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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적 보편주의`의 그늘

등록일 2015-10-30 02:01 게재일 2015-10-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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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가 영국의 이라크 참전에 대해 지난 26일 사과했다. 잘못된 대량살상무기 정보에 따른 참전, 사담 후세인 제거이후 이라크 미래전망 부재, 이슬람국가의 창궐(猖獗) 등에 대한 부분적인 책임을 시인한 것이다. 반면에 그는 2011년 `아랍의 봄`에 미친 이라크 전쟁의 긍정적인 측면과 이슬람국가가 시리아에서 발호했음을 강조하는 양동작전을 구사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영국의 이라크 참전경위에 대한 `칠콧 보고서` 공개가 임박한 시점에 이뤄진 블레어의 사과는 즉각적(卽刻的)인 반발을 야기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 지시로 6년 전에 조사를 시작한 `칠콧 보고서`는 공개 전에 당사자에게 반론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공개가 미뤄져왔다. 이것을 노린 블레어의 지연과 회피전략이라는 게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같은 사람들의 비판적인 입장이다.

2003년 전격적(電擊的)으로 이뤄진 미국의 대(對) 이라크 전쟁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이라크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걸고 전쟁을 시작한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생중계된 이라크 전쟁 결과 사담 후세인은 제거됐다. 하지만 부시가 공언(公言)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거짓말이 들통 나는 순간이었다.

애시 당초 조지 부시의 양키 아메리카가 노린 것은 네 가지였다. 이라크 내의 석유자원 확보와 중동장악, 반미 (反美) 성향의 후세인 제거와 신형무기 시위가 그것이다. 그것들을 교묘하게 포장(包裝)한 표어가 이라크 민중해방과 민주주의 건설, 대량살상무기 제거였다.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같은 매파가 주도한 전쟁의 충실한 앞잡이가 영국수상 토니 블레어였음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우리는 유럽과 그 후예(後裔)인 아메리카가 16세기 이후 지금까지 세계 전역과 국가에 개입해왔음을 알고 있다. 20세기 인류 최대의 야만행위로 기억되는 베트남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본보기다. 그들은 이른바`신대륙 발견`이후에는 기독교를 가지고, 19세기에는 `문명화`의 이름으로, 20세기 이후에는 `인권과 민주주의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세계를 무대로 전횡(專橫)을 일삼아온 것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적시한 서책이 예일대 석좌교수 임마누엘 월러스틴의 `유럽적 보편주의`(2008)다. 그의 주장은 간명(簡明)하다. 21세기에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보편주의가 아닌, 세계적 보편주의 내지 `보편적 보편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500년 넘도록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유럽과 미국 주도의 움직임이 종식(終熄)되어 세계 시민들이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구촌 일원(一員)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럽적 보편주의의 깊고도 너른 그늘을 날마다 확인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아랍세계의 분열, 이슬람국가와 시리아 난민사태, 아프리카 곳곳에서 자행(恣行)되는 종족분쟁 등의 씨앗은 모두 제국주의 유럽이 잉태한 것이다. 유럽적 보편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적 보편주의로 나아가는 길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각각의 국가와 세계 시민들의 자각된 근대의식과 실천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의 푸들` 블레어는 어정쩡하게 사과하면서 면피(免避)하려고 한다. 반면에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은 당수선출 과정에서 이라크 침공에 관여해 이라크 국민에게 고통을 준 사실에 대해 노동당을 대표해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의 진심어린 사과가 이라크 국민들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바란다. 나아가 이라크 전쟁 같은 불상사가 재발(再發)하지 않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만 밝히고자 한다. 이라크 전쟁 도발자 조지 부시의 고향 코네티컷에는 이런 팻말이 서 있다고 한다. “코네티컷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는 조지 부시가 태어난 곳입니다. 여러분께 사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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