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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이 신기루였다고?!

등록일 2016-01-29 02:01 게재일 2016-01-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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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2010년 12월 튀니지 남부도시 시디 부지드 거리에서 청과물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경찰 단속으로 과일과 좌판(坐板)을 빼앗긴다. 대졸 노점상이자 26세 청년 부아지지는 시청에 찾아가 항의하지만 당국은 귀를 막는다. 그는 2010년 12월 17일 시청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이 소식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급속히 퍼져나가 시위를 촉발한다. 이듬해 1월 4일 부아지지가 사망하자 시위는 확산일로를 걷는다.

튀니지 시위는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퍼져나간다. 거명된 나라는 하나같이 독재정권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재기간은 튀니지의 벤 알리 24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30년, 예멘의 압둘라 살레 33년, 리비아의 카다피 42년에 달한다. 여기에 청년실업, 빈부격차, 물가폭등이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들은 부아지지 분신사건이 일어나자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분노를 공유(共有)하고 시위를 확산시킨 것이다.

우리는 시위결과를 알고 있다. 알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살레는 미국으로 망명도생(亡命圖生)한다. 무바라크는 투옥되고, 카다피는 시민군 총에 목숨을 잃는다. 상전벽해(桑田碧海) 같은 변화가 불과 1년 안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쓸고 지나간다. 작년 9월 2일 터키 해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세 살 박이 아일란 쿠르디 역시 시리아에 불어 닥친 아랍의 봄 희생자다.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시리아 소요사태는 언제 막을 내릴 것인지 종무소식이다.

아랍의 봄은 튀니지를 제외하면 현상적(現象的)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5년 전 시민들이 독재자들과 맞붙었던 리비아, 시리아, 예멘, 바레인은 내전으로 상황이 심각해졌거나 여전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봄`은 그냥 오지 않는 법인가 보다. 아랍의 봄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1980년 `서울의 봄`이 떠오른다. 박정희 군부독재 18년을 끝장내고 드디어 민주주의를 꽃피우리라 굳게 믿었던 서울의 봄!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아랍세계와 이슬람을 모른다.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면 전혀 모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미국의 눈을 통해서 한국은 세상을 본다. 중국을 섬기던 때는 중국의 눈으로, 일본의 종살이를 할 때는 일본의 눈으로 세상을 본 것과 매한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물 안 개구리`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홀로 서려는 일체의 노력을 포기한 채 큰 나라에 기대어 사는 사대근성이 체질화된 탓이다.

이른바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유럽은 식민지 획득에 그럴 듯한 논리를 들이밀었다. 예일대 석좌교수인 월러스틴에 따르면, 첫 번째가 기독교 전파요, 두 번째는 문명화이며, 세 번째는 인권과 민주주의다. 이 모든 것에 기초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아주 미소(微小)하다 하더라도 동양문명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지도편달을 받아야 한다는 `오리엔탈리즘`.

어쩌면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을 가장 깊은 곳까지 내면화시킨 민족이자 국가의 구성원인지 모른다. 미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기초해서 세상만사를 판단하는 고위관료들의 행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전통과 습속은 자취를 감추고, 그저 미국과 유럽의 기준이 최고권위를 가진다. 그러다보니 남북한 문제에서도 북한을 제외한 `5자회담` 얘기마저 나온 것이다. 참으로 희화적(戱畵的)이고 우울한 장면이다.

아베와 위안부 협상을 할 때도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제외하더니, 남북한 문제의 당사자인 북한을 빼고 회담하려고 한다. 미-중-일-러 네 나라 외교 담당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동서 도이칠란트가 재통일하는 과정에서 서도이칠란트가 동도이칠란트를 제외하고 네 나라와 협상했던가?! 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피는 물보다 진한 법” 아닌가! `아랍의 봄`에 `서울의 봄`이 겹쳐지는 눈물겨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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