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자연과 기적

등록일 2017-05-12 02:01 게재일 2017-05-12 17면
스크랩버튼
▲ 김병래<br /><br />시조시인
▲ 김병래 시조시인

신앙의 유무를 막론하고 살아가면서 한 번도 기적을 바란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불치의 병으로 죽어간다거나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지경에 처했다거나 하는 등의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좌절하고 체념하기에 앞서 기적이라도 일어나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즉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奇蹟)`이라고 한다. 그리고 기적이라는 것에는 흔히 종교적 의미가 부여되는데, 자연의 질서에 종교적 가치로서의 `성스러움`이 개입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신앙하는 초월자(神)의 능력이 자연법칙의 일부를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신념이 바로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표방하는 신앙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가상을 해서, 누가 사고로 손가락 하나를 잃었는데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그게 다시 생겨났다고 한다면 종교인은 물론 무신론자들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고 비상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가 그토록 엄청난 기적의 산물이라면, 그 사람의 몸뚱이 전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것인가. 고작 손가락 하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기적이요 신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나의 몸뚱이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새로 생겨난 손가락 하나는 대단한 기적이라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통념이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리는 것은 예삿일이고 호박이나 참외가 열렸다면 신비요 기적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 구약성서에는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기독교인들은 하늘의 태양조차도 멈추게 한 야훼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신령스러우냐고 한다.

과연 그런가. 태양이 서쪽에서 뜨고 포도나무에 호박이 열리면 위대하고 신령한 기적인가. 그렇게 뒤죽박죽의 혼란과 무질서가 경외할 기적이란 것인가. 태양이 날마다 지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은 과연 하나도 놀라울 게 없는 사소한 일인가. 태양을 향한 지구의 기울기가 조금 기울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여름에는 불볕 더위에 허덕이고 겨울에는 온 천지가 얼어붙는 혹한에 떨어야 하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가. 밤하늘에 밀가루를 뿌린 듯한 은하수가 사실은 태양과 같은 항성(恒星)들이 모여서 성운(星雲)을 이룬 것을 안다면, 천체의 그 일사불란한 운행에 우리가 어찌 무한한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 중 단 하나라도 자리를 이탈해서 태양계로 진입해 온다면 이 지구 따위는 한낱 가랑잎처럼 타버리고 말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불가사의요 무궁무진한 신비에 비한다면, 인간들이 기적이네 뭐네 호들갑을 떨어대는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병적현상에 불과한 것인가.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죽었던 사람이 살아났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난리를 칠 대수인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고 태어나는 것이 세상이고 70억 인구가 미어터지게 바글거리는 지구가 아닌가.

세상이 혼란하고 인심들이 피폐해질수록 온갖 혹세무민하는 것들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 조잡하고 불순한 것들, 병적이고 지엽말단인 것들에 사로잡혀 세상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많은가.

산천초목 온통 신록의 광휘에 휩싸인 오월이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얼어붙은 땅에 죽은 듯 앙상하던 나무들이 저토록 생기롭고 찬란한 신록을 피워 내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고 신비인가. 그 중에 사람으로 태어난 나란 존재는 또 얼마나 엄청난 기적의 산물인가. 나를 포함한 삼라만상 모두가 기적이고 신비일진대 쉽사리 좌절하거나 괴로워할 일이 과연 무엇이겠는가.

Essay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