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혼자만을 위한 식탁

등록일 2016-06-17 02:01 게재일 2016-06-17 18면
스크랩버튼
▲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그것은 어렴풋한 기억이다. 간유리로 보이는 사물처럼 뿌옇고 막연하다. 하지만 이미지만큼은 생생하다. 식탁 가득 음식을 차려놓은 여인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뭐, 어때! 나 혼자만을 위한 식탁을 차리는 게!” 아마 화면(畵面) 속의 여인은 그렇게 말했던 듯하다. 항상 함께 했던 `그`의 존재는 지워지고 오롯하게 남은 여인의 화사(華奢)한 얼굴이 선하다. 오래 전 보았던 텔레비전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500만을 넘었다는 방송보도가 얼마 전에 나왔다. 30년 전에 비해 8배 이상 늘었다는 보도와 함께 10가구 가운데 3가구가 1인 가구라는 통계도 나왔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는 가히 `넘사벽`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수준이다. 2005년 동성동본 금혼폐지 이전에 적잖은 청춘남녀가 전근대적인 풍속 때문에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요즘 대학가에 넘쳐나는 동거습속은 얼마나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인가?

불과 30여 년 전에는 낯설었던 1인 가구가 한국가정의 주류(主流)를 형성하게 됐음은 경이로운 현상이다. 가공할 속도의 시대에도 한국인들은 구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의 단적(端的)인 예가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다. 언제 시집가고 장가갈 것인지를 묻는 집안 어른들 때문에 괴로운 청춘들의 이야기는 너무 흔하다. 세태풍속의 변화와 내 자식과 손자들은 무관하다는 무의식(無意識)의 범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1인 가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1인용 식탁을 양산(量産)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시장에서도 1인용 식재료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사정은 영 딴판이다. 적어도 3~4인 가구 기준으로 식재료가 판매된다. 사자니 남아서 버려야 하고, 안 사자니 그럴 수 없는 지경이다. 1987년 쾰른 거리시장에서 수박을 8등분해서 파는 것을 보고 경악(驚愕)한 일이 있다. 1인용 판매를 본 적이 없는 토종 한국인의 망양지탄(望洋之嘆)이라니!

수박 1통의 가격은 8등분한 수박 1통과 동일했다. 많이 산다고 해서 깎아주지도 않고, 적게 산다고 해서 손해 보지 않는 그들의 염량세태(炎凉世態). 이제야 그런 풍속도가 온전히 이해되는 것이다. 당시 도이칠란트에는 1인 가구가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훗날에야 깨달은 셈이다. 유럽이나 미국을 보면 일본이 보이고,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이는 것이 역사발전 단계인가? 여하튼 1인 가구가 시대의 대세(大勢)로 자리 잡은 것은 명백하다.

문제는 1인 가구의 세대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주는 것이다. 작게는 식재료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적 편견의 해소(解消)가 필요하다. 왜 혼자 사는지를 묻기 전에 혼자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사회의 1인 가구는 20~30대에 국한(局限)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고독사(孤獨死)로 세상과 작별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정확한 통계수치조차 없는 해괴한 나라 아닌가?

여기 더해서 미혼모(未婚母)라든가, 이혼한 남녀, 가출 청소년, 사회 부적응자(不適應者)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배려가 필요한 영역은 헤아리기 어렵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얕은 인식에서 기인하는 편 가르기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사안(事案)을 들여다봄이 온당할 것이다. 그날 1인용 식탁에 차려진 풍성한 음식을 보면서 나는 쓸쓸했다. 역시 누군가 옆에 있어야 제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시공간과 인과율마저 무너져 내리는 `인터스텔라`의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19세기 암흑천지에서 배회하는 영혼들의 아우성이 오늘도 하늘을 찌른다.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