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남쪽 호주 멜버른은 한창 여름이 진행중이다. 반팔을 입고 다니는 길거리의 사람들이 여기가 남반구임을 느끼게 한다. 10여시간의 비행으로 이렇게 날씨가 바뀐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여기서 한국의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자세히 듣는 것이다. 사실 한국뉴스가 많지 않은 이곳 호주에서 한국 국회의 상황이 뉴스미디어에 상세히 보도된다.
필리버스터(filibuster) 또는 무제한 토론, 합법적 의사진행방해는 입법부나 여타 입법 기관에서 구성원이 어떤 안건에 대하여 장시간 발언하여 토론을 포기하고 진행되는 표결을 지연하거나 막고자 하는 행위이다.
필리버스터라는 말은 1851년에 처음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낱말은 에스파냐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필리버스터란 표현은 미국에서 보통 미국 중앙 정부를 전복하고자 하던 남부 주의 모험가들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지금의 뜻으로 발전됐다고 한다.
영국식 영어를 쓰는 이곳 호주는 의회 선진국 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필리버스터가 의원들의 투쟁 수단으로 종종 쓰이곤 한다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직권상정을 저지하기 위해 시작된 필리버스터가 39명의 발언자가 200시간에 가까운 장시간의 발언을 마친 후 2일 종료됐다고 한다. 연속 필리버스터로는 세계 기록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최장 기록은 지난 2011년 캐나다에서 기록된 58시간이었다고 하니 한국의 기록은 대단한 것으로 느껴진다.
AP통신은 “한국 야당이 세계 역사상 최장의 필리버스터 기록을 수립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개인 최장기록은 정청래 의원의 11시간 39분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세계기록은 아니라고 한다. 1957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출신의 상원의원인 스트롬서먼드는 민권입법을 방해하려는 남부 출신의 상원의원들에 의한 시도의 일환으로서 24시간 이상을 발언했는데, 이것이 세계기록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회의원들은 개인의 끈기는 세계정상은 아니지만 여러명이 힘을 합하는 릴레이끈기는 세계 정상인듯 하다.
사실 필리버스터는 1973년 개헌전까지 있던 제도였으며 1964년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5시간이 넘는 연설로 유명해졌다는 기록도 있다. 그후 2012년 국회법 개정 이후 다시 필리버스터가 도입되었는데 첫 실험대상이 국가안보에 중대한 `테러방지법`에 적용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AP통신은 “야당은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막을 충분한 대책이 없다는 이유로 이 법을 반대한다”면서 “한국의 정보기관은 과거 정치에 개입한 역사가 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정보기관을 이끌었던 수장은 약 1천800명에 이르는 정치인과 민간인, 언론인을 사찰한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지적했다.
사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 당시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사찰이 정치적인 이유로 실시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은 아니다. 민간인 사찰이 테러나 국가전복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실시된다면 그건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의 점증하는 테러위협으로 테러방지법 제정이 매우 필요한데도 과거 그러한 정보기관들의 불행한 역사로 인해 법이 통과되지 못하는건 매우 큰 유감이다.
그러나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은 국회가 국민들로 하여금 `테러방지법`의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있고, 그 중요성을 알리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필리버스터가 잠자던 시민들의 정치 본능을 일깨우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제 정상화가 된 국회에 호소하고 싶다.
필리버스터에서 보여준 의원 개개인의 끈기와 단결력을 꼭 대한민국 국가의 발전을 위해 써 달라고 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안보에서 한국이 풀어야 할 과제는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필리버스터의 끈기로 꼭 이러한 문제들을 잘 풀어달라고 주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