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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청년의 죽음

등록일 2018-04-13 22:01 게재일 2018-04-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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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 김규종경북대 교수·노문학

지난 4월 8일 세종시의 고교 3년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경위는 단출하다. 1월 초하루 친구와 함께 담배 네 갑을 훔친 죄로 그는 경찰조사를 받는다. 경찰은 특수절도 혐의로 그를 3월 16일 기소의견과 함께 검찰로 넘긴다. 그 후 4월 5일 가정법원의 출석통지서가 그에게 송달된다. 극심한 심적 부담을 느낀 고교생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 세상과 작별한다. 1만8천원 어치 담배를 훔친 죄과(罪過)로 18세 청년이 세상을 등진 것이다.

경찰은 그를 조사하고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부모를 비롯한 보호자에게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범죄수사규칙’ 211조 ‘보호자와의 연락’에 따르면, ‘경찰관은 소년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나 조사의 경우 소년의 보호자나 그를 대신할 사람에게 연락해야 한다’고 명기(明記)되어 있다. 나아가 경찰은 소년범죄자 수사의 경우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학교전담경찰관’과의 연계 매뉴얼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죽은 고교생의 아버지가 언론사에 전한 나이 어린 고인(故人)의 번민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한 번의 실수로 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죄송해 괴로웠다.” 호기심이든 일시적인 만용(蠻勇)이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더욱이 당사자가 범죄경력이 전무한 고등학생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경미범죄 심사위원회’ 제도다. 그가 이런 제도를 알았더라면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는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대개는 전과(前過)가 없는 범법자를 대상으로 처벌 감경여부를 심의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판 장발장 구하기’로 불리기도 한다. 장발장은 빅토르 위고의 장편소설 ‘레미제라블’(1862)의 주인공으로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19년의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이 제도는 2015년 3월 23일부터 10월 30일까지 시범적으로 운영됐다. 그 기간 동안 전국 17개의 경찰서가 시범대상으로 선정돼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운영했다고 한다. 위원회는 경찰관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으며 위원장은 경찰서장이 맡았다. 시범운영 기간에 600여 명의 사람이 감형 받았다고 전한다. 경찰청은 2016년부터 ‘경미범죄 심사위원회’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라 밝혔다.

18세 청소년이 어느 날 범죄자가 되어 경찰조사를 받고, 급기야 검찰로 송치됨으로써 법원의 호출장을 받는다면, 그 심정이 어떨까. 단순한 장난이었든 유치한 영웅심이었든 간에 순간의 실수로 범죄자 낙인이 찍히는 지경에 이른 고교생의 절박한 심경(心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에 부모와 담임교사에게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주변 몇몇 친구들에게나마 겨우 속내를 털어놓아야 했던 18세 청년의 심사가 자못 아프게 다가온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청년을 몰고 간 것은 우리 사회의 낙후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절도죄로 고교생을 경찰에 신고하는 주인, 조사를 실행하면서 부모나 담임교사에게 일체 연락하지 않은 경찰관, 친구의 고통을 듣기만 했던 동급생들. 담배 네 갑과 죽음을 맞바꾸기에는 인생이 너무 안타깝다. 생때같은 자식을 느닷없이 잃어버린 부모의 흉중에는 어떤 상념이 차고 넘쳤을까, 헤아리기 어렵다.

증평에서 자살한 지 두 달도 넘어서야 발견된 모녀의 시신은 우리를 더욱 절망으로 인도한다. 우울증 때문이든 빚 독촉 탓이든 세상과 완전 격리된 채 끝내 죽음과 대면해야 했을 모녀의 처절한 끄트머리가 처연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말하는 것보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보듬는 세상과 나라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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