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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등록일 2021-06-15 18:54 게재일 2021-06-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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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br/> 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독립영화는 상업영화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서성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아름다움에도 각도가 있다. 신천을 걷다 보면 물을 거슬러 오를 때와 물길을 따라 내려올 때의 느낌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물을 거슬러 오를 때는 돌과 풀을 헤치다 폭포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의 속살을 훤히 볼 수 있는데 반해서, 물길을 따라 내려올 때는 다만 물의 겉모습만 보게 되므로 거슬러 오를 때의 감흥을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것도 그와 같다. 좋은 영화를 한눈에 알아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듯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게 된다. 좋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을 나는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처음 볼 때와 두 번 볼 때의 감흥이 다른 것은 보는 각도가 달라서이고, 물의 속살과 상처를 바라보듯이 영화를 더 깊이 느끼기 때문이다.

“청년 감독들을 배양하는 독립영화 지원이 시급하다…대구가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지역으로 손꼽힐 정도가 되고, 슬슬 전망이 보인다고 한다”

대구에 세 개의 큰 영화제가 있다는 사실을 오오극장의 서성희 대표와 인터뷰를 하고서야 알았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가 주최하는 대구단편영화제가 있고, 전국 최초로 지역 시민사회와 복지단체, 노동조합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운영되는 대구사회복지영화제가 있고, 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구여성영화제가 있다.

대구단편영화제는 올해 스물두 돌을 맞았고, 대구사회복지영화제는 열한 돌이고,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대구여성영화제는 2012년에 출범해서 올해 아홉 돌을 맞는다. 대구에는 또 예술영화관으로 널리 알려진 동성아트홀과 독립영화관으로 유일한 오오극장이 있어서 영화애호가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름난 영화제가 셋이나 되고 예술영화를 걸 수 있는 공간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매년 젊은 영화인들이 대구로 몰려온다. 서 대표는 독립영화제로서 대구단편영화제가 전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단편소설 단편영화. 단편이란 어휘의 밀집성과 꽉 찬 작품성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를 만난 김에 독립영화에 관한 얘기를 들어본다.

“독립극장의 개념부터 말씀해주세요.”

“독립영화는 상업 영화 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제작되는 영화를 말하며, 대기업화된 제작사의 종속에서 벗어나 자본시스템으로의 독립, 정치로부터의 자유로운 독립을 포함합니다.”

독립영화는 우선 자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상업 영화의 지배적인 내러티브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한다. 자본이 대기업화 되는 상업영화의 투자 규모가 평균 총제작비 100억 정도라면 독립영화는 4억~10억 미만의 저예산으로 만드는 영화를 말한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내용을 일러준다. 대구·경북 단편영화제 출품작이 1000여 편인데 그 중에서 30편~ 50편을 뽑는다고 한다.

“단편영화제의 의미가 뭐예요.”

“서사구조와 영화미학의 완성을 익히는 단거리경주라고 할까요? 지역에서 영화제는 전국 영화인과의 교류를 위해서도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대구독립영화제도 21회나 되는 연식이 쌓여 매년 200여 명의 감독들과 스태프들이 대구를 찾고 있다며, 서 이사장은 단편영화를 찍은 감독이 결국은 장편영화를 찍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인다. 봉준호 감독도 단편영화를 찍었다고. 단편영화를 한 편 찍으려면 인적 네트워크가 최소한 10여 명이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라 자본이 많이 들기 때문에 대구에서는 그 마저도 확보하기 어려운 처지라며 영화인들의 고충을 슬쩍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하겠다는 청년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긍정적인 변화를 언급하며, 서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대구영상미디어센터에서 영화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고 한다. 예술이란 게 본래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것 아닌가. 아름다움에 취해서 가까이 가면 너무 뜨겁고, 거리를 두면 안타깝고, 그렇다고 외면하면 영원히 꺼져버리는 것. 예술은 늘 예술가들의 피와 땀을 먹으며 표가 나지 않게 천천히 자라다 어느 순간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불꽃같은 것이지.

영화를 가르치는 학교도 없는 대구가 질적으로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놀랍다. 슬며시 궁금해진다. 대구가 영화학교 하나 갖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우리들의 시네마 천국’ 잡지를 읽어 보면 이름만으로도 뜨르르한 대구 출신의 영화감독들이 많다. 그 이름을 잠깐 언급해 보면 ‘임자 없는 나룻배’로 데뷔한 이규환 감독을 비롯해서 선산 김씨의 김유영 감독, 한국 전쟁기의 유일한 작품을 남긴 민경식 감독, 성악과 출신의 조긍하 감독, 경북 하양의 딸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 감독이 있고, 대구상고 출신의 박철수 감독, 그 유명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찍은 배용균 감독, 경북대 출신의 교사 출신 이창동 감독까지 모두 전후 한국영화의 부흥을 이끈 분들이다.

내게 있어서 영화는 그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것이어서, 그 흥미로운 장르의 뒤편에 이토록 고생스러운 누군가의 노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낸다던가. 서 대표는 대구영화계가 꼭 그렇다고 한다. 형편이 어렵다 보니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희들끼리 똘똘 뭉쳐서 서로 협력하기 때문에 발전하는 거라고, 대구영화계의 성과를 다소 시니컬하게 피력한다. 그 세계에 오래 몸담고 있다 보니 속사정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 서 대표는 영화가 프로젝트형 예술이어서 인력과 기반 인프라가 구축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인재를 키우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빠듯하고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과 세 개의 대구영화제가 각자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자라주었으니 지역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 참여해준 많은 영화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영화를 어떻게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에 무용을 했는데 남경주의 뮤지컬을 보고 감동 받아서 연극영화과에 지원했어요. 연극영화과에 갔다가 나중에 영화로 전공을 바꾼 것이 인생을 탈바꿈한 계기가 되었어요.”

졸업하자마자 영화사 기획실에 입사했다. 감독이 되려면 영화 연출부 막내로 현장에 나가야 하는데, 부모님의 지원 없이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게 겁이 나더라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기획이 적성에 맞아 재밌게 서울생활을 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영화 마케팅공부를 해보려고 미국 유학 준비를 하던 중에 IMF가 터졌다. 연극을 하다 배우가 되고 싶었고 영화를 찍고 싶기도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공부를 하게 되었다면서 박사과정도 늦었고 결혼도 늦었다. 나중에는 공부가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두했다며 서 대표가 예쁘게 웃는다. 모든 게 늦은 편이라고. 무대에 세워도 해낼 것 같은 얼굴이다.

“오오극장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얘기 좀 해주세요.”

“어쩌다 보니 쓰게 된 감투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인데, 저의 첫 번째 사업이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을 맡은 일이에요.”

영화관이 생긴 지 6년이고, 대구시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대구영상미디어센터장은 3년차다. 서 대표는 대구에서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제작하고 상영하는 일까지 지원해주고 있다. 상업 영화가 97%를 차지하고 있는 불합리한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영화의 뿌리는 약해지고 줄기는 말라버리는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염려를 한다. 정책적으로 독립영화 지원이 열악하다는 말일 터이다. ‘검은 사제들’도 단편영화를 확장한 영화라고 귀띔해준다. 엘리트를 성장시키기 위한 전문 영화교육기관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전문가다운 의견을 피력한다. 영화를 만들겠다는 열의로 꽉 찬 청년 감독들을 배양하는 독립영화 지원이 시급하다며, 대구가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지역으로 손꼽힐 정도가 되고, 슬슬 전망이 보인다고 한다. 대구·경북에 영화과가 전무했다. 2022년 3월에 영남이공대가 ‘시네마스쿨(YNC Cinema School)’을 개원한다. 대구·경북 최초로 정규 대학과정에 영화과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대구시 교육청에서 2022년 3월에 ‘대구학교미디어교육센터’가 예술융합창작지원을 목적으로 문을 연다. 대구 최초로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예술 창작 미디어 센터로 영화 관련 예술 미디어 기초 교육이 다져지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서 대표는 영화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경영학과 (영화)마케팅으로 논문을 쓴 이후, 지금까지 영화 아닌 일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오로지 한 길을 걸어온 영화인이다. /글 장정옥 소설가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19년 김만중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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