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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음의 교훈

등록일 2016-04-14 01:34 게재일 2016-04-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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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의호<br /><br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 서의호 포스텍 교수·산업경영공학과

불과 5초. 그 짧은 시간에 핸드폰이 탁자 위에서 사라졌다.

지난주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장 중 한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일어난 일이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탁자 위에 놓은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지금은 한국에서는 거의 사라져간다는 날치기를 당한 순간이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그런 날치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지만 막상 눈 앞에서 벌어진 풍경은 믿기 힘들었다.

그 순간 머리 속에는 40여 년 전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잃어버린 책이 오버랩 되었다. 그때도 무슨 이유인지 책이 사라진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책에 대한 애착감이 컸기에 몇 일을 책을 찾으러 돌아다니던 필자를 보면서 기숙사 식당 아주머니가 너무 애처롭다고 다독여 주며 위로해주시던 고마움이 기억된다. 잃음의 상실감은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직위, 권력이든 정말 큰 것이다.

어제 4년마다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현역의원들 중 의원직을 공천을 받지 못했든가 아니면 어제 선거에서 패하여 의원직을 상실한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그들의 상실감은 충분히 상상이 간다. 오랫동안 의원직을 유지했던 다선 국회의원일수록 그 상실감은 훨씬 클 것이다.

일반적으로 책임을 갖고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갖는 자리에서 물러난 후 상실감과 공허감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 중에서 대학총장을 8년을 하고 물러난 친구가 한동안 마음의 공허감과 상실감으로 고생하는 것을 지켜 본 적도 있고, 장관을 하다가 물러난 친구들도 거의 예외 없이 한동안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유발되는 향수(nostalgia)도 옛 행복에 대한 상실감에서 비롯된 슬픈 감정이라고 한다.

잃는다는 건 정도는 차이가 있어도 누구에게든 상실감을 준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순간적으로 사라진 핸드폰을 생각하면서 며칠간 거의 잠도 오지 않았다. 거기 가족, 친구들과 함께한 수 백 장의 사진이 그대로 저장되어 있었는데 그러한 소중한 추억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진을 다른 곳에 저장하는 백업을 하지 않았기에 더 상실감이 컸다. 그 사진 속에는 지난 추억과 역사들이 있기에 아쉬움으로 마음이 힘들었다.

그건 대학 때의 상황도 같았다. 잃어버린 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정이 든 물건이었다. 그건 가슴에 안고 다니면서 늘 읽었던 책이기에 사람이 아닌 물건에 대한 애정도 쉽게 포기하기 힘든 것이었다.

아마도 잃음의 상실감의 정점은 사람을 잃는 것일 것이다. 필자도 경험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픔과 고통을 준다.

그런데 잃음에서 교훈을 얻을 수는 없을까? 잃음은 상실감과 고통만을 주는 것일까? 이번 핸드폰을 잃으면서 사진보관의 중요성과 자동보관 기능을 알게 되었다. 친지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사진도 많이 받게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보너스이다. 대학 때도 책을 잃은 후 책의 소중함을 더 깨닫고 책과 거기에 담긴 내용들에 더 강한 애착을 가지고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가족에 대한 사랑의 소중함을 더 느끼고 삶의 태도에 변화를 보이는 경우를 우린 흔히 본다.

어제 선거로 의원직을 상실한 의원들께도 같은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의원직 상실로 상실감은 크겠지만 그건 다시 국가를 생각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국회의원직이 개인의 이익이 아닌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직이라는 것, 국민이 가장 무섭게 섬겨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된다면 그분들의 정치적인 역정에 전화위복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잃음은 상실감만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잃음에는 교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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