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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이야기

등록일 2013-08-09 00:01 게재일 2013-08-0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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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명 시인

`보름달 같은 수박 한 통/ 혼자서는 먹을 수 없지/ 다 함께 먹어야지 나눠서 먹어야지`

안도현 시인의 `수박 한 통`이라는 시다. 안 시인의 시에는 의외로 수박에 대한 표현이 많이 나온다. 아버지가 수박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리라. `축구공`이란 시에 보면 `아버지는 수박을 키웠고 나는 축구공을 뻥뻥 찼다 수박을 뻥뻥 찼다` 란 구절이 나온다. 아예 `수박`이란 제목을 단 동시도 있고 `중요한 곳`이란 시에는 `마음에 수박씨 박히듯`이란 아름다운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붉은 달`이란 시에서는 그 붉은 속을 빗대어 수박이 붉은 달로 불리기도 한다. 수박이 온통 시인의 삶에 오롯이 들어와서 넝쿨을 뻗어 이곳 저곳 열매를 맺어놓고 있다.

여름의 대표적인 과일 수박은 원산지가 남아프리카로 유럽을 거쳐 실크로드를 타고 송나라와 고려에 전해졌다고 한다. `수박 한통 값이 쌀 다섯 말`이라고 하면 엄청 비싼데 이건 요즘 시세가 아니라 조선 세종23년(1441년)때의 가격이다. 당시의 수박은 어찌나 귀한지 세종실록 23년 11월15일자 기록을 보면 수박을 훔쳐 먹다 곤장을 맞고 귀향을 가거나 심지어 수박 때문에 목숨을 잃은 정승에 대한 기록도 나올 정도다. 금덩이처럼 귀한 수박이어서 세종임금 마저도 수박도둑에게 만큼은 참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세종5년 주방에서 일하던 한문직이라는 내시가 수박을 훔쳐 먹다가 들켜 곤장 백대를 맞고 귀향 갔다고 했고 또 세종12년에도 궁중 물품을 공급하는 내시 관리가 수박을 훔쳐 먹다가 곤장80대를 맞았다는 기록이 있다.

베트남에는 우리나라의 흥부전과 비슷한 수박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소년이 8살이 되던 해 수도에 가서 왕을 만나게 된다. 소년의 총명함을 본 왕은 이 소년을 수양아들로 삼고 이름을 마이 안 띠엠이라 지어준다. 안 띠엠은 성장하면서 힘이 세고 일을 매우 열심히 하자 흥 왕은 안 띠엠을 결혼을 시키고 숲을 개간하게 하여 나무를 심게 한다. 얼마 되지 않아 안 띠엠은 집을 짓고 많은 벼를 수확하여 풍족하게 되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시기하여 왕에게 말하기를 “안띠엠이 왕을 무시한다. 그의 집과 재산이 임금의 은총 때문인데 자신의 재능에 의한 것이라 떠들고 다닌다” 라고 했다. 왕은 이 말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몹시 화를 내고 안 띠엠의 가족을 동해의 무인도에 귀양을 보내라고 명령하게 된다. 그리하여 안 띠엠의 가족은 바다를 떠다니다가 무인도에 다다른다. 안 띠엠은 그곳에서 뾰족한 나무를 발견하여 땅을 파 들어가서 마실 물을 발견한다. 이어 자식들과 함께 나뭇가지를 꺾어 비를 피할 집을 만들고 아내는 해변에 나가 게를 잡아 전 가족을 먹였다. 그러던 어느날 안 띠엠은 머리 위에 날아가는 하얀 새를 발견하는데 이 새가 하얀 모래 변에 까만 씨앗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는 이 씨앗을 가져와서 심어 보았다. 몇 달 후 이 씨앗은 모래 위에 많은 넝쿨로 자라나게 되고 이 넝쿨엔 사람 머리만큼 크고 푸른 과일이 달렸다. 안 띠엠은 이 과일을 따서 집으로 가져와 갈라보니 과일 속이 붉고 달았으며 수분이 많고 맛이 있었다. 안 띠엠은 이 과일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러군데 심었다. 과일이 많아지자 안 띠엠은 작은 상자에 글자를 새기고 과일을 담아 바다로 띄어 보낸다. 이 상자는 여러 장소로 떠다니게 되고 배들이 오가며 이 상자를 발견하고 과일을 먹어 보니 달고 맛이 있었다. 점차 이 상자가 어느 섬에서 온 것이라 알려지게 되자 상선들은 옷감, 쌀 등 많은 물건들을 들고 와서 이 과일과 교환하고 이 과일들을 다른 곳에 팔게 되었다. 이것이 수박 즉 붉은 수박이었던 것. 붉은 수박의 명성은 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왕은 안 띠엠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 띠엠을 다시 육지로 불렀다. 왕은 안 띠엠의 가족에게 큰 포상을 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이 과일을 심는 방법을 가르치도록 한다. 이후로 베트남에 수박이 심겨지고 농부들이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하게 되었다.

안도현의 수박이든 세종대왕의 수박이든 마이 안 띠엠의 수박이든 내가 지금 앞에 놓고 한입 베어 무는 수박이 제일 맛있고 시원하다. 그래도 이런 수박이야기를 알고 있으면 더욱 맛이 난다. 두런두런 같이 먹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라도 하면 잠시 여름 더위를 잊고 시원하게 지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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