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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이야기

등록일 2013-11-22 02:01 게재일 2013-11-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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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명 시인

으스스한 추위가 찾아오는 늦가을, 낙엽을 떨어뜨리는 찬 바람이 불면 국밥이 생각난다. 국밥에는 왠지 정겨움이 있다. 옛날 소나 돼지를 잡아 동네 잔치를 하는 흥겨움이 있다. 털이 숭숭 거무스럼하게 붙어있는 돼지껍질을 씹으며 희어멀건 사골육수에 고춧가루를 풀어 벌겋게된 것을 후루룩 마시면 그보다 더 든든하고 맛나는 것도 없다. 6·25 당시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부족하자 미군부대에서 버려지는 돼지 뼈를 구해 설렁탕을 만들어 먹은 것에 시작됐다. 우리의 음식이 그때 막 새로 시작된 것들이 많다. 부대찌개가 그렇고 밀면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이름이 약간 비호감인 `돼지국밥`은 이후로 도시사람들은 외면했던 음식인데, 그래도 고기 양도 많고 맛이 좋아 서민들이 즐겨찾았고 지금은 전국 어디에 가도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국밥은 돼지 사골을 고아 육수를 내고 거기에 밥을 풀고 간을 해서 먹는 음식이다.

장터에 가면 꼭 있는 것,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마솥에 끓고 있는 국물과 건더기를 한 사발 받고 나면 침이 꼴깍 넘어가는 쇠고기 국밥이다. 먹고 나면 속이 뜨듯해지고 힘이나는 한국인의 최고의 밥상 `쇠고기 국밥`, 시골 장터에 많은 반찬도 있을리 없지만 필요도 없다. 그저 깍두기 몇 점이면 후루룩 꿀꺽, 입에 벌겋게 기름을 묻히며 먹는 저 깊은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 한국의 장터에만 있는 맛이다. 이 맛을 칼칼하고 달달하고 시원하다고 말해도 모자라는데, 들어간 무와 대파 소고기, 고춧가루, 갖은 양념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거기에 걸쭉한 이야기나 반주라도 섞이면 세상 시름을 잊을 법도 하다. 그런 게 우리나라의 국밥일 것인데 오랫동안 끓고 끓여서 푹 고아낸 저 육수가 든 가마솥은 몇 백 명이 와서 배불려도 끄떡없이 아직도 그득하다. 시골 인심을 닮았고 시골의 풋풋한 맛을 쇠고기 국밥은 다 가지고 있다.

그와 다르게 콩나물 국밥은 재료면에서 쇠고기 돼지고기와는 거리가 먼 나물로 된 독특한 국밥이다. 해장국으로도 잘 알려진 콩나물 국밥은 내게 어릴 때 어머니의 단골 메뉴라서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그 때 할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는데 할머니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숙취 해소를 위해 자주 아침마다 해장국을 끓이셨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집에서 기른 콩나물을 많이 썼는데 콩나물공장이 생겨난 이후로 슈퍼에서 콩나물을 주로 구할 수 있다. 콩나물 만큼 국물을 시원하고 담백하게 만드는 재료도 다시 없을 것이다. 콩나물 국밥을 끓이기 위해서는 콩나물 다듬은 것과, 배추김치, 고춧가루, 참기름, 청양고추, 홍고추, 대파와 새우젓, 다진마늘, 멸치 다시마를 준비한다. 먼저 다시마와 멸치로 국물을 우려낸다. 콩나물도 삶아서 우려낸 물과 멸치국물을 뚝배기에 새우젓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다 넣은 다음 그 위에 붓고 끓인다. 새우젓은 간을 맞출 때 사용한다. 계란을 위에 얹어먹어도 좋다. 이 콩나물 국밥은 저칼로리의 웰빙 음식으로 알려져 사람들이 그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즐긴다. 특히 전주 콩나물 국밥이 유명한데 비빔밥까지 유명한 고장에 더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한번 꼭 찾아 볼만하다.

국밥은 우리나라 최초 집밖에서 사먹었던 음식이다. 우리나라의 최초 음식점이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 이전에는 집 밖에서 식사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듯하다. 음식점이란 말도 없었고 주막이라 했으니 말이다. 주막의 상차림의 주된 메뉴는 술이었다. 결국 음식은 안주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주막이 밥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밥집은 대부분이 국밥집이었다. 국밥은 재료인 `소`, `돼지`, `콩나물`, `다슬기` 등에 의해 `쇠고기국밥`, `소머리국밥`, `돼지국밥`, `콩나물국밥`, `다슬기국밥` 등으로 불린다. 서민음식이며 장터에서 쉽게 나누는 음식, 잔치집에서 찾아온 손님들과 나눈 음식이 국밥이다. 손님이 갑자기 예상보다 많아져도 물만 좀 더 붓고 소금으로 간을 맞추면 그만이었던 융통성있는 음식이었다. 그래서 국밥을 먹고 있으면 왠지 흥성거리는 잔치집이 생각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입을 훔치는 일군들이 생각난다. 그 옛날 고향을 멀리 떠나와 주린배를 뜨듯하고 든든하게 채우고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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