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署 강력3팀 서정원 형사<BR>정황 미심쩍어 끝까지 추적<BR>굴삭기 사고 피의자 밝혀내
안동경찰서 수사과에 들어서면 왼쪽 구석진 곳에서 피의자를 앞에 두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강력3팀 서정원(45·경사·사진) 형사를 만날 수 있다.
여느 형사들처럼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모습 같지만 나름대로 특별한 수사기법과 직감이 탁월한 형사다. 최근 발생한 `교통사망사고를 낸 중장비 기사가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 한 사건`에서 서 형사의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 탁월한 형사적 직감은 여지없이 발휘됐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 범인의 자백에 이르기까지 서 형사는 끈질긴 탐문수사를 벌였다.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40분께 안동시 북후면 오산리의 한 도로에서 길 가던 노인이 도로에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인근 마을 이장, 사고 현장에는 중장비 기사 A씨(47)가 함께 있었고 그는 경찰에게 목격자라고 밝혔다.
목격자 A씨의 진술에 따르면 B씨(73)가 혼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응급조치 후 119구급대에 인계해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사건 직후 현장을 살피던 서 형사는 굴삭기의 너비가 상당해 갓길과의 폭이 상당히 좁았던 것을 확인하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서 형사는 A씨의 진술을 듣고 노인이 옮겨진 병원을 찾았지만, 병원에 옮겨진 B씨는 6시간 만에 숨졌다.
사고현장 인근 마을에 사는 B씨는 이날 객지에 나가 있던 자녀들이 오기로 해 전통시장에서 문어와 고등어를 사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B씨의 자녀들은 형사들에게 “아버지가 의식을 잃기 전 넘어졌다는 말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서 형사는 “그냥 넘어졌다고 하기에 B씨의 부상 정도가 너무 심했고, B씨의 바지가 찢어진 것도 이상했다”며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았다”고 했다.
이에 서 형사는 B씨가 시장에서 마을까지 버스를 이용했을 것으로 보고 B씨가 찍힌 버스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
서 형사는 이를 토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고, 사고 지점 인근 마을에서 목격자를 찾았다.
목격자는 “굴삭기 옆에 할아버지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고,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굴삭기 바퀴 아래에 깔린 생선을 줍고 할아버지의 얼굴과 도로에 묻은 피를 닦았다”고 진술했다.
이어 “사고가 난 것 같은데 신고는 안 하고 도로를 닦는 모습이 좀 이상하긴 했다”고 했다.
당초 A씨가 진술한 내용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이에 서 형사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서 형사는 A씨를 불러 집중적으로 추궁했고, A씨의 신분도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됐다. A씨는 서 형사의 끈질긴 추궁과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 등 인간적인 설득 끝에 결국 “굴삭기에 B씨가 부딪혔다”고 자백했다.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서 형사는 “경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돌아가신 분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추가 조사를 벌인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안동/손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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