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그림으로 보는 조선 풍속도

지난 연말 ‘청도 인문학’ 종강하는 자리에서 어느 수강생이 툴툴거린다. 방학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12월 하순에 종강해서 2월 하순에 개강하는 것이니, 두 달 남짓한 기간이 방학이다. 이것은 여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누구에게나 한겨울과 한여름의 휴식은 필요하다지만, 그 기간이 유독 길게 여겨지는 사람은 있는 모양이다. 필시 열렬한 수강생 아닐까?! 잠시 생각을 고른 나는 방학 중에 두 번 정도 인문학 특강을 함께해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반색하며 ‘청도 인문학’ 수강생이 아닌 일반 군민들에게도 청강의 기회를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듣고 보니 아주 생산적인 발상이다. 그리하여 청도 도서관장과 과장, 그리고 실무자와 협의한 끝에 1월 20일과 2월 3일 오전에 도서관 강당에서 특강이 이뤄졌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나는 동서양 그림에 얽힌 이야기에 호기심이 많다. 그래선지 그림과 관련한 서책을 조금 읽은 편에 속한다. 한겨울에 열리는 인문학 강연 주제로 지나치게 무겁지 않지만, 무언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림이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그런 연유로 혜원 신윤복과 식민지 조선의 나혜석의 글과 그림을 대상으로 강연하기로 한다. 1970년 국보 135호로 지정된 ‘혜원 전신첩’에 실린 30점 풍속화 가운데 8점을 준비한다. 언젠가 큰아들 덕분에 읽은 ‘조선 사람들, 혜원의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다’는 긴 제목의 서책에서 나는 신윤복의 그림에 담긴 조선 후기의 풍속과 만났다. 아주 평이하고 곡진한 글월로 부산대 강명관 교수는 독자들에게 날로 어지러워지는 조선 하대(下代)의 풍정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월하정인’이 눈길을 잡아맨다. 한여름 달밤에 두 남녀가 양반댁 담장 앞에서 은밀하게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는 그림이다. 문제는 야삼경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의 형상이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초승달도 그믐달도 아닌 기묘한 모습의 달이 하계에서 희롱하는 남녀의 통정(通情)을 굽어보는 것이다. 저 달의 본령은 뭔가, 하는 궁금증이 찾아든다. 처음 ‘월하정인’을 보았던 당시 나는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원근법(遠近法)도 없고, 정체 모를 달은 떠 있고, 한문이 보란 듯 찍혀 있는 생소한 그림. 1793년 8월 21일 한양에서 일어난 부분월식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란 사실을 나중에 확인하고 낯이 화끈거린 기억이 새롭다. 원근법이 금과옥조도 아니고, 그림과 화제(畫題)가 어울리는 전통 역시 나의 무지를 확인해준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으로 재건의 기틀을 다졌다고는 하나, 혜원이 활동했던 시기의 조선은 그야말로 무너져가는 나라였다. 일반 백성의 삶은 곤궁하기 짝이 없었지만, 풍족한 양반들의 법도는 나날이 어지러워진 세월이었다. 자유분방한 혜원은 그런 양반들과 기생들의 한바탕 풍류를 가감 없이 그려냄으로써 18세기 후반의 조선 생활상을 곡진하게 그려낸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담대한 구도, 적나라한 시선을 감추지 아니하는 정직한 화가의 시선을 유지한 혜원 신윤복. 그의 화첩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적잖은 가르침을 준다. 제한된 시공간과 인연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 넌지시 귀띔하는 듯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8

꼰대의 입, 어른의 귀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나이 먹은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 다채로워졌다. 예전엔 노인 정도로 통용됐는데, 요즘엔 어르신, 시니어, 노인, 꼰대처럼 다양하다. 나이 드는 일은 자연적인 현상인데, 세태풍속이 일변(一變)하는 시기여서 마음이 편치 않다. 생명 가진 모든 것에는 생로병사가 필연인데, 그것을 거스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오늘도 꺾일 줄 모른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 의대 유전학 교수는 ‘노화의 종말’(2020)에서 노화는 질병이고,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심장병, 치매, 암 같은 것은 질병이 아니라, 노화의 증상이라고 규정하면서, 노화 자체가 질병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나아가 노화는 질병일 뿐만 아니라, 만병의 어머니라고 단언하면서 노화는 늦추거나 멈추거나 심지어 되돌릴 수 있다고 확언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일면 동의하지만, 노화를 역전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이 문제는 짧은 지면에서 다루기에는 방대한 영역과 맞닿아 있기에 여기서 논의하는 일은 그다지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 문제는 요즘 불거지는 ‘특이점(特異點)’ 논란처럼 그냥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유해야 할 주제다. 각설하고, ‘꼰대의 입, 어른의 귀’라는 표현에 담긴 불편한 소회(所懷)를 잠시 풀어놓고자 한다. 나이 든 축이 조금 길게 입을 떼면 그는 꼰대로 격하되고, 인내심을 갖고 경청하면 어른이라는 주장은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생각한다. ‘노파심(老婆心)’으로 젊은이들에게 충고하려는 말이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바람에 말이 길어지는 것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어떤 노인의 영혼과 정신은 청춘보다 시퍼렇게 살아서 대쪽보다 단단하고, 강철보다 견고하다. 어떤 청년의 심성에는 100세 영감의 편벽고루와 이기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대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이런 놀라운 대비를 수없이 보았다. 그들을 낳고 기른 부모와 사회-정치-문화적 환경에 순치된 애늙은이들이 설레발치는 이른바 ‘TK 정서’가 그런 본보기다. 공자는 제자들과 나눈 문답에서 ‘회인불권(誨人不倦)’을 강조한다. 사람을 가르침에 지쳐서는 아니 된다는 얘기다. 여기서 ‘회(誨)’를 파자(破子)하면, 매번 말한다는 뜻이다. 가르침을 받는 대상이 잘못하면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거슬리는 대로, 마음에 어긋날 때마다 말로써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르치는 자는 몹시 번거롭고, 배우는 자는 또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반면에 노자는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를 설파한다. 말로써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한다는 의미다. 말로써 인간을 교화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함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나이 먹은 자들의 솔선수범과 언행일치가 말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다. 그래선지 ‘논어’는 1만6000자 정도인데, ‘도덕경’은 5273자로 소략(疏略)한 편이다. 듣기에 장황해도 필요한 말은 경청함이 옳은데도, 말 때문에 꼰대로 몰고 감은 어리석은 노릇이다. 허황한 말을 인내심 있게 듣는 노인을 어른으로 떠받드는 일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지경에 이른 나이 든 자들의 증가를 희망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2-01

안과 밖

긴 한파(寒波)가 이어지고 있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더 매섭게 만드는 것은 칼바람이다. 바람에 칼날이 달렸다는 뜻을 가진 복합어 ‘칼바람’은 요즘 같은 추위를 잘 드러내는 어휘다. 지난 1월 20일이 대한(大寒)이었고, 지금 계속되는 한파는 대한의 끝자락이라 할 것이다. 하되, 2월 4일이면 봄을 알리는 입춘이다. 어쩌랴, 시작과 끝은 만나기 마련인 것을! 복층 베란다에서 창밖을 보면 여러 감회가 오간다. 서북풍이 휘휘, 소리 내며 지나가면 감나무 앙상한 줄기가 세찬 바람에 흔들린다. ‘세한도’의 소나무는 푸르름을 유지하지만, 전신을 떨며 고적(孤寂)하게 서 있다. 지나치게 자라나 이웃집 지붕을 관통한 장미는 전지(剪枝)된 채 갈색 이파리만 우줄 우줄 흔들린다. 가로등 전선도 어쩔 줄 모르고 바람에 자못 위태롭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면 청도와 창녕을 잇는 20번 국도에 트럭과 승용차 무리가 가도(街道)를 질주한다. 스치듯 오가는 차량 행렬 기사들은 언제 다시 재회할지 알 도리 없다. 주말 아침부터 그들을 차가운 거리로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필시 그것은 생존 욕망을 채워줄 필수적인 경제활동일 터다. 삶의 기반은 오래 살아남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사로운 햇살이 보존된 안쪽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면 상황이 일변(一變)한다. 찬바람이 어느새 목덜미를 휘감고 살갗을 매섭게 찔러온다. 부신 햇빛 아래 웅크린 채 사위(四圍) 돌아본다. 꽉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온 물이 밤새 얼어붙어 굵은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다. 붉은 남천 이파리들은 허수아비처럼 몸을 비틀며 바람의 기세에 잔뜩 주눅 들어 있다. 잠시 숨 고르며 생각한다. 온실 효과로 포근한 베란다 안쪽의 공간과 차가운 대기에 노출된 외부의 차이를 숙고한다. 자연과 문명을 가로지르는 안과 밖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폭력적인 자연에 저항하여 인간은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그들만의 영역을 건설한다. 이름하여 공동체를 세운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공격에 무방비로 방치되지 않는 문명 공동체! 하지만 계급과 종교와 국가가 생겨나면서 문명 공동체의 허울은 쉽게 벗겨져 나간다. 문자 지식과 창칼의 무력과 우월한 경제 권력을 앞세운 소수의 인간 무리가 다수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문화가 뿌리 깊게 정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30만 년 사피엔스 역사에서 불과 1만 년 전에 형성된 계급과 지배-피지배 관계는 21세기 20년대에도 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엄동설한(嚴冬雪寒)의 맹추위 속에 누군가는 포근함과 안락함을 누리고, 혹자는 거리에서 광장에서 한파와 맞서야 하는 엄혹한 시절. 여기서 떠오르는 장편소설의 놀라운 문장. “부자는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될 수 없다!” 니콜라이 오스트로프스키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1932)의 주인공 파벨 코르차긴의 짧지만, 사태의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寸鐵殺人)! 나는 자유보다 평등을, 평등보다 형제애를 주장해왔다. 부자들이 내세우는 자유, 가난뱅이들이 외치는 평등이 아니라, 양자 모두 인류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는 ‘형제애’야말로 우리의 미래 아닐까. 안과 밖의 거리가 최대한 좁혀지기를 고대하는 차가운 아침이 지나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25

참새를 위한 변명

경산에 있는 고층 아파트에 살다가 청도로 이사한 지 어언 12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다. 도회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들어온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 가운데 하나가 층간 소음이다. 10층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짜리 소년이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친구들을 불러서 거실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다. 이런 행태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언젠가 아이 엄마한테 그런 사실을 말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놀라운 것이었다. “애들이 다 그런 거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순간 경험한 충격과 공포는 아직도 뇌리에 삼삼하게 각인돼 있다.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지만, 이런 절정 고수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때 나는 굳게 결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집들이 띄엄띄엄 자리한 촌에 층간 소음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다른 형태의 층간 소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에스파냐 기와를 얹은 나의 소담한 지붕에서 일어났다. 기왓장 사이마다 참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 키우면서 잠꼬대하며 몸을 뒤틀거나, 기왓장 아래 나무판을 발톱으로 긁거나, 새벽마다 자기네 기상을 알리는 것이다. 햐, 이런 층간 소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찾아든다. 그런 일을 이미 알고 있던 일부 식견 놓은 건축주는 기왓장 틈새를 완벽하게 막는 시공법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참새는 천적을 피해 인가 부근에 둥지를 트는 인간 친화적인 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에는 참새도 살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말에 ‘참’이란 접두어가 붙으면 ‘좋은’, ‘진정한’, ‘우수한’의 의미다. 참나리, 참깨, 참나물 같은 어휘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참새에 이르면 나는 생각이 썩 달라진다. 아무 곳에나 똥오줌 내갈기고, 시끄럽게 울어대면서 새벽잠을 깨우고, 여기저기 솜털이며 깃털을 날리는 불결하고 요란한 작은 조류에 지나지 않다는 게 나의 감상이다. 무엇보다 우두머리 참새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그러지곤 한다. 사람을 비웃는 듯한 울음소리 때문에 아침부터 언짢은 심사가 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참새의 ‘참’자는 풍자(諷刺)의 의미가 아닐까, 하는 놀라운 발상의 소유자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헤아리기 어려운 숫자의 참새가 무상-무단으로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를 풍미한 조정희의 ‘참새와 허수아비’는 아직도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요즘 농촌에는 완벽히 사라진 허수아비의 추억도 참새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문화혁명 시기 모택동의 지시로 3억 마리 이상의 참새를 잡아 죽인 까닭에 해충이 들끓어 식량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들린다. 그만큼 참새는 인간과 가까운 조류다. 세상에 ‘나’에게만 좋은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만 좋은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과율에 따라 서로 의지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관계와 인연에 따라 생멸(生滅)을 되풀이한다. 일방적인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는 없다. 참새를 위한 어느 인간의 소박한 변명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8

‘연자가’에서 읽는 부모와 자식 관계

얼마 전에 당나라 시인 백거이(772-846)의 5언 30행 150자의 ‘연자가(鷰子歌)’를 읽고 생각이 제법 복잡해진다. ‘새끼 제비의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틀리지 않을 성싶다. 어느 집 서까래에 둥지를 튼 제비 한 쌍이 네 마리 새끼를 애면글면 키워나가는 과정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부리와 발톱이 닳아 뭉개질 만큼 맹렬하게 ‘육추(育雛)’하는 어미 제비 부부. 한 달 내내 먹이 사냥과 언어 교육, 털 고르기를 마다하지 않는 부모 제비. 그러던 어느 날 새끼 제비들에게 깃털이 돋아 그것들은 이소(離巢)하기에 이른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생겨난다. 한 번 비상(飛翔)한 새끼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가 버린다. 어미들이 아무리 애타게 불러도 새끼들은 대답이 없다. 빈 둥지 깊은 곳에서 어미들은 밤새도록 슬피 운다. 이 장면에서 시인이 어미 제비들을 통렬하고도 신랄(辛辣)하게 꾸짖는다. ‘제비야, 제비야 슬퍼하지 말아라. 너희는 마땅히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라. 너희가 새끼였을 때, 어미를 등지고 높이 날아간 그때를 생각해보라. 당시 부모 마음을 너희는 오늘 응당(應當) 알지니.’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르는 장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학 작품에서 이야기의 화자는 대개 부모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들을 호되게 나무란다. 그런데 ‘연자가’에서 시인은 부모 제비를 엄중하게 꾸짖는다. 언젠가 너희도 어렸을 적 부모 마음을 전연 생각지 않고 제멋대로 천방지축 날아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비판의 골자다. 이제야 너희도 그때 부모 마음이 어땠을지 알게 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세대 갈등에 시달렸을 터.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구하고도 연면(連綿) 부절(不絶)하게 이어진다. 자식은 부모가 답답하다고 비난하고,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네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과학기술이 느릿하게 발달하던 시절에도 서로 괴로웠던 부모 자식들은 빛의 속도로 전개되는 4차 산업 혁명 시기에 그야말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의대 갈 필요 없다, 3년 내에 로봇이 외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란 일론 머스크의 일갈(一喝)에 얼마나 많은 한국 학부모들의 간담이 서늘했겠는가! 자식들의 취향이나 적성 혹은 미래기획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지금과 여기의 평판과 자신들의 기대치만 앞세우는 부모들의 탐욕! 그로 인해 국가는 과학기술 인재를 잃어버리고, 청춘은 막다른 골목을 서성대고!···. 요즘 같은 시절에 30년 한 세대 차이는 그야말로 석기시대와 대항해시대 차이만큼 거리가 멀다. 그다지 깊지도 다채롭지도 못한 세상 경험과 거론하기조차 쑥스러운 독서량, 빈곤한 상상력과 태부족한 역사 지식으로 무장한 부모 세대의 닦달에 청춘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간다. 그러하되 내 자식 의대 보냈다는 자부심으로 그날그날 살아가는 철부지 부모들이라니! 21세기 20년대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배우고 다시 배우는 시간대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와 사물(事物) 인터넷이 일상화하는 시기에 부모들은 자식들 못잖게 더 많이 읽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 1200년 전 밤새 슬피 울던 어미 제비처럼 되지 않으려면!···.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11

소한(小寒)과 ‘세한도’

지난 며칠 동안 신년 강추위가 찾아왔다. 그저께인 1월 3일 청도 아침 최저기온은 영하 11.6도, 봉화는 16.7도였다. 그래도 예전에 맹위를 떨치던 ‘소한 추위’가 없어서 한시름 놓고 있는 형편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살아왔다. 아파트와 승용차로 무장한 현대 한국인들은 이런 옛말이 무척 낯설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차가운 날이면 추사(秋史)와 ‘세한도(歲寒圖)’ 생각이 절로 난다. 이조판서로 이름을 날리던 김정희(1786~1856)는 안동 김씨의 득세와 더불어 1840년 윤상도의 옥사와 관련하여 제주 대정(大靜)으로 귀양살이 떠난다. 고위직에 있을 때 문전성시(門前成市)의 경험을 기억하는 추사에게 위리안치(圍籬安置) 유배 생활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초였을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유배지에 귀한 서책을 바리바리 들고 찾아온 제자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중인 출신 역관으로 청나라를 자주 드나들었던 우선(藕船) 이상적에게 추사는 크게 감동한 모양이다. 논어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구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也)”의 첫머리를 따서 화제(畫題)로 삼았다. ‘한겨울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글귀는 변함없이 스승을 대하는 이상적의 마음 씀씀이와 닮았다. 그래서 화제인 ‘세한도’를 가로로 쓰고, 바로 그 옆에 세로로 ‘우선시상(藕船是賞)’ 네 글자를 쓴 것이다. 국보 180호로 지정된 ‘세한도’는 여전히 많은 이의 사유와 인식에 자양분을 선사하는 귀한 문화자산이다. ‘세한도’와 더불어 해남 대흥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은 추사의 고된 유배 생활의 결과를 입증한다. 추사는 대정 유배길에 초의선사에게 원교(圓嶠) 이광사(1705~1777)가 쓴 ‘대웅보전’ 편액을 내리게 하고 자신의 글씨로 대신한다. 그런데 해배(解配)되어 귀로에 들른 대흥사에서 추사는 자신의 편액을 떼게 하고,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도록 부탁한 것이다. 천 리나 떨어진 외로운 섬 제주에서 8년의 귀양살이를 경험한 김정희의 내면세계와 대상을 바라보는 인식은 훨씬 깊어지고 유장해진 것이 아닐까! 한겨울 북풍한설과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는 낙락장송처럼 의연하고도 굳세진 추사의 인품이 ‘무량수각(無量壽閣)’ 네 글자에 담긴 것 같다. 삐뚤빼뚤하되 둥글둥글한 자체(字體)가 많은 것을 시사한다. 24절기 가운데 스물세 번째인 소한을 지나면서 우리 세대가 살아온 날들을 새삼 돌이킨다. 음습한 날이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야 했고, 콩나물 버스 안내양들이 추락사를 겪어야 했던 저 암울했던 1970~80년대! 도저히 밝은 미래를 꿈꾸거나 기대할 수조차 없던 군부독재의 잔혹한 고문과 투옥, 학살과 은폐, 용공(容共) 조작(造作)까지. 모진 겨울날이면 0.7평의 독방에서 겨울을 나야 했던 양심수들과 그들의 가족 생각이 우심(尤甚)해지곤 했다. 그런 칠흑(漆黑) 같은 죽음의 질곡(桎梏)을 넘어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 어린 것들에게 물려줄 자랑스럽고 따사로운 문화·예술의 나라 대한민국이 멀지 않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1-04

끝과 시작

벽에 걸린 달력을 보니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딱 사흘 남았다. 아, 하는 사이에 핑하니 1년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시간은 나이 먹은 빠르기로 지나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100살 먹은 사람에겐 시속 100km로, 20살 청춘에게는 시속 20km로 시간이 흐른다는 얘기다. 양자역학자들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중에게 그런 주장은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불과 360일 전에 시작한 을사년 초입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탁상용 달력을 보면, 거기 기록한 일정에 의지해 무언가 떠올릴 수는 있겠지만, 즉각 떠오르는 사건이나 관계는 없다. 그것은 그만큼 무탈하고 평온한 한 해를 보냈다는 증거이리라. 2025년 을사년이 스러지면, 2026년 병오년(丙午年)이 막을 올린다. 과연 무슨 인연과 사안이 나를 기다릴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가진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것이든, 무생물이든 시작은 반드시 끝과 결합한다. 생로병사가 전자(前者)를 가장 명백하게 입증한다면, 12월 31일과 1월 1일의 대면은 후자(後者)를 증명한다. 그런 까닭에 시작과 끝은 항상 서로 맞물려 있다. 청년 시인 윤동주가 “시(始)는 종(終)이요, 종은 시”라고 쓴 것은 까닭이 있는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전후상수(前後相隨)’를 말한다.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는 말이다. 학생으로 비유하면, 초등학교 6년 졸업하면, 중학교 신입생이 되고, 중학교 졸업반은 고교 신입생이 되는 이치와 같다. 이것은 생의 시작부터 종점까지 수미일관 적용이 가능하다. 최고령자라 할지라도 사자(死者)들의 북망산에 가면 신입 회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나 동주의 가르침에서 새겨둘 만한 게 하나 있다. 끝과 시작이 서로 분리될 수 없기에 우리는 관계와 인연을 신중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을 매개로 맺는 관계와 그것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성립하는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모든 것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업(業)의 실타래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여기 이르다 보니 모골송연(毛骨悚然)하다. 1년 12달 365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진정으로 말하고 행동했는지, 도통 자신이 없다. 나이 든다는 일이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했거나, 허투루 대한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사과하고 바로 잡을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경직된 노년의 사유와 인식은 큰 허물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어린 시절부터 과감하게 사과하고, 그 행실을 고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공자는 “과이불개(過而不改) 시위과의(是謂過矣)”라고 가르쳤다.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 그것이 허물”이란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지면, 오류를 고치고 사과하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 근거 없는 자존심만 높아가고, 유연성과 관대함은 날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을사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 세상사와 사람들과 나의 일상을 잠시 돌아본다. 나로 인해 혹여 괴로웠을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철이 없는 것이다. 그러하되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는 병오년이 여러분과 만나면 참 좋겠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8

이분법과 양비론

오늘은 24절기의 22번째인 동짓날이다. 우리나라가 속한 북반구에서 동짓날은 연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여름의 정점인 하지(夏至)와 비교하면 대략 5시간 정도 낮의 길이가 짧은 날이 동지(冬至)다. 어둠을 꺼리는 만큼 우리는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생의 약동을 꿈꾸기 시작한다. 밤이 가장 깊은 시각은 동시에 동트는 새벽의 전령이기 때문이다. 동짓날에 새삼 이분법을 돌이키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생의 여러 모습이다. 한여름 소나기 지나간 자리에 찬연하게 빛나는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삶은 다채롭기 그지없다. 천변만화에 기초하여 진행되는 인생의 고빗길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관계와 인연과 사연이 자리한다. 그러하되 우리는 명쾌하고도 특정한 시각으로 인간과 세상을 재단한다. 이분법은 우리가 의지하는 매우 친근한 관점이자 행동 방침이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친구와 적, 선과 악, 미와 추, 정의와 불의처럼 단순하고도 강력한 분별과 차이가 이분법의 고갱이다. 예를 든 대상 가운데 전자는 우리의 영원한 벗이자 우방이며, 후자는 원수이자 악마로 화한다. 여기서 한국 사회의 모순과 충돌, 대립과 갈등, 불화와 반목(反目)이 발원한다. 양자택일의 관점에 기초하기 때문에 이분법은 상당히 강력하지만, 중간지대를 포기하기에 포용력을 완전히 상실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야’에 등장하는 폴리페모스는 외눈박이 괴물이다.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외눈을 찔러 맹인(盲人)으로 만들어버리고 시칠리아를 탈출한다. 폴리페모스처럼 하나의 눈으로만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이분법과 달리 양비론(兩非論)은 제3의 시선을 전제한다. 양비론은 너희 둘 다 틀렸다는 관점에 기초한다. 양비론자들은 자기네의 관점만이 옳다는 전제 아래 이분법에 기초한 자들을 비난의 소용돌이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의 관점이 변증법적인 논리에 기초하지 않는 한, 양비론도 사태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한다. 회색의 중립지대에서 그들은 지적인 유희에 탐닉한다. 1년 넘게 이어지는 내란 정국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엇갈린 시선이 상호 충돌하면서 여론 매체가 들끓는다. 여론을 추동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이분법적인 사고에 기대고 있으며, 일부 현학적인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포장만 그럴듯한 양비론을 제시한다. 양자를 넘어서는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대안의 출발점은 역사 인식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올바른 선택의 근저에 지나간 날들의 오류와 실패가 자리해야 한다. 성공과 승리가 아니라, 실패와 패배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위인전의 쓸모는 위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이 겪은 처절한 좌절과 절망의 출구 모색과 패배를 딛고 일어서는 강렬한 의지의 발현에 있다. 동지는 음기(陰氣)가 절정에 이르는 날이지만, 양기(陽氣)가 소생하는 첫 번째 날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로 선인들은 동짓날을 ‘일양(一陽)이 생겨나는 날’이라 보았다. 장쾌한 시각에 기초하여 이분법과 양비론을 넘어서는 위대한 통합과 전진을 염원하는 동짓날 아침이 환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22

가르친다는 것

이번 학기에 ‘문학과 영화, 그리고 나’ 교양 수업을 진행하고 나서 느끼는 소회(所懷)가 이 글을 쓰도록 인도한다. 학생들에게 고전 문학 작품들을 읽히고, 고전에 기초한 영화를 감상하게 함으로써 문학과 영화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게 강의 요지다. 그러하되 강의의 방점은 영화가 아니라, 문학에 찍혀 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나는 이른바 ‘최대강령주의자’에 속한다. 무엇을 하든 열렬하고 집요하게 대상을 파고드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강의 준비도 치밀하고 폭넓게 하고, 강의 시간도 최대한 준수하려 애쓴다. 당연히 휴강은 없다. 시인 동주는 “한 시간의 휴강은 실로 살로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인 시점에 그런 자세는 너무 한가하다는 생각이다. 학생들과 15주 강의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느낀 뼈아픈 사실은 그들 내면에 지나치게 깊이 새겨진 사회적 수동성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이번 학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동성의 깊이와 폭이 심화-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타자를 위한 배려가 실종되고, 각자의 좁은 공간에 자발적으로 유폐된 청춘들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언젠가 여기는 강의실이 아니라, 공원묘지나 무덤 속 같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졸거나 자거나 휴대전화 건드리면서 75분을 간신히 버티는 학생들의 무표정하고 생기 없는 얼굴과 눈빛을 보노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세대차(世代差)와 ‘엄근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지만, 학과장 말에 따르면, 많은 강의실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공자는 지식인의 기본자세를 ‘묵이지지(黙而識知)’ ‘학이불염(學而不厭)’ ‘회인불권(誨人不倦)’ 셋으로 정리한다. 이 가운데 나는 회인불권, 그러니까 사람을 가르침에 지겨워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을 가장 요긴한 것으로 생각한다. 회(誨)를 파자(破子)하면, 매번 말한다는 뜻이다. 무엇인가 부정적인 상황이나 언행을 보면 그것을 말로써 계도(啓導)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렇게 끈질기고도 정성스럽게 가르치는 행위가 아무 보답도 없이 시간과 더불어 스러질 경우, 완전히 속수무책이라는 데 있다. 그때 적용할 수 있는 영어 속담이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그 말에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을 먹을지 말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최종적인 주재자는 교수나 부모가 아니라, 학생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말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꾹 눌러 참고 노자의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를 떠올린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것이야말로 참교육을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도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언행일치 교육을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학부모는 가능하지만, 교사나 교수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거의 봉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독한 사회적 수동성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을 보면서 한국 교육이 재편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행-재정적인 문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교육하는 방식의 혁신적인 변화가 따르지 않으면, 인재 양성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일 밖에 없을 것이다. 창밖 겨울비 촉촉하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14

무지와 빈곤

사노라면 우연한 계기로 변화와 마주하는 수가 있다. 무슨 연유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2012년에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레미제라블’을 읽게 되었다. 영화와 드라마, 오페라와 뮤지컬로 여러 차례 만들어졌지만, 정작 원작을 읽지 않았던 터였다. 6권짜리 2400쪽이 넘는 대작이었지만, 대가의 솜씨 덕분에 비교적 빠른 기간에 완독할 수 있었다. ‘레미제라블’ 첫머리에 위고는 쓴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런 종류의 책도 쓸모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위고 이전에 영국의 소설가 찰스 디킨스(1812~1870)는 19세기 영국에 만연한 무지와 빈곤에 대한 소설을 출간했다. ‘올리버 트위스트’(1838), ‘크리스마스 캐럴’ (1843), ‘데이비드 코퍼필드’(1850), ‘어려운 시절’(1854)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디킨스의 소설 작품들은 위고의 ‘레미제라블’만큼 울림이 크고 깊지 않다. 필시 그것은 디뉴의 미리엘 주교와 죽음을 눈앞에 둔 86세의 노정객 국민의회 의원 G 사이에 펼쳐지는 프랑스 대혁명 관련 논쟁 때문일 것이다. 왕당파이자 보수주의자 미리엘 주교와 진보적인 공화주의자 국민의회 의원 사이의 기나긴 논쟁은 소설의 백미(白眉)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회 의원은 말한다. “루이 16세 처형은 여성에게는 매춘의 종말, 남성에게는 노예의 종말, 어린이에게는 어둠의 종말이오. 공화제(共和制)에 찬성함으로써 나는 그 일에 찬성한 것이오.” 그의 선택은 왕과 그 아내만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무지와 빈곤에 신음하며 매춘과 노예 노동, 출구 없는 암흑에 빠진 가난한 다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얘기다. 파괴적인 분노에 반대한다는 미리엘 주교를 반박하면서 의원은 말을 잇는다. “정의에는 분노가 있는 법이오. 올바른 분노는 진보의 요소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예수 탄생 이래 인류의 가장 힘찬 일보였소. 대혁명은 비천한 인간들을 해방했소.” 여기서 우리는 위고의 정치적 입장이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왕당파와 공화주의자 양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 같다. 어떤 영화나 오페라에도 이런 기막힌 서사는 나오지 않는다. 공연에 필수적인 상업적 고려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소설에서 독자는 무지와 빈곤에 시달리는 여러 인물과 대면한다. 장발장, 팡틴, 코제트, 에포닌, 가브로슈 등등을 거명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자기 손으로 무지와 빈곤을 극복한 유일한 인물은 장발장이다. 무지와 빈곤의 최대 피해자 팡틴은 매춘하다가 병에 걸려 죽는다. 그래서 위고는 여자가 비참한 경우에 빠진 것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애인에게 버림받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미혼모임이 밝혀지면서 쫓겨나고, 저임금으로 바느질하다가 머리털을 잘라 팔고, 끝내는 거리의 여자로 전락해 죽어갔던 비운의 여인 팡틴! 고교교육을 의무화한 한국 사회는 무지와 작별했다. 하지만 빈곤은 여전히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2014년 2월의 ‘송파구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사회 안전망과 경제적 양극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창밖 바람이 차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2-07

내란의 시간

이틀 지나면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1주년이다. 다수 국민은 세월 참 빠르네, 할 것이지만 나는 다르다. 내란은 현재 진행형이고, 그 중심지지 세력은 내가 살고 활동하는 대구-경북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어쩌다가 천하의 술주정뱅이 망나니에게 바짓가랑이를 붙잡혀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인간 말종의 하수인으로 지내고 있단 말인가?! 소맥 폭탄주로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이는 자는 “파렴치한 종북좌파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외쳤다. 겨울 초입에 다수 시민이 안온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던 시각에 난데없는 칼잡이처럼 대갈일성(大喝一聲)으로 ‘파렴치한 종북좌파 세력!’ 타령. 누가 진정 ‘파렴치한’ 종자(種子)인지 이제야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안팎이 닮아도 너무도 쏙 빼닮은 탐욕의 ‘비계덩어리’가 암수한몸 되어 합작한 굴욕과 수치의 내란이 어느새 1년에 가깝다. 우리가 애면글면 기대하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이 지목되어 많은 국민이 기뻐하던 그 시각에 그자들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사적인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파렴치한’ 내란을 획책하여 지구촌 전체를 경악시키는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21세기 20년대 대한민국에 종북좌파 세력이 있다는 확신범이 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지난 세기 7~80년대, 군부독재의 화신 박정희-전두환의 철권통치 시기에 난무했던 종북좌파 책동을 4~50년이 지난 시점에 재활용하는 자의 정신과 뇌 상태가 심히 의심스러운 것이다. 그런 자를 아직도 맹종하는 인간들의 심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터. 작년 12월 4일, 그러니까 내란의 밤 다음 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나는 청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강의 문학세계와 우리의 삶’을 주제로 2시간 강연했다. 강연 준비를 위해 전날 늦은 밤까지 자료를 만들다가 마주한 ‘파렴치한 종북좌파 타령’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고 말았다. 아, 정녕 이것이 나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란 말인가!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한강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했다고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이 내린 결론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1980년 5월 참혹한 광주학살을 경험하고 교육받은 세대가 한마음 한뜻으로 잔인무도한 비상계엄을 막아냈으니 말이다. 참으로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파렴치하고’ 참람(僭濫)한 내란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내란 수괴를 비롯한 다수 잔당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두 눈을 희번덕거린다. 영장 전담 판사들은 이런저런 구실로 구속영장을 각하하는 몰염치하고 반역사적인 행태를 거듭하고 있다. 내란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흐르면서 국민의 가슴에 뜨거운 울화(鬱火)를 선사하며 염장을 지르고 있는 형편이다. 매우 보수적인 인간 공자는 논어에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음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크나큰 과오(過誤)를 저질렀지만, 여전히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 탓을 해대는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지난 1년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이 못내 궁금한 시점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외부 기고는 기고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5-11-30

옆집의 환삼덩굴

14년째 옆집이 비어 있다. 청도 화양(華陽)에 이사 온 후 옆집 주인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낡고 허름한 고가(古家)만 덩그러니 남아 사계절 내내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와 눈에 고스란히 온몸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그 집이 서울 누군가에 팔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연히 새로운 주인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이는 돈 때문에 집을 샀으니까. 그리고 1년 남짓 지난 어느 여름날 느닷없이 인부들이 들이닥쳐 집을 허문다. 땅을 고르고, 쓰레기를 정리하면서 온갖 소음과 먼지를 선사하더니 사라진다. 그들 말로는 누가 고가 철거를 주문했는지, 새집을 지을 요량인지, 하는 어떤 정보도 들은 바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허망한 사건이 한여름 벌건 대낮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 거였다. 그리고 10년 넘는 세월이 스르륵 지나고, 그곳에는 각종 뱀과 이름 모르는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났다. 내가 던진 복숭아씨 하나도 용케 발아되어 크게 성장하여 해마다 유월이면 굵은 열매도 선사하는 기이한 사건도 생겨났다. 그곳의 유일한 지킴이는 감나무 몇 그루뿐! 동네 늙은 아낙이 작년부터 호박을 심어 먹는 것 말고는 옆집은 여전히 휑하게 비어 있다. 그런데 작년부터 반갑지 않은 방문객이 그곳을 찾아들었다. 환삼덩굴이다. 처음에는 몇몇이 얼굴만 빼꼼하게 내밀더니 급기야 올해는 크고 작은 나무들 위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장관(壯觀)을 연출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나는 작년부터 그곳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울울창창 자라난 대나무 수백 그루를 정리했다. 해마다 겨울이 다가오면 온종일 그곳을 말끔하게 갈무리하는 것이 나의 일과 가운데 하나다. 환삼덩굴과 내 칼질에서 살아남은 대나무를 겨냥한 작전이 시작된다. 큰톱과 중간 톱, 전지가위, 삽, 쇠갈퀴로 무장하고 그곳으로 향한다. 아직도 쌀쌀한 오전 9시 반부터 일을 시작한다. 환삼덩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 먼지가 자욱하게 앞을 가린다. 지독한 녀석이다. 대나무 위로 자라나 나무를 억압하듯 찍어누르는 환삼덩굴의 위세는 나의 오래전 잊힌 분노를 생생하게 일깨운다. 한편으로는 환삼덩굴을 제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나무 밑동을 가지런히 잘라서 정리한다. 거의 세 시간이 지났건만,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는데, 일단 후퇴하자!’ 그런 심사로 잠시 휴전에 돌입한다. 다섯 가지 공구로 무장한 나의 맹렬한 진격에 환삼덩굴과 대나무, 우슬(牛膝)과 찔레 등속이 하나둘씩 무너진다. 그 사이 나의 머리와 얼굴, 온몸에는 진땀이 범벅되어 흐른다. 오후 4시가 지나서야 비로소 작업을 마무리한다. 환삼덩굴의 끈질긴 저항과 엉겨드는 끈적거림은 실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체력과 정신력을 끝까지 시험하는 저 잔악무도한 환삼덩굴! 세상 살면서 환삼덩굴 같은 사람과 연을 맺는다면, 그것은 거의 천형(天刑)처럼 여겨질 터. 어떤 악한(惡漢)이라 해도 환삼덩굴처럼 끈질기고, 메케한 먼지 풀풀 날리며, 끈끈하게 안면몰수(顔面沒收)한다면, 과연 뉘라서 대적할 수 있겠는가?! 제발 영원히 사라져다오, 환삼덩굴아!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23

아, 1970년 11월 13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지난 11월 13일 오전 10시 30분, 내 입에서 갑자기 55년 전에 일어난 한국 노동 운동사의 대사건이 튀어나온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절규와 함께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자살한 전태일(1948~1970) 열사 이야기가 부지불식간에 강의실에서 발화(發話)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면서 노동자들의 처절을 극한 노동조건을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그리고 노동청에 알리면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한다. 당시 전태일이 노동청에 제출한 진정서를 바탕으로 어느 일간지가 1970년 10월 7일 보도한 내용을 인용한다. “노동자들은 하루 13~16시간의 고된 근무를 하고 있으며, 적은 보수에 직업병까지 얻으며 근로기준법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첫째 주와 셋째 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휴일에도 나와 일을 하고,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생리휴가 등 특별휴가는 생각도 하지 못할 형편이다. 이미 4~5년 전부터 받는 월급을 현재까지 그대로 받고 있다.” 동대문구청과 서울시, 노동청 어디서도 전태일의 요구사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근로기준법’을 불살라버린 전태일은 끝내 자신의 몸마저도 불태워버린 것이다. 그가 세상을 버린 30년 후인 2005년 서울시는 청계천 평화시장 인근에 전태일 거리를 조성하고, 청계천 버들다리 안에 전태일 기념 동상과 동판을 설치하여 그를 추모하고 있다. 전태일은 온몸을 불살라 한국의 극악무도한 노동실태를 나라 전역에 알렸고, 그 결과 ‘청계천 피복 노조’가 탄생한다. 황석영은 중편소설 ‘객지’(1971)를 발표하여 노동 문학의 효시를 쏘아 올린다. 이것은 1983년 노동자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과 이어진다. 인권 변호사 조영래는 ‘전태일 평전’(1983)으로 전태일 열사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기폭제 구실을 한다. 전태일이 세상을 버린 지 어언 55년, 그러니까 두 세대가 흘렀건만 이 나라의 노동실태는 여전히 답보상태다. 울산 화력에서 발생한 붕괴사고로 노동자 7명이 숨지는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통계에 따르면, 한국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 이상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오늘의 수많은 전태일이’ 노동인권의 사각지대(死角地帶)에 있다는 얘기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잘 먹고, 잘 살자 주의’ 이른바 ‘먹사니즘’이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름없다. 위험의 외주화는 원청에서 시작하여 3~4차 하청(下請)에 이르러야 비로소 막을 내린다. 시간과 비용의 감축에 바탕을 둔 돈의 논리가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판국에도 대기업들은 여전히 ‘노란 봉투법’에 고개를 흔들어댄다. 비정규직-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법 바깥에서 최소한의 임금과 사회보험보장,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55년 전 산화한 전태일의 피맺힌 외침과 분신이 그저 고요한 메아리로 남은 셈이다. 기업의 이윤과 성장에 매몰된 경제 제일 논리를 주장하는 대기업 집단과 새로 출범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의 각별한 인식과 발상의 대전환을 촉구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16

질문하는 인간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늦도록 일복이 많아선지 이번 학기에도 시간강사로 학생들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세계적인 문학작품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비교하면서 이모저모 생각하는 수업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덤불 속’, 셰익스피어의 ‘햄릿’,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지바고 의사’,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내가 고른 작품들이다. 요즘에는 조르바를 논의하고 있는데,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마다 신선하게 와 닿는 대목이다. 이미 넘치도록 익숙한 사물이나 관계에서 경이로움이나 신비로움 혹은 경탄을 경험하는 조르바의 놀랄만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진부함이나 밋밋함 같은 감성이 없는 것이다. 21세기 20년대 대학생들처럼 웃음과 슬픔, 환희와 절망 같은 감정이 스러진 세대를 일찍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들이 이 대목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혹은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등굣길에 낯설게 다가온 사물이나 사람이 있는지 묻지만, 그들은 당황스러워한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없거니와, 그런 생각 자체를 해보지 않은 까닭이다. 2019년 겨울 광주에는 눈도 많이 내렸지만, 해가 바뀌도록 전남대 교정에는 꽃이 쉬지 않고 피고 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꽃을 보면서 아끼는 후배의 성공적인 항암 투쟁을 기원하곤 했다. 그래선지 모르지만, 그는 담도암의 공격을 이겨내는 성과를 이뤄내기도 했다. 한겨울 눈 속에서 피어난 새빨간 장미를 보면서 후배의 건강을 기원했던 내가 기억에 생생하다. 같은 대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만일 그나 그 여자에게 대상을 낯설고 의미심장하게 대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과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더 나아가 그들에게 시인의 상상력과 감성이 자리한다면, 어떤 익숙한 인간과 관계와 사물이라 해도 그것은 언제나 신선하고 날카롭게 영혼을 찔러오는 감동과 경이의 순간을 선물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르바는 아들뻘인 화자(話者)에게 툭하면 이런저런 질문 세례(洗禮)를 퍼붓는다. 자신만의 상념과 목적의식에 투철한 화자는 어쩔 줄 모른다. 대상을 새롭게 포착하는 사람은 늘 새로운 문제의식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그는 언제나 질문하는 인간이다. 이것을 날카롭게 잡아낸 생화학자가 영국의 찰스 파스테르나크이며, 그 저작이 ‘호모 쿠아에렌스’(2005)다. 인간이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오른 동기를 파스테르나크는 직립보행과 시야 확대, 자유로워진 두 손과 엄지손가락, 언어 소통 능력, 생각과 기억, 추론과 연결된 대뇌 피질 신경세포 등을 말한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지적 호기심에 근거한 ‘질문하는 인간 (Homo quaerens)’이다.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해소하는데 주력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침팬지의 차이?! 무학(無學)이나 다름없는 그가 지식인 화자를 가르치고, 인생의 비의(秘意)를 일깨워주는 것은 경험뿐 아니라, 경탄에서 발원하는 질문에 기인한다. 묻지 않는 인간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09

공암풍벽(孔巖楓壁)

‘화양연화’(2000)로 우리 관객에게 친숙한 왕가위(王家衛) 감독은 ‘동사서독’(1995)에서 기막힌 대사를 남긴다. “나는 사막에 오래 살았지만, 사막을 보지 못했다.” 서독 구양봉이 지금까지 살던 객잔을 불태우고 그곳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사랑의 아픔과 정념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먼 길 떠나는 남자의 선 굵은 서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청도에 12년째 살고 있지만, 며칠 전에야 비로소 공암풍벽을 찾았다. 이른바 ‘청도 팔경’ 가운데 하나라는 공암풍벽을 이제나저제나 하면서 미뤄둔 게 벌써 십여 년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그곳을 다녀온 일이 마음속에 흐뭇한 흔적을 남긴다. 공암풍벽은 청도군 운문면 공암리에 자리한 높이 30여 미터의 반월형(半月形) 절벽을 일컫는다. 청도 하면 사람들은 ‘새마을 운동’과 ‘소싸움’ 그리고 ‘청도 반시’ 정도를 연상한다. 청도 곳곳에 거대한 크기로 새겨진 ‘새마을 운동 발상지’라는 푯말은 시대에 뒤지고 고색창연한 서글픈 느낌을 전한다. 산업화 시대의 낡은 구호를 써먹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시대를 앞서지는 못한다 해도 전체주의 시대의 유물을 아직도 들먹거림은 꽤 우울한 일이다. 나는 소싸움에 반대한다. 애초부터 순하고 선한 우리 소를 가지고 억지로 싸움질하도록 하는 게 뭐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인지 모르겠다. 전통적인 투우의 나라 에스파냐에서도 투우는 이제 한물간 시대의 소산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우리 민간에서 소는 집안의 기둥이자, 아주 가깝고도 가족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그런 소를 싸움판에 내몰다니! 해마다 벌어지는 청도 반시 축제는 그야말로 2박 3일 동안 외지인들과 청도 군민들을 들썩이도록 한다. 쟁반을 닮았다고 하여 ‘반시(盤柿)’라 불리는 청도 감은 굵기도 하거니와 씨가 없고, 당도 또한 상당히 높다. 요즘에는 상업성이 많이 떨어지고, 군민들의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수확 자체를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한다. 위기의 대한민국 농어촌 풍경이다. 공암풍벽은 공암리에 있는 단풍나무 절벽을 의미한다. 봄에는 진달래를 필두로 온갖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운문천의 맑고 푸른 물이 감돌아 흐르며,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절벽을 붉고 화사하게 장식하고, 겨울에는 송림의 푸르름이 웅혼한 기상을 웅변한다. 오늘날 공암풍벽은 1985년 운문댐 건설로 인해 상당 부분 수몰되어 있기로, 적잖은 아쉬움을 선사한다. 마을 입구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연정(居然亭)으로 방향을 잡고 걷다 보면 어느새 가을 정취에 흠뻑 젖게 된다. 왕복 2.7km를 느릿하고 여유롭게 걸으면서 지나간 시간과 사라진 자아를 돌아봄은 적잖게 유쾌한 노릇이다. 반환점이라 써진 풍벽 끄트머리 그곳에서 대를 이어가며 살아온 70세 중반 남성을 만나 수몰민(水沒民)의 애환을 들을 수 있었다. 불과 스무 사람 남짓 살고 있다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마을은 한 시대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퇴락해가는 인구소멸지역 주민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애수가 묻어있었다. 공암풍벽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에게 생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해본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1-02

말의 범람과 솔개의 침묵

21세기 20년대는 말의 홍수 시대가 아닌가 한다. 기존의 언론매체 이외에도 숱한 개인 유튜브가 횡행함으로써 왜곡된 지식과 정보의 지독한 오남용이 일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지하철에서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식당에서 비행기에서 사람들은 넋을 놓고 휴대전화 화면에 빠져든다. 문자 그대로 유튜브 삼매경이 지구촌 전역을 휩쓸고 있다. 시간대를 뒤로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과 만난다. 1980년 11월 학살자 전두환은 ‘언론 통폐합’이란 미명으로 극악무도한 언론통제를 감행한다. 5공에 반대하는 언론인들을 해직함으로써 체제 순응적인 언론을 양성하고, 광주 학살 은폐와 확고한 권력 장악이 언론 통폐합의 목적이었다. 아직도 떠도는 5.18 폭동설이나 북한 개입설은 언론 통폐합의 직접적인 폐해 사례다. ‘1도(道) 1지(紙) 원칙’에 따라 지방 신문사들이 대거 통폐합되었고, 그에 앞서 ‘창작과 비평’, ‘씨알의 소리’,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정기간행물 등록이 취소되었다. 동양 텔레비전(TBC)을 필두로 한 민영 방송사가 한국방송공사에 강제로 편입되어 거대 공룡 방송사로 거듭남으로써 5.18 학살 권력 집단 주도의 언론지형이 일상화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자 학살자 무리에 저항하는 반체제 지식인들은 지하로 잠적하고, 저항의 중심축인 대학 또한 기나긴 겨울잠에 빠져든다. 이와 같은 참혹하고 무기력한 시기에 이태원의 노래 ‘솔개’가 대중의 마음을 파고드는 기현상(奇現象)이 발생한다. 1982년 4월에 발매된 ‘솔개’는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날으는 솔개처럼”으로 시작한다. 절실하게 필요한 말을 아예 꺼낼 수도 없던 참담한 시대에 말하지 말고 살아가자는 ‘솔개’는 사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이태원은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 지쳐버린 나의 부리” 혹은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잃어버린 나의 얼굴” 또는 “수많은 농담과 진실 속에 멀어져 간 나의 솔개”를 수없이 안타까워한다. 인간이 진화 사다리의 정점에 도달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말(언어)에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말로써 인간은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대물림함으로써 여타 생물종보다 확연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말은 훗날 문자로 체계화됨으로써 불확실한 기억의 한계를 털어버리고 비상(飛翔)할 수 있었다. 언어를 통한 지식과 정보의 확산이 지구 전역에서 일어난 것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무지막지하게 확대 재생산되어 나라 곳곳을 떠돌고 있다.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엇갈린 시선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1950)에서 구현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라쇼몽 효과’라 부른다. 선택적 기억과 발화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약점은 최대한 감추고, 선하고 거룩한 면은 최대한 부각하려 애쓴다. 문제는 개개인이 소소한 일상을 왜곡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이득을 위해 특정 집단이 분명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곡해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의 영혼과 육신을 피폐케 하는 것에 있다. 정말 ‘솔개’처럼 침묵하면서 사태의 핵심을 새삼 확인할 때가 온 것인가?!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26

모스크바 베이징 김포 그리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때문에 한국과 러시아 직항 항로가 모두 사라졌다. 그런 까닭에 만일 모스크바에 가고자 한다면,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거쳐 모스크바로 가야 한다. 최소 두세 시간을 경유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 국적 여객기가 아니라, 중국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기분이 썩 유쾌할 수는 없다. 지난여름 모스크바에서 나는 전쟁 분위기를 전연 감지할 수 없었다. 전선(戰線)이 남쪽 우크라이나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표정이나 발걸음에서 미세한 전운(戰雲)마저 감지할 수 없었다. 푸틴의 집무실이 있는 붉은 광장의 크레믈이나, 여전히 기막히게 아름다운 바실리 성당과 백화점 건물 주변에 몰려든 관광객들의 얼굴은 밝고 화사하기가 비할 바 없었다. 모스크바 외곽의 ‘참새 언덕’ 주변에서 이뤄지고 있는 동계(冬季) 운동경기 경기 시설 공사에 나는 무척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 오스트리아의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보았던 스키 점프대 공사가 눈에 들어온다. 모스크바 시민들을 위해 한여름에 진행되는 공사 진행 상황을 보면서 과연 러시아는 전쟁하는 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찾아들었다. 모스크바강 건너편에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마천루 건물 군상이 오늘날의 러시아와 푸틴 그리고 모스크바를 실감 나게 입증한다. 지극히 현대적인 외양을 띤 초고층 건물들을 보노라니, 이곳은 전쟁과 무관한 별천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드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에 모스크바 한국 문화원의 박 원장이 ‘여기는 전쟁을 실감할 수 없습니다’ 하고 웃으면서 동조한다. 전쟁은 근본적으로 정치가들과 기업가들, 부자들과 야심가들을 위한 거대한 난전(亂廛)이다. 일찍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서사연극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1939)에서 전쟁의 본질은 돈에 있으며, 그것을 움켜쥐는 이는 권력자들임을 입증한 바 있다. 그걸 모르는 어리석은 억척 어멈은 세 자식을 다 잃고, 포장마차마저 시들한 마당에도 내일을 향한 꿈을 놓지 못한다. 오늘날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는 중국인들로 항시 북적거린다. 어딜 가도 그들의 시끌벅적하고 거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자세로 소음을 발사하는 그들의 처세에는 어떤 야만적인 경이로움마저 내재해 있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자기네가 주인이나 되는 듯 활개 치는 모양을 볼라치면 야릇한 심사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인지 장시간에 걸친 귀로(歸路)에도 내 마음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평온했다. 마침내 내가 아무런 부대낌 없이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대한민국에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어도 풍습도 음식도 풍경도 익숙한 그곳에서 설령 나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을지라도 말이다. 모스크바발 여객기는 영종도가 아니라 김포에 스르륵 착륙한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광이 사뭇 다정하다. 서늘하고 음습(淫習)한 모스크바에서 한여름 열기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김포의 한낮을 온몸으로 감촉한다. 나의 여정은 다시 이곳에서 대구를 거쳐 청도로 이어질 것이다. 어느샌가 육신도 정신도 치유(治癒)의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20

페테르부르크의 추억

사람은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말하면서 살아간다. 각자에게 유리한 사실만 기억하면서 나름의 정의와 진실을 마음속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지독하게 꼬집은 소설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1922)이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라쇼몽>(1950’으로 영화화했다. 반면에 노신(魯迅)은 ‘아큐정전’(1922)에서 이것을 ‘정신승리법’으로 규정하면서 신랄하게 공격한다. 우리의 기억은 언제나 예외 없이 왜곡되고 굴절되어 있기에 100% 진실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전혀 없다. 지난 8월 하순 페테르부르크에서 체류한 사흘 일정은 나에게 22년 전 추억을 소환한다. 2003년 7월 하순에 사흘 머물면서 페테르부르크 곳곳을 누볐던 추억보다 그곳에 공부하러 나와 있던 경북대 학생들과 모교 졸업생들과 함께한 기억이 훨씬 강렬하게 남아있다. 보리스 옐친의 무기력한 통치가 종결되고 패기 넘치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집권 1기가 펼쳐지던 시기의 러시아 문화와 예술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는 여전히 불안하고 가난했다. 70년 사회주의 실험이 실패로 각인됨으로써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간 암울했던 러시아. ‘유럽으로 열린 창’ 페테르부르크에서도 시민들의 삶은 곤고(困苦)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학생들과 밤마다 보드카 폭탄을 돌리곤 했다. 맥주잔에 40도짜리 독주 보드카를 일정 정도 따르고, 나머지를 맥주로 채워 단번에 마시는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는 새벽 3시 무렵 희뿌옇게 밤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가 30분쯤 지나면 환한 얼굴로 아침이 기다리고 있다. 보드카와 맥주병이 커다란 식탁에 날마다 3~40병 쌓이곤 했던 지난날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창천의 일등성(一等星)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의 나는 2!30대 청춘들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던가?! 유학생들이 러시아에서 겪어야 했을 허다한 모험담과 기행(奇行), 온갖 실패와 실수로 점철된 시절의 소환 같은 것이었을 터다. 10여 명이 무리 지어서 페테르부르크를 누비고 다니면서 러시아 역사와 예술의 향연을 한껏 들이마신 기억이 지금도 새롭기만 하다. 이번에는 국립 러시아 박물관과 에르미타주 미술관, 푸시킨이 다녔던 귀족학교 리체이를 차분하고 여유롭게 돌아본다. ‘피의 사원’과 ‘네프스키 대로(大路)’, 페테르부르크 운하와 네바강, 카잔 성당도 빼놓지 않는다. 박물관에서는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오스트로프스키, 체호프 같은 러시아 문사들의 흉상이나 초상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러시아 문학, 특히 러시아 희곡을 향한 열망을 온몸으로 구현한 대가들 앞에서 지난 시절을 반추해봄은 해볼 만한 일이다. 어떻게든 남들과 다른 길을 찾아 걸어보려 했던 치기(稚氣) 어린 20대의 기억을 가슴에 안고 40대에 찾았던 페테르부르크를 60대에 다시 대면하노라니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라져버린, 불멸해야 했을 나의 청춘은 어디로 갔는가?! 마치 ‘세 자매’의 어리석은 주인공 안드레이의 한스러운 내적 독백을 되뇌는 것 같다. 돌이킬 수 없기에 더욱 안타까운 날들을 여름감기와 함께하면서 상념에 젖었던 페테르부르크의 추억이여!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10-12

조지아와 군맹무상(群盲撫象)

어떤 대상을 제대로 알고자 하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절실하다. 제한된 경험과 불충분한 시간은 대상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가져오기 쉽다. 이런 이유로 ‘수박 겉핥기’라든가,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경구가 나온 것이다. 후자는 불가(佛家)의 경전인 ‘열반경’에서 유래하는데, 좁은 식견과 안목 없이 대상을 주관적으로 잘못 판단한다는 뜻을 함축한다. 카프카스산맥 남부에 자리한 조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작은 나라로 남한 면적의 63% 정도다. 인구는 370만 정도니까 부산과 구미의 인구를 합한 규모다. 오랜 세월 정교(正敎)를 신봉해온 정통 기독교 국가로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터키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나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4박 5일 체류했다. 125만 인구의 트빌리시에는 곳곳에 케이블카가 설치돼 있고, 버스 카드로도 탈 수 있다. 조지아가 본디 산악국가인 까닭에 조금만 올라가도 시내 전경(全景)이 시원하게 다가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손자를 안고 나온 중년 여인네가 스스럼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풍경을 보노라니 우리 어머니들의 예전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적잖게 애잔했다. 트빌리시에서 북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작은 도시 므츠헤타(Mtskheta)를 택시로 찾아간다. 12살에 운전을 배워 33년째 차를 몰고 다닌다는 45세 운전사와 김 이사가 휴대전화로 주고받는 대화에 귀를 기울인다. 왕복 80라리로 다녀오기로 했지만, 멀리 산 정상에 솟아있는 즈바리 수도원에 마음이 가기로 50라리를 더 주고 방문을 결정한다. 쿠라강과 아라그비강이 아름답게 만나는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서 잠시 묵상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서기 337년에 기독교를 공인할 정도로 조지아 정교회는 그 역사가 남달리 깊다. 즈바리 수도원은 꼬불꼬불한 산길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차도로 이어진 종점에 자리한다. 저 높은 곳까지 도달해야 했을 그들의 돈독한 신앙심을 새삼 돌이킨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당신은 어느 편이냐, 하는 김 이사 질문에 택시 기사가 잠시 난감한 얼굴이다. 하되, 조지아 정부와 정치인들은 러시아 편이지만, 일반 국민은 우크라이나 편이다,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디서나 강자는 강자의 편에, 약자는 약자의 편에 서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공자는 이것을 일컬어 ‘덕불고(德不孤) 필유린(必有隣)’이라 했다. 트빌리시 시내 곳곳에 마련된 수많은 동상은 조지아를 빛낸 시인과 문사(文士) 혹은 화가를 기리는 것이다. 유럽은 오래전부터 동상으로 제 나라의 영웅들을 기념하는 습속을 이어왔고, 한때는 그루지야로 불린 조지아 역시 그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럴진대, 우리는 이런 문화에 이질적이며, 시인과 묵객(墨客)을 위한 동상 건립은 여전히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주인 없는 수많은 개가 길거리에서 낮잠을 자고, 택시들이 곡예(曲藝) 하듯 미끄러지지만, 교통질서가 유지되는 트빌리시. 서둘지 않는 시민들의 발걸음과 대학생들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이 나라의 미래가 환하게 열려있다는 인상을 받고 능소화 붉게 피어있는 조지아를 떠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28

시그나기를 아시나요?!

귀국을 하루 앞둔 8월 27일 오전 8시 20분 나와 김 이사는 호텔 로비에서 김 영사 가족과 대면한다. 오늘은 트빌리시에서 남동쪽으로 113km 떨어진 유서 깊은 도시 시그나기(Signagi)를 찾아가는 날이다. 어젯밤 늦도록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 함께 뜻깊은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 결과가 소형 버스를 이용한 시그나기 왕복 여행이었다. 9시에 불콰한 얼굴의 안내자와 함께 시그나기 여정이 시작된다. 환한 얼굴에 유창하게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안내자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쉬지 않는 끈기를 선물한다. 도중에 포도주와 차차 그리고 코냑을 시음하기도 했지만, 내게 인상적인 장소는 빵 굽는 곳이다. 노년을 바라보는 아낙이 바게트 크기의 빵을 굽고 그것을 500원 정도의 가격에 파는 것이다. 식료품 가격이 안정돼있는 나라는 정치가 엉망이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조지아는 카프카스산맥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산악 국가지만, 곳곳에 드넓은 평원이 자리한다. 그리하여 포도를 비롯한 각종 과일과 밀 생산이 제법 풍족하다. 목축과 그에 따른 육류 가공이 충실하여 국민의 식생활이 어렵지 않다. 서너 시간을 거쳐 마침내 시그나기에 도착한다. 시그나기는 ‘백만 송이 장미’의 주인공 니코 피로스마니 (1862-1918) 덕분에 우리에게 기억되는 도시다. 가난뱅이 화가 피로스마니는 프랑스에서 온 어여쁜 여배우에게 반해서 수많은 장미를 바쳤다는 일화가 아직도 전해진다. 러시아 여가수 알라 푸가초바(1949-)가 1982년에 ‘백만 송이 장미’를 불러 크게 유행한다. 나는 피로스마니를 이미 모스크바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것도 22년 전에, 그리고 얼마 전에 말이다. 모스크바 문화원의 박 원장 가족과 삼성 지사장으로 일하는 99학번 졸업생 병창과 어울려 피로스마니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것이다. 오래된 피로스마니 식당은 고색창연했고, 세계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다녀간 곳으로 예전 명맥을 근근이 잇고 있었다. 그런 내력이 있는 도시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시그나기는 오다가다 만난 여행객들이 쉽게 결혼할 수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24시간 결혼이 가능한 교회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시그나기는 튀르키예 말로 ‘피난처’를 뜻하는 ‘시기나크(siginak)’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는데, 사랑의 도시란 수식어와 어긋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시그나기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크고 작은 노점이 성업한다. 조지아 국기가 들어간 초록색 모자와 자그마한 양탄자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양탄자와 모자를 산다. 김 영사 가족과 김 이사가 나의 구매에 찬동을 표해 주었기로 힘이 솟는다. 얼마 뒤에 우리 일행은 1,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보드베 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텔라비를 경유하는 귀로는 생각보다 멀고 지루했다. 하지만 평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지대의 거대한 십자가 아래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김 이사 사진을 찍으면서 뭉클한 느낌이 찾아든다. 삶은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만한 것이라는 자명한 명제가 뇌리를 스친 까닭이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