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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에 부는 바람

등록일 2017-07-14 02:01 게재일 2017-07-1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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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영<br /><br />수필가
▲ 김주영 수필가

파도는 바다의 깊은 호흡이다. 들이쉬고 내뱉는 파도 끝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에서 거대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읽는다. 거칠게 포효하는 바다의 뜨거운 숨소리를 듣노라면 내 삶도 파도의 한 겹이 되는 듯하다.

아홉 살 때 여름이다. 포항으로 이사를 온 첫 해, 가족들과 피서를 간 곳이 송도다. 송도는 물이 맑고 모래가 곱기로 유명하였다. 전국에서 찾아온 피서객들로 붐볐고 돗자리를 펴려면 자리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물이 맑고 모래가 고와서일까? 조개가 참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어떤 사람들은 큰 자루 가득 조개를 잡아가기도 했다. 어린 내발목이 잠길 정도의 물에서도 조개를 잡을 수 있었다. 트위스트 춤을 추듯 모래를 비비면 조개가 잡혔다. 발가락에 닿은 조개의 느낌, 지금도 바닷물에 발을 담글 때면 모래를 비벼보기도 한다. 조개를 넣고 끓여먹었던 엄마표수제비는 추억의 한순간이 되었다.

환경변화는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변화시킨다. 공장들이 들어서고 해수오염이 심각해지면서 피서객이 급감하고, 1983년 해일 이후 지속적인 모래유실로 해수욕장은 폐장되기에 이르렀다. 연기가 올라오는 공장굴뚝들 너머로 해변의 길이가 3km쯤 되었던 시작과 끝을 가늠해본다. 해일에 밀려간 것은 모래만이 아니라 그 많던 횟집과 사격장, 오락실 등이 문을 닫고 떠났다. 빈집들은 흉물스럽게 변했다.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몇 해 전부터 해안이며 골목길을 다니게 되었다. 흘러간 시간의 풍경들을 사진에 담는다. 내 카메라 렌즈는 더듬이가 되어 골목골목을 살핀다. 정지된 시간은 떠나간 시간과 미래 사이, 현재의 순간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의 숨결을 찾아서 사진에 담다보니 비오는 날 친구 집에서 웃고 놀았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남아있는 시간의 화석들은 추억을 불러오기도 한다.

골목 안 빈집 앞에 놓인 낡은 의자에 잠시 앉아 쉬어간다. 카메라가 낯설었는지 줄곧 나를 따라다니던 길고양이 한 마리도 곁에 앉는다. 골목 끝으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 몇 줄을 메모지에 적는다.

“좁고 길다란 문을 넘어/ 우주를 떠돌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이쪽과 저쪽을 생각하네/탯줄마냥 늘어진 전깃줄이 바람에 엉켜/ 푸른 별빛으로 흔들리는 송도동/ 수수천년/ 뜨거운 울음소리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 모든 숨구멍은 짧은 골목을/ 찰나에 지나갔네/ 빈집/ 빈 의자/ 나는 초저녁별이 뜨도록/ 잠시/ 쉬었다가네”

글을 쓰다 보니 옆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무료했는지 골목 끝으로 사라지고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바닷가에 형성된 마을들 대부분은 해변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다. 송도 해안가 골목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길 끝에 아스라이 바다가 보여서다. 마치 이쪽과 저쪽 두 세계를 이어주는 미로를 걷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낙후된 건물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건물들이 생겨나고 있다. 송도해수욕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폐허가 된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풍경들이 생겨나지만 신축 건물에 가려 바다가 보이는 골목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송도동 일대의 변화과정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인간의 이용가치 중심으로 환경이 변화되는 것을 바라본다. 동빈 운하가 개통되어 수로가 생겨나고 유람선이 다니게 되었다. 포스코 야경과 밤바다가 새로운 명소로 바뀌면서 해안가에는 찻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밀물과 썰물처럼 변화의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송도에 다시 바람이 분다. 새로운 구조물들이 생겨나고 이용자중심으로 개발이 되겠지만 자연의 미적 가치를 중심에 두는 송도로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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