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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리턴과 갑의 횡포

등록일 2014-12-16 02:01 게재일 2014-12-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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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대한항공의 땅콩리턴으로 인해 온 국가가 시끄럽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어 한국의 이미지 추락이 우려된다.

보도에 의하면 대한항공 3세 경영인 조현아 부사장이 견과류인 땅콩(실제로는 마카다미아라는 견과)을 서브하는 방식이 틀렸다는 이유로 고성을 지르고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을 꿇리고 폭언과 폭행을 한 후 `램프 리턴`(비행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이라는 불법적인 일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등석에 탔던 한 승객은 조 부사장이 무릎을 꿇은 채 서비스매뉴얼을 찾는 승무원을 일으켜 세워 한 손으로 승무원의 어깨를 탑승구 벽까지 약 3m를 밀친후 승무원에게 파일을 던져 파일이 승무원의 가슴에 맞고 떨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무장이 달려와 태블릿 PC에 저장된 매뉴얼을 보여주며 최근 수정된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지만 규정에 맞게 이뤄졌다고 설명했는데도 조 전 부사장은 “야, 너 어디다 대고 말대꾸야. 죄송하다고 해”라며 삿대질을 하고 매뉴얼 파일철로 사무장의 손등을 수차례 찔러 상처가 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 부사장은 기장에게 램프 리턴을 명령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보면서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것은 결국 회사 경영에 있어서 충분한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단지 오너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회사의 높은 자리에 앉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회사를 개인의 소유물로 그리고 직원을 종으로 생각하는 봉건적인 사고로 기업을 경영하는 문제, 그리고 소위 갑의 위치에서 권위적 횡포를 부리는 모습은 이젠 2세, 3세 경영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나쁜 모습이다.

필자는 이번 땅콩 리턴 상황을 보면서 작년에 독일 체류 중 목격했던 한 독일 총장의 모습이 생각났다. 특히 필자를 공동연구를 위해 초청해준 드레스덴공대 한스뮐러 스타인하겐 총장이 기억난다. 스타인하겐 총장은 금년 봄 박근혜 대통령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한 총장이기도 하다.

스타인하겐 총장은 갑의 입장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 겸손과 소탈함의 전형적인 모습이었고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모습을 보여 줬다. 평소 교수, 직원들과의 대화도 아무런 권위의식 없이 스스럼 없이 하고, 뷔페로 진행되는 회식에서도 자기접시를 스스로 들고 식사를 하고 반납하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어느날 세미나에서 약간 늦은 총장은 회의 테이블 구석에 앉았다. 한국대학 같으면 가운데 총장자리를 비워놓는 게 상례이지만 여기선 그렇지 않았다. 먼저 온 순서대로 앉고 총장은 빈자리에 가서 앉아 세미나 연사의 강연을 경청했다. 총장이 주재한 세미나였지만 늦게 왔기에 구석에 앉는 걸 당연히 여기는 분위기였다. 한국적 사고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참으로 신기한 풍경이었다.

또한 함께 출장을 갔던 경험도 잊지 못한다.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 먼저 올라탄 스타인하겐 총장은 예상을 뒤집고 비즈니스석이 아닌 일반석인 이코노미석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대학의 보직자만 돼도 비즈니스석을 고집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런던에 내린 건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하는 수 없이 호텔까지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택시에 자기짐을 손수 집어넣고 세 명이 타는데도 자리배치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한 후 회의 장소로 가는길에 당연히 대학이 예약한 임대택시가 올줄 기대했던 나는 지하철로 향하는 총장을 어이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가지면 그걸 과시하려는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번 땅콩리턴 사건에서 보듯이 이제 우리 사회는 이런 허황되고 불필요한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장관, 국회의원, 총장…. 이런 공직자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봉사하는 자리이다. 또한 기업도 개인의 것일 수 없다. 주주들의 기업이며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기업이다. 그 이윤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모든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지배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번 땅콩리턴 사건이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권위주의적 봉건주의적 사고에 큰 경종을 울리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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