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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벽두에 영화를 생각하다!

등록일 2015-01-02 02:01 게재일 2015-01-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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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경북대 교수·인문대학
천체물리학에 기초한 영화 `인터스텔라`와 저예산 독립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가 화제다. 전자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로, 후자는 다양성영화 부문에서 `비긴 어게인`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인터스텔라`가 흥행몰이에 성공했을까. 다른 한편으로 어째서 연세 지긋한 노인들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상대성이론, 블랙홀, 웜홀, 5차원 공간 같은 물리학 용어가 난무하는 영화에 관객들이 몰린 까닭은 여러 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한국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충성도와 과학적 소견이 높아 흥행한 것 같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지구를 떠나고 싶은 한국인들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시공간을 살고 있는 21세기 초 한국인들의 현실 불만족과 탈출심리를 자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송파구 세 모녀 자살사건, 4월16일 `세월호 대참사`와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연말정국을 강타한 `십상시`사건 등을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은 자명해진다. 출구가 꽉 막힌 세상에 시원한 활로를 열어주는 청량제 같은 영화가 `인터스텔라`아닌가. 지구파멸과 인류멸망을 구원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 인간의 이야기. 그것에 깔린 부성애와 남녀의 사랑! 무엇이 빠져 있는가?! 저 멀리서 희망의 등불이 빛나고 있지 아니한가!

아버지보다 훨씬 늙어버린 딸 머피가 임종의 자리에서 환하게 아버지를 보내주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에드먼드 항성에서 후퍼를 기다리고 있는 아멜리아에게 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날이 쇠약해지는 아버지의 자리와 권위가 영화에서는 막강하다. 아버지 역시 부성애로 똘똘 뭉쳐 있다. 이런 기특한 장면이 `인터스텔라`로 관객을 인입하는 효과적인 기제다.

`님아!`는 70년 넘게 함께 살고 있는 횡성의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기록영화다. `워낭소리`(2008)의 흥행기록을 가뿐하게 넘어서 500만 관객을 향해 순항중이다. 요즘 남녀의 세태라면 100일 만남을 넘기기도 힘든데, 3만일 가까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의 이야기는 얼마나 경이로운가. 영화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삶의 양상은 대단하지도 거창하지도 않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삶의 냄새가 은은히 풍겨 나올 따름이다.

하지만 `님아!`에는 치명적인 매력이 담겨 있다. 그것은 부부의 상호존중과 이해와 배려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그분들은 서로 말을 높인다. 자신이 성치 않으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천진난만한 동심을 오롯하게 간직하고 있다. 할머니 생일날 말다툼을 벌이는 맏딸과 장남을 보면서 그렁그렁한 눈물바람을 보이는 노인 내외의 모습은 이 나라 이 시대 어르신들의 모습을 꼭 빼닮았다.

처절한 가난의 굴레도 있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아니하고 주어진 길을 묵묵하고 꿋꿋하게 살아온 노인들의 의지와 지혜가 대단하다. 먼저 가버린 육남매의 내복을 하나하나 손보는 할머니와 그것을 응시하는 할아버지의 눈길은 가슴 저미게 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무명으로 이 땅을 살아갔던 우리들의 허다한 부모님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우리는 `인터스텔라`의 기막힌 출구모색과 `님아!`의 백년해로 같은 영화를 보면서 2014년을 보냈다. 이제 갑오년은 가고 을미년이 밝았다. 갑오경장과 갑오농민전쟁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한 구한말의 사무친 원한이 을미사변으로, 그 이후 을사늑약과 경술국치로 이어졌다. 작년의 허다한 정치-경제-외교-문화-군사적 실패를 올해는 되풀이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님아!`와 `인터스텔라`가 유익한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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