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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장대비를 기다리며!

등록일 2015-08-21 02:01 게재일 2015-08-2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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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우리는 청량(淸凉)한 비를 대망(待望)한다. 찔끔찔끔 내리는 비가 아니라, 대기와 대지의 열기를 날려줄 장대비를 기다리는 것이다. 생명의 원천인 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농부 입장에서 보면 비처럼 고마운 것이 세상에 다시없다. 대지와 햇빛과 어울려 풍성한 수확을 약속해주는 비 아닌가?! 보름 넘도록 비 구경하기 어려웠던 실정이고 보면 지금 창밖에 내리는 비는 귀한 손님이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기계를 발명한다 해도 비처럼 골고루 대지를 적셔줄 수는 없다. 비는 한 방울도 허투루 낭비되는 법이 없다. 특정한 논밭이나 과수원에만 비는 오지 않는다. 비는 골고루 내린다. 이것이 자연법칙이다. 미우나 고우나 자연은 품안의 대상물을 모두 포용한다. 하지만 지나치는 경우도 적잖다. 노자는 그것을 일컬어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다. 하늘과 땅, 즉 자연이 `인`하지 않다고 설파한 것이다. 왜 그런가?!

탄생과 죽음은 자연의 본원적인 `섭리(攝理)`다. 천지자연의 법칙은 그 생겨남과 소멸함에 더하고 빼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당면할 일을 당면하면서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유한(有限)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중생이 볼 때는 심하다 싶을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화산이나 지진, 태풍 같은 자연재해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불만과 저항감이 들 것이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일본에 불어 닥치는 태풍이 없었다면, 일본인의 3분의 1 정도는 사멸(死滅)했을 것이라는 정보도 있다. 태풍이 인간에게 자연재해로만 다가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량의 비와 강력한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는 말이다.

이해득실(利害得失) 면에서 현대인은 일면만을 취하려한다. 손해 보거나 양보하거나 물러서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누구나 이득을 보고자하고, 먼저 가려하며, 앞만 보고 전진한다. 성공한 자의 이야기만 난무(舞)할 뿐, 양보한 사람, 물러선 사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승리하고 성공하는 사람보다 패배하고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인간은 실패에서 배우지, 성공에서 배우지 않는다.

오죽하면 `엄친아`라는 희대(稀代)의 명언이 만들어졌겠는가?! 비교함으로써 자식의 진을 빼는 엄마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은 미래가 없다. 비교하는 엄마는 얼마나 대단하고 잘났는지, 생각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모두가 1등하면 3등은 누가 하고 꼴찌는 또 누가 할 것인지 진지하게 숙고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꼴찌 없이 3등 없고, 3등 없이 1등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왜 외면하는 것일까. 단역 없이 조연 없고, 조연 없이 주역 없다!

10여 년 전에 서울 주재 일본 특파원이`다이나믹 코레아!`라는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다. 정적(靜的)인 일본사회보다 훨씬 역동적인 한국사회를 일컬은 말이다. 그 안에는 부정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한국사회의 저력과 미래의 가능성만큼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그런 동력마저 시나브로 사라져간다. 서열과 위계로 획정되어버린 숨 막히는 사회구조의 폐쇄회로(閉鎖回路)가 눈을 번득거린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가지기로 한다. 앞날을 환하게 밝힐 우리의 어린것들이 아직 꿈과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청량한 장대비가 될 것이다. 특정한 지역과 계층과 패거리만을 대표하는 이 나라 정상배(正常輩)들의 가공할 폐쇄지향성을 말끔히 때려 부수고 21세기 세계화시대를 환하게 열어 가리라 믿는다. 아침 내내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치고 구름 뒤로 햇살이 환하다! 곧 바람이 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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