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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앓이

등록일 2018-09-07 20:25 게재일 2018-09-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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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안다고 생각하면 벌써 자만이요, 뭘 모르는 것인가. 한해 한해 갈수록 사람 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된다.

사람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어서, 자기 원하는 대로 생겨나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법은 없다. 그저 우연이 시키는 대로 광막한 우주의 한 점 티끌만도 못한 존재로서, 그럼에도 자기 자신에 모든 것을 걸고 산다.

나는 이 순간 지난 사월에 세상 떠난 후배를 생각한다. 나는 그를 열아홉 살 때 만났고, 긴 세월 뒤에 다시 만난 그는 더욱 또렷한 순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하늘은 그런 사람을 단 일 년여만에 덧없이 거두어가 버렸다.

어렸을 때 만난 친구는 그에 대해 뭐라 판단하기도 전에 정들어 버려서 옳다, 그르다 할 것도 없고, 맞다, 틀리다 할 것도 없다. 서로 각기 말못 할 불행이 없는 한 옛날 그대로 정겹게 만나 얘기도 하고 밥도 먹을 수 있다. 친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고, 텔레비전 수상기를 뭘 쓰고 있는지, 어머니가 어디가 아프시고 동생 사업은 어떻게 됐는지도 안다.

젊어서 만난 친구는 기복이 심하고 요동을 친다. 처음에 만날 때는 우선 기질대로 모인다. 같은 학교 들어온 사람들끼리도 불과 몇 달 지나는 사이에 각자 끼리끼리 모이는 걸 보면 속된 말로 ‘케미’가 맞아야 뭘 해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관계가 십 년도, 이십 년도 가지만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된다. 처음에는 작아보이던 차이가 들보만해지고 차츰 만나기 싫고 얘기하기 싫어지고 상대하기조차 싫어지는 수도 있다. 처음엔 좋게 좋게 넘어가고자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거슬리는 일이 한두 가지 아니게 된다.

그래도 서로 참고 상대의 약점까지 원래 사람은 부족한 존재러니, 나 또한 저쪽에서 보면 얼마나 거슬리리, 접어주고, 이해하고, 눈 감아주다 보면 한두 사람, 두세 사람 운 좋게 남아 오래 가는 사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같이 젊을 때 만났더라도 이념 때문에, 이해 때문에 만난 사람들은 더욱 그 부침이 크다. 처음에는, 세상이 이래야 한다고, 저래서는 안 된다고, 서로 어깨 곁고 대의를 위해서는 함께 죽기라도 할 것처럼 굳건한 관계를 맺어놓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젊음의 뜨거움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란 너무나 힘들다.

이념처럼 견고한 것 같으면서도 허망한 것이 없다. 젊어서부터 완성될 수 있는 이념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성글고 부서지기 쉽고 갖다 내버리기도 쉽다. 젊은 날의 뜨거운 좌파가 이십 년 유전 끝에 반대편에 극에 가서는 경우도 비일비재, 그 역의 사례도 심심찮게 만났다. 나는 사람을 좌우로 나누는 것이 싫지만, 세상은 그 속물적인 ‘가짜’ 척도로 서로를 측정하는 인간들로 넘쳐난다.

이념이 같다고 믿었던 친구를 차차 ‘경이원지’하게 되고 안 보느니만 못하다고 느낄 때쯤, 자기와 전혀 다른 인간이라고, 가치관도 다르고 기질도 다르다고 믿었던 사람이 달라 보이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관계가 좋아지려고 그러는지 저쪽에서도 마침 나한테서 일어난 일이 일어나는 것 같다. 서로를 완전히 멀리, 다르게 본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서로를 찾고, 가둬둔 정을 풀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기도 한다.

세상 산다는 게 뭐냐, 하면 사람 만나 나가는 일이다. 사람을 앓고, 사랑과 미움을 앓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가도 미워하고 멀리 하다가도 가깝게 찾게 되는, 그 모자람이 늘 안타깝다. 나의 미련함을 하루하루 새삼스럽게 느낀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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