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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인가?

등록일 2021-12-30 19:59 게재일 2021-12-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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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블라인드 채용’이란 말이 있다.

눈을 가린다는 영어 블라인드(Blind)와 채용을 합친 개념이다 채용할 때 학력, 경력 등의 흔히 스펙이라고 불리는 요소를 보지 않고 그 사람의 인성, 업무와의 적합성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학력이 철저히 배제된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했으며, 소위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을 위한 블라인드 채용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엄격히 말하면, 문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성별, 학벌, 출신지역 등에 대한 의무할당제를 포함한 채용이므로 블라인드 채용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에는 스펙을 어필하려는 편법이 쓰일 수밖에 없다. 가령 이메일 주소 기재란에 대학 이름이 들어가는 도메인을 쓰면 대학을 표시할 수 있다. 동아리 활동 기재란에 학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동아리를 적거나 주소지를 학교 기숙사 혹은 학교 인근의 주소지로 적는 방법 등이다. 그래서 2017년 하반기부터 채용을 진행하는 다수의 공공 기관에서는 해당 행위를 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응시자는 어떻게 자기를 나타낼 수 있는지 방향을 잡기 힘들다. 블라인드 채용에 반대하는 심사자는 거꾸로 면접 대상자의 스펙을 유추해 보려고 애쓰는 현상도 나타난다.

인성과 업무적합성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완벽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짧은 시간에 오판을 하게 되면 오히려 그것이 공정을 해치는 것일 것이다.

학력과 학점, 경력 모두 한 사람의 노력의 결과물이며 업무적합성에 대한 충분한 보조 자료인데 수십 년간의 노력을 모두 무시하고 짧은 시간에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인지 의심스럽다.

학력과 경력이 자기가 쌓아올린 그간의 노력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인데, 이를 적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되며 그것은 공정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인사담당 임원들은 블라인드 채용에 찬성하지 않으며 공정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과학계에는 단시간의 면접으로는 업무적합도 판단이 힘들다고 보고 정부에 여러 차례 건의했고, 일부 의원들이 과학계 블라인드 채용을 완화하는 법안도 발의했었지만 정치적 논리에 밀렸다.

해외 주요 국가 가운데 공공 부문 채용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전공·학점이 드러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한 사례는 없다. 공정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필자는 그러한 사례를 본 적이 없다. 회사에 입사지원을 할 때 이력서에는 반드시 학력과 경력을 쓰게 되어 있다.

미국에도 블라인드 채용(Blind Hiring)이란 제도가 있다. 이는 지원자의 이름이나 성별, 나이 등을 나타내지 못하게 하여 남녀 차별과 연령차별을 막자는 의도이다.

지원자는 자기 능력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과거의 노력을 제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지금 정부의 블라인드 채용은 공정이기 보다는 노력한 자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일 뿐이다.

블라인드 채용이 공정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재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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