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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와 곤줄박이

등록일 2016-03-18 02:01 게재일 2016-03-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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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아침을 준비하다가 창밖의 기척이 느껴진다. 눈 들어 보니 곤줄박이가 창안으로 들어오려고 날갯짓한다. 닫힌 유리창이 곤줄박이를 들여보내줄 리 없다. 하지만 곤줄박이는 자꾸만 날개를 파닥거리며 안간힘을 쓴다. 포기하는가 싶더니 곤줄박이는 거실 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다시 날갯짓하면서 곤줄박이는 창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얇고 투명(透明)하지만 견고한 거실 유리문이 곤줄박이를 막는다. 하릴없이 돌아서 날아가는 곤줄박이.

무엇이 곤줄박이의 눈과 마음을 끌어당긴 것일까. 자신과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거주공간을 욕망하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인가 먹을 것이 있었든지 혹은 둥지 틀기에 좋은 장소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도로(徒勞)에 가까운 허망한 날갯짓은 설명할 수 없다. 하기야 언젠가 복숭아 과수원에 버려진 종이상자에 구슬보다 조금 큰 알을 낳아 품고 있는 박새를 본 적이 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의 담대함이라니!

지금 나는 연구실 창안에 있다. 봄볕이 따사로운 산책길을 따라 인총(人叢)들이 한가로이 걸음을 옮긴다. 안에 있는 나는 밖을 느끼지 못한다. 곤줄박이처럼 유리창에 날개를 부딪쳐가며 밖을 연모(戀慕)할 수는 없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 수도 없다. 낯선 행동이거나 금지되어 있거나 위험하기 때문이다. 창밖 세상을 몸소 느끼려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거리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의 곤줄박이는 그것을 모른다.

안에 있는 사람은 밖을 그리워하고, 밖에 있는 자는 안을 지향한다. 무식한 자는 지식을 탐하고, 부자는 권력을 꿈꾸며, 권력자는 돈을 욕망한다. 일찍이 장자는 `내편`<양생주>에서 지식의 폐해를 갈파(喝破)했다. 유한한 인생을 사는 인간이 무한한 지식을 갈구하는 행위가 위태롭다고 말한 것이다. 지식은 돈과 권력으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도 있다. 무한한 재화와 권력을 욕망하는 것은 결국 재난과 파멸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전국시대 동란(動亂)의 시공간을 살면서 장자가 느낀 것은 허망한 권력과 은자(隱者)의 생존방식이었다. 권력자의 호오(好惡)에 따라 문득 상실되는 권력의 신기루(蜃氣樓)! 그것과 결부된 사자성어 `예미도중`은 장자의 흉중을 웅변한다.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너머로 숨어버린 노자와 달리 저잣거리에 은둔하면서 유유자적했던 장자. 재상자리를 주겠다는 권력자의 제안을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한 패기와 지혜의 장자.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권력과 연관된 자들의 다채로운 행태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나는 그들에게 권력의 요체(要諦)와 쓰임을 묻고 싶다. 누구를 향한, 무엇을 위한 권력추구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돈과 지식 혹은 경륜(經綸)을 어디에 쓰려고 저토록 무진 애를 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을 위해 나섰다면 시대의 등불 노자와 장자가 숨어버린 뜻은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곤줄박이는 끝내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창밖에서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혀버린 것이다. 멧비둘기들 역시 애초의 희망을 관철(貫徹)하지 못했다. 둥지를 틀만한 장소가 아니었음을 간과(看過)하고 무작정 일을 시작한 탓이다. 열심히 하면 결과도 좋아지리라 여긴다면 어리석은 자일 터. 일에는 순서와 요령과 집중력이 소요되는 까닭이다. 지식, 권력, 돈과 결부한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평생 최고의 지식인으로 살았지만 장자는 빈한(貧寒)했다. 빈한했지만 장자는 돈과 권력을 탐하지 않았고, 그로써 천수를 누렸다. 지극히 제한적인 시공을 향수하는 인생의 유한함을 몸소 실천한 장자. 숱한 일화와 우화로 시대를 밝힌 무한 상상력의 소유자 장자. 그를 떠올리며 부평초(浮萍草)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는 이 나라 정치인들을 생각한다. 곤줄박이와 멧비둘기의 허망과 실패가 어디서 발원하는지 숙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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