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넓은 자락이 품은 영·호남 화합의 길목
이번 등산은 전북의 남원 지리산 산자락 중간에 위치한 화개재와 삼도봉이다. 올해 초부터 이곳에 등산하기로 계획했건만 여름을 지나고 가을이 익는 계절에 이제야 등산하게 됐다.
여기에 등산하고 싶은 이유로는 필자가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장으로 있던 때에 대구에서 전북, 전남 지역을 자주 오가면서 국민통합 차원에서 상징성이 있는 이름난 화개재나 전북, 전남과 경남의 삼도 경계에 있는 삼도봉에 오르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또 하나 이유를 친다면 등산 다니던 초기 시절인 2012년 10월말 경, 남원 지리산 자락으로 등산 와서 산자락 아래 소재한 피아골을 찾아보고서다.
울긋불긋 단풍들·울창한 숲·계곡물소리에 자연의 아름다움 `물씬`
뱀사골 등 계곡마다 전설 제각각… 이색 풍경에 사철등산으로 인기
붉게 물든 낙엽이 일품인 절경을 보고서 가을에 다시한번 찾고 싶었는데, 그 당시 등산 와서 `지리산 피아골에 단풍들 때`라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깊이 묻어두고 있다.
“가을 산을 오르며 이토록 가슴 벅참은 보이는 풍경마다 빼어난 단풍으로 인해서다. 피밭골의 산이 붉게 물드니 물빛도, 사람의 마음에도 온통 단풍 빛이다. /삼홍소에 서면 수려한 단풍세상의 별천지에 할 말을 잊는다. 저렇게 붉은 정열로 한 세상 살다 간다면 후회 없으리! 지리산 피아골에 단풍들 때처럼”(필자의 자작시 `지리산 피아골 단풍들 때`전문)
지금도 그 때 쓴 글과 사진을 끄집어내 읽어보면 지리산 단풍이 온통 마음속을 환하게 밝히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런 연유로 해서 화림산악회와 함께 뱀사골을 찾았다. 대구를 출발한 차는 가는 도중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한번 쉬었다가 가을이 익는 지리산 자락으로 향해 뱀사골 입구에 도착했다.
가을날, 지리산 자락을 찾아 단풍놀이하려는 관광객이나 등산인들은 대체로 천왕봉·노고단·바래봉 등과 피아골·뱀사골 등 저지대를 찾는데, 우리 일행은 등산이 목적이니까 뱀사골로 해서 화개재에 이르는 코스다.
뱀사골 코스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계곡에 소와 담이 군데군데 있어 명승을 자랑하고 있는 곳으로 사철등산으로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장소다.
이번 우리 일행들의 등산 일정은 반선(뱀사골)에서 출발해 화개재까지 9.2km에 이르지만, 필자는 삼도봉까지 올라 계곡산행과 능선산행을 동시에 즐길 계획이다.
반선주차장에 출발해 초입에 있는 마을로 가는 길은 우거진 숲의 오솔길이다. 하지만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어 등산의 맛이 나지 않아 아쉽기도 하지만 아직 본격 산행이 아니라서 한달만에 만난 고향 출신의 지인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안부도 묻는 등 아기자기한 면이 있어 좋다.
뱀사골 대피소로 오르는 와운교 다리를 지나니 계곡길이 이어진다. 한여름에는 이 계곡에 피서객들로 인간사태가 나지만 지금은 등산객들의 걸음이 이어지니 조금은 한적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한여름 피서명소로 소문이 났지만 가을철 단풍도 아름답고, 또한 겨울철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가족단위로 많이 찾는 곳이다. 그만큼 풍경이 아름답다는 증거다.
우거진 나무숲 속의 등산로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풍경들, 나뭇가지를 타고 비쳐드는 햇살이랑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곡물소리는 자연이 만들어낸 화신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일상에서는 맛보지 못할 이런 맛에 자연을 찾아 등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금 더 올라가니 폭 2m, 길이 약 10m의 쇠다리가 반야교이다. 이 다리를 건너가니 탁용소가 나타났다. 탁용소는 뱀이 목욕한 뒤에 허물을 벗고 용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인데, 이곳에는 뱀소, 병소, 병풍소에서 흘러온 물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탁용소에서 주변을 살펴보면서 잠시 쉬다가 우리 일행들은 다시 제승대로 향한다. 개울가에 천장이 아치형으로 된 명선교와 옥류교를 지나니 제승대가 있다.
제승대에 관해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1천300여년 전 송림사의 고승인 정진 스님이 불자의 애환과 시름을 대신하여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고 하여 제승대라 불려진다고 한다.
이 길은 화개재와 삼도봉으로 가는 계곡이어서 물빛이 좋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마다 붙여진 이름에 전설이 깃들어져 있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지명이나 바위 이름과 곁들어 있는 전설을 이야기하면서 도란도란 걷는 길이 즐겁기도 하다.
아직은 뱀사골 계곡이 단풍철이 아니라 온갖 나무들이 붉은 옷으로 갈아입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연상태에서 풍겨나는 모습들은 이곳이 산행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많이 찾는 코스라는 것을 입증해준다.
제승대를 지나 등산길이 비슷한 계곡 윗길을 1.5km 걸어가 간장소에 도착했다. 간장소라니 된장, 간장의 그 간장소가 아닌가하고 일행 중 누가 농담을 했는데 알아보니 그 말이 맞다.
전라도 바닷가의 소금장수가 화재장을 가기 위해 화개재를 오르내리면서 뱀사골 계곡을 지나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물이 간장 색깔로 변했다는 전설인데, 그처럼 이곳 계곡은 저마다 전설을 담은 채로 바위나 계곡의 빼어남이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길의 특색이 경사 급한 곳도 없는 곳이라 등반로라기 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길을 올라간다. 4.5km나 되는 길을 걸어 능선을 오르니 숲 속에 아담하게 펼쳐진 뱀사골 산장이 나타난다.
원래 `반야봉 산장`이 이름인 뱀사골 산장은 1978년에 지어졌으나 지난 1985년 다시 보수하고 개축하여 현재는 8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건물이 됐다.
이곳에서 화개재에서 내려오거나 계곡을 통해 화개재로 오르는 등산객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뱀사골 코스는 이곳을 경유해 노고단~화엄사를 연결하는 1박 2일 일정의 산행 팀과 또 지리산 종주산행을 하는 산악인들이 이 산장을 찾아 숙박을 하는 곳이다.
산장을 지나 200m 쯤 오르니 민둥고개가 나타난다. 해발 1천316m 높이의 화재재인데, 반선 출발지에서 4시간이 걸려 이 곳에 도착했다.
화개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35km, 노고단에서 동쪽으로 10km의 거리에 있고, 동서로 각 2km의 거리에 있는 토끼봉과 삼도봉의 비슷한 높이의 두 봉우리 사이에 있는 재다.
행정구역으로 치자면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이자 하동군 화개면과 남원군 산내면의 경계지점에 있다. 옛사람들은 화개장터에서 등짐을 메거나 지게를 지고 연동골을 따라 이 고개로 올라 북쪽의 뱀사골을 따라 남원으로 넘나들었던 고개다.
필자는 영호남지역을 이어주는 화개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지나온 뱀사골 계곡과 저 너머 보이는 지리산 자락의 가을 풍경을 가슴에 안으며 생각에 젖는다.
“뱀이 죽은 골짜기여서/ 이름 붙은 뱀사골 계곡은/ 등산하기가 딱 좋다./ 오죽 유명한 곳이면/ 옛날 이곳에서 수도하던/ 스님들의 반은 신선이 됐다 해서/ 마을 이름을 `반선`이라 했을까.// 12km 구비 길을 돌아/ 어느덧 오른 고개가/ 이곳 정상인 화개재다./ 소금가마니를 등에 지거나/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서/ 화개장터로 가던 옛사람들이/ 여기서 쉬던 모습을 그려본다”(자작시 `남원 뱀사골`전문)
일행들은 화개재에서 등산을 시작했던 반선 주차장으로 원점산행을 하지만 필자는 화개재에서 800m 거리에 있는 삼도봉으로 오르기로 했다. 그것은 삼도봉이 갖는 영호남 화합의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삼도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바로 하산을 시작해 계곡을 타고 내려가 일행들과 만나 반선주차장까지 동행을 했다.
등산을 마치고 동향인끼리 모인 화림산악회에서는 뒤풀이로 음식점에 모여 간단하게 화합행사를 했다. 필자 개인적으로 이번에 뱀사골로 산행을 나선 것은 영호남 화합차원에서 그 화개재와 삼도봉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고, 마음속에서 지역화합을 염원하고 있어서다.
뱀사골 계곡엔 아직 단풍철로서는 이르지만 조금 있으면 이 일대 계곡에 울긋불긋 단풍이 들 테고, 그때쯤이면 행락객과 등산객들이 많이 찾아들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을 것이다. 그 때엔 화개재나 삼도봉이 갖는 진정한 화합의 정신까지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