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신문칼럼을 쓰려고 새벽에 잠을 깼다. 낯선 대구 현풍에 온 지도 이제 10개월이 되었다.
사람의 운명은 참 알 수가 없다. 포항에서 나의 청춘을 보내리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이 28년 포스텍 직장을 찾아 포항에서 살았다. 28년 서울생활, 그리고 9년 미국 유학과 교수생활, 그리고 포스텍에서 28년. 그리고 다시 이곳 대구 현풍의 디지스트에 와서 1년이 지났다. 가끔 여길 떠날 때는 어디서 살아야 하나라고 생각해 본다. 정년 퇴임 후 많은 교수들이 서울로 가거나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나는 포항과 대구를 오가며 그냥 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왜? 보석과 같이 사랑하는 포스텍이 1시간여 지척의 거리에 있고 길이 넓고 쾌적한 신도시 이곳 현풍 테크노파크가 좋다. 김천구미역으로 가면 서울 수서까지 가는 SRT도 1시간 반이면 서울에 간다.
그런데 “너는 언제까지 경상도에서만 살래?” 친구들이 웃으면서 묻는다. 그들의 눈에는 경상도에서 살고 있는 필자가 신기한건지 아니면 안쓰러운건지 그렇게 묻는다.
신문기사 한켠에 이런 기사가 났다. “위기의 국민연금 635조 돈 불릴 인재들 짐싼다”, “글로벌 큰손, 서울 와도 전주까지 안 들러 ‘국민연금 패싱’” 지난 한 주 언론들의 기사 제목이다. 국민연금의 전주 이전으로 기금운용 인재들이 퇴사하여 수익률이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하는 목소리와, 국민연금이 수도에 위치하지 않아 투자 관련자들이 국민연금을 찾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도대체 미국의 한 개의 주보다 더 작은 이 작은 나라에서 언제까지 서울, 지방 타령인가? 무엇이 그들이 말하는 지방에 사는걸 힘들게 하는가? 지방정부, 지방대학, 지방신문…. 지방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단어이다. 서울이라는 중앙에 대응하는 단어로서의 지방은 그 본래의 의미는 잘못된 건 아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방’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지방이란 단어는 한국에서 중앙에 대한 대등한 개념이 아닌, 열등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생 입학설명회에 가면 학부모들의 질문 중의 하나가 바로 지방에 위치한 대학의 장·단점이다. 필자의 대답은 한결같다. 세계지도를 들여다 보면 한반도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점에서 점 왼쪽에 있으면 어떻고, 점의 오른쪽에 있으면 어떤가? 우리는 한국의 어느 지역에 위치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지스트나 포스텍의 진정한 가치는 대구의 현풍이나 포항같은 중소 지역에 만들어졌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정부기관, 대기업의 본사, 유명한 대학 등이 모두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서울과 지방으로 나눠져야 할 필요가 없는 나라이다. 세계화의 전제 하에서 각 지역은 각 지역에 대한 강한 긍지를 가지고 지역별 특성을 강조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삶이 중요하다. 그리고 각 지역은 세계로 약진해야 한다. 정부도 이러한 제도적 장치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아닌 지역 정부도 이러한 역할과 사명을 인식해야 한다.
일부 기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역으로 이전했기 때문에 정보수집과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635조원을 운용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국민연금의 투자의 국제화를 고려할 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국민연금의 정보 수집과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국제화하는 노력을 전주에서 해야 한다. 지금은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정보화 시대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방은 지방이 아니다. 한국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핵 중에 하나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