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역사성은 무엇일까? 최근 포항시의 고전 건축물들이 하나둘 해체되는 것을 보고 왜 이런 건축물들을 해체하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 때 “역사성이 없어서 해체하였다”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다. 역사성의 정의는 무엇이고 어떤 것들이 역사성을 가질까? 역사성은 반드시 역사가 길고 어떠한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만 역사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간다. 과거의 건축물을 보전하는 것은 그것이 선대들이 사용해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역사성을 갖는다. 과거는 과거의 역사라는 점에서 그것이 자랑이든, 치욕이든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과거를 안다는 것은 우리의 뿌리를 안다는 점에서 존재가치를 부여한다. 과거를 보는 것, 아는 것 자체, 그것이 바로 역사성이지 반드시 예술적 가치가 있어야만 역사성이 아닌 것이다. 일본의 오사카나 나고야 같은 옛도시에 가보면 조그만 항아리 하나도 옛 역사로 보존하고 있다. 오래된 라면집, 길거리 나무 한 그루, 돌 하나도 옛 역사로 보존된다.
포항역사(驛舍)가 가장 아쉬운 것은 대부분의 서구 유럽 도시들이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역사는 그 지역시민들이 외부를 드나드는 통로이며 온갖 애환을 담고 있다. 포항역사도 해병대 장병들은 물론 포스코 설립 당시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 오갔기에 그냥 그 자체로 모든 시민들의 정과 추억이 깃든 곳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성이다. 구룡포의 ‘근대문화역사의 거리’를 보면서 비록 치욕의 역사이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고 기억하면서 우리가 왜 나라를 뺏기지 말고 잘 보존해야 하는지를 다지는 미래를 설계하게 된다. 그렇기에 무엇이든 시민의 애환이 깃든 발자욱들은 보존돼야 한다.
필자의 자세한 지식은 부족하지만, 청룡회관이 차지하는 역사성은 포항근대사의 한 축을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고 한다. 시내중심가인 죽도동에 위치해 있던 옛 청룡회관은 해병대 장병들은 물론 해병가족들의 면회 장소 등으로 각광받을 만큼 인기가 높았다. 포스코가 설립되기 전까지만 해도 포항은 해병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해병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특히 청룡회관이 시내중심가에 위치해 있어 지역민들에게 깊은 애정이 있는 장소였다고 한다. 청룡회관도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빗물펌프장이 운영된다고 한다. 30년 전 포항에 처음 왔을 때 휴가 나와서 포항으로 돌아오던 해병대 군인들이 삼삼오오 걸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초로에 접어든 그 군인들의 눈에 사라진 포항역, 청룡회관의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필자가 자주 인용하는 독일 드레스덴에 위치한 프라우엔키르헤(성모교회)는 2차대전 때 폭격으로 건물 자체가 무너져 내렸지만 무려 50년에 걸쳐 완전하게 복원됐다. 동독 시절 예산이 부족해 복원이 힘들자 독일인들은 돌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기고 설계도를 그려 후일을 기약했다. 이런 노력 덕에 독일 통일 후 예배당은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었고 지금 드레스덴 시민의 자부심과 관광자원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복원해야 한다. 역사성은 시민이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폭넓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보존의 의미’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시민들께는 현재 포항에 유럽처럼 과거를 회상하는 역사적 유물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좀더 우리를 찾는 도시로 가꿔 나가는데 동참하자고 호소하고 싶다. 유물과 과거 건축물의 역사성! 역사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은 그러한 유물과 건축물은 시간이 흘렀고 애환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성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