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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짜면`을 드시나요?

등록일 2015-07-31 02:01 게재일 2015-07-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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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어떤 사안(事案)이나 대상을 판단할 때 당신이 의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성인가 감성인가. 그도 아니면 제3의 요인이 존재하는가. 짜장과 짬뽕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는가. 맛과 향이 전혀 다른 음식을 앞에 두고 곤혹(困惑)스럽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짬짜면`이라는 기발한 음식이 만들어진 배경은 여기 있다. 곤욕(困辱)스러운 선택을 일거에 날려버린 창조적인 비방(秘方) `짬짜면`.

얼마 전 흥미로운 통계가 발표됐다. `인구의 90% 이상이 국토의 2.44%인 도시지역 내 주거지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전체인구 5천132만 명 가운데 91.66%인 4천705만 명이 특정지역에 몰려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특정지역에 사람이 대거(大擧) 몰리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 층간소음과 보복운전 같은 문제가 떠오를 것이다. 제한된 공간에 다중(多衆)이 어울려 살다보니 공간의 입체화가 필수적이다. 좁은 땅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고층화는 필연이다. 똑같은 형태의 거주공간이 만들어지고, 똑같은 장소에서 먹고 자는 판박이 인생이 전국 도처에 일상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층간소음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경쟁만능과 승자독식의 야만상태를 당연시하는 한국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가정교육은 오래전에 소멸(消滅)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세상. 공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회에서 공중도덕 같은 범주는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인 덕목에 불과하다.

보복운전도 비슷한 맥락(脈絡)을 가진다. 서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가 십상인 과속사회의 생존법칙은 `빨리빨리!`다. 그것은 양보와 겸양의 미덕이나, 여유로운 운전과 거기서 얻어지는 보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앗아간다. 서둘러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强迫)만 남을 뿐이다.

아파트나 연립주택에 살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침저녁으로 청소하면서 탁자나 의자의 소음방지에 마음 쓰는 사람은 얼마인가. 햇볕 바른 날 이불을 털면서 아래위층 생각하며 자제하는 사람은 또 얼마일까.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거룩한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반성적인 유일자(唯一者) 인간이다. 돌아봄이 없으면 나아감이 불가(不可)하고, 돌아봄에 철저하지 않으면 금수(禽獸)로 전락함은 필연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속도와 쏠림과 경쟁은 기초적인 성찰과 반성적 사유마저 유린(蹂躪)하고 있다. 어디로 나아가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돌이킬 여유 없이 저돌적(猪突的)으로 전진 운동할 따름이다.

소음과 매연, 열섬현상과 열대야, 층간소음과 보복운전이 일상화되어 있는 공간에 92%의 국민이 몰려 사는 나라. 국민들은 저마다 속도전에 나서야 하지만 불확실한 결과로 인해 괴로운 나라. 경제적인 양극화와 청년실업을 말하면서도 나와 내 자식은 예외(例外)라고 믿는 국민들의 나라. 자신이 이성적인 존재임을 확신하며 오늘도 활기차게 경쟁만능의 한복판으로 질주하는 인간군상의 나라 한국.

하지만 당신의 선택이 얼마나 이성적인지 생각해 보셨는가. 당신의 거주공간과 거주형태와 생활양식에 당신의 이성적 판단과 실천이 얼마나 작용했는지, 생각해보셨는가.

쏠림현상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심(尤甚)한 한국인들의 사유와 인식의 기저(基底)에 자리하는 공포와 희열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대열에서 이탈하면 그 즉시 패배자의 낙인이 찍히는 숨 막히는 사회의 억압이 장마처럼 눅눅하다.

인간은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판단하지만, 92%는 타성(惰性)과 관성(慣性)으로 결정한다. 우리가 보낸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내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관성과 타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자꾸 거울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결단(決斷)해야 한다.“짜장인지, 짬뽕인지?!” 오늘도 `짬짜면`을 주문하고 있을지도 모를 당신에게 권하노니, 과감하게 선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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