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35㎝ 왜소한 성인 여성<br/>신라 성벽 축조 때 제물로 확인<br/>서성벽 축성시기·과정 등 파악
신라 왕성인 경주 월성(사적 제16호)에서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희(人身供犧·인신공양) 흔적으로 추정되는 인골 1구가 확인됐다. 2017년 서쪽 성벽에서 인신공회 흔적으로 50대 남녀 인골 2구가 발굴된 데 이어 두 번째 사례다.
아울러 유물의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월성 축조 연대가 4세기 중엽~5세기 초라는 사실도 최초로 밝혀졌다. 파사왕 22년(101년)에 월성이 지어졌다는 ‘삼국사기’ 기록보다 250년 늦은 시기다. 인골은 2017년 국내 최초의 인신공희 사례로 알려져 화제를 모은 50대 남녀 인골 2구 발견 지점으로부터 불과 50㎝ 떨어진 곳에서 확인됐는데, 신라인이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치른 의례 행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월성 서성벽 문지(門址·문터) 주변 발굴조사를 통해 4세기 중엽에 인신공희로 희생된 신장 135㎝ 전후의 왜소한 성인 여성 인골과 동물 뼈, 토기를 출토했다고 밝혔다.
20대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짐작되는 인골은 얕은 구덩이를 판 뒤 안치했으며, 위에는 풀과 나무판자를 덮었다.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조금 낮은 상태였고, 목은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었다. 저항 흔적이 없어 사망한 뒤 묻은 것으로 판단됐다. 신라의 월성 성벽 인신공희는 국내에서 나타난 유일한 사례로, 제방을 쌓거나 건물을 지을 때 사람을 주춧돌 아래에 매장하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인주(人柱)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에서는 상나라(기원전 1600∼기원전 1000년께) 시기에 성벽 건축 과정에서 사람을 제물로 쓰는 풍속이 유행했다고 전하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사’에 충혜왕 4년(1343) 인주 설화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항간에 돌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월성의 정확한 축성 시기와 과정을 파악한 점도 성과라고 강조했다. 조사 대상인 서성벽은 높이 10m·너비 40m 정도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 사료에는 월성이 파사왕 22년인 서기 101년에 만들어졌다고 기록됐으나, 유물 조사와 약 40점의 시료를 대상으로 한 가속질량분석기(AMS) 분석을 통해 문헌보다 250년 정도 늦은 4세기 중엽에 공사를 시작해 5세기 초반 완공된 것으로 확인됐다.
월성 서성벽 조사 성과는 7일 오후 4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유튜브 현장설명회로 공개된 뒤 다음 날인 8일 관련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학술적 의미를 토론할 예정이다.
경주/황성호기자 hs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