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대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지난주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름이다.
그는 이번 5박6일의 방한에서 `반기문 대망`을 심는데 꽤 성공했다. 국민지지율은 2주 연속 상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대권 도전`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그의 대권 출마를 기정사실로 확신하는 분위기다. 그가 “내년 1월1일이 되면 이제 한국 사람이 되니 한국 시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는 그때 결심하고, 필요하면 여러분에게 조언을 구할 것”이라고 한 말은 유엔 사무총장을 끝낸 후 그냥 놀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힌 것이다.
출마 선언만을 남겨놓은 가운데 반기문 신드롬은 여야를 막론하고 앞으로의 대권구도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여야 불문 정계개편에까지 메가톤급 파괴력을 보일 가능성도 있다.
반기문의 대망은 사실 고교 시절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그 시절 외교관은 많은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필자도 고교시절 20년후의 자기 모습에 대답하는 퀴즈에서 “유엔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낮잠 자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세계를 누비는 외교관은 여러 청소년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반 총장에게 1962년 기회가 찾아왔다. 충주고 3학년 반기문 학생은 그 해 여름 한 달간 미국적십자사가 주최한 `청소년 적십자 국제견학계획 (VISTA)`에 참가했다.
한 달 동안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은이들과 함께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미국 문화도 체험하고 토론도 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의 마지막은 미국 각지에서 흩어져 생활하던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워싱턴에 집결해 백악관을 방문하고 케네디 대통령을 면담하는 일정이었다. 반 총장도 “케네디 대통령과의 만남이 내가 외교관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반 총장의 대권 유력후보설은 이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실 유엔 사무총장을 하고 난 후 자국 정부에서 일한 경우는 심심치 않게 있었다. 임기 중에 사망한 2대 함마슐트를 제외한 과거 유엔 사무총장 6명 중 3명은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뒤 자국 정부에서 일했다. 사무총장 중 거의 반이 자국정부를 위해 일했다는 통계이다.
특히 이 가운데 4대 쿠르트 발트하임은 퇴임 후 오스트리아 대선에 출마, 당선돼 대통령을 지냈다. 또한 5대 케야르도 퇴임 후 페루 대선에 출마했지만 후지모리 대통령에 패한 후 총리 겸 외무장관을 맡았었다.
왜 사람들은 반기문에 열광하고 반기문 신드롬에 빠져드는 것일까?
우리는 반기문 신드롬을 정면으로 쳐다볼 필요가 있다. 반기문 신드롬은 그가 UN 사무총장이라는 국제적 명성 때문일 수도 있고, 외교관 출신으로서 오랜 공직경험과 정치에 물들지 않은 순수성 때문일 수도, 또한 막연히 성공한 한 사람으로서의 존경 대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신드롬은 국내 정치에 대한 실망감과 여기서 파생된 국민적 욕구가 기존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인물에 대한 기대로 분출된 현상이다.
그동안 한국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태는 부끄러운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필요가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그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끊임없이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또한 이러한 경험과 노하우(지식)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정치인들이 깨끗한 신분을 유지하고 지위남용을 하지 않는 건 절대적인 조건이다. 또한 무엇보다 국민을 우선에 두고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치인들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반기문 신드롬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반기문 총장이 대통령에 출마할 지 결국 대통령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반기문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는 현 정치를 개선해야 하고 한국 정치가 선진화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는 한 제2, 제3의 반기문 신드롬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