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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길을 걸으며

등록일 2017-03-24 02:01 게재일 2017-03-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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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래 시조시인
▲ 김병래 시조시인

들길을 걷는다. 한차례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성큼 다가선 봄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들녘에는 미처 퇴각하지 못한 겨울의 잔병들을 몰아내며 봄의 혁명군들이 진군해 오고 있다. 적진 깊숙이 침투해서 은밀하게 게릴라전을 펼치던 냉이꽃 봄까치꽃 광대나물꽃들이 이제는 승리의 환희로 본대를 맞고 있다. 아아, 불가항력으로 봄이 진군해 와서 구악과 폐습을 무찌르고 눈부시게 찬란한 새 천지를 열고 있다.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해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들판은 오랜 세월 우리 삶의 터전이었고 자자손손 핏줄을 이어오게 한 젖줄이었다. 이 땅에 태어나서 이 들녘에서 생을 다 소진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간 무수한 우리네 조상들의 살과 피와 땀과 한숨과 눈물이 뒤섞인, 그야말로 땅과 사람이 하나로 뒤엉킨 신토불이의 장(場)이었다. 언제 만나도 한결같이 반갑고 만날수록 정이 더 깊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들판과 같은 마음을 가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들길을 걷는 마음은 한가롭다. 비록 사는 일이 옹색하고 힘겨울지라도 들길을 걷는 동안은 다소간의 여유와 평안을 얻을 수가 있었다. 불가에서는 행선(行禪)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에게도 오랜 세월 들길을 걷는 것이 옛 사람들이 말한 일종의 도(道)의 수행이요 공부였던 것 같다.

들길을 걷고 또 걷는 것으로 고통과 좌절과 슬픔을 견디고 이겨낼 위로와 힘을 얻고, 얽히고설킨 삶의 매듭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었다.

아무리 넓은 들이라도 경계가 있고 제각각 그 소유자가 있어서 사고 팔기도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결코 소유할 수 없는 무한한 것들이 들에는 있다. 논과 밭의 주인들이야 소유권의 대가로 얼마간의 곡물이나 돈을 쥘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을 소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는 인생의 주제에 자연의 일부를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소로운 오만이고 착각인가. 들에는 사람들이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수확해 갈 수 없는 풍성한 계절이 있고 찬란한 생명의 잔치가 있다. 누구나 언제라도 동참할 수는 있으나 개인의 소유로 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 들은 날마다 들길을 걷는 사람의 몫이고, 들길을 걷는 것만으로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부자일 수가 있는 것이다.

들길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길이다. 농부들도 이제는 신명이 나서 들길을 오갈 일이 없겠지만 나처럼 어슬렁대며 들길을 걷는 것도 분명 시대에 맞지 않는다. 더 빨리 앞서가고 더 많이 차지하는 것만이 이기고 살아남는 길이 되어버린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한가하게 들길이나 걷는 것이 무슨 경쟁력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런 욕심과 강박증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보다 소중하고 무한한 것들이 들에는 있는 것이다.

봄이 오고 있다. 아무것도 애쓰고 보태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찾아오는 봄이다. 누가 욕심을 내서 싹쓸이를 하거나 쇼핑백에 채워갈 수는 없는 봄이다.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주어지는 봄이지만 누구에게나 다 같은 봄은 아니다. 재물이나 권력에 골몰하는 자들의 봄과 한가로이 들길을 거니는 사람의 봄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어수선해진 시국에 한가롭게 봄타령이 다 무엇이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하기 전에도 봄은 있었고 인류가 멸종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오는 것이 봄이다.

뭐가 어쨌거나 이 봄 내 재산 목록 일호는 바로 봄이다. 이 봄의 햇볕과 바람과 만물이 소생하는 들녘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누구하고 소유권을 놓고 시비를 할 필요도 없고 욕심을 내서 퍼 담을 필요도 없다. 권력의 빈자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편을 갈라 이전투구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질없고 무기력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격앙되고 소란한 세상일수록 오히려 이만치 물러서서 한가롭게 들길이라도 걸어보는 여유와 방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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