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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줄 알았으면 조건 유리한 베트남 갔을 텐데”

심상선기자
등록일 2017-08-02 22:43 게재일 2017-08-0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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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대구 영세 업체들 `불면의 밤`

# 장대비가 내리던 1일 오전 섬유 관련 업체가 밀집한 대구 성서공단의 한 직물공장.

공장에 들어서자 요란한 기계소리를 내며 60여대의 배틀이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배틀의 굉음과 달리 공장 입구에서 만난 이 업체 대표 이모(58)씨의 이마에는 근심어린 주름살이 그득하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 대책을 묻자 손사레부터 쳤다. “지금 대구의 섬유업계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구 섬유의 옛 명성을 되찾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가업으로 자식에게 공장경영을 물려주려 했는데 향후 계속될 임금인상 파장에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같은 공단에서 간신히 버텨오던 섬유업체 5곳이 문을 닫아 여기서만 15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최근 상황을 일러준다. 최저 임금인상은 종사자들의 건강보험, 고용보험료 등 간접비용에도 영향을 미쳐 업체의 경제적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지역이나 산업별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최저임금 시행은 너무 가혹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섬유·차부품 등 노동집약적 특성 무시한 정책”

4명 이하 업체 83%… “몇십 원 인상도 치명적”

5개월 뒤 닥칠 위기에 폐업 속출 우려 등 불안감

업계, 감원·제품값 인상·해외이전 등 방안 골몰

내년부터 최저임금(시간당 7천350원)이 크게 오르는 데다 국회에서 법정근로시간 단축까지 논의되자 지역 영세 기업주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섬유, 자동차 부품 제조업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대부분인 대구지역 기업들은 현재의 시급 맞추기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5개월후에 닥칠 최저임금 인상과 그에 따른 간접비 인상 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기자가 지난 한 주 동안 지역 업체들을 돌며 현장 취재한 결과 △베트남 라오스 등 해외로 공장 이전 △감원 △제품가격 인상 △단축조업 △폐업 등의 나름대로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일자리 창출 정책에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우려를 낳고 있는 셈이다.

서대구공단의 기업인 A씨(54)는 “현재까지는 괜찮은데, 내년부터 문제가 될 것 같다”며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는 섬유산업은 전기료와 임금이 치명적인 적자의 원인 요소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년 전에 좋은 조건으로 베트남으로 이전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고 털어놓았다.

대구 3공단의 한 부품제조업체 관계자는 현재 시급을 주는데도 어려움이 적지 않아 내년에는 인원 감축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감원을 해 납기를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경우 페널티를 물게 되는 등 이래저래 영세기업주만 치이게 생겼다고 덧붙였다.

현재 대구지역의 20만70개업체의 종사자 수는 89만5천523명으로 이중 4명 이하의 영세 중소업체가 16만6천368곳으로 83%를 차지하고 있다. 40인 미만 업체는 19만3천여곳으로 96%에 달한다. 종업원 수도 51만2천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심지어 제조업은 94%가 4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로 대부분 영세 업체로 최저임금인상의 여파는 내년이 시작일 뿐인 셈이어서 지역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도·소매업도 40인 미만의 업체가 99%에 이를 정도로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어 제조업과 마찬가지 사정이다.

지역 중소업체 관계자는 “평소 임금협상시 몇십원 인상조차도 기업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노사간에 빈번한 갈등요인이 되어왔다”며 “내년부터 큰 폭으로 인상된 최저임금을 적용하게 되면 열악한 환경의 지역기업은 존폐위기에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저임금 수혜자들이 잔업과 특별근무할 경우에는 사업자의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영세사업주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누르는 요인은 이것뿐이 아니다.

국회 환경노동위는 고용노동소위에서 현재 주 최대 68시간인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뼈대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에 들어갔다. 이대로 법안이 통과되면 정규 근로시간 40시간을 제외하고 휴일근무 등을 포함한 연장근로는 주 12시간으로 제한된다. 대부분의 중소 섬유업체들이 주말도 없이 가동하는 실정임을 감안하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공산이 크다. 법정근로시간을 지켜려면 납기차질로 인해 원청업체에 페널티를 물게 되는 등 또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경 대구상의 상근부회장은 “지금 최저 임금인상 안이 내년부터 그대로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면 지역에서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할 수도 있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 중소기업 임금보전과 세제혜택같은 지원 방안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자칫 일자리 창출은 커녕 영세기업의 폐업 도미노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 대구 사업체 현황(2015년 기준)
종사자

규모별

사업체 수

(개)

종사자 수

(명)

종사자

비율(%)

200,070 895,523 100.00%
1 - 4명 166,863 291,368 32.54%
5 - 9명 19,811 126,391 14.11%
10 - 19명 7,194 94,881 10.60%
20 - 49명 4,081 122,162 13.64%
50 - 99명 1,418 96,606 10.79%
100 - 299명 586 89,025 9.94%
300 - 499명 58 21,575 2.41%
500 - 999명 44 29,323 3.27%
1000명 이상 15 24,192 2.70%

/심상선기자 antiph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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