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바둑을 두다가

등록일 2016-04-01 02:01 게재일 2016-04-01 18면
스크랩버튼
▲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나는 어릴 적부터 바둑을 두었다. 외숙(外叔)이 아마 5급 정도 되는 기력을 갖추고 있어서 그분에게 바둑을 배운 것이다. 아홉 점을 깔고도 무수하게 죽어나가는 나의 대마(大馬)를 볼 때마다 가슴 서늘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느 정도 기초를 배우고 난 다음에는 정석과 포석(布石)을 다룬 서책을 읽으며 기력향상을 시도했다. 그때 나온 바둑서적은 대개 일본 기사들의 책을 번역하거나, 그들의 대국(對局) 해설집이었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바둑. 하지만 바둑은 종주국 중국에서 오래도록 망각돼 있었고, 이런 정황은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광개토왕의 정복전쟁을 계승한 장수왕은 백제의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그는 고구려 승려 도림을 첩자로 만들어 백제에 파견한다. 개로왕은 도림의 꾐에 빠져 국사(國事)를 내팽개치고 바둑에 빠져든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적용된 사례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은 바둑을 잡기에 넣는데 익숙하다. 이른바 `주색잡기(酒色雜技)`에서 바둑과 장기를 잡기의 대명사처럼 되뇌어왔던 것이다. 그런 바둑을 일본인들은 `도(道)`의 경지로까지 승격시킨다. 이른바 `기도`의 탄생이다. 이것은 중국에서 시작돼서 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차`문화의 융성과 맥을 같이 한다. `다도(茶道)`라는 말이 얼마나 지난 세기 90년대 한반도를 강타했던가?! 바둑 역시 같은 경로를 거쳐 역수입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고수(高手)들, 조남철-김인-윤기현-조훈현으로 이어지는 국수(國手)의 맥은 일본 유학파들이었다. 한국토종 기사 서봉수는 국수라기보다 명인(名人)으로 곧잘 불린다. 여하튼 이창호라는 불세출의 기사가 출현하기 전까지 한국바둑은 일본바둑에 전면적으로 의지해서 성장했다. 이것은 기록으로도 입증된다. 최근자료에 따르면 1765년 출간된 `기론(碁論)`이 한국바둑의 최고기보라 한다. 이것 역시 치밀한 고증을 거쳐야 할 작업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1588년 어전시합이란 명목으로 바둑 전국대회를 개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때 우승한 승려 닛카이에게 풍신수길은 `본인방(本因坊)`이라는 이름을 하사(下賜)했는데, 25대 본인방으로 등극한 이가 조치훈 9단이다. 400년이 넘도록 지켜온 본인방의 전통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다. 각설하고, 이런 식으로 일본은 바둑과 차 문화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린 당사자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임금 앞에서 두는 이른바 `어성기` 기록 역시 빼놓지 않고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서기` 30권이 720년에 완성되었는데, 김부식의 `삼국사기` 50권이 1145년에 집필된 점을 고려하시기 바란다. 중국과 한국을 젖혀두고 일본이 오래도록 바둑 종주국 행세를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물론 세계 바둑계를 석권하는 기사들은 한국과 중국기원 소속이다. 그러나 바둑의 역사와 기록은 여전히 일본이 가히 독보적(獨步的)이다.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人工知能)의 가공(可恐)할 지적 능력에 놀라워했다. 거기서부터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혹은 전쟁까지 상상하는 일이 생겨났다. 영화에서는 `터미네이터`(1984)가 그런 세계를 이미 오래 전에 열어젖히지 않았던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구체적인 직업까지 거명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교육은 어떠한가?!

우리는 유치원 이전부터 영어와 수학 암산 같은 지식 교육으로 어린것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학원으로 향하는 5~6세 아동부터 20살 재수생까지 그들은 판에 박은 암기공부에 절망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의 진단(診斷)에 따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공부에 몸과 마음을 혹사당하고 돈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교육이 어제처럼 자행(恣行)되고 있는 것이다. 바둑을 두면서 조만간 불어 닥칠 미증유의 변화와 대학입시와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