다.포항운하를 개통함으로써 포항은 1,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향하는 큰 물꼬를 틀었다.1차 산업에서 1970년대 철강 중심의 2차 산업으로 발전한 포항이 상위 산업이라 할 상업, 금융업, 관광업, 운송업 등 서비스 중심의 3차 산업을 발전시키는 큰 주춧돌을 운하를 통해 놓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섬을 뭍으로 연결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듯이 또한 뭍으로 연결했던 흙을 걷어 내고 물길을 트는 데도 1천600억원이란 큰돈을 들였다. 그 모든 일들이 포항의 미래를 위해, 포항의 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추진한 일임에 틀림없다. 막힌 것을 뚫는다는 일은 지극히 당위적이며 해야할 일이다.형산강에서 동빈내항까지 1.3km의 물길은 컴퓨터로 치면 몸체인 하드웨어(hardware)라 할 수 있다. 지금의 외형적인 하드웨어는 새롭기에 한두 번 찾아갈 수는 있지만 더 이상의 발길을 붙잡아 두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결국 소프트웨어(software)를 보강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소프트웨어의 품목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문화다. 문화의 의미는 총체적으로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하는 유무형의 자산이다. 흐르는 물줄기 따라 문화가 흘러야 운하의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머무르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그 또한 민자 유치든 관의 전폭적인 지원이든 돈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전시 및 공연, 예술 등 문화 인프라를 조성해 물처럼 문화가 흐르도록 새로운 투자가 운하 옆으로 이어져야 한다.작은 갤러리에서 도서관, 카페, 극장 등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부터 공원, 미술관, 관공서 등 새로운 시설까지 포함돼야 할 것이다.결국 인간이 중심이 되는 운하가 될 때 포항운하의 생명은 살아 꿈틀댈 것이고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것이다.

2013-11-15

정부 3.0시대, 지역맞춤형 취업협력기반 마련해야

▲ 박은미 경북새일지원본부장21세기 지식정보화의 환경적 변화와 더불어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여성인력에 대한 투자와 활용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여성부와 노동부를 비롯한 각 부처에서도 여성인력개발을 위한 다양한 협력모델과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여성경제활동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여성고용률이 남성수준까지 올라가면 2030년 잠재GDP가 20%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지난 2월 OECD가 내놓은 `공공 사회복지지출 증가와 노동공급의 변화의 거시경제학적 효과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 2030년까지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수준까지 끌어올리면 잠재적 생산량이 19%가 늘어난다.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0년 48.8%에서 2005년에 50%를 겨우 넘었으나 글로벌금융위기를 맞아 2009년에 다시 49.2%로 낮아졌다. 2012년에도 49.9%를 기록하면서 위기 이전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0년 74.4%에서 2002년에 75.0%로 올랐으나 2008년에 73.5%로 낮아지더니 2010년엔 73.0%까지 추락했다. 2011년과 지난해에는 73.1%, 73.3%를 기록하면서 소폭 회복하는 모습이다. 여성과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지난해 23.4%p에 달했다.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2015년에는 0.1%의 잠재GDP가 늘어나고 2020년과 2025년에는 각각 1.6%, 7.0%가 확대될 전망이다.그러나 경북은 여성들의 취업을 위한 취업요구의 파악과 훈련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성취업기관의 협력모델 부재와 함께 다양한 교육훈련프로그램 개발이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경북내 여성인력개발센터는 여성회관에 비해 취업과 연계되는 교육훈련프로그램이 훨씬 다양하지만 사회교육프로그램도 많이 운영되고 있어서 여성회관과의 교육훈련프로그램 중복성 및 기능의 유사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는 여성취업기관 협력모델 부재와 여성교육훈련기관들의 취업지원을 위한 교육훈련프로그램들이 다양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이와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를 살펴보면 첫째, 여성들의 취업욕구에 대한 세밀한 실태 조사 및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둘째, 지역의 여성인력에 대한 수요파악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않고 있으며 셋째, 대부분의 여성취업지원기관들이 지역별 특성을 무시하고 보편적 기준에 의해 정책을 수립하여 비슷한 서비스를 중복적으로 제공하여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시장 수요에 기반을 두지 않은 교육훈련프로그램 운영으로 인해 여성 취업률이 낮으며, 여성취업기관에서 요리나 양재 등 전통적 성역할에 기반을 둔 교육훈련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 인해 여성인력을 저임금과 낮은 지위를 야기하고 있다.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북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성취업기관의 현황과 실태를 분석한 후, 우선 경북의 수요 및 지역의 특성에 적합한 여성취업기관 협력모델을 구축할 필요성가 있다. 여성취업기관 협력모델 구축을 통해 여성의 취업률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여성 일자리의 내용적 범위를 확장하고, 실질적 취업확대 하기 위해서는 협력모델 각 유형별 교육훈련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지역특성 및 인력수요에 기반한 지역단위 특성화 분야를 선정, 이를 중심으로 한 교육훈련-취업연계사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역별 교육훈련프로그램은 지역 인력수요, 교육 및 취업을 위한 연계협력기관 등 기반환경을 고려해야 한다.즉 취업 및 창업 등을 지원하는 노동청(지청), 고용지원센터, 소상공인지원센터, 상공회의소, 중소기업협의회, 각종 직능단체 등과의 연계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단위로 구성된 협의체(위원회)를 중심으로 취업 및 창업을 위한 교육훈련, 취업 및 창업 지원, 사후 성과관리 및 성과제고를 위한 컨설팅이 실시 돼야 할 것이다.

2013-11-08

명문대생 만들기

▲ 조현명 시인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키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적이라는 뼈있는 우스개 소리가 떠돈다. 이것이 옳은 이야기든 잘못된 이야기든 현재 사회상황을 반영하는 이야기로 보인다. 조부모가 상류층이 아니었으나 부모가 신분상승을 이뤄 상위계층이 된 경우에 아이가 자라서 계속 상류층으로 남을 확률은 얼마일까. 우리사회에서 한 세대에 신분상승을 이룬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검사, 변호사가 되거나 기업경영 등으로 부를 축적하고 신분상승을 이뤄 냈다 하더라도 자녀가 계속 상류층으로 남을 확률은 낮다고 본다. 영국의 경우 61%(옥스퍼드대 연구팀 발표)쯤 되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연구 결과에는 심지어 부모가 몰락해도 손자는 다시 상류층에 들어갈 확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을 `조부모 효과`라고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는 `개룡남` 즉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는 자취를 감췄다. 반면 할아버지의 세대에서는 그것이 비교적 쉽게 가능했던 것으로 말해진다. 사회가 불안정했고 성실히 노력하면 얻고 누리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할아버지의 재력`이란 말이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신분상승이 어려워졌다는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다.그러면 `엄마의 정보력`은 어떠한 세태를 반영하는가. 서울대를 나온 엄마들이 쓴 책을 읽어보면 그 엄마들도 수시로 바뀌는 입시정책과 제도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정작에 그녀들이 바뀌는 입시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정보력을 동원할 수 있었으므로 도리어 수혜자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남 엄마의 정보력`이란 책을 발간한 김씨는 “상위 1% 아이들 뒤에는 반드시 발 빠른 엄마가 있다”면서 비싼 과외와 조기 교육도 똑똑한 엄마의 정보력을 이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엄마의 정보력`은 엄마들의 모임과 다양한 입시설명회 그리고 신문이나 책자, 인터넷 등 정보 매체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자신의 아이에게 잘 맞고 잘 가르치는 학원을 찾아내고, 자신의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주고 최대한 높일 수 있는 학교를 찾아 내는 일, 그리고 개인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엄마들이 지역모임이나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유통하고 있다. 이것이 실제적인 활동으로 드러난 것이 `치맛바람`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맹모삼천(孟母三遷)으로도 설명되는 우리나라 교육열의 진원지이다.마지막으로 `아빠의 무관심`은 유머의 반전을 위해 만든 마지막 꼬리 비틀기였겠지만 절묘한데가 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4학년 정도 될 무렵 아내와 나는 자녀 교육 문제를 두고 상당히 다툰 기억이 난다. 주변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그랬단다. 대체적으로 아버지의 자녀들에 대한 관대함이 문제였다. 한때 이런 CF문구가 있었다. “공부를 못해도 좋다. 착하고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문구였다. 이런 문구에서 봐도 아버지의 자녀 교육의 입장은 관대하다. 그러므로 `엄마의 정보력`과 교육열에 반해 아빠는 언제나 방해꾼 정도로 여겨진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너무 자기주장만 한다고 아내의 반발을 사다가 점차 시간이 흘러가면서 무관심해져간다. 그리고 “나는 잘 모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로 마무리하고야 만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아빠는 처음부터 무관심해야 옳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될지 안될 지는 모르겠지만 명문대 진학에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엄마의 정보력`을 사사건건 막을 것이므로 말이다.이 세 가지의 우스개 말에다가 덧붙인 새로운 근원도 모르는 버전들이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둘째의 희생`, `아줌마의 사랑` 이런 우스개 말들인데,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의 명문대 진학에 목멘 것이 이런 우스개가 나오는 배경이라 씁쓸한 데가 있다. 그런데 `둘째의 희생`은 알겠지만 `아줌마의 사랑`은 뭘까. 알고 보니 엄마는 정보력으로 승부하는 존재일테니 자녀는 엄마의 사랑이나 관심 따위는 바라면 안된다. 즉 사랑은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에게나 받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명문대생이 된 아이는 제대로 된 인간일까, 괴물일까 잘 모르겠다.

2013-11-01

소나무, 아! 푸른 소나무

▲ 하재영 시인소나무는 푸르다. 사철 푸르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당찬 기상을 이야기할 때 소나무를 든다. 속리산 법주사 가는 길에 볼 수 있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은 600여 년의 수령(樹齡)을 가진 소나무다. 세조가 그곳을 지나다`연 걸린다`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치켜들어 예를 갖추었다고 `정이품`이란 벼슬을 내렸다.상징성이야 어떻든 사람도 오르기 힘든 벼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를 아주 귀하게 여겼다는 이야기다. 한옥 지을 때 중요 목재 또한 소나무를 사용했다.특히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선 궁궐에서 쓸 소나무를 재배했다. 여의도 면적의 8배나 되는 소광리 숲 속에는 이삼백여 년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경상북도 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180호), 문경 농암면의 반송(292호), 상주 화서면의 반송(293호),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294호) 등의 노송(松)들은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추석날 솔 향 가득한 송편도 솔잎을 사용했고, 가을이면 소나무는 송이버섯을 우리에게 줬다.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보 180호 `세한도`에 얽힌 이야기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된 지 5년 되는 해였다. 김정희는 제자 이상적에게 중국에 가면 만학집과 대운산방문고란 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었다. 책을 받았는데 황종경세문편까지 보내줬다. 귀한 책을 받은 김정희는 고마움을 편지 한 통에 담아 이상적에게 보냈다. 그게 바로 `세한도`다.“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겨울이 돼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 는 말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소나무는 굳은 절개, 푸르름, 기상. 신의를 상징하며 우리 민족의 예술 작품 곳곳에 등장했다. 십장생(十長生)에도 소나무는 빠지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이 땅의 소나무가 위태롭다.적군이 쳐들어와 포격을 가하듯 소나무를 공격하는 재선충의 활약은 곳곳의 소나무를 박멸시킬 정도로 기세등등하다. 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단풍처럼 산을 물들이고 있는 소나무 주검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제주지역은 이미 문화재 구역까지 재선충이 번져 그것을 베어내는데만 수십억원의 경비를 들여야 한다고 한다. 재선충 피해는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지금 한창 북상중이다.재선충은 지난 1988년 부산에서 발견되었다. 부산 금정구 금정동물원에 일본 원숭이를 들여오는데 재선충이 감염된 소나무로 만들어진 우리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 재선충의 피해로 대부분의 산에서 소나무를 볼 수 없게 됐다. 중국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 황산을 지키기 위해 주위 폭 4km씩 모든 소나무를 베어버리기도 했다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라는 곤충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소나무재선충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의 몸에 기생하여 다른 나무로 이동한다.이러한 피해가 확산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선충 피해 방지에 전국민이 동참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해야 한다. 아직도 국민은 재선충에 대해 잘 모른다.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으로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를 빨리 처리하고 전염시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몇 년 전 소 구제역이 발생했을 당시 살처분한 것처럼 확산 방지를 위한 발 빠른 행정력이 동원돼야 한다.삼천리강산에 소나무가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 민족의 기상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철 푸른 소나무를 더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2013-10-25

컴퓨터의 고수

▲ 조현명 시인컴퓨터 활용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거나 심각한 오류를 잘 판단하고 고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약간 존경의 뜻을 담아 `컴퓨터의 고수`, 줄여서 `고수`라고 부른다. 요즈음 업무를 대부분 컴퓨터로 하다 보니 이곳 저곳에서 이 고수들에게 문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고수들은 자신의 업무를 놓아두고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도와줘야 할 때가 많다보니 괴로움을 호소한다. 급하다고 하니까 쉽게 싫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바쁘다고 핑계를 대어도 다급하니 막무가내로 애원 반 강요 반이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문제를 다 해결해 주고 나면 “이건 왜 그렇죠”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컴퓨터에 대한 교육의 의무까지 내게 있나?`란 의문이 들 때도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상냥하게 `이건 이렇고요, 저건 저렇고요`라고 설명해줘도 그때 뿐일 경우가 많다. 결국 똑같은 상황에서 다시 부름을 받는다. 그래도 이 재주를 갖고 싶은 것은 타인의 존경과 말 할 수 없는 문제해결의 기쁨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고수`는 타인을 도와주지도 않지만 가르쳐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자꾸 도와주도록 압력을 넣고 어렵게 만들면 “이거 내가 알기위해 무척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인건데 당신도 돈, 시간 좀 들여라” 하고 매정하게 끊어버린단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겠나만 결국 `좀 아는 것이 죄`가 되는 이런 희한한 경우가 요즈음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애매하게 사역하는 경우가 되겠는데 요즈음 컴퓨터 활용능력, 이것은 기본능력이어서 어느 조직에서나 특별히 대우 해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괴로워도 상냥하게 받아주고 도와주면 물론 좋은 일로 되돌아 올테지만 그것 때문에 `잘 받아주더라`는 인상을 받고 나면 사소한 문제에도 부름을 받게 된다. 직장 상사라면 더더욱….`장자(莊子)`에 이런 글이 나온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여기저기 많이 불려다닐 것이고 영리한 사람은 앞일에 대해 이것 저것 재는 것이 많아서 생각이 많으며 근심 또한 많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같은 현상인 모양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엔 특별한 재주도 아닌 컴퓨터 활용능력 정도를 가지고 보상을 요구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간이나 노력을 무상으로 계속 타인에게 공여하기도 아까운 일이다. 게다가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반복 되는데다가 자신의 일은 놓고 사역을 해야만 하는 경우에는 매우 언짢은 일이 된다.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 표 크기를 줄이고 늘인다든지 문단모양이나 글씨모양을 바꾼다든지 페이지 번호가 잘못된다든지 하는 사소한 문제는 그래도 한 수 가르쳐주면 금방 배워서 해결되는 일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패스워드를 잊어버렸는데 컴퓨터를 못켜겠다든지 블루스크린이 계속 떠서 사용을 못하겠다는 등의 중요한 문제는 방법이 없다. 스스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에 `고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사실 이런 중대한 문제들에 대해서 개인에게 스스로 대처하라고 하는 것은 도가 넘은 일이기도 하다.이런 중대한 오류들에 대해서는 `더 높은 고수`가 필요하다며 회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수`들은 은근히 오기가 발동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내가 한 번 고쳐줘서 실력을 발휘해볼까`하는 교만도 얼굴을 들기 때문이다. 이런 교만 때문에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망할 때가 종종 있기도 하지만….이런 이야기도 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곰을 만났다. 한 사람은 재주가 많아 그 재주를 뽐냈던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별 재주가 없는 사람이었다. 재주가 없는 사람은 `이크 곰이다. 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야지….`하고 나무위에 올라 곰을 피했다. 그러나 재주 많은 사람은 `아, 내가 어떤 방법으로 저 곰을 피할까? 죽은 척 할까? 나무위로 올라갈까? 벽을 탈까?` 하며 자기 재주만 믿다가 결국 곰을 피하지 못하고 말았다. 재주 많은 사람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낫다.

2013-10-18

행동으로 일으킨 문제

▲ 정석수 신부·성요셉재활원 상임이사스티븐 코비는 `신뢰의 속도`에서 “행동으로 일으킨 문제는 말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그에 상응한 행동을 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적절한 사례는 독일에서 볼 수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는 나치정권에 협력을 한 행동에 대한 반성을 볼 수 있다. 이뿐이 아니다. 1933년 최초로 세워진 다카우 수용소는 과거의 행위에 대한 독일의 진정성을 볼 수 있다. 총 30개국 이상 20만명을 수감시켰고 그 가운데 1/3이상은 유대인이었다. 그 가운데 2만5천여명 이상을 죽였던 곳이다. 수용소에서 약간 벗어난 지역에 연이은 집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탈의실 가스실 마침내 시신을 불태운 곳이다.과거 행위에 대한 철저한 반성, 그곳은 말이 필요 없는 교육장이었다. 지금도 독일 육군사관학교생도에게는 필수코스요 어린 학생들을 끊임없이 견학하게 함으로써 나치정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있었다. 아울러 나치정권에 부역을 하였던 회사 가운데 벤츠사는 강제노동을 했음을 사죄하고 희생자 및 가족에게 2천만 마르크를 배상하였다. 폭스바겐과 알리안츠 등은 100억 마르크를 강제노동 배상기금을 조성함으로써 그 기업의 제품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은 상쇄됐다.그러나 지금 일본의 기업과 정부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 등을 세계 문화유산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독일과 독일의 기업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준 곳이며 어떤 아픔을 품고 있는지 살피지 못하는 자신의 생각에만 빠진 행위라 할 것이다. 외교부 한충희 문화외교국장은 “이웃국가 아픔이 있는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는 것은 유산 등재 원칙과 정신에 맞지 않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본 제국시대 고향의 가까운 친인척들이 이곳에서 징용생활을 하였노라고 했다. 백번 양보하여 그곳에 강제 징용 당한 이들에 대한 반성과 그들의 이름을 독일의 경우처럼 한켠에 전시할 용의는 있는지 묻고 싶다.얼마 전 메르켈 총리는 다카우를 방문하여 헌화하며 고개를 숙인 모습이 일면을 장식하였던 기사를 본적 있었다. 그곳 현장에서 일본인 방문객들이 있었다. 그들은 역사를 어떻게 배웠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떤 생각을 품고 갈지 궁금하였다. 메르켈 총리의 행위에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하여 헌화를 하고 무릎을 꿇어 사죄를 한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의 진정성이 이어짐을 본다.그러나 일본의 정치인들은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가? 코이즈미 전 수상이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말은 있었지만 그의 행위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다음 정권에서는 늘 그 정도의 언급만 있을 뿐 행위는 없었다. 일본의 정치인 가운데 독일의 빌리 브란트 같은 인물은 언제쯤 기대할 수 있을까? 에드워드 H.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진지하게 현재와 과거를 정립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행동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행동으로 일으킨 문제는 행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리더의 첫 글자는 L이다. 이를 경청(listen)으로 설명하고 있다. 지도자의 첫째 역할은 듣는 것이다. 일본의 지식인 1천300명이 “두 가지(독도와 센카쿠) 문제는 영토를 둘러싼 갈등처럼 보이지만 모두 일본의 아시아 침략이란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침략의 역사를 잊고서 그 위에 평화니 인권을 더 높이 외쳐도 그것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뉴턴은 “사람들은 벽은 많이 쌓는데 다리는 많이 놓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결하는 고리가 많이 만들어질 때 아름다운 사회, 세상이 될 것이다. 지속적으로 민간차원의 교류를 확장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스티븐 코비는 모든 차원에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한 개인적 차원의 시작과 아울러 사회적 차원 등으로 생각과 사고의 틀을 탁월하게 확장돼야 다른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발생시킨 당시의 사고 수준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2013-10-11

고장

▲ 조현명 시인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볼일이 있어 방문했다. 유선방송 건이라 필요한 부분에 대해 사무를 끝내고 샤워부스의 문이 고장난 것에 대해 문의했다. 그런데 고장 나서 혼자 고민했던 것을 이미 다른 세대에서는 사무소를 통해 쉽게 고쳤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젠 부품을 구할 수도 없어서 고치기 어렵다는 것도. 이 얼마나 식자우환인가. 무언가 안다고 할 수 있다고 혼자서 낑낑대며 고장난 것을 고쳐 나온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바보처럼 여겨졌다.이 일로 내가 잘 하는 것도 있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란 걸 알게 됐다. 더구나 정교해지고 정밀해진 구조를 가진 현대기계들은 이제 전문가가 아니면 만질 수도 없는 것이 됐다. 옛날에는 도구를 직접 손수 만들기도 하고 손수 고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가버린 것이다. 나는 컴퓨터를 혼자 고쳐보겠다고 이것저것 건드리다가 더욱 망가트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고장 나면 손수 고쳐보겠다는 이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숨어있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같은 무모한 도전으로 인해 나의 컴퓨터 실력이 한 발 두 발 나아갔던 것은 아닐까도 짐작도 해본다. 그러나 내가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그것도 오기로 달려 들어봐야 힘과 돈만 더 들이고 후회하는 일이 많을 것은 당연하다.지난 여름 어찌나 더웠던지 결국 냉장고가 고장나버렸다. 저것도 더위를 먹었거니 생각하고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해봐도 휴일이라 전화도 받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알고있는 서비스 직원에게 부탁해보았으나 아마 업계의 룰 때문에 선뜻 와주질 않고 회피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저걸 고칠 수도 없는 노릇, 다음 날을 기다렸다. 얼음이 녹아 흘러내리고 음식이 상해서 버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전문가가 오더니 냉장고 뒤편에 팬이 돌아가는 부분에 이물질을 제거하고는 정상 가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저건 나도 알았으면 할 수 있었던 일인데 안타까움이 일었다. 그래도 전문가는 전문가이다. 고장난 원인을 바로 아는 것이 그의 특별함이니 말이다.한 자동차를 끌고 수리공에게 와서 말했다. “이 차가 좌·우회전을 할 때 덜컹덜컹하며 소리가 납니다”수리공은 테스트를 해보기 위해 차를 몰아보니 회전을 할 때마다 정말 덜컹덜컹 소리가 났다. 수리공은 차를 세우고 뒷 트렁크를 열어보고는 미소를 띠었다. 금방 원인을 발견한 것이었다. 차 주인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트렁크에서 볼링공을 빼세요” 우스개이지만 우리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일 때가 많다. 전원을 연결하지 않고 작동이 안된다며 고민할 때 자동차 기어를 중립에 놓고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고민할 때라든지 가스를 잠궈놓고 가스렌지에 불이 켜지지 않는다고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가 그렇다.그러나 이런 모든 고장들은 그래도 결국은 해결할 수 있는 고장들이다. 결국은 해결하지 못하는 고장도 있다. 생명이 낡아지고 병드는 것을 고장이라고 하진 않는다. 그러나 쉽게 해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고장난 기계처럼 폐기된다. 성경에는 `겉사람(육체)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영)은 날로 새롭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미 낡거나 고장날 수 밖에 없는 육체에 관심을 갖지 말고 영원한 가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더 나아가서 고장 나거나 결국은 폐기될 기계와 인생의 수많은 시스템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더 나은 가치인 믿음과 사랑과 진리에 더 중심을 두라는 이야기이다. 병원에서 몸을 건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병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영적가치에 더 눈을 떠라`라고 외친다면 아마 바보라든가 분노를 살지도 모를 일이다. 병을 고치는데 신경쓰지 마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마음과 정신을 더 귀중히여기고 진리에 중심을 두다보면 오히려 그 몸의 고장이 스르르 고쳐지든지 아니면 그냥 문제없는 것으로 여겨지든지 하게 될 것이란 그런 뜻을 가진 말씀이다.오늘도 고장난 샤워부스에서 몸을 씻고 출근을 했다. 무너져 비스듬히 세워놓은 유리문이 오히려 정겹게 여겨졌다. 정신의 문제인듯하다. `그래도 고쳐야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반대편 문을 이용해서 닫아놓고 샤워를 했다. 몸의 때가 비누거품과 함께 씻겨나간다. 저 물에 절대로 씻겨나가지 않을 생각들 정신들 그 가치들을 생각해본다.

2013-10-04

여성의 시대

▲ 조현명 시인`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예능프로에 소개된 초등학생의 시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무너져가는 것에 대한 징표인 것 같아 왠지 씁쓸하다.농경사회, 산업사회였던 얼마 전 까지는 아버지와 남성은 권위가 있고 가부장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농경사회에서는 남성의 근력이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힘이었으니 그럴만도하다. 그것은 산업사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졌지만 숙련이라고 하는 가치에서 여성이나 청소년들도 이에 못지 않는 자질이 발견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 수많은 도시 행을 택한 소년 소녀들을 생각해보라. 방직공장이나 플라스틱공장에서 일하던 그녀들의 귀향은 금의환향은 아니어도 양손에 선물꾸러미가 들려있기도 했던 것이다. 남성보다 여성인력이 특별한 생산력을 가지게 된 것은 기계의 덕분으로 힘보다는 점차 정교한 숙련도가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었으리라. 더욱이 지식정보화사회를 넘어 후기지식정보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요즈음 아버지-남성의 입지는 더욱 좁아져가고 있다. 전화와 텔레비전에 익숙한 장점을 살려 여성과 소년들이 고소득자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들을 신지식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히려 남성사회의 비리구조와 문어발식으로 확장만 하다가 부실해진 기업들이 결국 남성위주의 가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지고 대안으로 여성가치인 공감과 투명 정직한 경영과 질서가 요구되고 있다.은퇴한 남성에게 찾아온 모습도 이와 같아서 젊었던 시절 아내와 가족에게 잘못했던 것을 노년에 부메랑으로 맞게 된 것을 종종 본다. 선장으로 외국으로만 다니다 가족들을 돌보지 못했던 K씨는 은퇴한 뒤에 가족들에게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루는 목욕탕에 같이 가자는 아내를 따라 목욕하고 나오니 아내가 사라졌다는 것. 심지어 아파트에 돌아오니 세간도 없어지고 이사를 가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시집간 딸에게 전화했더니 아버지 편은 들어주지 않고 `오죽했으면 엄마가 그랬겠느냐? `는 반응이었다. 결국 오랜 친구들의 도움으로 겨우 셋방을 얻어 근근이 생활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은퇴한 남자에게 필요한 것 다섯 가지는?` 에 대한 답은 `여자, 와이프, 처, 마누라, 안사람`이란다. 누군가 우스개로 지어냈겠지만 여운이 있는 말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질문이 더 의미심장하다. `나이 든 여자에게 필요한 다섯 가지는?`에 대한 정답은 `돈, 건강, 딸, 친구, 강아지`란다. 정답 속에 남편은 없다. `남편은 열심히 일하다가 돈만 남기고 빨리 저세상으로 가면 좋겠다`란 노골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농담이라 씁쓸하지만 그만큼 남성의 시대는 가고 여성의 시대가 왔다는 말이다.성경에 보면 예레미야의 예언에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는 구절이 있다. 이제껏 남성이 포용하고 여성을 안아주던 시대였다면 새로운 시대는 여성이 남성을 포용하고 안아주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배타적 지배와 독점적 소유와 약육강식의 공격 등으로 상징되었던 강한 남성의 시대가 가고, 상호 이해와 공동체적 협력을 모색하지 않으면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시대 주어진 예언의 말씀이다.사실로 여성이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여학생들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 성적도 남학생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여성이 경제력을 가지고 구매 결정의 80%를 차지하는 의사결정권자가 되었다. 그래서 여성의 비중을 생각지 않고는 비즈니스를 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약진하는 여성을 `알파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제 시대의 트렌드는 야망이 아니라 도덕이 중요해졌으며 기능보다 감성적 하이터치 서비스가 눈길을 끈다. 여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그러나 남성의 시대에도 여성은 그 상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듯이 여성의 시대에 남성 역시 그 상대적 위치에서 중요하다. 그러므로 여성의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는 남성우월, 여성우월의 차원을 넘어선 이야기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여성성을 더욱 필요로 하는데 곳곳에 진통이 있다. 그것이 삼식이 종간나세끼나 다른 농담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여성들이 대를이어 지도자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2013-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