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갓생

등록일 2021-12-19 19:50 게재일 2021-12-20 17면
스크랩버튼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이원만 맏뫼골놀이마당 한터울 대표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청년들 사이에 인기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영어 ‘갓(God)’과 ‘인생’을 합친 말이다. 소소하게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혼자지내며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낭비하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 일상에서 좋은 생활습관을 실천하면서 작게나마 성취감을 느끼는 삶을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자는 것이 ‘갓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바탕이다.

그 실천 조항들을 살펴보면 일어나자마자 이불과 커튼 정리하기, 하루 물 다섯 컵 마시기, 하루 10분 이상 걸으며 바람과 함께 나무 읽기, 밥 먹고 바로 눕지 않기, 혼자 먹어도 예쁜 접시에 담아 식사하기, 내 방 꾸미기, 월급 모아서 명품 플렉스 하기, 자신을 돌아보며 한두 줄이라도 일기쓰기, 팬티 바르게 개기 등, 자기 자신을 돌보며 자기에게 좋은 것을 선물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을 느끼는 것을 생활의 습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갓생’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갓생러’들은 해이해지기 쉬운 일상을 서로 점검 해준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자유로워지려면 반드시 욕망을 제어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그 용기는 항우처럼 압도적인 용기가 아니라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현실에 집중하면서 성실한 생활을 하는 정도의 용기만으로 가능하다. 용기는 혼자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내 삶이 응원받을 때 생기는 게 용기다.

그러한 것을 잘 아는 ‘갓생러’들은 계획한 것을 마칠 때마다 종이에 스티커를 붙이는 습관추적기(해빗 트레커)양식을 통해 기록하고, 자기관리 앱을 이용해 일과를 기록하고, 친구들과 공유한다. ‘갓생러’들에게 목표를 달성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앱 ‘챌린저스’와 하루의 할 일을 설정하고 친구들과 공유한 다음 서로 응원을 남길 수 있는 ‘투두 메이커’ 등이 인기라고 한다.

코로나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일상이 불안하고,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시대가 주는 불확실함에 주눅 들고, 지속가능한 것이라고는 없는 불한당 같은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는 더욱 더 공동체의 응원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갓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서로 응원하며 용기를 낸 MZ세대는 얼마나 대단한가.

이러한 ‘갓생러’들에게 세상을 바꾸기보다 순응하는 쪽을 택한 것 아니냐는 기성세대들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청년들이 살아가는 불안하고 불확실한 세상은 민주주의를 위해 군부독재와 싸운 세대들이, 경제 성장을 위해 피땀을 흘린 세대들이 만든 세상 아닌가. 누가 떳떳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갓생 실천조항’에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지구와 공생의 삶을 살아가는 목록이 추가됐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내가 먹는 한 끼의 식사가 더 우아해 지려면 예쁜 접시도 필요하지만 내가 한 끼를 먹을 때 기후변화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가를 알 수 있는 ‘기후변화 식품계산기’를 사용하여 서로 ‘지구를 위한 식탁 차리기’를 점검해 주는 것도 실천 항목에 추가했으면 한다. 지금은 아직 필 때가 아닌데 피어있는 꽃을 발견하면 ‘불시개화 앱’을 만들어 자신이 사는 골목의 기후재앙의 지표들도 공유하고 대안을 찾아나가는 등 생태적인 삶의 구체적인 실천방식도 목록에 추가됐으면 좋겠다.

나에게 좋은 것을 주는 만큼 지구에 사는 다른 생명들에게도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갓생러’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만하면 기성세대에서도 ‘갓생러’들이 생겨나도 좋지 않을까?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460억원이라는 돈을 가지고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보았다. 동생을 고아원에서 빼내오는데, 엄마 가게를 차려주는데 그리 큰돈이 들지 않는다.

고전 평론가 고미숙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의 피가 묻은 돈을 벌어왔다고 어느 부모, 어느 가족이 좋아할까? 마지막승자인 주인공의 표정이 행복해보이던가?”

차라리 ‘갓생’이 훨씬 멋지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하고, 밥 한 끼를 먹어도 지구와 함께 공생하는 실천을 하는 삶이 더 행복한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우정팀은 ‘자기우정’이라는 책에서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했다. 함부로 대한 자기 자신에게 사과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자기우정’을 발휘하는 것이 ‘갓생’의 시작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물리적 거리두기의 한계를 넘어서 이런 일상을 응원하는 툴을 만들고 사람사이의 연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디지털 기술을 이용할 줄 아는 MZ세대의 ‘갓생’을 응원한다. 개개인이 고립되지 않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일궈가도록 서로 응원하며 팬데믹의 시대에도 개인과 공동체의 ‘명랑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MZ세대에게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생활자립, 경제적 자립, 정신적 자립, 성적 자립과 함께 생태적 자립을 자신의 일상생활로 만들자는 ‘갓생러’들을 응원한다. ‘갓생러’들이여, 언제나 너희가 옳다.

시사포커스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