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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찾는 사람들

등록일 2016-05-13 02:01 게재일 2016-05-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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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수피우화`를 읽으면서 기시감을 느낀 적이 있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친밀함이 살갑게 다가온 때문이다. 논리 정연하고 사변적이되 수다스러운 철학자들을 촌철살인(寸鐵殺人)으로 날려버리는 수피의 지혜. 이슬람의 수피는 유대의 랍비나 불가(佛家)의 조사(祖師)처럼 도저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수피(Sufi)`는 양털을 뜻하는 어휘 `수프(Suf)`에서 나왔다. 수피가 양털로 짠 외투를 입고 청빈한 생활을 한 데서 어원이 만들어진 듯하다.

성스러운 여성이자 수피였던 라비아가 바늘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오두막 바깥에서 바늘을 찾는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라비아를 도와 바늘을 찾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어두워졌는데도 바늘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녀가 바늘을 잃어버린 장소를 묻는다. 라비아는 집 안에서 잃어버렸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고 황당해한다. 그녀는 안보다 바깥이 더 밝기 때문에 밖에서 바늘을 찾고 있다고 덧붙인다.

라비아의 답변에 허망(虛妄)해진 사람들이 비아냥거린다. 그녀의 응수를 보자.

“그대들 자신을 돌아보라. 그대들 또한 밖에서 찾고 있지 않았던가. 그대들이 찾고 있던 것은 사실 안에서 잃어버린 게 아니더냐. 그대들은 진리와 구원(救援)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안에서 잃어버린 게 아닌가. 하지만 그대들은 바깥에서만 그것을 찾지 않았더냐. 바깥이 밝으니까, 밖은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바깥에서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비아의 말은 명쾌하다. 우리가 구하는 진리와 구원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아니하고,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노자의 사유(思惟) 한 자락이 기시감처럼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만의 일인가?!

“사립문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열지 않아도 하늘의 도리를 본다. 멀리 가면 갈수록 그 앎은 작아지나니. 그러므로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며, 보지 않아도 밝고, 하지 않아도 이룬다.”(도덕경·제47장)

`무위자연`을 설파한 노자는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섭리를 천하 주유(周遊)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고자 한다. 사물과 관계가 `스스로 그러하도록 놓아두라`는 달관한 사상가 노자의 그윽함이 감촉(感觸)되는 장면이다.

수피나 노자가 아니더라도 다산(茶山) 또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신유박해`로 강진에 유배(流配)된 다산은 한양과 흑산도의 가족과 서신으로 교통한다. 한양의 아들들과 섬으로 유배된 둘째 형님 약전과 편지하며 내면을 토로(吐露)했던 다산. 그것을 한 권으로 묶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크고 작은 깨달음과 통렬한 비판으로 충만하다. 정조의 신료(臣僚)였던 정약용이 조선 지식인들의 사대주의를 비판한 것에 눈길이 간다.

청나라에서 내려주는 서책으로만 정신적 자양(滋養)을 삼았던 무비판적인 조선의 지식인들이라니! 중국인들의 사유와 인식을 앞 다퉈 베껴댔던 조선의 매판적(買辦的)인 관료와 지식인 계층에 대한 다산의 신랄(辛辣)한 비판은 정곡(正鵠)을 찌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일본유학의 전통과 비교할 때 자생적이고 민족적이며 전통적인 기반을 완전히 상실한 조선유학의 근거 없음에 대한 다산의 비판은 실로 비난에 가까운 것이었다.

문제는 그런 방법론 내지 세계관이 21세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 지식인들의 작업이라고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외국의 이론을 직수입해서 지식 소매상 노릇을 선점(先占)하는 것이다. 이런 뿌리 깊은 지식 사대주의는 천석고황 수준이어서 난치병이 아닌지 생각한다.

최소한도의 자존심과 역사의식이 있다면 남의 나라 지식인과 지식을 베끼고 전수(傳受)하고 팔아먹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 모자라고 아쉽더라도 독자적이고 고유한 것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방법을 찾을 일이다. 집 안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이집 저집 두드리며 찾아다니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할뿐더러, 성과도 미미(微微)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우리에게 소용되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참을성 있게 찾고 또 찾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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