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보직 등 불이익 우려<br />공무원 ‘줄 서기’ 나서 혼탁<br />한국당·무소속 경합지인<br />도내 기초장 6곳 더 심각<br />직·간접접 선거개입 늘고<br />일부 지역선 살생부까지<br />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공직사회에 ‘물밑 줄세우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후보간 우열이 확연하지 않고 혼전 양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일수록 이같은 부작용이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혈연·지연·학연을 앞세운 후보들이 현직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구애 파상공세를 벌이는 것은 지역여론을 환기시키는데 공직자의 역할이 잘 먹혀들어간다는 점이 꼽힌다. 영향력을 감안하면 단순히 한 표로 볼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은 선거 후에 이뤄질 승진인사나 선호보직 꿰차기 등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의식해 자발적인 줄서기를 시도하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이 대민접촉을 빌미로 은밀한 선거개입을 하는 등 공직사회가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정치판’으로 오염돼 가는 정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선거가 끝나고 정기 인사가 예정돼 있는 점도 이같은 행태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 살생부나 섀도 캐비닛(예비내각) 성격의 인사명단을 만드는 등 장외에서 특정 지지자 집단들끼리의 세 대결을 벌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한 지역에선 과장급 인사의 가족이 특정 후보 캠프에 활동하도록 하면서 부하직원을 연결해주는 등 직·간접적인 선거개입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줄세우기가 현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정년을 앞두고 있거나 고참인 경우 퇴직 후 자리 마련을 염두에 두고 줄서기에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군 산하·출자기관의 기관장 자리가 퇴직 후 보상 차원에서 인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비교적 간단한 주차요금 징수나 주차위반 단속, 체육시설 관리 등이 주 업무인 시설관리공단 등이 대표적인 자리 마련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현역 단체장이 자유한국당 공천에 실패한 지역이 특히 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단체장이 지역에서 우세를 보이는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은 곳은 다소 느긋하지만, 한국당 공천에 실패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지역의 공무원들은 한마디로 좌불안석인 분위기다.
한국당 텃밭으로 꼽혀온 경북지역에서 공천장을 쥐지 못해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한 현역출신 시장 군수 출마지역만 6곳에 이른다. 경주 최양식, 상주 이정백, 안동 권영세, 예천 이현준, 울릉 최수일, 울진 임광원 후보 등이 자유한국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이들 지역의 한 고참 공무원은 “10년 이상 모셔온 상사가 무소속 후보로 나서 모른 척 하기도 쉽지 않은데다 선거에 지더라고 약 보름간 시장이나 군수직을 유지할 수 있는 점도 꺼림칙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A시청 공무원 B씨는 최근 고교 동창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모 시장 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는 동창생이 자신이 미는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장담하며 노골적으로 라인을 갈아타라고 했다. 승진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서 솔직히 고민이 크다”고 귀띔했다.
한 지역 공무원은 “과장 승진을 바라보는 이들(6급)은 어느 쪽에 설지 고민하고 있는데 판세마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니 솔직히 난감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일부는 “괜히 줄 잘못 섰다가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느니 차라리 조용하게 지켜보겠다는 동료들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공무원은 “실제 선거 때만 되면 직원들이 줄서기를 해 왔고 그 결과가 여지없이 인사에 반영됐다”며 “단체장과 출신학교가 같은 동문 공무원들은 핵심보직을 맡거나 승진을 했고, 단체장이 바뀌자 일부는 한직으로 쫓겨났다”고 실토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갖고 있는 인사권, 인허가권, 예산집행권, 단속권 등 4가지 권한 가운데 인사권이 일선 공무원들을 다루는 가장 막강한 권한이다. 이 때문에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공직사회의 줄서기와 매관매직 등 각종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대책마련도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정기적인 인사에서 다면평가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대안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세헌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인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무원들이 ‘줄’을 설 수밖에 없다”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지방의회의 기능을 강화해 승진 대상자들을 상대로 인사청문회 방식의 평가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행태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공직선거법 조항을 보완하는 등 입법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병현기자 why@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