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청바지 작가 윤경희<br/>낡은 청바지 살리려 고민하다 캔버스로 사용<br/>‘명품 백’ 연작, 사람들의 마음·생각 그리는 것<br/>내게 그림은 ‘절대 고독’과 ‘절대 환희’의 공존
포항 화단의 ‘청바지 작가’ 윤경희(58) 작가의 작업은 독특하다. 그는 청바지를 꿰매고 잘라 화면에 오브제로 사용하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청바지를 캔버스로 사용한다.
특히 5년 전부터 선보이고 있는 ‘빽 있는 여자’ 연작은 많은 이들로부터 획기적이고 재미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포항시 북구 신흥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윤 작가는 인터뷰 요청에 자신이 대단한 뜻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며 손사래부터 쳤다. 지난 25일 윤 작가와 만나 나눈 그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정리한다.
-청바지에 명품가방을 그리는 청바지 작가로 유명하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10년쯤 나름 큰돈 들여서 산 내 청바지가 낡아서 못 입게 되었는데 버리자니 아깝기도 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 볼 방법을 고민해보다가 사용하게 됐다. 좀 멀쩡한 부분을 잘라서 판넬 위에다 콤퍼지션(composition)을 잡으면서 자르고 붙여서 캔버스로 사용한 것이 시작이다. 낡은 청바지의 재활용(recycle)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나는 낡은 청바지의 ‘화려한 변신’이라고 부른다.
-작품 제작과정과 작품이 주는 의미를 소개한다면.
△시작은 내 낡은 청바지로 시작했지만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청바지의 역사와 변천사 등등 흥미로운 요소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또한 청바지로 인한 환경문제까지도 알게 되었다. 내 작업으로 인해 아주 조금이지만 환경문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제작과정은 먼저 낡은 정도에 따라 색바램이 다른 여러 가지의 청바지 천을 자른 후 계획한 그림 사이즈의 판넬 위에 콤퍼지션을 잡은 후 붙여서 말린다. 그다음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세밀하게 스케치한 후 스케치에 따라 젯소(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재료) 작업을 한다. 젯소 작업을 하는 이유는 청바지의 고유 색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완전히 마른 후 유화로 스케치된 그림을 그린다. 두께감이 없는 아크릴 대신 유화를 쓴다. 소재 선정에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살면서 오직 한 가지만을 추구하는 것은 ‘절대 고독한 일’이 아닐까.
△결론을 말하자면 ‘절대 고독’ 일 수도 있고 ‘절대 환희’ 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양자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고독’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지만 나는 고독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은 너무나 즐거운 환희를 느낀다. 그림은 나에게 있어서 인생 그 자체다. 살면서 그림과 떨어지려고 여러 가지 다른 직업들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림 속에서 살고 있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소년동아일보 주최 어린이 사생대회에서 입선했을 때 부상으로 받은 크레파스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빽 있는 여자’ 연작을 그리는 이유는.
△초기에는 풍경화나 꽃그림 등을 그렸는데 낡은 청바지의 의미와는 크게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소재를 찾기 위해 고민하던 중 가까운 친구가 늦은 결혼을 하면서 소위 명품이라는 백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순간 느낌이 왔다. 낡은 청바지 위에다 명품 백(bag)을 그리자. 그 후 줄곧 ‘빽’을 그리고 있다. 명품 백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명품 백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허영이 가미된 가슴 떨림으로 가득하지만 백을 사는 순간 고가의 명품 백은 중고가 되고 만다. 중고가 되어도 명품은 명품 백이지 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살아간다. 이런 마음과 생각들을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이다. 낡은 것이 있으니까 새것이 돋보이고 값싼 것이 있으니까 값비싼 것이 잘 보이는 것 아닐까. 때로는 낡은 명품가방을 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백화점 진열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가방을 그리기도 한다. 명품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허영심과 가슴 떨림을 그대로 전하고 싶어서다.
-포항시립미술관 도슨트(전시물 설명 안내인)로도 10여 년 활동하고 있는데 그림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나.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미술관에서의 관람예절과 그림 감상하는 방법과 창작이란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도슨트 교육을 받았다. 그후 나에게는 쉬운 미술 작품인 듯한데 관람객들이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서 도슨트의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남에게 물질적으로는 도움을 준 적은 많지 않지만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보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슨트 활동을 하면서 아직까지는 나 같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나의 그림 인생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왜 그림 작업을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한마디로 ‘자기만족’이라고 답한다. 나는 그림(=내 만족)을 그리기 위해 부지런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데 들어가는 재화를 구해야 하고 항상 그림 소재와 새로운 회화방법을 강구해야 되기 때문이다. 내 그림은 밝고 예쁜 그림들이다. 난 작업을 할 때 너무 행복하고 즐겁게 일한다. 내 그림을 보는 순간의 짧은 시간만이라도 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즐거움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나는 ‘즐거운 환쟁이’다. /윤희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